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곳, 보드가야 Bodhgaya

오늘은 부처님께서 고행을 멈추고 깨달음을 얻으셨던 곳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무엇을 깨달으셨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성지순례단과 함께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을 마치고 쓰러지셨던 네이란자라강을 건너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되살아난 곳을 지나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던 보드가야를 순례하였습니다.

부처님이 걸으셨던 바로 그 길을 따라

어젯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하룻밤을 잔 성지순례단은 새벽 4시 20분에 일제히 기상해 새벽예불을 올린 후 수자타 아카데미 정문 앞에서 보드가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깜깜한 새벽이라 랜턴을 하나씩 들고 줄을 지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고행을 마치고 보드가야로 걸어가신 바로 그 길입니다.

“자, 부처님을 생각하며 조용히 걸어 가보겠습니다.”

스님은 순례객들에게 조용히, 그리고 먼지가 나지 않도록 신발을 끌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직 마을 사람들이 자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최대한 마을을 지나지 않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순례객들은 명상하듯 조용히 앞사람을 비추며 나아갔습니다.

한참 동안 마을 길을 따라서 걷자 지금은 건기여서 모래사장처럼 되어 있는 네이란자라강이 저 멀리 보였습니다.

부처님이 고행 끝에 목욕하셨던 네이란자라강, Niranjana

네이란자라강은 건기라 물이 다 마르고 바닥이 온통 모래로 되어 있어서 발을 내딛기가 조금 힘겹기도 했지만,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다 보니 어느새 강을 거의 다 건넜습니다.

순례객들이 강을 건너자 강 건너편에서 마을 아이들이 마구 달려와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네이란자라강을 건너오자 허물어진 탑터가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바로 부처님께서 쓰러진 곳에 세워진 탑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없으면 그 누구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논두렁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탑을 바라보며 부처님이 쓰러지셨을 당시와 수자타가 공양을 올린 정황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출발했던 전정각산, 즉 수자타 아카데미 앞에 탑이 있던 곳에서 출발해서 오랫동안 못 먹고 허기진 야윈 몸을 끌고 이곳에 오셨어요. 아마 당시에는 거의 옷을 못 걸치고 나체 상태로 수행을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갓 갖다버린 한 여인의 시체덮개, 즉 분소의를 벗겨서 입으셨다고 해요. 경전 기록에 보면 그 여인이 아직 숨이 덜 끊어졌는지 ‘저 수행자가 내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 내가 보시의 공덕을 쌓고 싶다’라고 발원했다고 합니다. 그 여인이 숨을 거둔 뒤에 부처님께서 그 분소의를 입으셨고, 그러자 그 여인은 바로 천상에 태어났다고 경전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온 길을 따라 천천히 오셔서 이 강가에 이르러 목욕을 하셨습니다. 고행은 몸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해요. 첫째, 먹는 것에 집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먹지 않거나, 야생에서 얻은 거친 음식을 먹거나, 버린 음식을 먹어요. 둘째, 사람이 쓸 수 있을 만한 옷은 안 입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쓸 수 없는 옷을 입어요. 그게 분소의예요. 셋째, 자리에 앉을 때 주변을 치우고 앉지 않아요. 소 같은 짐승들이 자리에 앉을 때 돌 같은 걸 다 치우고 앉는 모습을 본 적 없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먼저 땅을 고른 뒤에 깔개를 깔고 앉아요. 그게 몸에 집착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디에 앉거나 할 때 장소를 고르면 안 돼요. 뭘 깔아도 안 돼요. 씻는 것도 안 돼요. 짐승들이 어디 가서 씻지 않잖아요.

이렇게 자연 상태로 생활하는 것이 고행주의의 표상인데, 부처님께서 고행을 버리셨기 때문에 첫 번째로 하신 게 목욕입니다. 시체를 쌌던 옷이니까 고름도 묻어있었겠죠. 그걸 가져와서 빨고 목욕을 하셨어요. 다섯 비구가 볼 때는 이렇게 목욕한 게 고행을 포기한 하나의 증거가 됐어요.

그런데 제가 여기 와서 궁금한 게 있었어요. 산에서 내려왔으면 저쪽 강변이 가까우니까 거기서 목욕을 해야 할 텐데 왜 여기로 왔을까요? 목욕한 자리가 강 이쪽인 여기란 말이에요. 왜 여기까지 강을 건너와서 목욕을 했는지가 늘 궁금했어요.

그런데 제가 전정각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같은 강바닥이지만 강바닥이 산 쪽으로 이렇게 기울어져 있어요. 그래서 건기 때는 지금도 이쪽으로만 물이 흐릅니다. 저쪽은 사막처럼 돼 있다가 우기가 되면 다 넘쳐흘러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쪽에 와서 목욕했다는 것은 그때가 우기가 아니고 건기였다는 것을 뜻해요. 지금은 바짝 말라 버렸지만 항상 여기 오면 물이 있어서 이쪽으로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여기까지 와서 목욕을 하셨다고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스님의 설명을 듣고 경전 독송을 하니 그때의 모습이 다시 그림 그리듯이 머릿속에 펼쳐졌습니다. 수자타가 공양을 올린 부분까지 독송을 마치고 다시 한두 사람이 걸을만한 좁은 길을 400여 대중이 줄지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보름달같이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느덧 동이 트고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다시 마을 사이로 난 논두렁 길을 따라 걷다가 정토회가 명상 센터를 짓기 위해 구입해 놓은 공터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한 많은 여행객들로부터 명상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 수요를 해결해주고자 이곳에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공터에 들어서니 풀이 말끔히 베어져 있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순례객들이 방문하기에 앞서 세 차례나 풀 베는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명상센터 부지에서 다 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어제 싸놓은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명상센터 부지를 나오자 대문 앞에는 스님으로부터 사탕을 받고자 많은 아이들이 긴 줄로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미리 준비한 사탕을 한 명 한 명에게 주며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스님은 이 곳에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곤 하는데, 사탕을 주며 다음 생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불법을 널리 전하는 수행자가 되어라고 발원하신다고 합니다.

수자타가 공양을 올린 곳

다음은 부처님이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곳에 세워진 탑을 향해 걸었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무덤 같이 생긴 작은 탑터가 보였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부처님이 수자타로부터 공양을 받으셨던 곳이라고 알려주면서 먼저 탑을 향해 삼배를 했습니다.

“오른쪽 앞에 무덤같이 생긴 작은 탑이 보이지요? 여기가 부처님이 수자타로부터 공양을 받으신 곳이에요. 여기는 부처님이 앉았던 자리, 여기는 수자타가 앉았던 자리입니다. 공양 올렸던 자리에 이렇게 탑을 쌓았어요.

뒤쪽을 보면 동네에 큰 탑이 있는데 저곳이 수자타의 집터예요. 그리고 왼쪽에 있는 절이 수자타템플이에요. 수자타의 공양터 주위에 수행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수행하니까 훗날 절이 지어졌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불교가 없어지고 지금은 힌두 절이 되었습니다. 수자타템플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있지만 지금은 힌두 사원이에요.

싯다르타가 고행을 포기했다는 증거가 목욕을 한 것, 수자타가 공양 올린 유미죽을 먹은 것, 길상초를 깔고 앉은 것입니다.

한자로 길상초(吉祥草)라고 표기하는 풀의 인도 이름은 ‘쿠스’입니다. 이 풀은 우리나라의 볏짚과 비슷해요. 우리는 자리에 앉을 때 볏짚 깔고 앉잖아요? 새끼 꼬는 데도 쓰고, 말려서 돗자리 엮는 데도 쓰고요. 지금 옆에 보이는 갈대와 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보다 키가 작고 훨씬 더 부드러운 풀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수자타의 공양이 유명한 이유가 있어요. 다른 공양은 다 부처님이 위대하게 되신 뒤에 올린 공양이에요. 유명해지셨기 때문에 공양을 올렸거나, 설법을 듣고 감동해서 올린 경우인데, 수자타가 올린 공양만큼은 달랐어요. 이 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바짝 마른 사람으로밖에 안 보이잖아요. 길가다가 보면 쓰러져 있는 거지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이 소녀가 공양을 올려서 건강을 회복시켰기 때문에 이건 부처님이 위대한 게 아니라 수자타가 위대한 거예요.

저희가 학교 이름을 ‘수자타 아카데미’라고 지은 것은, 이 동네 사람들이 다 수자타의 후예이고, 우리는 부처님의 후예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은혜를 갚는다는 뜻입니다. 불쌍하니까 도와준다는 게 아니라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에요. 수자타가 쓰러져 있던 가난한 사람을 도운 공덕으로 붓다가 출현했듯이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수자타와 같은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면 이 아이들 중에도 붓다와 같은 성인이 나올 수도 있는 거예요. 불쌍하니까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공양을 올린다는 마음에서 학교를 세웠습니다.”

어제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본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어서 우루벨라 가섭이 수행했다고 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부처님이 보드가야를 향해 가신 길은 아니지만, 깨달음을 얻고 사르나트에서 전법선언을 한 후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한 곳입니다.

우루벨라 가섭의 수행터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곳에 숲이 있었는데 그 숲 속에 우루벨라 가섭의 수행터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숲 한쪽에 자리를 잡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한 이야기를 재미있고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이곳이 우루벨라 가섭의 수행 도량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강을 따라 내려가면 그 동생인 나디 가섭과 가야 가섭의 수행 도량이 있었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을 따르는 수행자가 당시 500명이나 되었어요.

부처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하룻밤을 자고 가려고 청하자 자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어디라도 좋다고 하셨어요. 인도에서는 어디라도 좋다고 하면 거절하기가 어려운가 봐요. 그러자 우루벨라 가섭은 화룡이 있는 굴에서 자라고 한 겁니다. 우루벨라 가섭은 아침이 되어서 죽은 줄 알았던 부처님이 잘 쉬었다고 하면서 나와서 깜짝 놀라 했습니다. 부처님이 신통력으로 제압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좀 더 사실적인 이야기로는 부처님이 굴속에서 명상을 하고 있으니까 뱀이 나와서 몸을 칭칭 감고 지나갔는데 부처님은 무념무상의 상태로 있었다고 합니다. 뱀이 나무 위로 올라갈 때 나뭇가지를 꽉꽉 물면서 올라가요, 그냥 올라가요? 그냥 올라가지요.

이 외에도 우루벨라 가섭은 부처님과 360가지 신통력 경쟁을 했다고 해요. 그 말은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뜻이죠.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교화하기도 굉장히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360가지 신통력 경쟁 중에 마지막 버전이 뭘까요? 큰 뿌자, 다시 말해 큰 제사가 있는 날에 우루벨라 가섭의 제자들이 막 제단을 쌓고 불을 피울 준비를 하다가 부처님과 우루벨라 가섭이 있는 곳으로 제자가 와서 우루벨라 가섭에게 이러는 거예요.

‘스승님, 큰일났습니다.’
‘왜?’
‘아무리 불을 켜도 불이 안 켜집니다.’

옛날에는 나무를 문질려서 불을 붙이잖아요. 그런데 불붙일 시간이 다 됐는데도 불이 안 붙은 겁니다. 그럼 제사가 엉망이 되니까 다급하게 얘기하는데, 부처님께서 ‘이미 불이 붙었다’ 이러는 거예요. 지금까지 애써도 안 붙었던 게 붙었다고 하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싶었어요. 그런데 가보니까 진짜 불이 붙은 거예요.

그러자 우루벨라 가섭이 마음속으로 조금 꺼리는 마음이 생겼어요. 오늘 엄청난 사람이 모여서 제사 의식을 치르는데 ‘고타마’라는 이 수행자가 혹시 또 무슨 일이라도 벌이면 망신이잖아요. 그래서 말은 안 했지만 마음속에서 약간 꺼려지는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부처님이 그 마음을 아시고 그날 하루 종일 모습을 안 보였어요. 제사가 모두 끝난 뒤에 부처님이 오셨어요. 그러니까 우루벨라 가섭이 부처님께 자랑을 했어요.

‘오늘 제사가 너무너무 여법하게 잘 됐습니다. 어디 갔었습니까? 당신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모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러셨어요.

‘우루벨라여, 내가 여기 있기를 원치 않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우루벨라는 마음을 들켜 버렸어요. 겉으로는 ‘내가 언제!’ 이랬지만 속으로는 들켜서 뜨끔했는데 부처님이 또 이러셨어요.

‘우루벨라여, 마음속에 질투가 있고는 해탈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은 지금까지 질투할 일이 없었어요. 자기가 제일 훌륭한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고타마를 만나고 나서는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도 마음에 늘 거리낌이 있었는데, 자기가 자기 마음을 모르다가 그 거리낌의 뿌리가 질투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 자기가 자기 마음을 탁 본 거예요. 그걸 보자 뭔가 마음속에 꺼림칙하고 답답하던 게 갑자기 안개 걷히듯이 확 걷혔어요. 그래서 이 80세 노인이 부처님 앞에 무릎을 딱 꿇고 이렇게 요청한 거예요.

‘당신은 나의 스승입니다. 제자로 받아들여 주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답했어요.

‘우루벨라여, 그렇게 경솔하게 결정을 하면 안 됩니다. 당신에게는 오백 제자가 있지 않습니까?’

부처님은 우루벨라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두 번째로 또 청했는데 부처님이 또 거절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루벨라가 제자들 500명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까지 나는 여러분과 잘 지냈는데 나는 오늘 위대한 스승을 만났다. 그래서 나는 이 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다 너희 갈 길을 가라.’

이렇게 해산 명령을 내리니까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지금까지 아무런 불만 없이 만족하게 지냈습니다. 당신이 위대한 스승을 만났다면 우리 또한 그분을 우리의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렇게 500명이 다 동의를 한 거예요. 그래서 우루벨라 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라고 세 번째로 청하니까 부처님께서 비로소 승낙을 하셨어요.”

흰색 벽으로 둘러쳐진 건물의 좁은 문으로 들어서자 우물처럼 생긴 작은 화룡굴이 보였습니다.

정말로 이곳에는 화룡이 있었던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현장에 오니 경전에 기록된 내용이 거짓이 아니고 모두 사실이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고의 공양

보드가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기 전 마지막으로 아주 웅장한 규모로 세워진 수자타의 공양을 기념한 탑 앞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은 탑을 한 바퀴 돌면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했습니다. 탑의 규모가 워낙 커서 한 참을 돌아야 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얼마나 이 탑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렸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탑을 도는데 울타리 밖에서 어눌한 말투로 ‘아미타부, 아미타부’하는 어린 목소리가 들립니다. 탑을 순례하는 불자들이 아미타불하는 소리를 듣고 따라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울타리 사이로 작은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성지마다 구걸하는 아이나 노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30년 전, 스님이 처음 인도성지순례를 했을 때는 더했겠지요. 스님의 고뇌가 절절히 다가오기도 하고, 여전히 구걸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편 수자타 아카데미가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드디어 순례단은 보드가야로 향하는 긴 다리를 만났습니다. 강 건너 편에는 높이 우뚝 솟은 대탑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부처님은 대탑이 세워진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49일 동안의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보드가야 대탑

4시간을 걸어 발바닥과 종아리와 어깨가 아플 무렵 보드가야 대탑에 도착했습니다. 보드가야대탑에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습니다. 특히 1월에는 달라이라마의 법회가 있어 티벳 사람들과 스님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정토회 성지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 관리 측에 요청하여 Meditation park(명상공원)에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순례객은 부처님의 성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마왕의 세 가지 유혹을 실감나게 설명했습니다. 그 중 세 번째 유혹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세 번째로 유혹을 할 때는 아예 마왕이 직접 나타났어요. 이번에는 ‘네가 수행을 포기하면 자재천왕의 자리를 너한테 주겠다’ 라고 했습니다.

저는 앞에 두 번의 유혹도 견디기 어렵지만 그건 그래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세 번째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 것 같아요. 만약 자재천왕의 자리를 저한테 주면 일단 한반도가 통일이 되잖아요. (모두 웃음) 자재천왕이 된다는 것은 원하는 바는 뭐든지 다 이루어진다는 뜻이에요. 사실 우리의 욕구 중에 이것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겠죠.

그런데 붓다는 이런 유혹에 대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나는 바라는 게 없노라’ 그랬습니다. 뭐라도 바라는 게 있어야 유혹이 될 텐데,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부처님은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는데, 저는 지금 바라는 게 있어서 해탈하기는 좀 어려워요. (모두 웃음)

하지만 붓다는 ‘바라는 게 없노라!’ 라고 대답했어요. 이렇게 되니까 마왕이 더 이상 방법이 없잖아요. 바라는 게 없는 사람한테는 자기가 가진 그 수많은 능력이 무용지물이니까요. 그런데 마왕이 이렇게 말했어요.

‘좋다, 그렇지만 네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열반에 이르지는 못한다. 열반이라는 말은 있지만 실제로 열반이라는 경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재천왕의 지위에 있으면서 뭐든지 원하는 건 다 마음대로 되는 나조차도 열반에 이르지 못하는데, 네가 어떻게 열반에 이르겠느냐는 말이에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답하셨어요.

‘너는 과거에 한 번 큰 공덕을 지은 인연으로 자재천왕이 됐다. 그런데 나는 과거 생에 한량없는 공덕을 지었기 때문에 너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네가 안 된다고 내가 안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러자 자재천왕이 비웃었어요.

‘내가 과거에 공덕을 지어서 지금 자재천왕이 됐다는 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신도 알고 사람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네가 과거에 한량없는 공덕을 지었다는 건 누가 알 수 있느냐?’

바짝 말라 뼈만 남아서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네가 과거에 한량없는 공덕을 지었다고 해도 그걸 누가 아느냐는 겁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두 손을 모으고 명상하던 자세에서 오른손을 들어 정수리를 한 번 쓰다듬고, 손을 내려서 오른쪽 무릎을 한 번 쓰다듬고, 무릎 위에 있던 손을 다시 아래로 내려서 땅을 가리켰어요. 이 모습이 성도상입니다. 여기 근처에 불상이 있으면 한번 잘 살펴보세요. 이렇게 손을 밑으로 향하면서 ‘지신이여, 나의 과거 공덕을 증명하소서’ 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땅에서 지신이 일어나서 부처님이 과거에 한량없이 세웠던 공덕을 쫙 증명했습니다. 그러자 자재천왕, 즉 마왕이 부끄러워서 물러가고 부처님은 성도를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자세를 한 불상을 항마성도상이라고 해요. 마왕을 항복받고 성도를 했다는 뜻이에요.

예수님도 비슷한 유혹을 받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설파하니까 악마가 나타나서 ‘저 배고픈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하냐? 네가 진짜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로 빵을 한 번 만들어봐라. 그러면 여기의 배고픈 사람을 모두 먹여 살릴 수 있지 않느냐?’ 라고 했어요.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라고 답해서 악마를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네가 진짜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성벽에서 한번 뛰어내려봐라. 기적을 한번 행해 봐라’ 이러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다 신통에 대한 유혹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스님이 훌륭하다고 하면 신통을 보여줘야 훌륭한 스님이라고 생각해요. 주가가 오르는지 안 오르는지를 맞춰준다든지, 땅값이 오르는지 안 오르는지를 맞춰준다든지 우리 아들이 대학 시험에 붙나 안 붙나를 알려준다든지, 아니면 공중에 붕 뜬다든지 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니까 해탈은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해탈은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능력은 바로 욕구에 따라 일어나요. 욕구가 있으니까 능력을 추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신통을 금지하신 거예요.”

이어서 스님은 어떻게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6년간 극심한 고행을 행하셨는데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자신의 수행을 되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점검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출가하기 전에는 욕망을 따라갔다는 걸 알았어요. 즉 욕망의 충족을 통해서 만족이라는 기쁨을 추구했는데, 그것이 끝이 나지 않았어요. 욕망이 충족되면 다시 욕망이 커지고 충족되면 또 커져서 마치 장작불을 피울 때 장작이 들어가면 불꽃이 커지고 불꽃이 커지면 더 많은 장작을 필요로 하듯이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아셨어요. 욕망의 충족을 통해서는 완전한 해탈을 얻을 수가 없다는 걸 아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욕망을 억제하고 억압하는 쪽으로 정진을 해나갔습니다. 심지어는 생존에 대한 욕구까지도 억제했어요. 먹는 걸 멈추고 때로는 숨 쉬는 것까지도 멈춰보는 그런 극심한 고행을 행했지만 완전한 해탈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돌아보니 열세 살 때 농경제에 참여해서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가 죽어야 할까? 함께 사는 길은 없을까?’ 라는 큰 의문을 가지고 명상할 때보다 지금 하는 명상은 깊이나 편안함이 더 부족한 거예요. 우리가 감정을 억제하고 있으면 바깥에 표출은 안 되지만 몸과 마음이 긴장되니까 깊은 선정에 들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고행 역시 해탈의 길이 아님을 아시고 고행도 버렸습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분소의를 걸치고 네이란지라 강변으로 와서 목욕을 하고 옷을 빨았어요.

그 때 그 여윈 몸으로 성도를 하면 세상 사람들이 ‘아, 굶으면 깨달음을 얻는구나’ 이렇게 오해를 하리라는 걸 아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신이 그런 극심한 굶주림 상태 하에서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신통력을 주겠다 하니까 ‘그것은 세상 사람을 오히려 미혹하게 만든다’ 라고 거절하셨던 거예요. 몸이 여윈 건 깨달음하고 관계가 없다는 거죠. 몸이라는 것은 음식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음식을 섭취해서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겁니다. 또 빨래를 해주겠다 하니까 ‘수행자는 자기 몸에 해당되는 것은 자기가 해결한다’라고 거절하셨고 스스로 빨래를 하셨다는 얘기가 경전에 나옵니다. 이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목욕을 하시고 쓰러지셨다가 수자타의 공양을 받으시고 건강을 회복하셨어요. 그런 뒤 어느 쪽으로 가서 마지막 성도를 할지 고민하셨어요. 둥게스와리로 다시 돌아갈까? 아니면 강 이쪽 편 건너,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으로 와서 정진을 할까? 수자타의 집터에서 동편으로 건너가도 당시는 시타림이니까 사람이 살지 않았고, 이쪽인 서편으로 강을 건너와도 시타림은 아니지만 여기 역시 숲이라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건너오셨어요. 여기 와서 풀을 베던 목동에게 그 풀을 한아름 얻어서 나무 밑에 깔고,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다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죽을 각오를 하고 임하는 것을 대결정심이라고 합니다. 이런 대결정심을 가지고 자리에 앉아 49일 동안 용맹정진을 하셨습니다.”

이어서 당시의 부처님 행적이 담긴 경전을 함께 독송했습니다.

많이 고단했는지 따스한 햇살아래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경전을 끊어서 독송하도록 했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이 깨달으신 곳인데 졸면 안 되지요.”

경전을 모두 독송하고 난 후 대탑을 바라보며 정성껏 준비한 공양물과 향을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스님을 따라 대탑으로 향했습니다.

예불 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순례단 전체를 위해 축원을 해주셨습니다. 개인의 안녕과 행복과 더불어 고통 받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축원, 한반도의 평화도 발원했습니다.

많은 인파 속에서 노란 가사를 수한 정토회 순례단은 한 줄로 서서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외고 마음으로 부처님을 떠올리며 대탑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인도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방문객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은 부처님이 성도하신 자리에 아쇼카 왕이 세운 불탑으로 ‘Maha Bodhi Stupa 마하보디 수투파’라고도 합니다. 불교가 쇠퇴하자 힌두절이 되었는데 미얀마 왕이 거금을 주고 관리 권한을 얻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다 같이 대탑을 돌고나서 자유롭게 정진을 하거나 대탑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도 후 부처님께서 머무셨던 장소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부처님의 수행과 성도, 교화활동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108배하거나 명상을 했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에는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 불교도인들이 많았고 사람들마다 기도하는 방식도 다양해서 전 세계의 불교도인들이 모였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보드가야대탑에서 수자타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길에 어제 가지 못한 가야산을 들렀습니다. 천명의 제자들에게 ‘불의 설법’을 한 곳이자, 부처님께서 이 산위에 서서 전정각산에서 고행을 하리라 마음먹은 곳입니다. 가야산 아래 마을 입구에서부터 아이들이 달려 나와 순례객들의 손을 잡고 구걸을 시작했습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걸어서인지 가야산을 오르는데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찼습니다. 대중이 산에 다 오르자 스님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날이 맑아 건너편 전정각산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자리에 서서 정말 전정각산을 바라보았다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여기가 천 명의 비구를 모아놓고 ‘불의 설법’을 했다는 자리예요. 뒤를 돌아보면 산꼭대기가 보이죠? 부처님이 라즈길에서 처음으로 이 가야로 와서 저 산꼭대기에서 주위를 둘러보셨다고 해요. 네이란지라강 동편, 지금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는 곳이 수행하기 좋겠다 해서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가 경전에 나옵니다. 부처님은 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멀리까지 둘러본 후 ‘저기 가서 수행해야 하겠다’ 하고 결심을 하셨던 겁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여기는 우루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을 비롯한 1000명의 대중을 모아서 설법하신 자리예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저 밑에서 설법을 했지 굳이 여기까지 올라올 이유가 없었을 것 같아요. (모두 웃음) 저도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힘들었거든요. 어쨌든 그래야 이야기가 되는지, 저기에 부처님이 앉으시고 우리는 여기 앉아서 법문을 들었나 봐요.”

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과 가야산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수자타 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에서 순례객을 위해 따뜻하게 물도 데워주고 따뜻한 밥과 된장국을 준비해주어 저녁식사도 맛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녁 예불을 드리고, 지바카 병원 2층 홀에 모여 JTS 활동에 대한 소개를 들었습니다.

인도 JTS와 수자타 아카데미의 오늘

인도 JTS 사무국장 보광법사님의 사회로 인도 JTS 각 사업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온다고 11월부터 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많이 준비했습니다.” (모두 박수)

순례객을 맞이하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 걸린 예쁜 장식들도 손수 만들고 학교 곳곳을 청소하고 기숙사 앞마당은 소똥칠을 두 번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 선생님들, 활동가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례객들은 큰 박수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각 사업별로 책임자와 사업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빠레와 마을에 유치원이 생길 때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때까지 이름이 없다가 유치원에서 이름을 가지게 된 ‘아짓(Ajeet)’은 이제 천여 명이 넘는 유치원의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학교, 병원, 마을개발의 각 분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도인 스텝들은 작년 스님과 함께한 깨달음의 장 이후 개인과제도 받아서 수행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자타 아카데미 교장 ‘인드라짓’은 매일 108배도 하고 있다고 하여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각 사업의 보고가 끝난 후에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질문자 중에는 둥게스와리 마을의 물 문제를 도와주고 싶다는 분도 있었고, 어떻게 인도에서 봉사할 수 있는지 물어보신 분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정리말씀을 하며, 해외 봉사에 대한 기준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사업 보고 잘 들으셨죠?”

“네!”

“방금 발표를 들으신 대로 열심히 한 것도 많고, 부족한 것도 아주 많습니다. 방금 봉사자에 대해 질문하신 내용에 답을 드리자면, 정토회는 일반 자선 단체와 다릅니다. 수행자로서 봉사한다는 게 기본 원칙입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먼저 돼야 합니다. 수행자라는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봉사 신청을 받고, 그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봉사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18일 왔다 가고 어떤 분은 한 달 왔다 가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셨는데, 그 사람은 정토회의 서원행자입니다. 수행자로 자리가 잡힌 사람 중에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분은 그 기술이 필요할 때 본인이 오겠다고 하면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단기 봉사를 받아요. 예컨대 컴퓨터 관련해서 필요한 걸 가르쳐주겠다고 할 수도 있겠죠. 정토회에서 서원행자 이상인 사람은 언제든지 가능한 시간만큼 어떤 기술을 가져와서 봉사하겠다고 하면 ‘오케이’입니다.

정토회와 아무 관계없는 일반인이 와서 봉사하고 싶다고 할 때는 먼저 수행자가 돼야 해요. 그래서 ‘깨달음의 장’을 먼저 다녀와야 합니다. 그런 후 문경정토수련원에 가서 백일출가를 하거나, 그에 준하는 49일 이상 공동체 생활을 한 경험을 먼저 거쳐야 합니다. 그렇게 생활해 보면서 ‘아, 이 정도면 인도 가서 살 만하겠다’, ‘필리핀 가서 살 만하겠다’ 하면 봉사하도록 허락을 해줍니다. 살아보니까 ‘공동체 생활은 잘 안 된다’ 라고 하면 이곳에서 봉사를 할 수 없어요. 기술 이전에 여기 와서 공동체 생활을 먼저 해야 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수행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새벽 4시 반에 안 일어나겠다든지, 아침에 발우공양을 안 하겠다든지, 나가서 특별히 맛있는 걸 혼자서 사먹고 들어오겠다든지 하면 여기서 같이 살 수가 없어요. (모두 웃음)

우리가 아무리 검소하게 살아도 이 동네 사람들이 볼 때는 호화판이에요. 이게 지금 저희들의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현지인처럼 살려고 노력해요. 저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 동네 집에 가서 방을 얻고 그냥 현지인처럼 살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그 이후에는 이렇게 건물을 따로 짓고 사니까 서로 위화감이 생겼습니다. 담장 밖과 안의 구분뿐만 아니라 생활 차이가 또 생기잖아요. 그러면 도둑이 생기는 문제가 자꾸 발생합니다. 그리고 또 여기는 인도인 자원봉사자들이 늘 똑같이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입는 반면 자신들은 그러지 못하면 말로만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되어서 말이 안 먹히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현지인들과 똑같이 생활합니다.

점심 급식도 마찬가지에요. 점심에 애들 급식을 할 때 따로 못 먹고 그 급식을 같이 먹어야 해요. 그런데 한국에서 봉사하러 온 사람이 ‘나는 그거 먹고는 못 살겠다’, ‘나는 이렇게 전깃불도 없는 데서 못 살겠다’ 이러면 함께 지낼 수가 없어요. 여기는 교육하는 곳이기 때문에 특히 그렇습니다. 애들은 따라 배우기를 하기 때문에 무엇을 가르치면 ‘그러면 너는 왜 그러는데!’ 이러거든요. (모두 웃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봉사 신청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저희에게 기술이라는 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에요. 저희들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부족해도 수행자로서 봉사할 수 있는 만큼 하지, 사업의 성과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이 원칙이 먼저 지켜져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수행자가 먼저 되고, JTS에서 자원봉사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내일은 오전에 전정각산을 올라갔다 내려와 수자타 아카데미 25주년 개교기념식을 하고, 오후에는 둥게스와리 마을을 직접 방문하여 둘러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매일 매일이 꽉 찬 순례 일정입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스님의하루 텔레그램 구독하기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읽고 댓글로 마음을 나눠보세요. 단, 욕설, 비방, 광고, 도배하는 댓글은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