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로 설법한 곳, 사르나트

오늘날 우리들이 갖고 있는 고뇌나 현재의 어려움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어떤 해답을 제시하실까요? 중생에게 부처란 그분의 태어남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며, 바로 그 분의 설법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최초의 설법지인 바라나시의 사르나트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가 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성지순례단과 함께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법을 설한 곳인 ‘사르나트’를 순례한 후 강가강을 둘러보았습니다.

새벽 5시 각자 숙소에서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성지순례단은 6시 30분에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

바라나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공원, 이 곳이 부처님께서 처음 법을 설하신 사르나트입니다. 박물관을 지나 사슴 동산이라고 써놓은 곳으로 들어가면 녹야원입니다. 녹야원 왼쪽에는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설한 장소에 세운 탑(Dharmarajika Stupa, 다르마라지크 스투파)가 있고, 오른쪽에는 부처님께서 두 번째로 법을 설하신 장소에 세워진 탑(Dharmekh Stupa, 다메크 스투파)가 있습니다.

해 뜨기 전 안개가 내린 녹야원, 400여 명의 순례객들은 입장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문이 열리기 기다렸습니다. 들여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주던 인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30년 째 이곳을 방문하고 있는 스님도 닫힌 철문 앞에서 한마디 합니다.

“어떤 것도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으면서도,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가 인도였는데, 인도도 바뀌고 있네요.”

스님은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해 오늘 일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사르나트에 입장하면 먼저 석가모니불 정근과 탑돌이를 하는데, 이런 의식이 낯설 수 있는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성지에 왔으니 먼저 예불을 드리는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문이 열리자 400여 명의 순례객은 안개를 가르며 길게 줄을 선 채 향을 하나씩 들고 목탁 소리에 맞춰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천천히 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먼저 붓다가 처음으로 법을 설했다고 하는 ‘다르마라지크 스투파’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 붓다가 처음으로 법을 설한 곳, 다르마라지크 수투파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설한 곳에 왔다는 감격에 벌써부터 눈시울을 붉히는 분들이 보였습니다.

다음은 두 번째로 법을 설한 곳에 세워진 ‘다메크 수투파’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다메크 수투파는 아주 크고 웅장해서 멀리서도 한 눈에 그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스님은 순례단의 맨 앞에 서서 탑돌이를 마쳤습니다. 곧이어 탑을 향해 사시공양 예불이 이어졌습니다.


▲ 예불 공양

정성을 다해 머리 숙여 예불을 한 후 스님은 순례단을 위해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성지순례단 모두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성지순례를 마치고 그 공덕을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널리 회향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특히 식량난과 약품, 생필품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도 생존권이 보장되고 인권이 보장되어 우리와 같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발원이 끝나고 순례단이 모두 자리에 앉자 바로 스님의 안내가 이어졌습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한 곳, 사르나트

“대탑을 바라보는 기분이 좋아요?”

“예!”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하셨다고 하는 곳, 늘 듣기만 들었던 녹야원(鹿野園) 사슴동산에서 이렇게 예불 공양을 올렸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귀한 일입니다.

부처님이 설법하기 까지

부처님께서는 2600여 년 전 네이란자라 강가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용맹정진을 하신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는데요. 그곳에서 49일간 깨달음의 기쁨을 만끽하셨어요. 그러자 이 좋은 법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으셨습니다.

‘세상을 둘러보니 모두 다 괴로워하고 있다. 그들도 나처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미묘한 법은 아무나 알아듣기가 어렵기 때문에 누가 들을 만한가 살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웃다카 라마풋타였어요. 그는 능히 이 법을 이해할 수 있을 터였지만 그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알라라칼라마 스승을 생각해보니 그 분도 돌아가신 뒤였어요.

그래서 다시 돌이켜보니 자신을 비난하고 떠나긴 했지만 함께 6년간 고행했던 옛 도반들이 이 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보니까 이곳 바라나시(Varanasi) 성 밖의 사르나트(Sarnath), 즉 사슴동산(녹야원)이라고 불리는 곳에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곳까지 보름 동안에 걸쳐서 천천히 걸어오셨어요.

이 곳까지 오는 중에 한 바라문을 만났습니다. 부처님의 걷는 자세와 태도가 너무나 거룩하니까 그 바라문이 물었어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누구를 따라 출가했고 누구의 제자입니까?’
‘나는 누구의 제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은 여래입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나의 스승이 될 자는 없습니다,’

자랑하려고 한 게 아니라 사실대로 말했는데 그 바라문 귀에는 좀 건방지게 들렸나 봐요. 그래서 엉덩이를 실룩실룩하고 가버렸어요.(모두 웃음) 첫 번째로 부처님의 법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과 교만심 때문에 법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길을 계속 가던 부처님은 강가(Ganga, 갠지스) 강변에 이르렀습니다. 강이 넓어서 뱃사공에게 물어보았어요.

‘나를 좀 건네줄 수 있습니까?’
‘건네 드릴 수는 있죠. 그런데 나는 뱃삯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몸에 아무것도 지닌 게 없어서 뱃삯을 줄 수가 없었어요. 경전을 보면 ‘그래서 부처님께서 허공을 날아가셨다. 그러자 뱃사공이 까무러쳐 쓰러졌다’ 이렇게 묘사가 돼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뭘 상징할까요? 한 사람은 너무 교만해서 법을 만날 수가 없었고, 한 사람은 너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다시 말해 삶에 너무 집착해서 법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정토회에도 너무 하루하루 살기 힘든 사람이 오면 수행하기가 어렵고, 너무 유명하거나 부자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도 여기 와서 대중 가운데 앉아서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적당한 수준입니다.(모두 웃음) 어쨌든 이 일화는 법을 만나는 가장 적절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줍니다.

강을 건넌 부처님은 이곳 사르나트에 이르렀어요. 이곳은 그 당시에 시체를 갖다 버리는 숲, 즉 시타림(尸陀林, śītavana)이였습니다. 이런 숲에는 인골이 널려 있거나 지금 막 갖다 버린 시체, 썩어가는 시체가 널려 있으니 사람들이 안 가겠죠. 그래서 수행자들이 수행하기가 참 좋았어요. 시타림은 고행림(苦行林)이라고도 불립니다. 고행주의자들은 시체가 쌓여있는 곳에서 수행을 했기 때문에 시타림이 곧 고행림인 거예요.

이곳에 와보니 다섯 수행자들이 수행을 하고 있었어요. 부처님께서 이 숲속으로 들어온 것을 정진하던 다섯 수행자들이 봤는데 어디서 본 사람 같은 거예요.

‘어, 고타마 싯다르타 아니야?’
‘맞아!’
‘저 사람은 수행자가 아니야. 수행을 포기한 사람이잖아. 그러니 가까이 오더라도 수행자로 대우하지 말자.’

발 씻을 물을 떠주고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수행자에 대한 예우예요. 이 두 가지를 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점점 가까이 오자 자기도 모르게 한 사람은 일어나서 물을 떠오고, 한 사람은 자리를 펴주면서 ‘이곳에 앉으십시오’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는 ‘저 사람은 수행자가 아니야’ 했지만, 옛날에 함께 지낼 때 존경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예우를 했겠죠. 그렇지만 이성적으로는 아직 부정적인 생각이 있으니까 한 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고타마시여, 아주 신수가 좋구려.’

쉽게 말하면 ‘야, 너 얼굴 좋다’ 이 말이에요. 요즘 세속에서는 ‘아이고, 스님, 얼굴 좋습니다’ 이러면 칭찬이지만 여기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칭찬이 아니라 약간의 비꼼입니다. ‘고행을 포기하고 부드러운 음식 먹으며 편하게 지내더니 때깔 좋구나’ 이렇게 약간의 비판이 섞여 있는 겁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나를 더 이상 고타마라 부르지 마시오. 나를 여래라 부르시오’ 라고 했습니다. 여래(如來)라는 말은 ‘오고감이 없는 자’, 다시 말해 ‘깨달은 자’라는 뜻입니다. 다섯 친구들은 깜짝 놀랐어요.

‘아니, 그렇다면 위없는 도를 이루었다는 말이냐?’
‘그렇다.’
‘그렇게 고행을 하고도 깨닫지 못했는데, 고행을 포기하고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다는 얘기냐?’

우리 식으로 설명하면, 스님들이 같이 선방에서 수행할 때는 못 깨닫다가, 수행을 포기하고 결혼해 애 낳고 살다 온 사람이 깨달았다고 하는 꼴이니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믿기가 힘들었어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옛날에 당신들과 같이 지낼 때 내가 한 번이라도 거짓말한 적이 있느냐?’ 이렇게 되묻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6년이나 함께 지내는 동안 고타마 싯다르타는 거짓말을 한 적이 진짜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새삼스럽게 너희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마음을 돌이켜서 이렇게 청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얻었다는 그 법을 우리를 위해서도 설해 주시오.’

불법은 반드시 법을 청해야 설법을 하지, 청하지 않고는 법을 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숲속의 어느 나무 아래에 다섯 명과 같이 앉아서 초야(初夜), 즉 초저녁에는 같이 선정에 들었습니다. 중야(中夜), 즉 한밤중에 선정을 풀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졌어요. 그리고 후야(後夜), 즉 새벽녘에 법을 설했습니다.

첫 번째로 설한 것이 중도입니다. 쾌락도 버리고 고행도 버리고 중도의 길을 가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로 설한 것이 중도의 구체적 내용인 여덟 가지 바른 길, 즉 팔정도(八正道)입니다.

그리고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습니다. 첫 번째, 고(苦),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현실을 먼저 진단하고, 두 번째, 집(集),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라고 원인을 규명하고, 세 번째, 멸(滅),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하시고, 네 번째, 도(道),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설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 법을 설하자 카운디냐(Kaundinya)라고 하는 사람이 첫 번째 설법을 듣고 단박에 깨달았어요. 그래서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카운디냐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법은 지금까지 나만 증득한 것이잖아요. 다른 사람도 가능한지 알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다른 사람도 이 법을 깨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정말 기쁘셨겠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오, 카운디냐가 깨달았다!’ 이렇게 기뻐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깨달음을 얻자 카운디냐가 일어나서 부처님께 스승의 예를 취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네 명이 ‘쟤가 미쳤나’ 하고 의아하게 쳐다봤습니다. 지금까지는 친구 사이였으니까요.

그런데 3일이 더 지나자 깨달은 사람이 늘어났어요. 첫날 카운디냐가 깨닫고, 3일이 더 지나 두 명이 더 깨달았습니다. 아마 사흘간 식사를 안 한 채 계속 선정을 하고 대화를 나눴나 봐요. 세 명이 깨달음을 얻고 두 명은 아직 못 깨달았어요. 그래서 세 명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공양을 얻으러 가고, 부처님과 두 명은 남아서 계속 정진을 하다가 세 명이 얻어온 밥을 여섯 명이 나눠 먹었다고 해요. 그렇게 다시 3일이 지나자 이 두 사람도 깨달음을 얻어서, 일주일 만에 다섯 명이 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 다섯 분을 ‘5비구’, ‘첫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원래는 도반이었다가 나중에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되신 분들이에요. 이렇게 해서 바로 이곳에서 다섯 명의 깨달은 아라한이 탄생했습니다.”

성지에서 듣는 스님의 법문은 그 감동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깨달은 후 함께 고행했던 다섯 비구를 찾아 떠났던 부처님, 카운디냐 비구가 깨닫자 무척 기뻐하셨다는 부처님의 마음이 느껴져 울컥했습니다.

뱃사공은 먹고 사는 데 급급해서, 바라문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부처님의 법을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많은 대중들이 공감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같은 이유로 부처님의 법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이어서 스님은 야사 등 청년 55명의 출가와 전법 선언, 최초로 재가수행자가 된 구리가 장자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르나트 성지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다함께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경전에는 바라나시 사르나트에서 일어난 부처님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나서 그 일이 있었던 현장에 직접 와서 그 내용을 읽으니, 한 구절 한 구절이 정말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경전 독송을 마치고 나서는 부처님 당시에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며, 또 성지에 온 감흥을 편안하게 느껴보며, 명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도 고요히 선정에 들었습니다.

동이 틀 무렵에 법회를 시작했는데 벌써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날이 밝아져 있었습니다.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어제 밤 숙소에서 보온밥통에 담아 온 밥과 한국에서 가져온 깻잎, 김치, 고추장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수계식

이어서 수계식이 열렸습니다. 이곳 바라나시에서는 야사라는 젊은 청년이 출가를 했고, 야사의 아버지도 야사를 찾으러 왔다가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면서 최초로 삼귀의, 오계를 수계 받은 재가수행자가 탄생했습니다. 최초의 삼귀의, 오계 수계식이 열린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 한국에서 온 400여 명의 순례객들 또한 수계를 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업
마른 풀이 불에 타듯 흔적조차 없어져라.
죄의 본성 따로 없고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마음 한 번 없어지니 죄업 또한 없어지네.
죄도 없고 마음 없어 그 자리가 비었으니
빈 그 자리가 진정한 참회일세.”

스님의 인례에 따라 400여 대중은 연비를 하고 수계를 받아 수행자로 탄생했습니다. 가사와 바랑을 모두에게 나눠준 후 스님은 순례객들에게 “이제 진짜로 수행승이 된 것 같네요” 하며 웃었습니다.

수계식을 여법하게 마치자 이제 400여 명의 수행자가 탄생했습니다. 가사를 수한 수행자들은 큰 박수로 12일 동안 수행 생활을 해볼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오전 내내 초전법륜성지인 사르나트에서 시간을 보낸 후 스님은 “각 차량별로 법사님의 안내에 따라 주변을 더 자세히 둘러보라”고 하면서 이곳 주변에는 어떤 건물들이 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수계식을 모두 마친 후 가사를 수하고 다시 다메크스투파를 참배한 후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평생 동안 딱 한 장만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위해 모두 가지런히 줄을 맞춰 섰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차량별로도 사진을 함께 찍어 주었습니다.

이어서 차량별로 법사님들과 함께 성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한 자리 바로 옆에 세워진 물간다쿠티, 아쇼카왕이 이곳은 부처님의 성지임을 기념해서 세운 아쇼카 석주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제 박물관에 다녀오지 못한 팀은 박물관도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사르나트 순례를 모두 마치고 다섯 비구가 부처님을 영접한 곳에 세워진 영불탑을 참배했습니다.

강가강

다음은 강가강으로 향했습니다. 강가강은 인도인들이 가장 신성시 여기는 강입니다.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해서 이 강에 뿌리기도 합니다.

강가강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은 무척 복잡하고 많은 인파로 붐벼서 산스크리트대학 앞에 버스를 주차하고, 순례객 모두 릭샤를 타고 강가강으로 향했습니다.

오토릭샤, 자전거릭샤, 오토바이, 승용차, 인력거, 각양각색의 버스, 도로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 소, 온갖 운반 수단이 뒤엉킨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30명, 40명씩 배를 한 대씩 타고 출발했습니다.

순례객들을 모두 태우자, 마지막 배에 스님도 올랐습니다. 강가 강 위에서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 강가강

“강 주변에는 목욕을 할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이 내려가면 내려가는 대로 내려갈 수 있고, 물이 차면 차는 대로 또 올라갈 수 있어요. 우기에는 계단이 없는 저 위쪽까지 물이 차올라서 강이 바다처럼 보여요.

바라나시 앞을 흐르는 강가강은 야무나강과 강가강 두 개가 합쳐져서 흐르는 거예요. 바라나시 위쪽의 알라하바드에서 합쳐져서 내려옵니다. 그러다가 파트나에 가면 그하그라하강과 간타키강과 숀강까지 네 개의 강이 합쳐집니다. 지금은 낮이라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여기서 횃불을 피워놓고 브라만들이 ‘뿌자’라고 하는 전통 제사를 많이 지냅니다.

인도 사람들은 여기서 목욕을 하면 업장이 다 소멸된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손을 담그면 나중에 손만 천국에 가요.” (모두 웃음)

스님의 유머에 순례객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이어서 배는 다시 방향을 틀어 화장터를 향했습니다. 다시 스님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기 가면 대나무를 두 개 걸친 사이에 또 작은 대나무를 걸치고 그 위에 시신을 얹는 걸 볼 수 있어요. 그걸 두 명, 혹은 네 명이 메고 여기 가져와서 물에 한 번 적셨다 건져서 불에 태워요.

시신을 덮은 저 황금빛 천이 분소의입니다. 분소의는 떨어진 옷, 헌 옷의 개념이 아니에요. 시신을 덮었던 부정한 옷이라고 해서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요. 거지조차도 손대지 않고 버립니다.

저기에 나무를 많이 재놨잖아요. 저렇게 나무를 쌓고 시신을 태워요. 계단에 갖다 둔 시신이 보입니까? 팔이나 다리가 불에 타다가 뚝 떨어진 게 있으면 작대기를 써서 거두어 올리기도 합니다. 화장이 끝나면 불을 물로 대충 끄고 강에다 집어 넣어버려요. 몸의 일부가 덜 탄 것은 갈매기들이 파먹어요.

자, 돌아가신 영가들을 위해 나무아미타불 10번만 하겠습니다.”

스님의 제안에 따라 모두들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염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왕생극락 하옵소서.”

웃고 즐기던 마음도 순간 숙연해졌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죽음도 그냥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이렇게 강가강을 둘러본 후 다시 복잡하게 얽힌 도로 위로 나왔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야사 비구가 신발을 벗어 놓고 부처님께로 건너갔다는 바루나강도 지났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조별로 저녁식사를 지어먹고 휴식을 취한 후 저녁 6시 30분부터 다시 스님의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많이 피곤합니까?”

“네.”(모두 웃음)

“오늘 일정을 정리하기 전에, 오늘 보고 듣고 느낀 것 중에 어떤 의문이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열 가지 정도 질문을 받고 시작하겠습니다.”

정리 법문에 앞서 먼저 순례를 하며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강가강에서 목욕을 하고 시체를 태우기도 하는데 위험하지 않나요?
  • 부처님의 성지를 참배하다 갑자기 참회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왜 그럴까요?
  • 불교의 고향인 인도에 여전히 카스트제도로 고통 받는 사람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 인도에는 소, 개, 염소 등 동물들이 왜 거리에 많이 돌아다니나요? 
  • 수계식에서 왜 연비를 하나요?
  • 사르나트에서 부처님께서 깨달은 제자들에게 홀로 전법을 하도록 떠나게 한 것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전법을 떠나도록 하셨나요?
  • 아쇼카 석주 위에는 왜 네 마리의 사자 상이 있나요? 돌의 재질은 어떤 것인가요?
  • 성지를 참배하는 중 아기를 안고 구걸하는 여인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길을 벗어나는 길을 깨우치셨다고 하는데 이 고통에 대해서는 왜 언급이 없을까요?
  • 부처님처럼 사는 것이 참 좋지만, 제 역량에 맞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 분의 질문을 받은 후 오늘 순례한 일정에 대한 정리 말씀이 있었습니다.

“성지 순례를 하면서 인도를 잘 관찰해 보세요. 한국은 지난 몇십 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지만, 인도는 아직도 부처님 당시의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 당시 인도가 어떠했는지를 느끼기 위해서 현재 인도의 모습을 잘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첫 설법을 하신 사르나트, 우리말로 녹야원에 다녀왔습니다. 부처님의 첫 설법의 내용이 무엇이었나요? 양 극단을 떠나는 중도(中道), 팔정도(八正道), 그리고 사성제(四聖諦)입니다. 여기에 12연기 등을 추가하면 근본 교리를 모두 갖추게 돼요. 이렇게 부처님의 설법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 기본 틀은 처음으로 하신 설법에 모두 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어요.

부처님께서 첫 설법을 하려고 찾아갔을 때는 정작 환영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설법을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대신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만들었고, 결국 다섯 명의 비구가 법을 청해서 설법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법을 청한 후 물음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하는 설법이 오늘날 소위 ‘맞춤형 교육’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듣는 사람이 원하고 궁금해 하는 내용에 대해 설법을 하는 겁니다. (모두 웃음)

다섯 비구가 깨달음을 얻은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수행자들에게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야사 비구의 이야기는 수행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 가르침이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야사 비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깨우친 것은 재가자들에게 법이 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예입니다. 특히, 야사 비구의 아버지가 깨달음을 얻고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라고 한 것은 재가자들도 법을 듣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야사의 친구들을 교화한 것을 보면 전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순례기간 동안에는 성지마다 예불을 드립니다. 그런데 순례객 중 예불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법사님들이 스님께 예불문에 대한 법문을 청했습니다. 예불문에 대한 설명까지 법회는 두 시간이 넘게 지속되었습니다.

“순례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인도에서의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가야합니다. 특히 용변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아직 들판에서는 안 해봤죠? 아마 내일 가면서 꽃밭에 물주기도 하게 될 거예요. (대중 웃음)

오늘은 첫 날이어서 아무래도 어색하고 피곤하기도 할 텐데요. 2~3일만 지나면 이곳도 살만한 곳이 됩니다. 오늘과 내일은 입이 자꾸 나오는데, 3일째가 되면 이제 입도 많이 들어가고 ‘아,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하면서 성지순례가 아주 재미있어집니다. 그러니 마음을 자꾸 긍정적으로 내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네!”

“우리가 여기에 오지 않으면 언제 또 이런 생활을 해보겠어요? 죽을 때까지 이런 기회를 갖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힘들다고 하기 보다는 ‘그래, 이렇게도 한 번 생활해보자’ 하는 마음을 내셔서 기쁜 마음으로 순례를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스님의 격려에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내일은 바라나시를 떠나 부처님께서 고행하신 전정각산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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