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문경 수련원에서 불교대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하고, 대전에서 임시 전국 대의원회 입재 법문을 한 후 필리핀으로 출국하였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6시, 강원 경기동부, 대구경북, 경남지역의 불교대학생 4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스님의 특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특강은 지난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한 불교대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그동안 학습하면서 궁금했던 점을 법륜스님께 직접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일요일에는 스님의 일정이 더 많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새벽 6시에 강의를 하는데요. 새벽 3시에 경주에서 출발해서 달려온 스님은 불교대학생들의 안부를 물으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잘 주무셨어요?”

“네.”

“여러분들 이번 1박 2일 수련을 하면서 자기 인생에서 신기록을 세운 게 몇 가지 있을 것 같아요.(모두 웃음)

첫째, 이렇게 넓은 방에서 자본적이 없습니다.
둘째,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자본적이 없습니다.
셋째, 이렇게 새벽부터 강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이미 겪은 사람도 있을 것 같네요.
넷째, 이렇게 에어컨이 설치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제 학생들은 큰 대수련장에서 수백 명과 같이 자고, 추운 산골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습니다. 스님이 하나하나 이야기할 때마다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기록이 세워진 건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그 기록이 세워질 당시에는 힘이 들지요.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 봤다는 것은 신기록을 세운 동시에 그 순간은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힘들었지만 지나 놓고 보면, 자기 인생의 신기록을 세운 거니까 보람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문경까지 와서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강의를 듣는 게 지금은 힘들지 모르지만 인생에서의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러니 보람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해석을 이렇게 하니까 굉장한 일을 했죠?” (모두 웃음)

수많은 어려움을 신기록으로 삼아온 스님의 말씀 속에서 열악한 환경을 어떻게 긍정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유투브 즉문즉설만 듣다가 이렇게 3개월 공부해보니 어려워요? 힘든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스님은 공부하면서 어땠는지 물어보고 학습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질문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11분이 질문할 수 있었는데요. 그중 ‘희생’에 대한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 정토회와 시민단체 활동의 차이는 활동하는 과정에 활동가가 늘 행복한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아무리 큰 일을 해도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불교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아무리 힘들어도 활동하는 사람에게 보람이 있다면 그 일은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 필요한 큰 일이나 어려운 일은 늘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혹시 제가 ‘희생’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드립니다.

덧붙여서 아침 기도를 시작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듭니다. 스님께서는 전국을 다니시면서 강연과 강의를 하시는데, 특별히 건강 관리 비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모두 웃음)”

“두 번째 질문부터 대답을 할게요. 서암 큰 스님께서 살아계실 때 여든이 넘으셔도 늘 건강하게 지내시니까 어느 건강 잡지 기자가 찾아와서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지 여쭤본 적이 있어요. 그때 서암 큰 스님께서 ‘건강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이것으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할게요. (모두 웃음)

희생에 대해서는, 나라를 잃었을 때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또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해요, 안 해요?”

“해요.”

“네. 다들 희생하셨습니다. 이러한 희생은 세상에서는 칭송하고 존경할만한 일입니다.

어떤 부모가 희생하면서 자식을 키웠는데, 그 자식이 사고만 치고 부모 속을 썩여요. 부모가 그런 자식을 보고 ‘아이고, 내가 저런 자식을 왜 낳았나’ 이런 생각이 든다면, 자기가 희생한 것에 대한 보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그럴 때 괴로울까요 안 괴로울까요?”

“괴로워요.”

“이렇게 괴로우면 수행이 아닙니다.

어떤 농부가 봄에 꽃놀이를 가느라 밭도 안 갈고 씨도 안 뿌려놓고, 여름에는 수영 가느라 김도 안 메고 거름도 안 주면, 가을에 다른 사람들이 추수할 때 그 농부는 추수할 게 없어요. 이때, 하늘에 빌면서 ‘저도 추수할 곡식을 주세요’라고 한다고 곡식이 생기는 게 아니에요. 이러한 사람을 범부 중생이라고 합니다. 복을 짓지 않았으니 복 받을 일이 안 생깁니다.

여러분도 복을 안 지어놓고 복을 달라고 하잖아요. 이건 이치에 안 맞아요. 이치에 맞지 않으니 그런 기복은 허황된 일입니다. 이러한 것은 가만히 세상을 보면 그 이치를 알 수 있습니다. 밭도 갈지 않고, 씨도 뿌리지 않고, 김도 메지 않고, 거름도 주지 않는데 어떻게 가을에 추수할 곡식이 있겠어요. 그런데도 가을에 추수할 것이 있기를 바라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런데 놀러 가고 싶더라도 참고, 봄에 밭 갈고 씨부리고, 여름에 김 메고 거름을 주면 가을에 추수할 게 있겠죠. 이게 복을 짓고 복을 받는 거예요. 즉, 복을 받으려면 복을 지어야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가을에 추수를 하려면 빌게 아니라,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홍수가 나서 논밭에 작물들이 다 떠내려 가버린다면, 밭도 안 갈고 씨도 안 뿌린 범부 중생이 더 괴로울까요, 밭 갈고 씨 뿌리고 김 메고 거름을 열심히 준 사람이 더 괴로울까요?”

“열심히 준 사람이요.”

“이건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복을 짓고 복을 받는 것도 해탈의 길은 아닙니다. 즉, 복을 짓고 복을 받는 것은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 길은 아닙니다. 다만 씨를 안 뿌리고 추수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보다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통상 덜 괴롭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이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길 확률이 높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럼 괴롭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봄에 밖에 나가서 노는 것보다 밭 갈고 씨 뿌리는 게 더 재미가 있고, 여름에 수영을 하는 것보다 땀을 흘리면서 김 메고 거름 주는 게 더 재미가 있으면, 이미 봄, 여름을 지나는 동안 재미는 다 본 거예요.

그리고 가을에 추수를 해도 거의 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어차피 추수를 해도 내가 가질 게 아니라 나누어 줄 것이니까 중간에 홍수가 나서 추수할 게 사라져도 괴롭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재미도 다 봤으니 괴로울 일이 없어요. 이번에 제가 2,400평 농사를 지어서 모두 정토회 회원들에게 나누어줬어요. 그런데 배달료 때문에 돈이 더 많이 들었어요. (모두 웃음) 이런 관점을 가지면 홍수가 나서 농작물이 없어지더라도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괴로워할 일이 없는, 괴로움이 없는 경지입니다. 이렇게 알아도 실제로 닥치면 다 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우선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할 수 있어야 해요. (모두 웃음)

불법(佛法)을 공부하는 것은 해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즉,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온갖 일이 다 생겨요. 해탈이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속에서 괴로움이 없는 것이 해탈입니다.

그러니 농사를 짓다가 홍수가 나도 괴롭지 않아야 해탈이고, 아이를 키웠는데 그 아이가 망나니가 되어도 괴롭지가 않아야 해탈이에요.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아이를 키울 때 보람을 느꼈기 때문에 괴롭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화 운동도 운동하는 과정에 보람을 느꼈다면, 민주화가 이루어진 다음 포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괴롭지 않습니다. 독립운동도 운동을 하는 과정에 인생의 보람을 느꼈다면, 훗날 유공자로 표창되지 않아도 괴롭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희생을 한 거예요, 안 한 거예요?

“안 한 거예요.”

“훗날 어떻게 되어도 괴롭지 않다면 희생하지 않은 거예요. 본인이 희생했다면 나중에 그걸 알아주지 않으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수행이란 그런 좋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비단 좋은 일을 할 때도 그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삶은 하루하루의 과정이에요. 오늘 일은 오늘로서 끝난 것입니다.

정토회도 처음에는 작은 움막부터 시작해서 땅을 파고 조금 확장해서 오늘에 이르렀어요. 정토회가 꼭 큰 건물을 짓고 규모가 커져야 보람을 느낄까요? 이미 그 과정에서 재미를 봤기 때문에 건물은 안 지어져도 그만이에요.

말이 쉽지 어려운 것 같나요? 여러분도 어떤 측면에서는 이미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볼게요. 여러분 똥은 어떻게 만들어요? 음식을 구해서, 입으로 먹고, 그걸 꼭꼭 씹어서 소화를 다 시킨 다음에 따끈따끈한 똥을 만들잖아요. (모두 웃음) 이 전체 과정을 보면 똥이 참 귀합니다. 그러면 똥을 버려야 돼요, 귀하게 모셔야 돼요? (모두 웃음)

그 과정을 보면 똥을 귀하게 모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똥 누고 뒤도 안 돌아본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건 똥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똥은 개가 먹든지 물에 떠내려가든지 상관하지 않잖아요. 왜냐하면 똥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재미, 먹는 재미, 소화하는 재미를 다 봤기 때문이에요.

결과에 집착한다는 것은 정작 음식을 만들고, 먹고, 소화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똥에만 관심이 갖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토기 공예 작품을 만들었는데 홍수가 나는 바람에 작품들이 모두 다 망가져버렸어요. 어느 날 저를 찾아와서 울고 불고, 지난 20년 동안 공들여서 만든 작품들인데 삶이 너무 허무해졌다고 하소연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과 똑같은 이야기를 해줬어요. 제가 봤을 때 과정에 중점을 두면 그 예술작품들은 똥과 같아요. 우리가 똥이 떠내려갔다고 그렇게 울지 않잖아요. (모두 웃음)

여러분도 인생을 한 번 보세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데,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잖아요. 어찌 보면 모두가 죽으려고 80 평생을 사는 거예요. 즉, 80 평생을 사는 목적이 죽는 거예요. 그러면 평생을 죽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았으니까 죽은 시신을 귀하게 모시고 무덤도 크게 써야 되겠죠. 그런데 사실은 시신은 불에 태우나 수장을 하나 크게 상관없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늘 그런 것에 집착하잖아요.

그러니 수행적 관점을 가지면 수행자에게는 자기희생이 없습니다. 자기희생이 없다는 말은 남을 위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남을 위한 일이면 남을 위한 일을 하는 보람으로 그 일을 하고, 나라를 위한 일이면 나라를 위한 일을 하는 보람으로 그냥 하는 거예요.”

“네, 잘 알겠습니다.” (모두 박수)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보왕삼매론에서 억울함 밝히려 하지 말라고 하는데요. 억울한 일은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요?
  • 불교의 목적이 해탈. 별로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나요?
  • 깨달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깨달음의 장, 행복학교 과정을 하면서 마음을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포기인지 무관심인지 궁금해요.
  • 나라고 할만한 게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요.
  • 3배 21배 108배 100배가 의미하는 것은?
  • 욕심 많아서 괴롭다. 108배하면 할수록 마음이 혼란스러운데 제대로 하고 있나요?
  • 절을 하면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는데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많이 나요.
  • 남편과 갈등이 있어요. 감정조절이 안 돼요.
  • 듣다 보니 다 해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마음을 계속 변하는 계절에 비유하며, 불교대학을 꼭 끝까지 졸업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수행을 하면 그저 일직선으로 좋아질까요? 법문 듣고 다 깨달을 것 같이 좋다가도 갑자기 팍 찌그러져서 다 때려치우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요. 또 그 고비가 넘어가면 그때 그만뒀으면 큰일 날뻔했다고 좋아해요. 그 마음이 계속 갈까요? 또 정체가 돼요. 처음에는 오르락 내리락이 심하고 갈수록 진폭이 적어집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죽을 때까지 오르락내리락해요. 수행을 하면 그 진폭이 좀 작아져요. ‘마음이라는 것이 들떠서 죽 끓듯이 하는구나’하고 지켜보면 끓다가도 잠잠해집니다. 그러니 다시 당부하지만 중간에 떨어지지는 마세요.”

“네!”

떨어지지는 말라는 자상한 스님의 말에 불교대학생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스님은 강의를 마치자마자 대전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오전 11시부터는 대전 정토법당에서 제1차 임시 전국 대의원회 회의가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118명의 대의원들이 회의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정토회 역사상 처음으로 지도 법사가 대의원회의 의결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그로 인해 대의원 제도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임시 전국 대의원회 회의가 긴급히 열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 24~25일에 전국 대의원회 회의를 성황리에 잘 마쳤지만, 이후 며칠이 지나 스님이 의결 사항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정토회 회칙 <제15조 6항>에는 “전국 대의원회의 의결사항에 대해 지도법사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정토회 대표 김은숙 님은 인사말에서 “지도 법사님의 거부권 행사를 통해 대의원 제도의 모양은 갖추었지만 우리가 대의원회의 본래 기능인 예결산 심의를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 반성할 수 있었다” 며 “저희를 더 깊이 돌아보고자 바쁘신 스님께 특별히 법문을 요청했다”라고 오늘 임시 회의가 열리게 된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대의원들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왜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었는지,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법문해 주었습니다.

“정토회가 만들어지고 나서 제가 거부권을 행사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가 거부권을 행사해서 좀 복잡하게 된 측면도 있지만, 이것이 정토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예요.

대의원회는 사회에서 말하는 국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대의원회는 의사를 결정하는 기구이고, 행정처는 집행하는 기구이고, 법사단은 감사하는 기구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정토회는 이렇게 삼권분립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대의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예산 편성입니다.

미국의 경우 예산 편성권이 하원에 있습니다. 외교 정책의 경우에는 상원이 더 영향력이 크지만, 예산에 한해서는 하원이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어요. 그 이유는 상원이 주를 대표해서 뽑히는 반면, 하원은 인구비례에 의해 뽑히기 때문입니다. 예산은 국민이 낸 세금이기 때문에 세금을 어떻게 쓸 것이냐의 문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이 전권을 가지는 거예요. 돈을 낸 사람에게 결정권을 줘야 하니까요.

이것을 정토회와 비교해 본다면, 국민들이 낸 세금과 같은 것이 회원들이 낸 보시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 사업의 결정권을 갖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예산을 편성하고 결산을 정확하게 평가하여 승인하는 것입니다. 특히 보시금은 정토회의 회원들이 낸 돈이기 때문에 굉장히 엄격하게 관리해야 해요.

한국 불교의 많은 문제들은 보시금을 신도들이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님들이 관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측면이 큽니다. 돈은 그 돈을 낸 사람들이 관리하고 감독해야 해요. 정토회 회원들이 보시금을 냈기 때문에 그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여러분들이 철저하게 감독을 해야 하는 거예요. 특히 수행 도량에서 쓰이는 돈은 굉장히 아껴 쓰고 정확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정토회의 모든 예산은 전국 대의원회 회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이번 본부 불사 예산 증액에 대해서 지난번 회의에서 이미 한번 증액을 했는데 또 증액을 해야 한다는 안건이 올라왔는데 더구나 그 액수가 처음보다 더 많이 나왔잖아요. 두 번이나 증액을 해야 한다면 안건 심사가 더욱더 엄격해야 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냥 불사팀의 설명만 듣고 안건을 통과시킨 것은 여러분들의 잘못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경우는 사업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사안인 거예요. 설사 증액을 한다고 하더라도 혹시 사업의 설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광범위하게 조사가 진행되어야 해요. 그러려면 제3의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서 전면 재검토를 할 수도 있다는 자세로 세심하게 검토한 후 예산이 통과되어야 합니다.

회원들은 대의원 여러분들이 의결에 대해 감시 감독을 잘할 것이라고 믿고 보시금을 냈는데, 고액의 증액 예산이 너무 쉽게 통과되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 의심을 하게 돼요. 그 의심을 대의원 여러분들이 대변을 해줘야 하는 거예요. 이런 책임 의식이 여러분들에게 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니까 의례히 잘하겠지 하고 넘어갔다면, 무엇 때문에 대의원회가 필요합니까. 법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 예산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예산은 그것이 합당한 지 구체적으로 따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나를 고집하는 것은 버려야 하지만, 제도가 비민주적인 것은 개선을 해나가야 되는 거예요. 스님만 믿고 가겠다는 자세라면 무엇 때문에 대의원회를 엽니까. 그냥 스님 혼자서 결정하고 가면 되죠.

회원들이 낸 보시금은 정말 소중한 거예요. 콩나물 아끼고 두부 아끼고 겨울에 추운데 난방비 아껴서 3만 원, 5만 원 보시한 돈이잖아요. 이런 의미에서 대의원 여러분들의 책임감이 좀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회의를 통해서 예산을 합리적이고 세세하게 점검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권한이고, 여러분들은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예요. 그 일을 하라고 회원들이 여러분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준 겁니다. 특히 대중이 낸 보시금은 정말 엄격하게 관리가 되어야 해요. 이런 자세로 여러분들이 불사 증액 예산을 재심의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저도 거부권을 행사할지 말지 약간 망설여졌어요. 왜냐하면 원래 지도법사가 거부권을 행사하는 본래 취지는 법에 맞는지의 여부이거든요. 그런데 이번 건은 법에 맞는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대의원들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정토회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예산 편성권은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한이고, 여러분들이 회원들에게 위임받은 권한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이기도 합니다. 사업을 집행하는 분들을 믿는 것은 믿는 것이고, 대의원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책임과 권리는 그것대로 올바르게 행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대의원들은 큰 박수로 스님의 뜻에 공감했습니다. 대의원들 모두가 스스로 무엇을 놓쳤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법문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내일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JTS가 지은 4개의 학교 준공식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대의원회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의 제안에 따라 예결산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심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는 부분은 모두 다 질문하고 토론하다 보니 회의를 마치기로 약속한 5시가 훌쩍 지났습니다. 꼼꼼히 체크하고 살펴본 후 마침내 2019년 예산안을 모두 통과시켰습니다.

한편 스님은 저녁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밤 12시가 다 되어서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내일부터 3일 간 스님은 필리핀 민다나오 원주민 지역에 JTS가 세운 4개 학교 준공식에 참석해 수고한 봉사자들과 원주민들을 격려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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