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토론토에서 맞는 두 번째 날입니다. 스님은 어제 잠시 눈만 붙였다가 다시 일어나서 원고 교정 및 업무를 보면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이 정연희 님과 박옥숙 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행사장으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워싱턴 디씨에서 아침 6시 비행기를 타고 온 제이슨 림 님이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제이슨 님은 짐만 간단히 풀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스님과 함께 행사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도 토론토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토론토 시내에 있는 행사장까지 보통 30분이면 가는데 주말을 이용해 고속도로를 청소하느라 길을 막아놓아 돌아가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이번 세계종교의회는 매일 한 개 내지 두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이 됩니다. 첫 날인 어제는 원주민 프로그램이 주제였고, 오늘은 여성의 존엄성을 주제로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3시간 동안 “전 세계에 존재하는 지혜의 전통(종교) 및 사회에서 여성의 존엄성”이라는 제목으로 여성분과 총회가 열렸습니다.

미국, 인도, 아프가니스탄, 우간다,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와 기독교, 유대교, 바하이, 불교, 이슬람, 시크, 자이나 등 다양한 종교, 그리고 국제기구, 엔지오, 지역 공동체 종교모임 등 다양한 곳에서 여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활동하는 분들이 차례로 나와서 여성 리더십, 여성의 존엄성, 사회정의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중간중간 노래, 춤, 합창 등의 공연이 함께 어우러졌습니다.

세계종교의회에 여성분과가 생긴 것은 지난번 2015년 모임에서였다고 합니다. 세계종교의회 창립 125년 만인 올해 사상 처음으로 여성 의장이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고 합니다. 여성 TF팀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온라인에서 공동으로 지식을 만들고 축적하는 '위키피디아'에 1,000명의 여성 종교지도자를 등록하는 프로젝트와 성별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을 반대하는 국제 선언문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또한 인도에서 여자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야 하는 관습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해 자전거를 지원해주는 단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슬림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20년이 넘게 활동한 활동가, 소규모 농장의 여성 노동자들을 지원하면 생산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한 활동가 등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쌓은 소중하고 값진 경험을 나눠주었습니다. 스님은 이분들의 발표를 듣고 나서 함께 참석한 실무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도 JTS에서 운영하는 수자타 아카데미에서도 여학생들이 중학교를 졸업하면 결혼을 하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을 위해 생활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 부모들에게는 딸을 교육시키면 그에 합당하는 혜택을 제공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여성 가장인 경우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주었는데요. 스님은 언제 어디서든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캐나다 교민으로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오미애 님을 만나 북한의 인도적 지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이번 세계종교의회 행사의 실무지원을 맡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대학교 에코 문명 연구소 부소장 앤드류 슈워츠 님이 찾아와 스님을 인터뷰했습니다. 팟캐스트에 올리려고 한다면서 스님과 정토회 및 산하 사회활동 단체에 대해 관심을 표하였습니다.

"We are with Ven.Pomnyun Sunim, a Korean Buddhist monk, a Zen master renowned for his humanitarian efforts around the world. He is the founder of a number of non-profit organizations and recipient of the Magsaysay Award, which is internationally recognized as Asia’s Nobel Prize counterpart, so very prestigious, very wonderful guest. Thank you for being here with us."
(오늘 법륜스님을 모셨습니다. 한국 승려이고 선승으로 세계적인 인도적 구호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여러 개의 비영리단체를 설립했으며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습니다. 매우 유명하고 멋진 분을 모셨습니다. 스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y first question is what inspired you to forego the stereotypical monastic life of seclusion and quiet contemplation for a life of activism focused on addressing the world’s most critical problems."
(첫 번째 질문은 스님으로서 절에서 조용히 명상하고 수행하는 생활을 포기하고 사회에 나가서 앞장서서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소 사회운동을 실천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명상을 하는 목적은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개인의 마음가짐, 수행도 필요하지만 사회가 좀 더 평화롭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은 수행을 하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Thank you. In your mind, what unique insights does Buddhism offer for responding to environmental degradation and global systems of exploitation and overconsumption?"
(감사합니다. 전 세계적인 자원 착취와 과다한 소비문화, 그리고 환경파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가 어떤 독특한 통찰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람만으로는 이 지구 상에서 존재할 수가 없고 다른 자연환경, 동식물과 관계를 서로 맺어가면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토대를 파괴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자연을 활용하지만 그 자연이 파괴되지 않도록, 자연도 살아날 수 있도록 우리가 최소한도의 소비를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자연을 보호하는데 매우 귀중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과 사람이 별도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 맺고 존재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가장 중요한 연기법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각각 별도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파괴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안 미칠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우리는 서로 관계 맺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을 단순히 보호해야 된다는 관점이 아니라 ‘이것은 내 삶의 일부, 내 몸의 일부다'라는 관점, ‘자연파괴가 바로 우리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Wonderful. Thank you. That’s perfect. Given everything you have just said about the teachings of the Buddha, the insights of dependent arising and codependent origination, the interconnectedness of all things, the idea that we are constituted by our relationships that we are not separate from nature but part of nature, how do you see the global ecological crisis as interconnected with your effort to promote human rights and world peace?"
(멋집니다. 감사합니다. 완벽한 답변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것이 연기가 되어 있고 한 존재가 별도의 개체가 아니라 모두 다 연결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과 별개가 아니고 자연의 일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스님께서 하시는 인권개선 및 세계평화운동이 전 세계적인 생태적 위기와 어떻게 연계되어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구적으로 우리가 생각을 해본다면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 자연을 정복해서 문명을 발전시킨다’하는 이것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토대라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환경문제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류 세계를 바라본다면, 가장 큰 문제가 빈곤문제입니다. 이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가 부자들의 문제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한정이 되어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낭비하면 필연적으로 지구 저편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최소한의 생활도 할 수 없는 생존권의 위협이 되기 때문에 빈곤퇴치는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류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세 번째는 평화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와 다른 타인을 자꾸 틀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 인정해야 됩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이 바탕 위에 평화가 존재하는 것이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관점에서는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연의 세계에서 본다면, 개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색깔이 검은 색도 있고 흰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죠. 자연에서는 색깔을 가지고 차별을 하거나 종류를 가지고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암놈이냐 숫놈이냐 가지고도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피부 빛깔을 가지고 차별을 하거나, 성별로 차별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평화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물이 서로 다른 것을 다르다고 보고, 연계된 것을 연계되어 있다고, 이렇게 진실을 보면 마음의 번뇌가 없어집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것을 옳고 그름이나 차별로 본다든지, 연계되어 있는 것을 개별적인 존재로 본다든지, 이렇게 사실대로 알지 못하면 마음속에서 번뇌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상을 하느냐, 어떤 방법을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명상을 하는 목적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사물을 진실하게 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음의 평화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문제, 빈곤퇴치 문제, 평화 문제, 성평등 문제 등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모든 문제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냥 하나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여러 문제에 관여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것들이 모두 하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 문제에 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 Thank you. I know that at the Parliament of World Religions, there has been a lot of talk about oneness and coming together, and what I hear you saying is that oneness should not be sameness, that inclusion should not erase diversity. I really value that. That we can come together, but our differences are important, and we can have unity but not uniformity. There is sort of unity in difference and complementarity of difference as opposed to contradictions. I think that is what I am hearing, and I think that it is a beautiful and important message which can lead to peace and sustainability."
(이 행사에서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스님께서는 하나이지만 똑같지는 않고 통합이 다양성을 없애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단합할 수 있지만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며, 우리가 통합을 할 수 있지만 획일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다른 것이 서로를 보완해주는 것이지 갈등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셨는데요, 매우 아름답고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매우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실제로 세상이 자연이 그렇습니다. 이 손을 보십시오. 손가락 다섯 개가 다 다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손에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손이라고 말합니다. 한 손이라고 다섯 손가락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라는 것과 다양성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라는 것이 획일주의로 가면 굉장히 위험하고요, 다양성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문제라고 보면 안 됩니다. 하나라는 것은 전체를 볼 때 하나라는 얘기이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Given that, what are some of the biggest challenges that we face in trying to achieve peace, harmony, and sustainability on a global scale?"
(그렇다면, 세계적인 평화, 화합과 지속성을 이뤄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는 사람의 욕심이라고 생각하고요. 다른 하나는 자기 견해가 옳다고 하는 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하는 이 소비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소비를 늘리는 것이 발전이라고 하는 역사관이 결국은 환경파괴를 가져오고 자연에 대한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 믿음이라든지 자기 생각이라든지 자기 문화라든지 이것만이 옳다는 고집이 인류사회에서 갈등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 두 개가 동시에 함께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종교가 자기만 옳다는 것을 극복해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비주의를 극복하고 검소하게 살도록 가르쳐야 되는데 지금 거꾸로 종교가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이루어질 수가 있다고 해서 오히려 소비주의에 물들어 있고 또 자기 믿음만 옳다는 것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종교가 본질에서 벗어나서 오히려 인류 문명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I am tempted to ask you how we can fix that among religions, but perhaps we can save that for another time. But I will ask you what may be an equally complicated question. So among your published works, you talk about themes like prayer, wisdom, freedom, and happiness. What roles do you think these themes have in creating a more harmonious, peaceful, and sustainable world? My add-on question is what is the key to happiness and freedom."
(종교계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지금 여쭈어보고 싶지만 다음 기회에 여쭈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좀 복잡할 수 있는 질문을 하겠습니다. 스님께서 쓰신 저서는 기도, 지혜, 자유, 행복 등을 주제로 하는데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화합하고,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추가 질문을 하자면 행복과 자유의 열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기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행복과 자유는 결국 우리에게 속박과 고통을 가져옵니다. 자신의 욕구, 욕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가 있고 또 자기가 원하는 것,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때 진정한 자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나로부터 출발을 해야 합니다. 나의 욕망으로부터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이런 세상의 문제도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욕망을 억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얘기입니다. 욕망을 따라가면 결국은 타인의 욕망과 부딪치기 때문에 여기에 결국 갈등이 생깁니다. 욕망을 억제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욕망을 따르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닙니다. 내가 욕망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첫째 알아차리고 그러나 이 욕망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릴 때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명상의 핵심적인 목적입니다."

"Thank you. That’s good. We are running low on time. Thank you for giving us so much time already. And I will wrap up with one question. In a world of turmoil that is filled with systemic injustice and suffering, what gives you hope?"
(감사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요. 이미 이렇게 시간을 많이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갈등 속에 있는 우리 세상은 제도적인 부조리가 많고 고통이 많은데 스님께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지금까지 세상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습니다. 세상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할 때 내가 과거의 틀을 가지고 지금의 세상을 보니까 세상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세상이 복잡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첫 번째 길은 세상이 흘러가고 있는 흐름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의라고 하는 것은 정해져 있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정의다’ 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일이 생겨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의라고 정해진 것은 본래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 조건 속에서는 우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조건 속에서 상대적으로 정의가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샤워를 할 때 옷을 입어야 되느냐 벗어야 되느냐’ 한다면 ‘벗어야 된다'는 이런 조건 속에서는 바른 길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정의는 가능하면 자연의 흐름을 기초로 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주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평가를 했고요, 그리고 남성을 중심으로 하고 백인을 중심으로 하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고 어른을 중심으로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정의를 규정했기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만 중심으로 하지 말고 자연도 고려하자, 남자만 중심으로 하지 말고 여성도 고려하자, 백인만 아니라 유색인종도 고려하자, 기독교만이 아니라 다른 다양한 종교도 고려하자, 어른만 중심에 두지 말고 아이들도 고려하자,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의를 규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그만큼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환경 파괴를 경험하고 있고요, 또 여성들의 평등의 요구를 경험하고 있고, 여러 유색인종들의 평등 요구도 있고, 다른 종교의 저항도 있고, 젊은이들의 저항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의 목소리를 수용해서 우리가 새로운 정의를 규정해야 합니다. 그것 또한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환경과 조건이 된다면 또 우리는 새로운 정의를 규정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어떤 윤리나 도덕, 정의관이 이런 새로운 상황에서 지금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 두 가지 관점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별적 존재들의 집합처럼 세계를 생각했는데 이것이 서로 연관된, 그물처럼 연관된 존재관으로 새로 바뀌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다 같은 줄 아는데 사실은 조금씩 조금씩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위에 우리가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저는 그 두 가지 기초 위에 오늘 사회적 정의를 새로 규정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I would say a better world for all of us to live together. Thank you very much Ven. Pomnyun for joining us and for your hard work in saving sentient beings and the world which are core features of this emerging ecological civilization we are striving for. Thank you Jason. You are an amazing interpreter. Thank you for being here as well."
(우리가 모두 같이 더불어 살 수 있는 더 나은 좋은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법륜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생태적인 문명의 핵심인 세상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시는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훌륭하게 통역을 해준 제이슨에게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스님은 클레어몬트 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서 저명한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며 환경론자인 존 캅 박사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국제 행사에서는 발표를 마치고도 발표장에 남아 이야기를 더 이어가는 경우가 많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많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올해 93세이신 캅 박사님과의 만남도 복도에서 서서 시작해 가까운 곳에서 의자를 가져와서 이어갔습니다.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셨습니다. 스님은 캅 교수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큰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반도 정세 이야기를 하다 스님이 북한이 문제아라고 농담을 하자 캅 교수님은 미국이 더 문제아라고 대답하셔서 모두 웃었습니다. 이 외에도 종교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대화했습니다.

이동 중에 스님은 인도 방송으로부터 잠깐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6시에 시작하는 한반도 평화 세션에 들어가기에 앞서 어떤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아이디어 회의를 했습니다. 스님은 미리 제출한 원고가 있었지만 종교인들이 모이는 곳이니 좀 더 큰 그림에서 접근해보자고 하셨습니다. 미리 제출한 원고는 Pomnyun.com에서 한글과 영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한반도 평화 구축과 종교의 역할” 세션은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에서 주최한 세션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오랫동안 연구와 활동을 해오신 분들, 그리고 어제 뵈었던 렉시 스님까지 총 다섯 분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스님의 생각을 심도 있게 풀어내지는 못했지만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제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법륜이라고 합니다. 불교 승려이고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들어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 제가 주로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회 활동도 조금 하고 있습니다. 주로 동남아 지역에서 어려운 사람들 돕는 일을 하고 있고, 북한에 인도적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중국 쪽으로 난민들이 많이 발생했을 때는 난민 지원을 했고 그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그들을 한국에 정착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니까 북한 사회를 조금 더 알게 되고 이 한반도의 평화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인권문제도, 인도적 위기도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재단을 설립하고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서 일을 해왔습니다.

주로 북한 관리들을 만나서 북한 입장을 들어보고 워싱턴 디씨에 와서 미국 입장도 들어보고 또 상호 의견도 좁혀 보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부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과 성격적으로 좀 비슷한 것 같아요. (관중 웃음) 오늘 원래 발표문에는 서로 의견이 다른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을 하느냐 하는 그런 해결의 관점에서 얘기를 썼습니다. 그러나 오늘 모인 자리가 종교인들이 주로 모였기 때문에 오늘 얘기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발표문은 좀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한반도에는 과거에 있었던 갈등의 구조가 해체되어 가는 종결 지점에 가까이 오고 있으면서 동시에 앞으로 새로운 체제, 안보 질서가 구축되어 가는 이런 것이 겹쳐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구조가 조금 복잡해 보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갈등 구조를 보는 그런 사고방식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해결이 어려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고 혼란스럽다고 하는 것은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과거의 사고방식으로 봄으로서 ‘세상이 혼란스럽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은 뭐 특별히 더 복잡해질 것도 없고 늘 그냥 변화해 가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의 이런 갈등구조가 생긴 과거의 프레임을 보면 1945년도에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일본 제국주의가 망하고 한국 사람들은 해방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금방 분단이 됐습니다. 여기 약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일제에 저항해서 싸웠기 때문에 승전국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볼 때는 우리가 일본의 일부였기 때문에 패전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일본 문제를 처리하는데 한국 사람 의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결국은 분단이 된 것입니다.

결국 2차 대전이 끝나고 승전국인 미국과 소비에트가 새로운 패권경쟁을 하게 되면서 결국 그 끝 무리에 한반도가 분단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식민지 국가들이 해방이 되면서 국경이 제멋대로 그어진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산맥이라던지 강이라던지 마을이라던지 이런 것은 보통 존중해서 그어집니다. 그런데 한반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지형을 나누듯이 그냥 자로 가지고 짝 그어버렸습니다. 산이나 강이나 마을이나 이런 것은 전혀 고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을이 반쪽으로 갈라진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같은 집에 안채 하고 사랑채가 갈라진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에 대한 고려가 얼마나 없었나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기다 우리는 전쟁까지 겪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소 양 냉전의 가장 접촉 지점, 갈등 지점에 있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소 냉정 구조가 해체되기 시작할 때도 한반도의 냉전구조는 지속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미국이 소련을 해체하는 과정에 중국을 변화시키고 중국을 키워서 소련을 해체했기 때문에 동유럽이나 소련은 해체가 되었는데 중국과 중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은 체제가 온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반도는 아직까지도 과거의 냉전구조가 해체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중국이 부상하면서 이제는 미중이 패권경쟁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한반도는 미중 사이에서 냉전구조로 다시 복귀할 그럴 가능성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가 종결이 되고 새로운 체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종결이 안된 상태에서 새로운 체제로 지금 편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한반도에서 남북 간의 대화가 이루어져서 평화가 도래한다면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과거 시스템에서 본다면 과거의 냉전구조가 종결되는 것이고 또 새로운 안보질서에서 본다면 대립구조의 접촉면이 갈등 구조로 안 가고 화해가 되기 때문에 이것은 한반도에서만 화해가 오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접촉면에도 화해의 물결이 동시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앞으로 과거와 전혀 다른 상황이 도래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미소의 대립구조가 미중의 대립구조로 단순히 역사의 반복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 평화와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미중의 대립구조는 그 접촉 지점이 갈등구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화해가 오기 때문에 미중의 갈등구조가 단순히 패권 갈등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동시에 협력도 이루어지는 과거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결국은 일본까지도 한국으로 인해서 화해 국면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태극마크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빨간 것과 파란 것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뻘간 것이 파란 것 속으로 일부 나아가 있고 파란 것이 빨간 것 속으로 일부 나아가 있습니다. 나누어져 있는 것은 나누어져 있지만 이렇게 맞물려 있습니다.

이처럼 앞으로 이 세계가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는 그냥 갈등 구조가 하나 해결된다는 것이 아니고 인류의 문명이 새로운 각도에서 변화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한반도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오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한반도의 평화는 단순히 정치적, 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굉장히 철학적이고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특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발표를 마치고 청중으로부터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독일에서 오셨다는 분은 종교의 자유도 없고, 인권도 억압하는 북한을 왜 붕괴시키지 않고 포용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자에게 스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북한을 붕괴를 시킬 수 있으면 붕괴를 시켜 보십시오. 붕괴가 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붕괴를 시도한다면 전쟁을 해야 합니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전쟁은 더 큰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려고 합니다. 한국에 살지 않는 사람은 전쟁을 통해서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사람은 전쟁을 통해서 이 문제를 풀고 싶지가 않습니다. 지금 북한의 종교의 자유가 종교인에게는 큰 문제이지만은 7천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일단 평화가 더 큰 문제입니다. 전쟁보다 종교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면 그것은 종교인들의 종교적 이기주의일 뿐입니다. 일부 종교는 종교적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이것이 종교의 큰 문제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한 종교입니까?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일부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캐나다 동부지역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졸업식과 수계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 세션이 끝나자마자 스님은 다음 일정을 위해 토론토 정토법당으로 신속히 이동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졸업식과 수계식 소식 그리고 세계종교의회 3일째 일정은 내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김지현 김길님 유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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