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하는 날입니다. 오늘 순례에는 서울, 제주, 강원 경기 동부, 광주 전라 지역에서 7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8시에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용장골로 올라가 이영재를 넘어 통일암으로 내려왔습니다. 용장골로 들어서는 길목에 구절초가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차가운 가을 공기가 상쾌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골짜기에는 물이 졸졸졸졸 쉼없이 흐릅니다.

“가을에는 나무가 수분을 배출하는데다 올 가을에는 비도 적당히 내려서 계곡 물이 마르지 않아 경치가 더욱 아름답네.”

스님은 봄에는 물을 끌어올려 잎을 피우고, 가을에는 물을 내뿜는 나무와 자연의 원리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산 속에 멧돼지가 파헤친 자리도 알려주었습니다.

용장골을 타고 올라가는 중 하늘과 맞닿은 반대편 산 정상에 삼층 석탑이 보입니다. 용장사지 삼층 석탑입니다. 스님은 어렸을 때 남산을 다니며 이 석탑을 보고 감동을 받곤 했다고 합니다. 스님은 석탑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무슨 특별한 기도를 드리는가 싶어 여쭈어 봤습니다.

“탑이니까 인사를 드려야지. 탑은 부처님을 모신 곳이잖아. 지나가다 부처님 보면 인사 안 할거야?” (웃음)

탑을 돌덩어리로 봤나봅니다. 그리고 스님은 항상 평화와 통일을 염원한다고 하였습니다.

등산로 곳곳에 불교대학생들을 위한 안내 표지가 붙어 있었는데, 어제 바람이 불어서인지 떨어져 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더 잘 보이고 떨어지지 않도록 표지를 단단히 걸어두었습니다. 또 지금 계획한 코스가 불교대학생들이 단체로 움직이기에 힘들지 않을지, 더 완만한 길로 산을 넘도록 하면 어떨지 살펴보았습니다.

통일암 뒤뜰 너른 터에 도착한 스님은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행사장 주변을 둘러보면서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는지 살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는 중 오늘 행사에서 의료를 책임지는 의료인정토회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의료인정토회에서는 얼마 전 필리핀 민다나오JTS에서 한 달 간 체류하며 의료 캠프 진행을 위한 답사를 하고 왔는데요. 필리핀 다녀온 이야기를 하던 중 “인도에는 저희 도움이 필요한가요?” 라고 물자, 스님은 “필요한가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해!”라고 답하면서 인도의 지이바카 병원에서 봉사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인도에서 병원을 운영하는데, 봉사자들이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떤 의료 장비를 구입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정작 필요한 장비인데 구입을 안 하는 경우가 있고, 꼭 필요하지 않은 장비인데 구입하는 경우가 생겨요. 의사들이 와서 우선 병원의 시설과 운영 전반을 한 번 점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불교대학생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얼른 입구로 이동해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넸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스님을 늘 영상으로만 만나는데 오늘은 화면이 아니라 직접 눈을 맞출 수 있기에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중들이 식사를 모두 마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잠깐 머뭇머뭇하다 한 두 사람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줄을 섰습니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 학생은 “저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남동생도 불대를 함께 다니기 시작해서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다”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또 한 거사님은 왼쪽 수족을 잘 못쓰는데 “오늘 봉사자들이 도와줘 순례를 잘 마쳤다”며 고마움을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온 어린이는 ‘대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대머리’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스님이 ‘나보고 하는 소리야?’라고 하여 모두 같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노래 소리와 함께 식사가 모두 끝나자 즉문즉설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도 노래를 한 사람이 질문할 기회를 얻었는데요. 총 7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청중의 공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참회를 하면 죄가 다 사라집니까?

“부처님의 일대기를 보면 99명을 죽인 앙굴리말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많은 살생을 저지르지만 부처님을 만난 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참회를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나름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마음이 편해졌다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의 억울함은 어떡합니까?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저히 이건 좀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 말이 맞다면 ‘살생하지 말라’는 말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참회를 하면 지은 죄가 모두 사라집니까? 사람의 마음은 회개나 참회를 해도 습관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까.”

조리있고 자신있게 질문하는 질문자의 모습에 대중들도 밝은 웃음을 띠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만약 누군가 당신 아들을 죽였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그 원한으로 그 사람을 당신이 죽였다고 해봐요. 그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범죄를 저지를 것이어서 죽였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그 사람이 그 일을 계기로 훌륭한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여전히 죽이는 게 나을까요, 비록 어제까지는 나쁜 사람이었지만 앞으로 10년, 20년은 훌륭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게 나을까요?

그럴 때 그 사람을 죽인다고 무슨 이익이 있어요? 오히려 훌륭한 사람으로 바뀌어서 다른 사람을 돕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게 낫잖아요?”

“그런데 그건 ‘자기가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는 인연과보(因緣果報)에 어긋나는 것 아닙니까?”

“인연과보와 어떤 부분이 맞지 않아요? 그 사람이 대체 무슨 과보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도 사람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앙굴리말라에 대한 원한이 남아있었어요. 그래서 참회를 했지만, 사람들은 살생을 저지른 저 인간이 수행자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고 하면서 결국 돌멩이를 던져 그를 죽였습니다. 질문자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죽인 건데, 그래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그렇게 본인이 저지른 대가를 치른 것 아닙니까.”

“그래요, 결국 죽임을 당하긴 했어요. 부처님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어서 마음속에 있던 모든 살심(殺心)을 버렸는데도, 사람들은 앙굴리말라의 껍데기만 보고 달라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죽여버립니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앙굴리말라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100명이 덤벼도 못당해 낼만큼 괴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저항을 했겠지만, 깨달음을 얻은 뒤여서 사람들 마음속 분노를 그냥 받아들입니다.

부처님이 그 소식을 접하고 현장에 갔어요. 앙굴리말라가 숨이 넘어가는 순간 부처님이 ‘지금 어떠한가?’ 하고 물었더니 앙굴리말라는 ‘저는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숨이 넘어가는 순간이 오면 과거처럼 성질이 나올 법도 한데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던 거예요.

당시 왕도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잡으려고 1,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그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 처소를 지나게 되어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왕께서는 지금 어디 가는 길이오?’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찾으러 군대를 이끌고 가는 길입니다.’
‘대왕이시여, 만약 앙굴리말라가 큰 깨달음을 얻어 지금 수행자가 되어있다고 하면 어떡하겠소?’
‘그런 일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만에 하나 그러한 일이 있다면 어떡하겠소?’
‘정말 그런 일이 사실이라면 제가 그에게 공양을 올리겠소.’

그 말을 듣고는 부처님이 한 수행자를 가리키며 ‘저자가 바로 왕께서 찾고 있는 앙굴리말라요’ 라고 알려줍니다. 앙굴리말라를 본 왕은 그때부터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기 시작했어요. 앙굴리말라는 군인 100명이 덤벼도 혼자 이길 만큼 괴력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왕이 부처님을 뵈러 온다며 군대도 모두 물리고 칼과 무장도 모두 풀고 숲에 왔는데 자기 앞에 앙굴리말라가 있었던 거예요.

그 모습을 본 부처님은 ‘왕이시여, 두려워마시오. 그는 이제 앙굴리말라가 아니라 아힘사(Ahimsa) 비구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아힘사는 인도말로 ‘비폭력’이라는 뜻이에요. 앙굴리말라의 법명(法名)이 비폭력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왕이 정신을 차리고 앙굴리말라를 보면서 ‘당신이 진정 앙굴리말라라면 당신의 가족내력을 말해보시오’ 라고 합니다. 앙굴리말라는 원래 아주 좋은 집안의 자제였어요. 공부도 잘했는데 어떤 모함에 휘말려서 사람 100명을 죽여 1000개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면 하늘 나라에 태어난다는 말에 사로잡혀서 99명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왕의 이야기를 듣고 앙굴리말라는 자신의 집안 내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진정 앙굴리말라라는 것을 확인한 왕은 ‘방금 부처님께 당신에게 공양을 올리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당신은 무엇이 필요하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비구가 된 앙굴리말라는 왕에게 오히려 ‘저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대답을 들은 왕은 부처님께 찬탄을 합니다.

‘위대하십니다. 저는 1,000명의 군대를 이끌고도 그를 제압하지 못했고, 설령 제압한다고 해도 죽이기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군대도 없이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여기 이렇게 새로운 수도승으로 만들어두셨기에 저는 세존을 찬탄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이 왕 수준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굳이 그 사람을 죽여서 뭐하겠어요?”

“그런데 모든 것을 뉘우친다고 해도 과거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죄가 없어지고 안 없어지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해요? 참회한다면 그 사람의 살심(殺心)은 이미 죽은 거잖아요. 그 사람 마음속에 있던 사람을 죽이는 못된 습성이 깨달음을 통해 완전히 사라져버린 거예요. 만약 질문자가 꿈에서 심부름을 가다가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에서도 계속 심부름을 가요, 안 가요?”

“안 가요.”

“질문자가 꿈에서 누군가를 죽였어요. 그런데 깨어보니 꿈이었어요. 그때 그 집에 사과하러 가요, 안 가요?”

“...”

“깨달음은 모든 인과가 끊어지는 세계예요. 생각의 세계에서는 윤회의 한 틈바구니도 벗어날 수 없지만,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모든 인과를 초월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계속해서 세속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처벌을 하는 것은 예방하려는 것이 목적이지 복수하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계속 복수하고 응징하는 관점에서 처벌을 하려고 하니까 이야기가 끝이 안 나는 거예요. 그 관점에서는 상대방이 잘못을 하면 꼭 응징을 해야하고, 응징 중에서 가장 강한 방법이 죽이는 것이잖아요.

만약 누군가 돈을 빌리고 안 갚았다고 해서 죽이면 당장 속은 시원할지 몰라요. 그런데 그렇게 죽이는 게 나아요, 그 사람이 반성을 하고 나중에라도 내 돈을 갚는 게 나아요?”

“나중에라도 갚는 게 낫죠.”

“죽여서 응징하겠다는 것은 복수하겠다는 거예요. 물론 세상의 논리에서는 복수와 응징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수행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응징의 하나님에서 용서와 사랑의 하느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질문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처벌의 목적은 응징이 아닌 예방이며, 깨달음은 이 모든 인과를 초월한다는 말씀이 참 명쾌하게 들렸습니다.

이 외에도 이와 같은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 큰오빠는 홍준표를 찍으라고 하고, 518 민주항쟁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들이 일으킨 일이라고 합니다.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아 인연을 끊고 지냅니다. 또 큰 오빠가 어릴 적에 성추행을 한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남들보다 앞서나가 시기질투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국제 학술대회를 열려고 하는데 교수님들이 말리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엄마와 싸운 후 4년 동안 보지 않고 있어요. 마음이 잘 안 열리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 죽으면 어디로 가고, 화장을 해야할까요, 매장을 해야할까요?
  • 7살 아들을 나중에 중국으로 대학을 보내고 싶은데 남편은 한국의 대학에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결혼 17년차 중3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 과거에 죄를 지은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스님은 관점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통일암 너른터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했습니다.

“질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속상할 만도 해요. 그런데 속상한다고 생각하면 한 없이 속상할 일이지만 뒤로 한 발 물러나서 보면 속상할 일도 아니고, 울 일도 아니에요.

여러분, 조금 더 쾌활하게 살아요. 여러분들 사는 거 보면 꼭 엿 같아요. 이쪽을 때어놓으면 저쪽에 붙어있고, 저쪽을 때어놓으면 이쪽에 붙어있어요. 좀 바삭바삭하게 살면 어떨까요? (모두 웃음)

불교대학은 제가 공부한 불교와 제가 살아온 인생의 엑기스를 모아 교과를 편성한 거예요. 그러니 일단 1년은 끝까지 해보세요. 해보고 별로면 그 때가서 그만두고요. 그리고 불교대학 과정 중에 하는 프로그램은 다 해보는 게 좋아요. 특강수련 하면 좀 바쁘더라도 가보고, 수행맛보기도 해보고, 깨달음의 장도 가보세요. 제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했을 때 확실히 삶이 달라집니다. 삶이 달라진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죽어서 어디가고, 사주가 어떻고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뀐다는 뜻이에요.

지금 죽을 것 같은 일도 관점을 바꾸면 좋은 일이 돼요. 스님이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다쳐서 못 걸어 다닌다면 꼭 나쁜 일일까요? 적어도 스님이 됐으면 전통적으로 생각할 때 늘 선방에서 참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늘 많이 돌아다녔잖아요. 다리가 탁 부러지면 이제 앉아 있어도 돼요. 그게 꼭 나쁜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좋은 일도 아니지만요. (모두 웃음)

무엇이든지 형편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좋은 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살아 있어요, 안 살아 있어요?”

“살아있어요 ”

“살아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2시간 동안 열정을 다해 지혜를 알려준 스님에게 대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산길을 내려 온 대중들은 염불사 앞에 모여 경주남산순례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대중들을 위해 축원을 해준 후 오늘 행사를 마무리하는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괴롭기 싫다면 언제든지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보면 괴롭고 싶은 것 같아요. 괴로운 게 그렇게 좋아요? (대중 웃음)

괴롭지 않으려면 생각을 조금 바꾸셔야 돼요. 가방 크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 아니듯이, 절에만 다닌다고 수행이 되는 게 아니에요. 무엇보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실제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조금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고민들이 굉장히 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학기말 시험에서 수학 시험을 못 쳐서 성적이 떨어졌거나 하면 그때는 속상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하나도 안 중요해요. 나이가 들고 눈을 감을 때가 되면, 젊을 때 시장을 했는지 시청 직원을 했는지가 중요할까요? 큰 집에 살았는지 작은 집에 살았는지가 중요할까요? 하나도 안 중요해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 순간 순간 죽는다고 난리입니다. 본질을 조금만 꿰뚫어보면 괴로워할만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 걸 깨우쳐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수고해준 법사님, 스텝을 위해 다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이제 막 수행의 길에 들어선 불교대학 학생들을 아끼고 독려하는 스님과 법사님, 선배 도반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염불사지 앞에는 석탑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그 앞에서 각 지역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일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가 경주에서 있습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안정미,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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