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대전에서 전국 정토회의 책임활동가들과 간담회를 한 후 김해로 이동하여 가야 효 문화축제에서 가야를 주제로 즉문즉설을 하였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스님은 대전 법당에서 전국 정토회의 책임활동가와 통일의병의 활동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활동가들이 대전 법당을 꽉 채워 앉은 모습이 꼭 부처님 시대의 상가의 모습 같았습니다. 스님은 오늘 모인 취지에 대해 기조법문을 하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중 통일의병의 정체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문답을 소개해드립니다.

“정토회는 지금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종교를 넘어서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스님 말씀을 들으니 통일을 위한 활동도 그런 맥락에서 ‘통일의병’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이해를 했습니다. 정토회 정회원이 되는 것과 통일의병이 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토회는 개인 수행과 사회 활동을 설립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수행이 중심이 되지 사회 활동이 중심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정토회 안에서도 사회 활동을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사람을 대상으로 ‘통일의병’을 조직한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토회 자체가 이미 개인적 수행과 사회적 변화를 도모하는 활동을 함께 하는 보살의 모임입니다. 즉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하는 보디 사트바의 모임이 정토회입니다.

정토회는 설립할 때부터 수행자의 모임을 추구하고 있지만, 함께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불교 신자도 함께 들어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신자는 제외한 채 수행자만 모은 것이 아니라 수행자와 신자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설립 취지를 지키기 위해 특별히 수행자는 정회원이라고 해서 수행자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지켜주어야 하는 사람들로 구분하였습니다.

정토회의 설립 목표는 이 땅에 새로운 불교를 확산시키는 것과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정회원은 개인 수행과 사회 실천을 함께 해야 합니다. 수행은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많이 강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꼭 해야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반해 사회 실천에 대해서는 비교적 그런 인식이 약한 편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가 자기 삶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인지한 사람들로서 따로 ‘통일의병’을 만든 것입니다.

원래 수행자라면 사회활동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 활동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정토 차원에서 제외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수행자들 중에서도 사회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따로 모아서 통일의병을 만들면 나머지 사람들도 포용할 수 있습니다. 대신 통일의병이 된 사람들은 의병으로서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여러 법사님들처럼 정토회 창립 때부터 함께 해온 사람들은 정회원이냐 통일의병이냐 하는 분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수행자가 곧 정회원이고, 수행자가 곧 통일의병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여러 가지 특색을 가진 사람들이 있게 되고 그 사람들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하다 보니 여러 조직들이 생겨나게 된 겁니다.

정토회에서는 개인적 수행과 사회적 활동을 함께 해야 한다고 늘 한결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SNS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접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상담 내용이 많다 보니까 정토회가 사회적 활동보다는 개인적 수행을 많이 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 사람들 몫이에요. 굳이 제가 나서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토회 일반회원은 수행을 하면 좋고 안 하면 그만이지만, 정회원은 수행을 해야 할 의무가 주어집니다. 그처럼 정회원은 통일활동을 하면 좋고 안 하면 그만이지만 통일의병은 통일활동을 의무로 해야 합니다. 통일 활동하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통일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통일의병으로 하고, 통일 활동을 하기 싫다는 사람은 통일의병을 안 하면 됩니다.

통일의병은 민간차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지금까지 통일 의병은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통일의병은 무엇이고, 우리는 누구이고, 그 안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통일의병 서약에 모두 나와 있어요. 다 같이 읽었는데도 다 잊어버렸나 봐요. (대중 웃음)

통일의병은 대한민국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가장 깨어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실천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점심시간에 스님은 활동가들에게 어제 태풍 가운에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직접 주워 온 밤을 쪄서 나눠주며 ‘여기 있는 활동가들이 곧 정토회의 중심’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활동가들은 기쁜 얼굴로 밤을 먹으며 이 밤을 먹고 활동을 많이 하라고 주시는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오후에는 연찬이 이어졌습니다. 활동가들은 여러 가지 의문을 묻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면서 3시간 동안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태풍 콩레이로 인해 오늘로 연기된 가야 효 문화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30분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대중들은 먼저 떠나는 스님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아쉬움과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은 바로 김해로 이동하였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김해 가야대학교 체육관에서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가야문화와 가야 불교를 복원하고 가야 역사에 담긴 효(孝)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사)가야문화진흥원 주최로 ‘제2회 가야 효 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이 축제의 마지막에 스님은 인생 상담이 아닌 '가야'를 주제로 즉문즉설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륜스님을 초청한 가야문화진흥원의 스님 한 분은 법륜스님의 하루를 매일 읽는다며 환영해주시며 행사의 취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기도 하였습니다.

대전에서 급히 출발하였던 스님은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체육관 뒤편에서 잠시 공연을 감상한 후 무대로 올라섰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가야문화를 알리는 축제기간입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지식적인 것은 전문가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최 측에서는 가야불교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게 원래 취지입니다. 개인 인생문제는 좀 줄여야겠어요.(모두 웃음) 자 그럼, 누구든지 시작을 하십시오.”

스님은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맨날 인터넷 상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너무 반갑고 행복합니다.”

“저도 화면 속에서 거사님 많이 봤습니다.” (모두 웃음)

스님의 위트 있는 답변에 청중석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질문자는 ‘가야에 전파된 불교’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가야사를 보면 기원전 48년 인도로부터 남방불교가 전달됐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때 전래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불교는 어떻게 가야로 전해졌을까요?

“부처님께서는 2,600년 전에 살았던 분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진 것은 아니었어요. 부처님 열반하시고 200년이 지나 아쇼카왕이 인도를 통일한 이후에서야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쇼카왕이 다른 종교는 억압하고 불교만 숭상한 게 아니라 불교를 가장 옹호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법사도 해외에 파견했어요. 스리랑카에도 보내고, 미얀마에도 보냈습니다. 인도는 이런 전법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왔던 장유화상도 인도에서 전 세계로 파견한 전법사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마우리아 왕조가 망하고 분열이 되어서 소국들로 나눠졌지만, 소국들이 대부분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그중 하나인 아유다국도 불교 왕국이었어요. 당연히 이 나라도 전법사를 파견했습니다. 역사책이 임금 중심으로 기록이 되다 보니까 허황옥 공주가 주인공 같은데, 주인공은 허황옥일까요, 장유화상일까요?”

“(대중들) 장유화상이요.”

“예, 전법사로 파견된 건 장유화상이기 때문입니다. 전법사를 파견하니까 공주가 여기까지 왔지 시집오려고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는 여기까지 왔을까요?

여기서 ‘공주’라는 말에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주라고 하면 하나밖에 없는 임금의 딸이라고 생각하는데, 인도에서 왕족이라는 건 ‘카스트’입니다. 제일 높은 계급이 브라만이고, 두 번째가 ‘크사트리아’라는 왕족이고, 세 번째가 ‘바이샤’라고 하는 상인, 네 번째가 ‘수드라’라고 하는 노예인데, 부처님 당시에 제일 출가를 많이 하고 부처님을 후원한 계급이 상인 계급입니다. 그래서 경전에는 ‘장자’가 많이 등장해요. 그다음으로 출가를 많이 한 계급이 왕족입니다.

왕족 출신인 장유화상이 여기까지 올 때 많은 사람이 따라왔는데 그중에 왕족 출신의 여성인 허황옥도 함께 온 겁니다. 배를 타고 전법을 하러 오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이곳에 도착해서 공주는 김수로왕과 결혼을 했는데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어 필리핀 민다나오에 사는 원주민 중세서 추장 아들과 한국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해봅시다. 만약 그 한국 여성이 기독교인이었다면 그 종족이 다 기독교인이 될 것이고, 만약 불교인이었다면 그 종족이 다 불교인이 될 거예요. 선진 문명이 후진 지역으로 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금관가야는 이렇게 초기부터 불교 국가가 되었다고 이해하셔야 돼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불교가 쇄락한다 하더라도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법복 바지 입고 불교를 고수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출신이 어딘지 물으면 물으나마나 그 사람은 부산, 김해, 마산 일대 출신 사람들이에요. (모두 웃음)

그 이유를 그냥 ‘아, 부산사람들이 불교를 많이 믿으니까’ 이렇게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수만리 밖에서 한 여성이 여기로 전법을 와서 이 후진 문명의 왕과 결혼해서 10명의 아들을 낳아 한 명은 김해 김씨를 잇게 하고, 2명은 김해 허씨를 잇게 하고, 7명은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를 시켜서 스님이 되도록 했습니다. 한 여성이 수만리 먼 길을 와서 애를 낳아 자기 자식부터 스님을 만든 이 불심은 보통 불심(佛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게 없어질까요?”

“안 없어져요.” (모두 박수)

“모든 현상은 역사를 연구하면 다 뿌리가 있습니다. 그걸 인연 과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된 인연이 있습니다. 이렇게 금관가야에서 전법이 시작됐습니다. 가야에 세워진 첫 번째 절에 대해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는데, 제 스승의 유훈으로 내려오는 데에 보면 가야 불교의 첫 번째 절은 창원에 있습니다. 창원에 가면 ‘봉림사’라는 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그곳의 원래 터가 ‘가야 정사’라고 하는 가야의 첫 번째 절이었다고 합니다. 가야가 신라로 통합이 되니까 가야의 절들이 많이 쇄락해진 거예요. 그런데 신라 말에 진경 심희 선사가 들어와서 다시 중창불사를 하여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데, 진경 심희 대사는 김유신의 후손으로 김해지방의 호족인 김율희의 후원으로 이곳에서 선법을 전파했다고 합니다. 지금 기록에는 ‘봉림사지’로 되어있는 그곳이 가야의 첫 절터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

김수로왕이 왕위에 오른 때가 AD 42년입니다. 장유화상이 가야에 불교를 전한 때가 AD 48년입니다. 불교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서역에서 중국으로 와서 중국에서 다시 고구려와 백제로 왔던 것보다 300년 더 빨리 들어온 겁니다. 다른 곳을 거쳐서 들어오지 않고 바로 들어왔습니다. 중국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건 후한 명제 때인 AD 67년인데, 우리는 그보다 19년 빠른 AD 48년에 들어왔으니까 중국보다 한국에 불교가 먼저 전래된 거예요. 중국을 거쳐 고구려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전진왕 부견이 고구려에 순도 화상을 파견한 AD 372년이에요. 마라난타 대사가 남쪽 동진에 와 있다가 바다 건너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건 AD 384년이고요.

흔히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를 1600년이라고 하는데, 가야에 직접 전래된 것을 기준으로 하면 2000년 역사예요. 그래서 이 사실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한국 불교는 2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가야와 신라의 합의 통일

신라에서는 법흥왕이 528년에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신라는 가야의 국교인 불교를 공인하고 또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진골로 받아들임으로써 신라와 가야는 532년에 합의 통합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해서 통합한 게 아니라 평화적으로 통일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김해 지역에 가야의 문화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거예요. 신라는 김해 지역에 있었던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에게 공주를 시집보내서 사위로 삼았습니다. 그런 후 이 지역을 계속 통치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조상에게 제사도 지낼 수 있도록 허용했어요.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가야의 능이 다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전쟁을 해서 졌다면 이런 게 안 남아있어요. 합의 통합을 했기 때문에 무사히 남아있는 겁니다. 그런 후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이 드디어 신라의 대장군이 됐습니다. 김유신의 여동생이 김춘추의 부인이 되었고 거기서 낳은 아들이 문무대왕입니다. 그 이후 신라 왕들은 다 외할머니가 김해사람, 즉 가야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들은 신라에서 대부분 무관으로 많이 진출을 했습니다. 삼국통일의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들 중 가야계가 많습니다.

가야와 신라는 혼인으로 맺어져서 통합이 돼었기 때문에 나중에 신라가 약해져도 가야 사람들이 ‘후가야’를 다시 만드는 일은 없었습니다. 완전히 하나가 돼버렸으니까요. 그런데 백제와 고구려는 무력으로 진압을 했기 때문에 신라가 약해지니까 후백제와 후 고구려가 일어나게 된 거예요. 그런데 합의 통합은 금관 가야만 했어요. 대가야 등은 합의 통합을 안 하고 끝까지 저항을 했습니다. 결국 562년에 신라의 침공을 받고 없어졌기 때문에 고령 지역에는 유물이 별로 남은 게 없어요. 낙동강 유역과 남강 유역, 그리고 서쪽으로는 순천, 여수, 남원까지가 가야 땅이었습니다. 가야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어요. 단지 하나의 통일국가가 아니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영토가 바다 건너 일본 땅에도 있었던 나라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야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됩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김해를 사랑해주세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가야 사람이지, 신라 사람이 아니다’ 하면서 싸우라고 이런 옛날 역사를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옛날 역사가 이랬다는 걸 아시라는 거예요. 더욱이 김해는 가야의 500년 수도였기 때문에, 김해 시민들은 자기네 역사를 좀 사랑할 줄 알았으면 해요.

다행히 요즘 시장이나 도지사 또 대통령까지 관심을 두고 가야 역사를 복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부 차원의 협력도 필요하지만 시민들도 이런 역사를 아끼고 전파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김해는 지금 인구가 늘면서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많아요. 외지 사람이 많아지면 좋은 점도 있지만 단점이 자기가 사는 지역을 아낄 줄 모른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이사 가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거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고향을 아낄 줄 압니다. 시장이 여기에 공장을 세우고 땅값이 올라가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무조건 좋아하겠지만 고향 사람들은 땅값이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네 고향을 가능하면 원형대로 가꾸고 보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꼭 종교적으로 불교가 아니라도 김해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개인의 신앙은 신앙이고, 가야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잖아요. 우리 선조들의 옛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김해 시민이 되시기 바랍니다.”

“(대중들) 예.”

“낙동강의 어원이 뭔지 아세요? 가락(가야)의 동쪽에 있는 강이라고 해서 ‘낙동강’인 거예요. 순우리말을 한문으로 옮겨서 기록하다 보니까 ‘가락’, ‘가야’, ‘임나’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던 겁니다.

지난번에 제가 인도 사람들을 한국에 초청한 적이 있었는데, 김해에 데려와서 ‘너희 선조가 2000년 전에 여기에 왔었다’라고 하면서 김수로왕과 허황옥 얘기를 해줬더니 너무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인도 사람이 한국에 오면 반드시 여기에 먼저 데리고 와서 구경을 시켜줍니다. ‘불국사보다 여기가 더 중요하다. 보아라. 너희 선조들의 흔적이 있다’ 하면서 파사의 탑을 보여주니까 ‘와, 우리 동네 돌이네요’ 그러더라고요.

지금은 세계경제대국이 미국이 1등이고, 중국이 2등인데, 앞으로 조금 있으면 인도가 3등이 될 겁니다. 인도가 지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한국과의 교류도 굉장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가야는 앞으로 인도와 한국의 관계가 좋아질 때 인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니 이 땅의 옛날 문화를 잘 보존해야 합니다. 장유사, 장유폭포 등을 잘 보존해야 해요.

가야 문화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해요.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에는 ‘가야사를 재 정립하자’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가야사에 대한 관심은 정부의 국정 취지에도 맞고, 김해 시민의 자부심을 위해서도 좋고, 우리 불교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모두 박수)

글로 다 싣지는 못했지만, 스님은 한반도 역사 속의 가야부터 시작해서 가야에 전래된 불교까지 현대적 비유를 들어 생동감 넘치고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 김해에 살고 있는 불자들이어서인지 한분도 졸지 않고 집중하여 강연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질문에 답변을 끝내고 나니 한 시간 반이 지났습니다. 스님은 시간이 다 됐지만 질문을 하나 더 받았습니다. 사진을 찍다 앞자리에 앉아 강연을 듣던 기자님이 질문했는데요. 기자님은 강의를 들으며 스님께서 역사적 연도, 인물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에 감탄했다며 집중력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청중들도 그 방안이 궁금했는지, 질문이 끝나자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스님은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비유하며 무엇보다 ‘좋아하면 집중력이 생긴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의 재미있고도 유익한 즉문즉설을 끝으로 가야 효 문화축제도 사홍서원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스님은 무대에서 내려와 (사)가야문화진흥원 스님들과 인사를 나눈 후 두북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내일은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 제 132회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행사와 즉문즉설이 있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리포터 정현경, 이유정 사진이용우, 한춘화 녹취정란희,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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