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스님이 유럽 대륙에서 북미 대륙으로 건너 온 첫 날입니다. 스님 일행은 오전 8시 10분에 독일 뒤셀도르프를 출발해서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뉴욕 JFK공항에 오후 2시 45분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한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북미 동부/중남미 지구장인 임금이님과 뉴욕정토회 김명호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뉴욕은 미 남동부에 상륙하고 있는 허리케인 '플로렌스(Florence)'의 영향으로 잔뜩 흐려 있고 비도 간간히 뿌리고 있었습니다.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었지만, 뉴욕의 퇴근시간 교통 체증을 감안하여 뉴저지 에디슨 강연장으로 바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스님은 9월14일(금)부터 16일(일)까지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미 동부/중남미 지구(이하 북미 동부 지구) 해외정토행자대회 준비 현황과 허리케인이 행사에 미칠 수 있는 사안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에디슨은 뉴저지주 중부에 위치하고 있는 중소도시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발명가 에디슨의 이름을 딴 도시입니다. 에디슨이 이곳에 연구소를 세우고 백열 전구를 비롯한 1,092개의 발명 특허를 낸 곳, 그곳이 바로 이 도시입니다. 스님과도 2016년에 이어 두번째 강연으로 인연을 맺는 도시인데요. 2016년 에디슨의 한인 성당에서 열린 스님의 강연이 오늘의 강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어서오세요!”▲ “어서오세요!”

오늘 강연이 열리는 SYK한미커뮤니티센터는 뉴저지 정토회원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곳입니다. 2016년 스님의 강연을 우연히 듣게 된 SYK센터 린다 강 대표가 이후 2년 여 기간 동안 2주에 한 번 열린법회가 열릴 수 있도록 장소를 내어 주었고, 2년이 지난 오늘 스님의 행복한 대화 강연장 후원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 타국에서 고국의 향기가 솔솔~~▲ 먼 타국에서 고국의 향기가 솔솔~~

SYK는 린다 강 대표의 아버지, 고 강성용 옹의 약자입니다. 생전에 한인 커뮤니티 센터 건립이 꿈이었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 5년 전인 2013년 9월 린다 강 대표가 사재를 들여 건립한 곳입니다. 지역 한인들의 복지 상담, 각종 강좌, 건강 진료 등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 한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입니다.

와~ 반가워요!▲ 와~ 반가워요!

오늘도 이곳에는 마치 잔칫날인 듯 웃음이 끊이지 않는 정토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오늘은 뉴저지 법당을 비롯해 뉴욕, 맨하탄 3개 법당의 봉사자들이 합쳐져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분위기는 명절에 반가운 가족을 만난 듯 화기애애 했습니다.

그 사이 스님은 뉴욕정토회 유정희님이 준비한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차에서 잠시 휴식을 한 후, 시작 시간에 맞추어 강연장으로 입장했습니다.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로 스님을 맞았습니다.

먼저 스님은 올 여름 한국의 더위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상 고온이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인위적인 환경파괴로 일어난 일인가 논란이 많습니다.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가 조금 더 편리하게 살기 위해 했던 일들이 오히려 미래에는 재앙이 될 수 있어요. 이처럼 지금 좋은 것이 꼭 나중까지 좋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이와 같아서 지금은 잘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잘못했더라 하는 일들이 있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결혼 아닐까요? (대중 웃음) 결혼이나 자식 관계 이런 일들이 우리 인생에 있어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고통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와 같이 살아가면서 들었던 의문이나 괴로움이 있다면 드러내놓고 가볍게 말해보는 시간입니다.”

스님의 말처럼 총 6명의 질문자가 본인의 괴로움을 내어놓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서 한 번 이혼하고 이곳에서 다시 이혼 위기에 놓여있다는 분, 스님께 화두를 받아 공부하고 싶다는 분, 이 시대 청춘들은 왜 이리 힘들어야 하는지를 토로한 분, 결혼생활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다투시는 부모님을 위해 도움 말씀을 달라는 분,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분, 어린시절 옆집 또래 아이가 신들린 것을 보고 생긴 두려움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분, 이렇게 여섯 분이 질문했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질문한 분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아들을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낳아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게 아들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네 살 때부터 자폐증이 나타나기 시작해 그 때부터 힘든 여정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아들이 23살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자폐증이 아주 심한 건 아니고 그렇다고 독립을 하기엔 굉장히 애매모호한 상황입니다.

아들이 나에게 십자가이고 풀어야 할 하나의 과업이기 때문에 저는 기도도 많이 하고 수행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엄마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태어났지?’ 라고 물으면, 저는 '내가 십자가를 지리라, 지난 내 잘못의 과보다' 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하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아들이 단지 잘못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힘들게 여정을 가야 되는 것이 불공평하다' 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는 아들로 인해서 열심히 사람답게 살아가는 게 감사하고, 나에게 주어진 이 십자가가 또한 감사한데, 그 아이 자체로 볼 때는 왜 이렇게 험난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아들이 불면증이 있고 친구를 못 사귀는 상황에서도 저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새벽 한 시에도 일어나서 밥을 해서 먹일 정도로 아주 요리를 잘하는 엄마로 거듭 났어요. 그런데 시댁이나 친정 식구들은 제 아들과 한 공간에 웬만하면 있지 않으려고 해요. 남편도 23살이나 된 아들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니 '아들을 어디 기관에 보내고 저하고만 알콩달콩 살고 싶다' 는 얘기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굉장히 배신감을 느낍니다.

내가 지금은 괜찮지만 만약 내가 어떻게 된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길거리의 노숙자를 보면 가슴이 섬뜩합니다. 30년 후 아들의 앞날을 상상하면 잠을 못 자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의 아픈 마음을 우리가 다같이 느끼며 함께 격려의 박수를 보내줍시다. (모두 박수)

제가 몇 마디 한다고 위로가 되겠어요? 경험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가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 물었으니까 함께 잘 살펴봅시다.

토끼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자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사자한테 쫓기고 호랑이한테 쫓기고 늑대한테 쫓기고 표범한테 쫓기고 토끼는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저렇게 연약하게 태어나서 부들부들 떨고 살아야 될까요? 왜 덩치도 좀 크고 사납게 태어나지 덩치도 작고 온순하게 태어나서 저렇게 살아야 될까요? 지금 질문자가 생각하는 거는 그와 같은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토끼는 토끼의 삶이 있고 다람쥐는 다람쥐의 삶이 있는 거예요.

사자는 사자의 삶이 있고 여우는 여우의 삶이 있듯이, 그냥 각각 다 그 존재는 그 존재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는 거예요. 키 큰 사람은 키 큰 사람대로 키 작은 사람은 키 작은 사람대로요. 그런데 키 작은 사람이 농구 선수가 됐을 때 키만 좀 크면 일류 농구 선수가 되겠는데 키가 작아서 늘 불리한 선수들을 보잖아요?

그럴 때 안쓰럽게 보면서 '키가 작은 선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또는 하나님이 무슨 벌을 주어서 저렇게 재주도 좋은데 키가 조금 작아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그는 비록 키가 작지만 기술이 있어서 농구 선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그렇듯이 '우리 아이는 자폐증이라고 하는 장애가 있지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돼요. 질문자 또한 이런 자녀를 뒀지만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질문자 남편도 이런 가정 속에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오직 아이에게만 몰두가 돼서, 아이를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 놓고, 저 불쌍한 존재를 어떻게 돌볼까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도 질문자도 남편도 모두가 불행해지는 거예요.

제가 볼 때 질문자는 착하기는 한데 굉장히 어리석게 보여요. 그러니까 키 작은 아이는 키가 작지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시각 장애자는 눈이 안 보이지만 행복할 권리가 있고, 청각 장애자는 소리가 안 들리지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를 고쳐주려고 엄마가 평생을 노력한다 이러면 아이는 열등 의식을 갖게 돼요. 엄마는 엄마대로 고생하고요. 청각장애자는 청각장애가 있지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데 그 청각 장애를 고칠려고 하면 부모는 부모대로 평생 고생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그게 안 고쳐지니까 열등 의식을 갖게 된다는 말이에요. 생각을 바꾸셔야 돼요. 자폐증이 있는 거는 우리 몸의 일부의 장애일 뿐이지 그건 하나님의 벌도 아니고 전생의 과보도 아니에요. 그러고 자폐가 있다 해서 그 아이가 불행하게 살아야 될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아들이 자폐 증상이 있지만 너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도 도울 수 있는 만큼만 도와야 돼요. 그런데 결혼을 해서 아내로서의 남편에 대한 역할은 일체 안 하고 자폐증 자식에게만 자기 삶이 전부 묶여 있다면 질문자는 아내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된 거예요. 질문자가 만약 집에 자폐증 환자가 있다고 직장도 안 나가고 계속 환자에게만 묶여 있다면 질문자는 직장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저는 남편과의 관계는 굉장히 좋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고, 왜 불면증이 있고 우울증이 있어서 힘든가’ 라고 자꾸 호소합니다. 약 치유도 계속 하는데 이것들이…”

“다리를 다쳐서 장애가 있듯이 또는 눈이 안 보이는 장애가 있듯이 너한테 자폐의 장애가 있다. 그러나 너는 행복할 수가 있다. 토끼로 태어났든, 다람쥐로 태어났든, 토기는 토끼답게 살아야 되고 다람쥐는 다람쥐답게 살아야 되듯이 자폐 장애를 가진 사람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렇게 엄마가 격려해 주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다만 조금 장애가 있어서 불편할 뿐이다. 그러나 너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렇게 얘기 해야지요.

아이가 왜 장애를 열등하게 생각할까요? 엄마가 아이의 장애를 열등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아이의 의식에 심어진 겁니다. 질문자가 아이를 보면서 늘 불쌍하게 여기기 때문에 애가 불쌍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말이에요.

예전에 방송에 나왔던 호주의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닉 부이치치 기억나십니까? 만약 우리 나라에서 두 팔도 없고 두 다리도 없는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엄마가 우선 기겁을 하겠지요. 불교 신자라고 하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애를 낳았나’ 라고 하겠죠. 죄의 과보라고 생각한 거죠. 죄를 지은 결과로 장애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에요.

왜 하나님이 무슨 심술이 나서 사람을 장애로 만들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라는 것은, 다른 사람 같으면 이런 아이를 보고 건강하지 않으니까 불행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엄마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무릎을 꿇고 ‘저에게 이런 선물을 주셔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죠.

만약 이 아이가 다른 집에서 태어났으면 구박 받고 자랐을 텐데 우리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아이는 제가 마음껏 사랑하고 키우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아이의 장애를 고치지 못했다고 해도 심리적으로 아무런 구김살이 없는 거에요. 장애를 죄의 과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질문자는 장애에 대해서 죄의 과보라고 생각하는 열등 의식을 아들에게 심어줬기 때문에 아들이 자꾸 ‘왜 이렇게 태어났냐’ 라는 소리를 하는 거에요. 지금이라도 그런 소리를 할 때 태어남에 있어서는 누구도 차별 받지 않는다. 어떤 죄의 과보가 아니다. 그냥 교통사고 나서 다리에 장애가 생기듯이 너에게는 자폐라고 하는 장애가 생긴 거다. 이런 장애가 있지만 너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렇게 얘기해야 돼요. 가능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하도록 하고, 지나치게 과잉보호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토끼가 불쌍하다고 집에서 너무 오래 키워버리면 산에 가서 못 살아요.

사람이 두 팔이 없는데도 다리를 바꿔가며 발가락에다 붓을 끼워 붓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거 봤어요? 불쌍하다고 부모가 계속 과잉보호 해주면 자식이 자립심을 잃어서 부모가 평생 그 짐을 져야 될 운명이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가능하면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줘야 합니다. 과거엔 사회보장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부모가 다 책임을 져야 했지만 지금은 부모가 다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또 부모가 꼭 보호해야 된다는 생각도 옳지 않습니다. 그런 장애를 가진 사람을 돕는 것은 오히려 보호기관이나 전문가가 돕는 게 좋다고 하면 부모는 헤어지는 아픔을 겪더라도 아이가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정을 끊어줘야 합니다.

남편 역시 이런 장애 아들이 있다고 해서 불행하게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아이도, 그런 아이를 둔 질문자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그런 아내와 아이를 둔 남편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 아이를 위해서 남편보고 희생하라 이런 말은 옳지 않습니다. 그게 꼭 인생의 옳은 길도 아니고요.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그 집착을 끊어야 됩니다. 사회가 보호할 수 있으면 사회가 보호하도록 하면 되지 '내가 죽으면 아이가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요. 부모가 보호할 수 없으면 사회에는 그런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가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기관들에 몇 번 남편이랑 방문해 봤는데요. 굉장히 제도가 안 돼 있더라고요”

“잘 안 돼 있어도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부모가 키우는 것만큼 좋은 제도가 어떻게 이 세상에 있겠어요? 여러분들이 노인 요양소에 부모님들을 모셔다 놓으면 마음에 드는 요양소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요양소에 맡겨 놓고 돈도 줬는데 요양하는 사람이 부모님을 제대로 못 모신다고 불평하면 제가 이러죠. ‘그래, 그럼 네가 모셔라’

제 부모도 안 모신다고 요양소에 갖다 놨는데 월급 받고 모시는 사람이 어떻게 자식처럼 하겠어요? 이게 잘못됐다는 거에요. 자기가 바빠서 남한테 부탁을 해 놓고는 돈 좀 줬다고 나처럼 하라 그게 말이 되는 얘기에요?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에요? 제 부모를 제가 모셔야지 남한테 맡겨 놓고 돈 줬으니까 잘해라 그게 말이 돼요? 아예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지적을 해야 되겠지만 항상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셔야 되는데 저를 대신해서 모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학대를 하거나 하면 그럴 때는 고발해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어떤 요양소도 엄마처럼 해주는 요양소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렇다고 내가 해주는 게 꼭 좋다고만 말할 수 없어요. 그럼 이 아이는 영원히 나의 아이밖에 안 돼요. 그런데 그런 기관에 가면 조금 불편하고 여러 가지로 부모가 볼 때 가슴 아프지만 오히려 적응해 가면서 잘 살 수 있어요.

발가락으로 밥을 먹거나 발가락에 붓을 끼워서 그림을 그리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부모는 가슴이 아파 그걸 못 쳐다보고 대신 먹여주고 대신 그려줍니다. 그러나 남은 그걸 할 수 있어요. 선생은 그걸 냉혹하게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가 반드시 장애자들 훈련을 잘 시킨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내가 만약 손가락을 다쳐서 기부스를 한 달 정도 했다가 풀면 이게 잘 펴지질 않겠죠. 재활치료를 하려면 아파도 펴야 돼요. 재활치료 하는 사람이 내 아프다는 거 안 봐주고 쫙 펴주니까 펴진단 말이에요. 자기 혼자서는 아파서 못 폅니다. 침도 의사가 찔러야지 자기가 찌르지 못하죠. (대중 웃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야 더 자유롭게 되고 능력도 커지는 것이지 늘 그 안에서 안주하면 커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토인비가 역사의 발전은 도전과 응전이라고 했잖아요. 적절한 도전이 있어야 거기에 응전하면서 문명이 발전한다는 말이에요.

아이에게 부모가 필요할 때는 아주 어릴때에요. 갓난 애기 때는 부모만큼 잘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크고 나면 부모가 인생의 장애가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부모는 그 분이 없었으면 내가 없었을 정도로 은혜로운 분이지만, 반면에 부모 때문에 내가 요만큼 밖에 못 되기도 하는 거예요.

부처님도 부모가 하자는 대로 했으면 부처가 안 됐겠죠. 그래서 자녀들이 자립하려고 할 때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게 바로 부모의 벽입니다. 부모의 벽을 넘어야 자유인이 되는 거에요. 안 그러면 부모의 영원한 노예가 됩니다. 질문자의 애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게 자녀에게도 질문자에게도 힘들고, 자녀에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자녀에게 도움이 된다면 괜찮은데, 그건 절대로 도움이 되는 행동이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죽어도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살듯이 우리 아이도 잘 산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힘 닿는 대로 도와줄 건 도와주되 내가 죽은 뒤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행복하게 살아야 자녀에게도 좋은 거예요. 내가 이 자녀 때문에 내 인생을 못 즐겼다면 이 자녀는 부모에게 불효를 한 것 아닙니까. 자녀 때문에 부모가 평생 불행하게 살았다고 그러면 그보다 더한 불효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가 지금 자식을 불효 자식으로 만들고 있어요.”

“저는 행복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이 장애 때문에 날지를 못하니까요.”

“장애는 낫는 게 아니라니까요”

“아니... 성인으로서 제대로 자라서 날아가지 못하니까요.”

“그런 생각을 고정관념이라고 하는 거예요. 장애 중에는 육체가 성장하지 못하는 장애도 있고, 육체는 크지만 의식은 성장하지 못하는 장애도 있고, 온갖 장애가 있는 거에요. 그러나 그런 장애를 안고 있어도 우리의 중요한 관심은 그래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관점을 항상 이렇게 가져야 되요.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어야 된다고 하면 그 아이는 영원히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야 되요. 그 아이를 자꾸 열등하게 만들지 마세요. 애가 그렇게 말하더라도 ‘아니야, 장애가 있는 것도 맞고 부족한 것도 맞아. 그러나 너는 행복할 권리가 있단다’ 이렇게 격려를 항상 해줘야 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강연이 끝난 후에 책사인회 줄에 서 계신 질문자 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늘 책이며 유튜브로 스님의 말씀을 즐겨 듣고 있는데, 오늘 직접 질문할 수 있어 감사했고, 스님의 답변을 듣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면서 활짝 웃었습니다.

책 사인회 중에▲ 책 사인회 중에

“재미있으셨어요?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일로 괴로운데, 한발 떨어져서 보면 사실 별일 아닐 수도 있어요. 본인은 이 남자와 결혼할까 저 남자와 결혼할까 굉장히 고민이겠지만, 제가 볼 땐 아무 일도 아니에요.(대중웃음) 우리가 개미나 벌을 볼 때처럼 우리 인간세계도 저 위에서 보면 이와 같을 거에요. 조금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별 일 아니에요. 꿈속에서는 강도를 만나면 큰 일이지만, 꿈이 깨면 꿈일 뿐이에요. 이런 이치를 저처럼 젊어서 깨달으면 평생을 웃으며 살 수 있는데, 꼭 숨 넘어갈 때 깨달아요.(대중웃음)

오늘 아침에 눈뜨고 오늘 행복해야 해요. 어릴 때는 어려서 좋고, 학생 때는 학생이라서 좋고, 늙으면 늙어서 좋고, 젊으면 젊어서 좋아야 해요.

늘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임을 알아야 해요.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행복할 수 있어요. 이번에 필리핀 민다라오에 다녀오면서 저는 제 두 다리로 그 험한 정글을 걸어 다닐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눈이 보이고, 다리 건강하고 지금 진짜 중요한 것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작은 것에 연연해 하지 마세요. 이미 행복이 여러분에게 가득해요. 오늘 행복해야 합니다. 아셨죠?”

"네"

봉사자들과 함께▲ 봉사자들과 함께

강연이 끝나고 책사인회까지 모두 마친 스님은 내일 있을 미네소타 영어 강연 일정을 위해 서둘러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참! 강연 후, 보시함 안에서 발견한 가슴 따뜻한 사연 하나 더 알려 드릴께요. 짧은 사연이 적힌 이 보시봉투에 저희 모두의 피곤이 싹 가셨답니다. 정토행자임이 뿌듯하고 감사한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박승희, 임선희, 임금이, 김지은,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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