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행자대회 이틀째입니다. 스님은 행자대회 참가자들을 위해 아침에 특별법문을 해주신 후 독일-네덜란드-벨기에 삼국이 만나는 점인 라비린트 드라이란덴푼트(Labyrint Drielandenpunt)로 행자들과 산행을 다녀오셨습니다. 저녁에는 참가자들이 기다리던 즉문즉설 시간을 늦은 시간까지 가진 후 행자들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간직될 아헨에서의 모닥불을 피워주셨습니다.

4시 30분 아침을 여는 목탁소리에 기상한 유럽의 정토행자들은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식사 후 어제 진행한 모둠활동 토론 내용을 조별로 요약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별 발표자들이 정토회 활동 중 느꼈던 어려운 점들과 각 지부 활성화 방안에 대해 프레젠테이션 하는 내용을 스님은 경청하시며 꼼꼼히 노트하셨습니다. 이중 법회 활성화 방법으로 유럽 통합적 홍보를 해보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왔습니다.

조별 발표가 끝나자 스님은 발표된 내용에 대해 하나하나 정성스레 피드백을 주 시며 활동가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특히 과거에 비해 줄어든 유럽의 법회 참석자 수에 연연하기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혼자서도 들을 수 있는 법문을 이왕이면 누군가가 있어 함께 들어 나도 좋고 상대방에게도 좋다는 관점으로 법회 인원수 문제를 바라보라는 스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님의 특별법문이 끝나고 스님을 선두로 참가자들은 독일-네덜란드-벨기에 삼국의 국경이 함께 만나는 점인 드라이란덴푼트(Drielandenpunt)로 오전 9시 반에 출발하여 4시간 반 정도의 일정으로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유럽 행자 대회가 열리고 있는 장소는 독일 아헨(Aachen)이지만 벨기에 국경을 따라 나있는 숲 속 길을 한 시간 반 정도 걸으면 신기하게도 네덜란드의 최고 높은 지점이자 3개국이 접경하는 국경지대 드라이란덴푼트에 도착합니다.

스님은 빠른 걸음으로 걸으시면서도 길가의 나무, 풀, 꽃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나무에 열린 작은 사과를 맛보시며 예쁜 찔레꽃에 대해 행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모습이 마치 숲학교 해설사 같으셨습니다.

이곳 국립공원의 숲길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 자란 독일 특유의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무 그늘에서는 어린아이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자란 고사리가 가득했습니다. 언덕에서도 좀처럼 속도가 줄지 않는 스님의 빠른 발걸음에 뒤따라오던 행자들의 행렬이 점점 스님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스님은 “왜 똑같이 먹었는데 못 걷노” 하시며 스님보다 훨씬 젊은 행자들이 뒤쳐지는 모습에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빼곡한 나무숲을 벗어나자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국기가 나란히 서있는 삼국의 국경을 표시하는 비석이 나왔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높은 지점. 스님이 네덜란드의 백두산이라고 부르신 이곳의 높이는 322.5m ▲ 네덜란드에서 가장 높은 지점. 스님이 네덜란드의 백두산이라고 부르신 이곳의 높이는 322.5m

스님이 돌 주위를 한 바퀴 도니 독일-네덜란드-벨기에 세 나라를 단숨에 다녀오신 격이 되었습니다.

삼국이 만나는 꼭짓점에는 D/NL/B라고 적혀있는 육각뿔형의 표지석이 박혀있고 바닥에는 구리선으로 국경표시가 되어있다.▲ 삼국이 만나는 꼭짓점에는 D/NL/B라고 적혀있는 육각뿔형의 표지석이 박혀있고 바닥에는 구리선으로 국경표시가 되어있다.

행자들은 이곳에서 스님이 사주신 따뜻한 커피를 감사히 마시고 옆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스님을 중심으로 행자들이 둥그렇게 푸른 잔디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2600년 전에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의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선주 법사님의 사회로 1분 스피치 시간을 통해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내놓았습니다.

스님은 행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신 후 한 생각 뒤집으면 재앙이 곧 복이 된다고 강조하시며 “내 인생이 어떻게 지나왔던 간에 똥을 거름으로 바꿔 미래의 새싹을 틔우시길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야외 법문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삼국점이 있는 팔제르부르크(Vaalserberg)로 산행을 다녀와 물 한 잔 청하시는 스님
▲ 삼국점이 있는 팔제르부르크(Vaalserberg)로 산행을 다녀와 물 한 잔 청하시는 스님

산행을 다녀와 3시부터는 불교대학 교과과정 개편안에 대해 교육받은 후 직접 모의 수업에도 참여하고, 새로운 수업모델을 어떻게 해외에 적용할지 의견을 나눴습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유럽 행자들이 기다리던 즉문즉설 시간이 있었습니다.

고용자의 입장에서 노동해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이혼을 앞두고 여러 가지 문제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종류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중 독일 사회에 정착하고 싶지만 언어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지낸 지 6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평소에 말을 잘 붙이는 성격도 아닌데, 사진작가로 독일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사진작가가 되려고 하는데, 말을 조금 못 붙이면 어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현실에서는 꽤 큰 장애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만약 그게 그렇게 큰 장애라면 사진작가를 안 하는 방향으로 해야죠. (대중 웃음)”

“제 성격을 고쳐서 어떻게 잘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고, 또 독일어로 말을 할 때는 특히 머릿속에서 생각을 많이 하고 말을 하니까 우물쭈물할 때가 많습니다.”

“그건 잘 하려고 해서 그래요. 특히 언어문제는 잘 하려고 하면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언어 구사에 있어서는 틀리든 말든 그냥 나오는 대로 말을 자꾸 해 버릇해야 늘어요.

심지어 잘하는 한국말도 사람들 앞에서 하려고 하면 떨리고 잘 안 되고 그러잖아요. (대중 웃음) 친구랑 만나서 둘이서 이야기할 때는 말이 술술 나오다가, 사람들 앞에서는 잘 안 된다면 잘 하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친구랑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특별히 잘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무의식에서 말이 그냥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는 잘 하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안 나오는 거예요. 심지어 한국어도 그런데 독일어를 잘하려고 하면 더 안 나오겠죠. 그러니 말을 정말 잘 하고 싶으면 잘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해요. 잘하려는 생각을 할수록 언어는 잘할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지금 그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독일에서 오래 살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독일에서 살고자 하면 독일사 람보다 노력을 더 해야 해요.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려면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을 다른 장점으로 커버해야 하잖아요. 말이 부족하고 정서적 교감이 이곳 사람들보다 부족한 만큼 사진작가로서의 기술로 커버할 정도가 되면 조금 부족해도 견딜 수 있어요. 그런데 작가로서의 실력도 비슷한데 언어가 부족하고 정서적 교감이 잘 안 되면 당연히 불이익을 당하겠죠.

질문자의 조건을 생각해서 결정을 해보세요. 사진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기술을 잘 생각해보고, 다른 작가들보다 사진 찍는 기술이 탁월하면 언어가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진작가로서 직업을 갖고 생활 독일어도 적당히 하는 선에서 만족하겠다고 하면 그것도 괜찮아요. 그런데 사진작가로서 기술도 탁월하지 않고 언어도 능통하지 않은데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을 하면 괴로워집니다. 지금까지 배운 내용으로 적당히 밥만 먹고살겠다고 목표를 낮추면 덜 괴롭게 살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결국 견디지 못해서 도망을 가게 되기가 쉬워요.

독일에서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슈퍼마켓에서 짐을 옮길 수도 있고, 편의점에서 회계를 하든지 해서 살아갈 수 있어요. 짐 옮기고 이런 일은 언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옆에서 하는 거 한 두 번 보고 요령만 배우면 금방 따라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먹고사는 것에 목표를 맞추면 살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아깝게 느껴져요.”

“그건 아까운 게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잖아요. 질문자는 그렇게 생각하면 산에 올라가면 힘들게 올라간 게 아까워서 어떻게 내려와요? (대중 웃음)

설령 10년 동안 사진 공부를 하다가 하루아침에 다른 일을 시작해도 그건 하나도 아까운 게 아니에요. 만약 음대를 다니며 10년 동안 바이올린 연주를 하다가 슈퍼마켓에서 짐 정리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그건 아깝거나 낭비하는 게 아니에요. 틈날 때마다 다른 직원들이랑 연주하면 되잖아요. 이제 자기가 배운 것으로 돈을 벌려고 하니까 자꾸 아까운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인생을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질문자가 사진작가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 일반 직장에 나간다고 하면 그 둘 중에는 사진을 잘 찍는 축에 들어갈 거예요.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면 사진을 못 찍는 축에 속할지 모르지만, 그 타이틀만 버리면 사진을 잘 찍는 편에 속하게 됩니다. 오늘 모인 사람들 중에도 아마 제일 잘 찍을 거예요. (대중 웃음)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게 꼭 기술만으로 평가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인연에서 평가하는가에 달려있어요. 부모가 아이 교육을 시킬 때에도 대부분 아이들에게 열등의식을 갖게 만듭니다. 성적이 부족한데도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설령 운 좋게 입학했다고 하더라도 그 학교에서 죽어라고 공부를 해도 하위권 성적을 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늘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거예요. 아이의 열등의식을 해소시켜주려면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지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를 시골 학교로 전학시켜주는 거예요. 그러면 놀아도 성적이 상위권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자라고 명문고등학교, 명문대학교를 다녔다고 리더십을 갖게 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환경에서 열등의식을 갖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골에서는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면 서울로 가고, 남아있는 아이 중에 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중학교 때 서울로 가고, 또 남아있는 아이들 중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서울로 갑니다. 그래서 지방에서 자란 아이들은 늘 공부를 잘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재능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공부하라고 독촉할 것이 아니라 아이를 공부 못하는 학교로 전학을 보내주어야 해요. 아이를 데리고 인도에 있는 수자타 아카데미로 오면 1등 할 수 있어요. (대중 웃음) 그러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헛된 꿈을 꾸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예요. 그래도 인연이 되어서 독일까지 와서 공부를 해봤잖아요. 질문자는 털끝만큼도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뒤 독일로 유학을 온 경우이기 때문에 독일어가 독일 사람들보다 부족한 거예요.

스님이 하루아침에 신부가 되기로 한다면 다른 신부님들보다 부족할 거예요. 다른 신부님들은 30년 동안 성경공부를 하셨을 텐데, 저는 그렇지 않았으니 부족한 것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해요. 이건 열등한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독일 사람을 한국에 6년 동안 데려다 놓으면 지금 질문자만큼 한국어를 할 수 있을까요? 아마 못할 거예요.”

“할 것 같기도 해요. (대중 웃음)”

“지금 그렇게 생각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실제로 제 남자 친구는 6개월밖에 안 배웠는데 잘 하는 편이에요.”

“한국에도 외국인 중 한국어가 유창하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교사 중에는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 오래 살면서 한국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가 전화통화를 해보면 발음이나 억양이 외국 사람인 걸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유창하다고 하는데도 원어민이 들으면 외국인인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여기서도 독일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교민들이 길도 잘 묻고 하지만 원어민들이 들으면 말도 더듬는 게 금방 보일 거예요. (대중 웃음) 그건 기준이 달라서 그래요. 그러니 외국인이 원어민에 기준을 맞추고 유창하게 하겠다는 건 헛된 생각입니다.

오늘부터 딱 정신 차려야 해요.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잡으면 생활을 오래 하기가 힘듭니다. 우선 독일에서 뭘 해도 그저 살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하세요. 그 기반 위에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돼요. 독일어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독일어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할수록 말이 입에서 안 나올 거예요. 외국인으로서 독일어가 부족한 것을 너무 당연히 생각하고,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로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나오는 대로 말하고 빨리 배울 수 있어요. 잘하려고 하면 언어는 오히려 못 배웁니다. 손짓 발짓하면서 되는대로 말해야 빨리 배웁니다.

그리고 사진작가의 길을 가려면 사진 기술을 더 연마해야 해요. 독일 사람들과 사진 기술이 비슷하다면 언어와 공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불이익이 있을 거예요. 그때 ‘내가 독일어만 유창하다면 쟤네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는 게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독일 사람들보다 독일어를 못하는 것은 마치 키가 작은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조건입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 키 큰 사람과 농구를 하려면 키 대신 공을 던지는 기술을 더 연마해야 하는 것처럼, 독일 사람과 경쟁하는데 독일어가 부족하면 대신 사진 기술을 더 연마해야 하는 거예요. 이건 나쁜 게 아니에요.

타인의 평가가 내 실력보다 높은 게 결코 좋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 대부분 인생을 그렇게 살려고 해요. 내 실력은 100인데 남에게는 150으로 보이려고 합니다. 이건 생각해보면 아주 위험한 접근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게 싸움이라면 적이 내 실력이 150이라고 생각하고 150에 맞춰서 공격하면 나는 단 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예요. 남은 나를 100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실력이 200이면, 100으로 공격이 들어와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닙니다.

세상이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좋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좋지 않은 거예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거의 대부분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실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어느 대학을 나왔다,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등으로 커버하기 때문에 몇 가지 질문을 해보면 허당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중 웃음) 나름 전문가라고 하지만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거품으로 부풀려진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이 다 드러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지는 거예요.

질문자도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인생이 불행해져요. 사진작가가 되는 것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사진작가는 그저 직업 중 하나로 인생을 사는 수단일 뿐이에요. 그러니 독일에서 살려면 독일어는 어디 가서 밥 사 먹고 물건 사는데 불편하지 않은 정도만 되면 충분해요. 목표를 그렇게 세우면 몇 년만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어요.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 해요. 그렇지 않고 독일 사람과 정서적인 교감까지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죽을 때까지 달성하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높은 목표에 의해 스스로가 열등한 존재로 느껴집니다.

나아가 독일에서 직업을 갖고자 하면 직업을 갖기 위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직업을 안 가지려면 굳이 언어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데, 직업을 가지고자 하면 어느 정도 언어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독일 사람처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안 됩니다. 독일에 사는 동안에는 외국인으로 겪는 불편함과 불이익을 늘 감수하며 살아야 해요. 이민자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대신 성실함, 기술 등 다른 부분으로 언어에서 부족한 것을 커버해야 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그렇게 하잖아요. ‘저 사람은 이건 부족하지만 다른 걸 잘 하니까, 언어는 조금 부족하지만 또 이걸 잘 하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임무를 줍니다. 그러니 지금 언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사진 찍는 기술을 더 연마하든지 해서 다른 부분의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부족한 언어가 자기 발전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는 거예요. 불리한 조건이 자기의 실력을 향상시킵니다.

질문자가 ‘내가 독일 사람이 따라오지 못하는 사진 기술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하면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 그게 아니라 독일 사람처럼 언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현실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외국에서 온 사람이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독일어를 독일 사람처럼 유창하게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잖아요. 그러니 생각을 조금 바꾸셔야 돼요, 아시겠지요?”

“네, 말씀 감사합니다.”

해외에 살면서 모두가 한 번씩 겪었을 언어장벽에 대한 문제라 스님의 답변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정리 말씀으로 수행적 관점을 잡고 연습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행자들의 마음을 다독이시며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어느덧 10시 30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은 행자들을 위해 직접 모닥불을 지펴주셨습니다. 스님이 능숙하게 나무에 불을 붙이자 금세 칠흑 같이 어두웠던 캠프장이 환해졌습니다. 행자들은 오늘 길었던 하루의 피로를 스님이 지펴주신 따뜻한 모닥불에 녹이며 행자 대회의 마지막 밤 아쉬운 마음을 닫는 나누기로 마무리하였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경진, 신재숙, 김세경, 이시안, 권버미, 이희정,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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