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님은 저녁에 평화재단 운영위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회의를 했습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미국 국무장관인 폼페이오의 북한 방문과 북 외무성 담화로 표현되는 북미관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지부진하지만 판이 깨진 것은 아니고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이며 큰 흐름에서는 합의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의견, 정치적 거래를 위한 각자의 입장 표명이라는 의견 등이 오고 갔습니다. 남북 간, 북미 간 안보라는 양자 대결의 틀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차원에서 남북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협의를 해야 한다는 거시적 차원의 제안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태풍이나 폭우로 심한 피해를 입고 핵시설도 파괴할 위험에 처할 경우를 대비하여,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공동으로 안전대책을 세우는 등 여러 층에 걸쳐 서로 얽혀나가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과 미국의 국내 여론에 대해서도 정보를 교환하였고 우리 정부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으며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교환했습니다.

회의에서 논의한 결과, 우리 앞에 놓인 이 난제들을 ‘동아시아 신 안보질서 구국’ 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앞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연구결과물을 보고서와 책으로 발간하여 공유하고, 11월에 있을 평화재단 창립 14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지향할 방향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은 회의 일정만 있어서 지난 토요일, 대구 행복캠프에서 나온 인연과보와 인과응보에 대한 즉문즉설을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엄마가 돌아가신 지 두 달 됐는데요, 너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스님의 <금강경 강의>와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혼자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집중하든, 안 하든 하루의 반을 스님 법문을 들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스님의 법문이 저한테 굉장히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인연과보’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게 있어서 듣다 보니까 ‘인연과보를 알면 삶이 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돌아가신 엄마도 그렇고, 4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도 암이었거든요. 그리고 훌륭하다고 칭송받던 큰스님이나 희생정신이 굉장했던 신부님도 큰 병으로 운명을 달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렇듯 훌륭하신 분들도 큰 병을 앓다 돌아가신 것에 대해 인연과보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두 가지를 구분 못해서 그런 의문이 드는 거예요.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인연과보(因緣果報)’,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예요. 인과응보라는 건 나쁜 짓을 하면 그에 따라서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하면 그에 따라서 복을 받는다는 건데, 인과응보는 불교사상이 아니에요. 모든 원시종교의 기본사상이에요. 그것은 기독교 안에도 있고, 불교 안에도 있고, 힌두교 안에도 있고, 전통신앙에도 있어요. 모든 종교에 다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과응보’는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좋은 일하면 복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결국 해피 엔딩(happy ending), 즉 행복한 결과를 맞게 된다는 거지요.

그것은 어떤 원리냐? 인간사회에는 나쁜 짓을 했는데도 죽을 때까지 권력을 잡고, 부자로 떵떵거리며 오래, 오래 살다 죽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게 도대체 이해가 안 가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 사람은 죽은 뒤에 아마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게 이해가 안 되니까요. 나쁜 짓을 하며 살다가 빨리 죽거나 사고가 나서 비명횡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이 ‘봐라! 그렇게 살더니 천벌 받았다’라고 하지요. 반대로,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도 어렵게 살면 사람들이 인과응보를 믿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흥부, 놀부 이야기 같은 게 나오는 거예요. 착하게 살면 제비라도 박씨 하나 물어다가 복을 준다고요. 살아서 그런 복을 못 받으면 ‘저 사람은 죽은 뒤에 천당 갈 것이다’ 하지요. 이게 인과응보 사상이에요. 이 사상의 기본은 결국 나쁜 짓하지 말고 좋은 일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인연과보는 그런 선악개념이 아니에요. 인연과보는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거예요. 만약 밭에 배추 한 포기가 자랐다면 이게 그냥 갑자기 자라는 게 아니고, 반드시 배추씨가 땅에 떨어져서 자랐다는 거지요. 그럴 때 그 배추씨앗을 인(因)이라 그래요. 그런데 배추씨앗을 천정에 매달아놓으면 싹이 나요, 안 나요?”

“(대중들) 안 나요.”

“‘밭’, 즉 적당한 수분과 적당한 온도가 있어야 해요. 이것을 연(緣)이라고 해요. 씨앗만으로 싹이 안 나고, 밭만으로도 싹이 안 나고, 씨앗과 밭이 만나야 싹이 납니다. 이게 인연과보(因緣果報)예요.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떠냐에 따라서 괴로움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 ‘괴로움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하는 게’ 뭐예요? ‘보(報)’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어요?”

“(대중들) 예.”

“이걸 인연과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길을 가는데 바람이 불어서 옥상에 있던 간판이 머리 위로 떨어져서 다쳤을 때 이걸 인과응보로 해석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저 스님은 좋은 일을 하는 스님인데 간판을 맞은 건 내가 모르는 나쁜 짓을 했겠다. 어제 어떤 여자 손을 잡았든지, 보시물을 훔쳐 먹었든지.’ 이렇게 바라보는 게 인과응보적 관점입니다. 그럼 인연과보적 관점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요? 간판이 떨어지는 게 연이고, 내가 그 옆으로 지나가는 게 인이에요. 아니면, 내가 그리로 지나가는 게 연이고, 간판이 떨어지는 게 인이고요. 그 인연이 만나서 ‘다침’이라는 과가 생겼고, 괴로움이라는 보가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인연과보적 관점으로 볼 때는 그런 일이 생겼을 때는 빨리 어디로 가야 됩니까?”

“(대중들) 병원.”

“예,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아야 돼요. 이 사람이 착한 일 했느냐, 나쁜 일 했느냐는 관점으로 볼 게 아니고요. 그러면 돈을 벌려면 착해야 돈을 벌까요, 돈이 어디로 굴러다니는지를 알아야 될까요?”

“(대중들) 돈이 어디로 굴러다니는지 알아야 돼요.”

“예. 그러면 돈 버는 사람들 중에는 일반적인 행동이 나쁜 사람도 있을까요, 없을까요?”

“(대중들) 있어요.”

“그럼 또 착한 사람도 있을까요, 없을까요?”

“(대중들) 있어요.”

“예. 그러니까 돈을 못 버는 사람 중에도 착한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대중들) 있어요.”

“예. 나쁜 사람도 있을까요, 없을까요?”

“(대중들) 있어요.”

“예. 그래서 돈 버는 것과 착하고 나쁜 것은 직접 관계가 없어요. 건강한 것과 착하고 나쁜 것도 직접 관계가 없고요. ‘착하다, 나쁘다’는 것은 남한테 해를 끼치느냐, 남한테 이익을 주느냐의 판단기준이지, 건강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그런 것을 연결시키는 게 인과응보적 관점이고, 그것과 관계없이 어떤 현상을 ‘바람이 불어야 파도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는 게 인연과보적 관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훌륭한 스님이 암에 걸려서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그 스님이 훌륭한 것과 암은 별개의 문제라는 겁니다.(모두 웃음)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대중들) 예.”

“그가 아무리 훌륭해도 방사능에 많이 노출되면 암에 걸릴까요, 안 걸릴까요?”

“(대중들) 걸려요.”

“그가 아무리 훌륭해도 발암물질을 많이 섭취하면 암에 걸릴까요, 안 걸릴까요?”

“(대중들) 걸려요.”

“그가 아무리 훌륭해도 가족 가운데 암에 걸린 사람이 많은 집안의 사람이라면 그도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을까요, 안 높을까요?”

“(대중들) 높아요.”

“예. 그러니까 그가 좋은 일하거나 훌륭한 일을 하는 것과 건강은 아무 관계가 없는데, 질문자는 연결해서 생각한 거지요. 더 예를 들어 볼까요? 여러분들이 차를 많이 타고 다닐까요, 법륜스님이 차를 많이 타고 다닐까요?”

“(대중들) 법륜스님이요.”

“예. 그럼 교통사고 날 확률이 누가 더 높아요?”

“(대중들) 법륜스님.”

“예. 그럼 법륜스님은 편안하게 있다가 죽을 확률이 높아요, 교통사고 나서 죽을 확률이 높아요? (모두 웃음) 저는 교통사고 나서 죽을 확률이 높아요. 이 확률은 법륜스님이 좋은 일 했느냐, 나쁜 일 했느냐 여부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스님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났을 때에도 그곳에 있었고, 인도에서도 제일 가난한 동네에 가서 살았고,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을 때에도 학교를 지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사고사할 확률이 여러분들보다 높아요, 낮아요?”

“(대중들) 높아요.”

“또 어떤 때에는 차로 하루에 천 몇 백 킬로미터씩 이동하거든요. 그럼 교통사고 날 확률이 높아요, 낮아요?”

“(대중들) 높아요.”

“그럼 법륜스님은 교통사고나 사고사로 죽을 확률이 높을까요, 아니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입적할 확률이 높을까요? (모두 웃음) 사고사로 죽을 확률이 훨씬 높아요. 질문자는 제 말 이해하셨어요?”

“인연과보와 인과응보의 차이를 확실히 알겠습니다.”

“예. 질문자는 ‘어떤 신부님이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도 결국 암에 걸려서 죽었다’고 했는데, 좋은 일과 암은 아무 관계가 없어요. 질문자처럼 따지자면 예수님은 진짜 나쁜 짓을 많이 하셨겠네요? (모두 웃음) 예수님은 나이가 젊어서 죽었어요, 늙어서 죽었어요?”

“(대중들) 젊어서 죽었어요.”

“그냥 병나서 죽었어요, 형벌을 받아서 죽었어요?”

“(대중들) 형벌 받아서요.”

“그것도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잖아요.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으면 그렇게 죽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건 예수님의 실제 삶을 봤을 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옛날 사람들이 착하게 살라는 뜻으로 그렇게 얘기한 거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사람들이 ‘저 놈 봐라. 나쁜 짓 많이 해도 잘만 사네.’ 자꾸 그러니까 ‘지금은 그렇게 보여도 조금 있으면 저 놈은 천벌을 받는다. 하늘이 가만두지 않는다. 사람들이 벌을 주지 않는다면 하늘이라도 벌을 줄 것이다. 그러니까 나쁜 짓하지 말라’는 뜻에서 나온 가르침이 인과응보설입니다. ‘인과응보설은 옮다, 그르다’고 볼 게 아니에요. 옛날에는 좋은 교훈이 되었던 가르침이기도 했으니까요. 그게 ‘진짜냐? 가짜냐?’ 이렇게 접근할 건 아닙니다. 그래서 결국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중들) 아니요.”

“예, 그것도 안 맞습니다. 여러분들은 인연과보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가는 말이 고우니까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상대방을 칭찬하면 상대도 나를 칭찬해 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만약 내가 칭찬했는데도 상대는 나에게 욕을 했다면 ‘안 맞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요, 내가 칭찬하면 내가 욕할 때보다 칭찬받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져요, 낮아져요?”

“(대중들) 높아져요.”

“예. 내가 좋은 일을 하면 욕 얻어먹을 확률과 칭찬받을 확률 중에 칭찬받을 확률이 높아지잖아요. 또 내가 나쁜 짓을 하면 욕 얻어먹을 확률과 칭찬받을 확률 중에 칭찬받을 확률이 높아져요, 낮아져요?”

“(대중들) 낮아져요.”

“예. 그러니까 이건 확률론이에요. 옛날에는 ‘내일 비 온다’, ‘내일 비 안 온다’ 이렇게 말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내일 비올 확률이 60%다’, ‘내일 맑을 확률이 70%다’ 이런 식으로 말하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확률이 높은 쪽으로, 다시 말해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으니까 높은 쪽으로 하는 게 나아요, 낮은 쪽으로 하는 게 나아요?”

“(대중들) 높은 쪽으로요.”

“예. 그래서 우리가 ‘좋은 일하자’는 건 좋은 일하면 좋은 결과가 날 확률이 조금 더 높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법륜스님이 좋은 일을 하니까 사람들은 반드시 법륜스님을 칭찬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스님이 좋은 일을 해도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대중들) 있어요.”

“예. 다만, 스님이 나쁜 짓하는 것보다는 좋은 일하는 게 칭찬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뿐이지, ‘법륜스님은 좋은 일을 하니까 교통사고도 안 나고, 암도 안 걸리고, 몸도 안 아플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무 관계가 없는 일들을 연결 짓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임금이 황후를 놔두고 애첩을 사랑하니까 하늘이 노해서 비가 안 온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 게 인과응보예요. 아시겠어요?”

“예.”

“그거랑 비오는 거랑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래서 애첩을 돌려보내거나 애첩을 처형한 뒤에 황후한테로 돌아오니 비가 왔다? 이것도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비는 올만하니까 온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러나 그렇게 비윤리적으로, 비도덕적으로 행동하면 국민들로부터 비난받을 확률이 높지요. 그러나 비오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거예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건강하세요∼.”(모두 박수)

함께 만든 사람들
유미경, 정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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