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전 충정지부와 광주전라지부의 주최로 대전에서 행복캠프가 열리는 날입니다. 공군부대가 철수하고 신시가지가 조성된 곳에 위치한 Kt그룹 제 1연수관 인재개발 아카데미에서 열렸습니다. 갑자기 풀린 날씨로 봄을 맞이하러 후다닥 뛰어나온 꽃망울들이 있을 듯 상쾌했습니다.

주말이라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가 감도는 건물에 행복캠프 참가자들이 대전뿐만 아니라 멀리 서울, 경기도, 전라도에서 속속 도착하였습니다. 이윽고 행사장에 봄의 생기 같은 설레임이 봄물처럼 차오릅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노랑, 빨강, 파랑, 주황, 분홍의 가발과 추억을 불러오는 교복이 준비되어 있고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이 보입니다. 건물 입구 쪽 바깥에는 주최측에서 준비한 볼링게임, 뽑기, 화살쏘기등의 다양한 놀이마당도 펼쳐져 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강당에서 1부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자기이름을 부르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뒤이어 평창올림픽에서 전 세계의 인기를 차지했던, 컬링 밀대를 밀며 “영미야~”하고 천혜경님이 등장하자 장내가 컬링 경기 같은 열띤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천혜경님의 진행으로 토크쇼 ‘행복톡톡’이 시작되었습니다. 행복학교 학생 두 분을 무대로 모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전에 받은 질문지를 추첨하여 참가자들의 인터뷰도 해보았습니다. 참가자들 중 한 분은 행복학교에서 고맙다고 말하기 미션을 내주어서 언니에게 갑자기 고맙다고 말했더니 “지랄~”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털어놔 220석의 아늑한 장내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맛있는 점심 이후 ‘띵까띵까’ 기타 팀의 즐거운 연주와 노래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동안 법륜스님이 등장하여 ‘노래 잘 하나 보자’고 우스개 소리를 하여 장내가 더욱 활기가 넘쳤습니다.

오늘은 질문함에 있는 많은 질문 가운데에서 추첨을 통해 총 8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고지식하고 다혈질인 친정아버지가 암투병중이신데 화가 많고 남을 미워하여 딸로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라는 분, 직장에서 너무 열심히 하니 동료들의 시기와 배신 때문에 힘든데다 중2 아들까지 말을 듣지 않아 공황장애가 온 상태라는 분, 이복 남동생이 부모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하여 걱정이라는 분, 고약한 성격인데다 일을 못하는 직장동료와 어떻게 지내야 하고 행복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분, 현재 나이 49세로 아직 아이가 없는데, 남편은 협조를 해주지 않아 걱정이라는 분,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데 막내딸이 소식도 없이 외박하여 무척 힘들다는 어머니의 질문,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날까 두려운 나머지 3살, 6살 아이와 함께 해외로 나가서 한 달여 지내다 오고 싶은데, 미안한 생각도 든다는 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 중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질문과 함께 고약한 성격의 직장 동료 대처법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행복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최근 6개월 동안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행복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3주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제가 느꼈던 괴로움과 슬픔, 우울함 등의 감정이 본질적으로 보면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렇게 느낀 것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그 부분을 조금씩 이해해가며 마음이 편해지고 있는 과정인데요,

어느 순간부터 ‘행복이란 괴롭지 않고 슬프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기쁘고 즐거운 것이 행복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행복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그에 맞는 방향을 잡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행복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것인데요, 직장동료 하나가 성질은 더럽고 업무 추진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많이 줍니다. 마음 공부를 하다보니 그런 사람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나의 문제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에는 업무 목표를 갖고 일을 추진해나가야 하는 특성상 그저 편안하게만 바라봐지지가 않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다른 동료들에게까지 일이 많아지고, 편안하게 바라보려고 해도 제가 해야할 일의 절대량이 많아지다 보니 또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질문자가 직접 운영하는 회사예요?”

“아닙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도 아닌데, 왜 회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경을 써요? 그냥 주어진 일을 하면서 자기만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랑 주변 동료들의 일이 많아지니까요.”

“우선 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과 일의 양과의 관계만 따져봅시다. 그 사람과 싸우거나 갈등을 일으키면 일이 줄어듭니까?”

“싸운다고 일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일도 많고 그 사람과 싸우기까지 하는 게 나아요, 싸우지는 않고 일만 많은 게 나아요?”

“...” (모두 웃음)

“물론 그 동료와 안 싸우고 일도 적으면 가장 좋겠지요? 다른 질문자들의 문제에서도 아이가 알아서 게임을 안 하고 공부를 하면 좋고, 남편이 아무 말 안 해도 알아서 집에 일찍 들어와 주면 가장 좋겠지요? 우리도 그게 가장 좋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전제 하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아까 동생이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렇다고 동생과 시비하거나 의절을 해버리면 동생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제사도 안 지내게 되잖아요?”

“네.”

“물론 그 상황에서도 제사도 지내고, 동생과의 관계도 좋아지면 가장 좋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동생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제사도 안 지내는 게 나은지, 제사는 안 지내지만 동생과의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는 게 좋은지를 두고 선택을 하는 거예요. 둘 다 나빠지는 것보다는 어느 하나라도 좋은 쪽으로 택하는 게 낫잖아요?”

“네.”

“이런 조건에서 둘 다 이루려고 하는 마음, 욕심 때문에 모순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유혹하는 게 종교입니다. 대구 갓바위 등 기도발을 받는 터가 좋다는 곳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갓바위에 가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하잖아요? (모두 웃음) 그렇게 자기가 모순되는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갓바위 같은 곳에 가서 빌게 됩니다. ‘동생이 제사를 지내도록 해주세요, 동료가 성질을 안 부리도록 해주세요, 아버지가 화를 내지 않도록 해주세요.’ 하고 자꾸 빌게 돼요.

행복학교는 종교를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종교라는 것은 어떤 힘 있는 존재에게 빌어서 그 존재가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니 종교를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 논리가 아주 편리해요. 힘있는 존재에게 빌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된다고 믿으니까 편합니다. 그런데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허황됩니다. 누구한테 빌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다 된다고 하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요.

그러다보니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의 견해 차이를 좁힐 수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믿고 빌기만 하면 되는데 뭐 하러 저리 노력을 하지?’ 하는 생각에 믿지 않는 사람이 불쌍해 보여요. 반면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빌어서 될 거라면 누가 노력해서 공부하고, 누가 열심히 일을 하겠어?’라며 믿는 사람을 허황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믿음에서 오는 차이를 좁히기는 아주 어려워요.

옛날에는 종교를 탄압해서 그 종교를 믿지 못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종교들이 쇠퇴하곤 했어요.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는 세상의 이치가 밝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종교적인 믿음이 줄어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빈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빈다고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퍼지게 된 거죠. 그래서 유럽을 기점으로 종교적 신앙자의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에는 옛날부터 기독교 문화가 퍼져있었으니까 큰 도시마다 커다란 성당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규모로 보면 한 번에 5,000명씩 예배를 동시에 볼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성당들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일요일에 100~200명 정도 앉아있어요. 대개 성직자들도 나이 드신 분들이 많고, 간혹 젊은이들이 보여도 대개는 부모님들을 함께 모시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탄압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탄압보다 더 무서운 현상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종교적인 믿음을 그만둔다는 의미니까요.

행복학교는 종교와는 별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개인의 자유니까 스스로 판단을 하면 돼요. 종교를 믿으라고 하면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고, 그렇다고 믿지 말라고 하면 이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이 특정 종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점을 어떻게 가지면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어요.

질문자도 주어진 조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예요. 이것이 안 되니까 저것마저 버릴 것이냐, 아니면 둘 중 하나라도 택할 것인가를 두고 현실적인 선택을 내리는 문제예요.

물론 직장동료가 태도를 바꾸어주면 가장 좋아요. 그런데 내가 낳은 아들, 딸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고르고 고른 내 남편과 아내도 모두 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떻게 직장동료가 내 마음대로 되겠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은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직접 운영하는 회사인지를 물어본 거예요.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성질이 더럽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많이 만드는 사원은 몇 번 이야기를 해보고 진전이 없으면 다른 부서로 옮기는 쪽으로 해결하면 돼요. 그런데 질문자가 운영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 입장은 둘째 문제이고, 그 동료 때문에 나에게 일이 많이 생긴다는 문제부터 해결하면 돼요.

그 관점을 분명히 하고 해결책을 생각해봐요. 우선 그 동료가 주변에 피해를 많이 주니까 사장에게 건의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사장한테 말을 한다고 그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할까요?

“아니요,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회사 주인이면 그 직원이 회사에서 나가도록 하면 되는데, 지금 그런 입장이 아니니까 그 동료를 그만두게 할 것인지 아닌지의 권한이 질문자에게는 없어요. 그렇게 권한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질문자가 보다 괴로움이 적고, 덜 손해 보는 길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 동료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자기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에요. 물론 그 사람의 문제가 심각해서 개선을 원하면, 사장에게도 이야기를 해야 해요. 모든 문제는 개인탓만 있는 게 아니에요. 주변 환경이 좋지 않으면,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도 같이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개선하는 노력을 하면서 괴로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장한테 건의를 하거나 개선하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그 직장동료가 알게 되면 관계가 나빠질 수는 있겠죠?”

“네.”

“그럼 그 동료와 관계가 나빠질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요즘 평화운동을 하는데 ‘전쟁나면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나지 않도록 하자’는 구호를 말합니다. 이 말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스님이 수행에 집중하지 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발언을 하느냐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선택이에요. 그런 말을 듣기 싫으면 우선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발언을 안 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말을 안하기에는 개선이 필요하고 계속 발언해야겠다 싶으면 사람들이 시비하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나에게 그 사람들이 시비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권한은 없잖아요. 그런 권한이 있다면 그 권한을 사용할 지, 사용한다면 어떻게 사용할 지 고민을 해보겠지만, 그런 권한도 없으니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 사람들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발언의 자유를 누리는 거니까, 그 중에서 법적으로 나의 권한을 침해하는 내용에 대해서만 법적 대응을 해나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질문자도 그 직장동료의 행태가 사내 법적 조항을 어기는 부분이 있으면 그에 대한 정당한 대응을 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런 부분은 잘 따져보고 결정하면 되는데, 아까 말한 것처럼 성질이 더럽다는 내용으로는 (질문자 웃음)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어요. 회사에 미치는 영향도 사장의 권한이니까 필요하다면 정보는 제공하지만 최종 결정은 사장에게 맡겨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결국 자기만 손해예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상황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짓을 해요?

여기서도 종교적인 가르침을 펴거나 성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거예요. 주어진 상황에서 내 이익은 제대로 챙기고, 손해도 보다 덜 나는 쪽으로 선택을 하는 게 좋잖아요.

물론 헌신적인 자세를 갖고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자 개선을 시도해볼 수도 있어요. 어떻게, 시도를 해보면 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사실 제가 시도해봤는데, 잘 안 되었어요.” (모두 웃음)

“그래요, 잘 시도했어요. 그런데 할 만큼 해서도 잘 안 되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죠. 안 되는 것을 가지고 계속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러니 지금 선택은 두 가지예요. 회사에서 계속 일할 거라면 어차피 일하는 거 동료와 갈등 없이 일하는 게 낫고, 그만둘 각오를 하면 한 번 싸워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만두자니 지금과 같은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또 다른 직장에 그런 동료가 없을 거라는 보장도 없어요. (모두 웃음) 그리고 동료니까 그나마 덜한 측면도 있어요. 직장상사가 그런 사람이면 더 힘들어요. (모두 웃음)

학교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반에 꼭 말썽부리는 아이가 하나씩은 있다고 해요. 그래서 ‘다 괜찮은데, 그 아이만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그 아이가 전학가거나 하면 또 다른 아이가 말썽을 부려요. (모두 웃음) 실제로는 전에 있던 아이의 말썽이 제일 심해서 그 아이만 눈에 띄고 다른 아이들은 시비거리가 안 되었던 것이에요.

인생을 살면 늘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가족 중에도 그런 사람이 꼭 하나씩 있고 (모두 웃음) 심지어 정토회 안에서도 늘 그런 사람이 있어요. (모두 웃음)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꼭 어딜가나 하나씩 있는 게 아니라, 나랑 안 맞는 사람이 그런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러다가 그 사람이 떠나거나 하면 그 다음으로 안 맞는 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모두 웃음)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이 문제가 끝나지 않는 거예요.

평소에는 애들이 공부 안 한다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어느 순간 남편이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면 그게 더 급하니까 아이들 공부 안 하는 것은 뒷전이 되어버려요. 남편이 다시 돌아와서 잠잠해지면 이제 다시 아이들이 공부 안 하는 게 문제가 됩니다. 그러다가 암에 걸렸다고 진단이 나오면 내 병이 제일 큰 문제고 아이들 문제는 또 아무것도 아닌 게 돼요. 그러다가 병이 나으면 다시 아이들 공부 안 하는 게 문제가 돼요. (모두 웃음)

우리 인생은 늘 이런 식입니다. 거리에서 하는 두더지 게임 아세요?”

“(청중) 네!”

“두더지 게임을 해보면 이 두더지를 때리면 그 옆에 두더지가 올라오고 그걸 때리면 아까 그 두더지가 다시 올라오고, 그래서 빨리 때리면 두더지들이 더 빨리 올라와요. (모두 웃음) 우리 인생이 그것과 똑같아요. 문제 하나 해결하면 다음 문제가 터지고, 그걸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그래요. 그러니 여기서 자유로우려면 그런 문제 한 두 개쯤은 놔두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거 해결해도 다음 문제가 또 생기니 급할 것 없어’ 하는 여유가 있어야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마음에 결벽성이 조금 있습니다. 뭐든지 다 깨끗하게 하려는 결벽성이 있고, 덧붙여 뭐든지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조급함이 있어요.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하려고 하고, 완전히 해결하려고 해요. 그러다보니 성격이 급하고, 시비분별이 강하게 되는 거예요.

동창 모임에 가든, 어딜 가든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꼭 하나씩 있잖아요? 그게 인간이 사는 세상이에요. 그러니 그런 문제가 있더라도 조금 놔두고 살아갈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해요.

질문자도 직장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대로 두고 생활하는 방법이 있어요. 대신 이것도 선택 중 하나이지 무조건 그냥 두고 보라는 건 아닙니다. 개선이 꼭 필요하다 싶으면 투쟁을 하는 방법도 있어요. 다만 그럴 때 관계라든지 손해를 감수하고 해야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사람이 그만두게 하는 방법, 내가 그만두는 방법, 그게 아니고 둘 다 회사에 남을 거라면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택을 해서 일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건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가 마음에 안 들 때, 배우자를 어떻게든 바꾸는 방법이 있어요. 대신 이럴 때는 나에게 어느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더 잘 낫고, 내가 돈도 더 잘 벌고, 힘도 더 세면 배우자를 한 번 바꾸어볼 수 있을지 몰라요. (모두 웃음) 그런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괜히 덤비면 오히려 손해가 더 큰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함부로 선택하기에는 부작용이 크니까 선택을 안 하게 되는 거예요. 그 다음으로는 내가 그만두는 방법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같이 사는 게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상대를 바꾸기는 쉽지 않고 내 이익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같이 살기로 하면, 이왕 같이 사는 거 계속 상대방을 시비하면서 괴로워하면서 살기 보다는 괴롭지 않게 사는 게 낫잖아요? 그러려면 상대에 대해서 일정 부분 용인하고 받아들이면서 생활하는 게 나아요. 그런 의미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라는 것이지 무조건 참고 인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이 말은 맞는 말 같지요?”

“(청중) 네!”

"말은 맞는 말 같은데, 왜 기분이 그리 시원하지는 않을까요? (모두 웃음) 그건 말은 맞는 말인데, 아직도 상대방을 고치고 싶은 그 욕구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머리로는 이 말이 맞다는 것을 알지만 상대방 꼬라지만 보면 다시 싫은 마음이 올라오는 거예요. 그런데 저 인간이 저 정도 되기 때문에 다른 더 큰 재앙을 막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 정도 해주기에 다행이다 싶고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지금보다 더 심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남편이 12시에 들어와서 고민인 사람은 ‘2시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내 생각을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이 바뀌어주면 좋고, 내가 그만두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둘 다 안 된다면 그 다음으로 가장 쉽고 유리한 방법은 내 관점을 바꾸는 거예요. 2시에 들어오는 거보다는 12시가 낫잖아요. 이걸 긍정적인 사고라고 합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리고 앞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셨는데, 행복이란 이것이다라고 따로 말할 것이 없습니다. 질문에서처럼 ‘행복이 무엇이지? 무엇인지 찾아야지’하고 접근하면 그건 이미 욕구입니다. 마치 ‘돈을 벌어야지’하고 생각하고 10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돈을 못 벌면 실망하듯이, ‘출세해야지’하고 선거에 나갔는데 10년 동안 당선이 되지 않으면 실망하듯이, ‘도(道)를 이루어야지’하고 10년 동안 선방에 앉아 있었는데 깨닫지 못하면 실망하듯이,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야지’하고 찾다가 못 찾으면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망을 한다는 것은 이미 욕구로 행복을 찾고 있다는 뜻이에요. 다만 여기서 그 욕구의 대상이 돈이 되었다가, 출세가 되었다가, 도(道)가 되었다가, 행복이 되었을 뿐이지,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근본뿌리는 모두 내 욕구에 있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행복하려면 이 욕구를 내려놓아야 해요. 행복하려면 욕구를 내려놓아야 하는데, 질문자는 행복하고자 하는 욕구로 ‘행복’이라는 것을 찾는 모순을 범하고 있어요.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의 정의는 없습니다. 굳이 말로 하자면 ‘괴로움이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지금 질문자의 과제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잖아요? 만약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일상생활에서의 행복도가 올라갈까요, 내려갈까요?”

“올라가요.”

“그러니 지금 인생의 과제, 지금 겪는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지, ‘어떤 것이 행복일까’ 하고 찾는 것은 지금 욕구로 행복을 찾고 있다는 말이에요. ‘지금 왜 괴롭지?’라고 물어서 그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면 행복도는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지, ‘이것이 행복이야’하고 가서 잡는 게 아닙니다.

행복도 조사를 하면 부탄 사람들이 아주 높게 나오는데, 그러면 그 사람들은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모두가 그 길로 줄달음쳐서 간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부탄 사람들의 행복도가 높다는 말은 그 사람들이 괴로울 일이 별로 없다는 뜻이에요. 그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되고, 더 많은 권세를 누리기 보다는 ‘이 정도면 먹고 사니 됐지’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음식은 안 굶을 정도면 되고, 옷은 추위에 떨지 않으면 되고, 잠자리도 비 안 맞고 잘 정도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트럭 뒤에 얹혀서 가도 걸어서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좋은 나라로 보이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 밝고 맑아요.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바라보기 때문에 행복도가 높은 거예요.

질문자도 행복도를 높이는 방법은 직장동료와 겪고 있는 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거예요. 비록 직장 내에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 있더라도 실업자로 거리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그런 직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낫잖아요? 그 사람이 일을 잘 못해서 나에게 일이 조금 더 늘어나서 그렇지 내가 하는 일을 못하도록 훼방놓는 수준은 아니잖아요? 그럴 때 ‘훼방놓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괴로움이 적어집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나의 관점과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 곧 스트레스를 줄이고 행복도를 높이는 길입니다.

아까 동생과 제사 문제로 질문하신 분도 동생과 안 볼 생각은 아닌데 직접 제사를 지내지는 않겠다는 건, 결국 자기 직장 다니기 바쁘고 하니 음식 차리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제사 지내는 장소만 동생네에서 하고 음식은 자기가 차렸는데, 이제는 그걸 하기 싫어서 동생한테 미뤘다가 동생이 제사 안 지내겠다고 하니까 덤탱이를 쓴 거예요. (모두 웃음) 이게 어리석음이에요. 처음처럼 그냥 동생네에서 음식을 계속 차려줬으면, 동생네에서도 제사를 안 지내겠다고 할 명분이 없었을 텐데, 자기가 하기 싫어서 그 일을 동생네에 미뤘다가 동생네는 이제 아예 제사를 안 지내겠다고 하니까 내가 제사를 가지고 오게 된 거예요.

우리가 사는 게 다 이래요. 조금 더 먹으려고 하다가 덤탱이를 쓰는 경우가 많아요. (모두 웃음) 남편이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을 조금 고치려고 ‘당신 자꾸 이러면 나 이혼해’라고 던졌다가 어느 날 아침에 남편이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가는 일이 벌어져요. 상담을 해보면 이런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버르장머리 조금 고쳐보려고 했다가 결국 을로 전락하게 돼요. (모두 웃음)

같은 조건이어도 그걸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내 행복도가 달라집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따로 정해진 게 없고, 괴로움이 없는 게 곧 행복이에요. 그러니 나의 괴로움의 정도를 줄일수록 행복도는 자연스레 올라가는 것이지, 나의 행복도를 끌어올리려는 별도의 노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음이 행복이 아니에요. 즐거움은 곧 괴로움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즐거움이나 기분 좋음을 추구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굳이 행복을 정의하자면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말씀 고맙습니다.” (청중 박수)

행복을 찾는 것은 돈을 바라는 것과 같은 욕구라는 것, 돈이든 행복이든 바라는 것이 뜻대로 안 되면 한탄을 하는데, 찾지 않으면 행복하다는 말씀이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어쩌면 수치스러운 문제이기도 한 것들을 대중 앞에서 털어놓는 것은 행복캠프에서만 가능한 일이겠지요. 용기를 내어 묻고 그 자리에서 문제가 녹아 없어져 지금 바로 자유롭도록 세세히 풀어주신 스님에게 감사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나고 개근한 사람들에게 스님이 직접 장미꽃을 수여하였습니다. 단체 사진을 함박 웃으며 찍은 뒤 행복한 캠프가 막을 내렸습니다.

캠프 참가자 몇 명에게 ‘나를 심쿵하게 만든 법륜스님의 답변’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마포에서 오신 분은 “남을 이롭게 하려는 게 아니라 먼저 나를 위한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라는 현실적 해결중심의 말씀을, 고양시에서 오신 분은 ‘행복을 굳이 말하자면 괴로움이 없는 것, 괴로움의 수치를 떨어뜨리는 것 ’이라는 것을 또 한 분은 “일어나야지 결심하는 게 아니라 일어나야 한다. 행복해야지 결심하는 게 아니라 지금 행복해야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고 꼽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유독 시원하였고 석양은 더욱 선명하게 불탔습니다. 스님은 내일 통일의병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문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안양금, 고재영, 조태준

▼ 삶을 바꾸는 공부,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정토불교대학
http://edu.jungt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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