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8년 봄경전반 학생들의 졸업식이 있는 날입니다. 충주호암체육관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나와서 차량을 안내하는 주차 봉사자들이 진지한 얼굴로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손님 맞이 봉사하는 도반들이 환한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무대에서는 리허설이 한창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에 놓여있는 곳에서 전날부터 와서 수고해주신 봉사자들의 흔적을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10시 3분전, 타종이 울리기 시작하자 어수선한 분위기가 금방 숙연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이어 유수스님의 경건한 목소리로 고요함 속에서 예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정토회 대표인 김은숙님의 축하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하여 경전반까지 졸업하는 24%의 학생들과 담당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학생은 8개지부와 청년부, 공동체 포함 1446명중 924명이 졸업식에 참가하였습니다. 그들은 큰 박수로 서로를 환영하며 옆사람에게 ‘반갑습니다’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꽃다발 증정과 졸업장 수여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악수를 건네며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개근상 수상자 135명과 정근상 수상자 101명은 다시 한 번 상장을 받으러 연단으로 나갔습니다.

이어서 법륜스님의 졸업 축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회의 설립 취지는 좋은 종교단체를 만드는 것, 좋은 종교인을 배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행자를 배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신앙공동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수행공동체’라는 말을 씁니다.

복을 지어야 복을 받는 것이 인연과보의 법칙인데, 복은 짓지도 않으면서 복만 달라는 불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건 인연과보의 법칙에 맞지가 않지요. 그런데 ‘복을 지어놓고도 복을 받지 아니한다’는 건 무슨 얘기일까요? 그것도 인연과보에 맞지 않는 걸까요? 아니예요. 복을 짓게 되면 복은 저절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치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복마저도 탐하지 않고, 오히려 그 복이 온다면 세상 사람을 위해서 돌려준다, 예를 들어 돈을 빌려주면 원금은 물론이고 이자까지 받아야 되는데, 오히려 그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베풀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걸 ‘회향’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중생은 돈을 빌려 쓰고도 돈을 갚지 않겠다는 사람이고, 현명한 사람은 돈을 빌렸으면 돈을 갚고, 돈을 빌려줬으면 돈을 되돌려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수행자는 돈을 빌려서 돈을 갚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을 빌려주고도 돈을 받았을 때 그 돈마저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쓰겠다는 마음을 냅니다. 이런 사람을 수행자, 즉 보디사트바(bodhisattva, 보살)라고 합니다. 복을 짓지 않고 복을 달라는 게 복을 탐하는 수준이라면, 복을 지어놓고 복을 받는 것은 현명한 수준입니다. 이게 성실한 종교인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복을 지어놓고도 그 복을 탐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일체중생에게 회향합니다. 이게 수행자의 길입니다.

오늘 경전반을 졸업한 여러분들은 그런 이치를 금강경과 반야심경에서 배웠고, 또 깨달음의 이치를 육조단경에서 배웠습니다. 불교대학의 가르침이 복을 지어서 복을 받는 가르침이라면, 어리석은 중생들은 복도 짓지 않고 복달라고 하고, 나쁜 짓을 해 놓고도 벌을 안 받겠다고 하는,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바른 신앙인은 복을 받으려면 복을 지어야 되고, 나도 모르게 나쁜 짓을 했다면 그 과보를 기꺼이 받는, 즉 돈을 빌렸으면 갚을 마음을 내는, 이렇게 이치에 맞게, 인간의 도리에 맞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서, 복을 짓되 그 복마저도 탐하지 않는 경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또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합니다. 이 법은 현상과 본질이 둘이 아닌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법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런 수행자의 길을 가겠다고 지금 원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이 세상에 이런 길을 가겠다는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다수는 복도 안 지어놓고 복 달라고 하고, 온갖 나쁜 짓은 다 해 놓고도 벌은 안 받으려고 하거든요. ‘복을 준다니까 믿지, 그것도 안 준다면 뭐 때문에 믿겠냐?’ 이렇게 이치에 어긋난 데에 믿음의 원천과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아주 소수만 이치대로 삽니다. ‘복을 받으려면 복을 짓고, 나쁜 짓을 했으면 과보를 기꺼이 받고, 돈을 빌렸으면 기꺼이 갚고, 갚는 것이 힘들면 다음에는 어렵더라도 돈을 빌리지 않는다.’ 이런 이치를 알아서 이치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진실한 종교인이고, 진실한 신앙인입니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수행자입니다.

복을 짓는 삶이 그대로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복을 지을 뿐이지 복을 받는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최선을 다 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조건부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좋은 일이고, 저렇게 되면 나쁜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는 대로, 저렇게 되면 저렇게 되는 대로 좋은 삶을 사는 거예요. 추우면 옷 한 벌 더 입는 거고, 더우면 옷 한 벌 벗는 거지, 날씨가 추워서, 또는 날씨가 더워서 괴롭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거예요. 이것이 수행자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수행자의 길에 발을 디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정말 귀한 사람들이에요. 여러분과 같은 사람은 천 명에 한 명, 만 명에 한 명도 없습니다. 불교인이나 승려가 됐다고 해서 이런 관점을 갖고 오롯이 삶을 사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는 세상에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거든요.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마음을 내어서, 즉 발심(發心)을 해서 이 공부를 하고, 잘 안 되긴 하지만(모두 웃음) 그래도 하겠다고 애를 쓴다는 것 자체가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박수 한번 치세요. (모두 박수)

그래서 스님이 여러분들 손 하나 하나를 꼭 잡고 눈을 딱 쳐다봤던 것은 ‘당신, 수행자 맞아요? 진짜 수행자입니까? 아니면 지금 남이 장에 가니까 거름 지고 장에 간다는 식으로 따라온 사람입니까?’ 하는 의미였어요. 그때 눈을 내리감았던 사람은 ‘따라온 사람입니다’는 뜻이에요? (모두 웃음)

그러니 여러분은 첫째,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법을 만난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에요. 옛날부터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바른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바른 스승을 만났다 하더라도 바른 법을 만나기 어렵고, 바른 법을 만났다 하더라도 내가 그 법을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 법을 행하기 어렵고, 행한다 하더라도 그 법을 증득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전해 옵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에 여러분들에게 정말 희유한 인연이 다가간 거예요. 욕망을 절제하는 게 아니라 욕망을 막 북돋우는 세상이잖아요. 물건을 마구 사다가 마구 버려야 되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소비’를 뭐라고 합니까? ‘미덕’이라고 하잖아요. 절약을 하면 안 된다는 세상이에요. 절약을 하면 장사가 안 되고, 그러면 공장이 안 돌아가기 때문에 마구 사다가 마구 버리고 그래야 또 사고, 또 생산하고 그런다는 거 아닙니까? 이게 자본주의의 원리예요.

이것은 얼핏 보면 달콤한 사탕 같지요. 세상이 발전하는 것 같고, 좋아지는 것 같지만 달콤한 사탕이 내가 80년간 써야 할 치아를 망가뜨리듯이 우리가 지속적으로 살아야 할 지구를 망가뜨려서, 결국 지금 우리가 그 과보를 이제 조금씩 받고 있는 거예요.

아무 현실성이 없는 가상화폐도 너도 나도 투기를 하게 되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다가 규제를 하니까 거품이 빠지고 있지요. 아직 그게 폭삭 내려앉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미련이 남은 사람들이 노름판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빠질 때가 됐다’면서 큰돈 가진 사람들이 빠지면 주식이 폭락하고, 부동산이 폭락하고, 그래서 늘 눈먼 중생들은 죽어라고 일해서 번 돈을 그런 허황된 데에다 날리는 일이 계속 되고 있지요. 옛날에 1년 내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한 사람이 세경을 받자마자 노름을 해서 하룻밤에 다 날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시류에 휩쓸리게 되면 바른 법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엄청난 고통이 우리에게 닥칠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여라!’며 악을 쓰는 일도 있는 거예요. 또,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험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넓은지 알지 못한 채 박수 치고 즐거움에 빠져서 난리지만 이 불꽃놀이가 끝나면 곧 크나큰 위험이 도래할 지경입니다.

중생들은 복을 짓지 않고도 복을 받겠다고 아우성인데, 보살은 복을 지어서 그 복을 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러니 중생의 눈으로 보면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고, 특히 가까운 가족의 눈으로 보면 더 바보 같은 게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중생이 생각하는 그런 삶의 목표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스님은 애를 쓰는 우리 자신을 위해 박수를 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꾸준한 정진과 1주일에 1회 이상 법회에 참석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것, 봉사하는 마음을 내어 주위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하며 졸업생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끝으로 옛날 졸업식의 노래 1절에 나오는 `눈 비를 이기고...‘ 를 한 구절 불러서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점심공양시간이 되어 각 지역별로 모여서 소박하게 싸온 도시락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문 앞쪽으로 의료지원팀도 눈에 띄었습니다. 전국 23명의 의료인들이 큰 행사마다 돌아가며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연두색 글씨로 예쁘게 쓴 에코가방이 쌓여있었습니다. 가방 속 안까지 신경 써서 만든 흔적이 보였습니다. 행정처에서 직접 만든 가방인데 가격을 정해놓지 않고 자율보시를 받았습니다.

1시 조금 지나자 큰 음악소리와 함께 여는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경전반을 다니면서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졸업소감을 발표하며 도반들의 공감과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졸업법문이 40여분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수행자들이 가장 앞선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미래사회, 자본주의사회, 혈통사회에 대한 차이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진리에 눈을 뜨면 집에 돈을 벌어다주지 못하더라도 한 번 공손하게, 한 번 상냥하게, 한 번 겸손하게 이렇게 다른 것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며, 실천과 수행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즉문즉설 법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리더십이란무엇인가요?
두번째 질문은 육조단경은 큰 스님의 법문집인데, 왜 자가 붙게 되었는지?
세번째 질문은 ?수행자로서의 기본인 아상을 버려라할 때 아상과, 자신을 사랑하라 할 때의 자신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첫번째 질문 리더십에 대한 대답을 소개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유학 갔던 한 법우와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 법우가 외국에서는 리더십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한다면서 저한테도 리더십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당시에 ‘상대방이 일을 잘 하게끔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돌이켜 보니까 그냥 얼렁뚱땅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법륜 스님이 생각하시는 리더십, 정토회가 지향하는 리더십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서양에서 리더십에 대한 얘기가 유행이라고 질문자도 거기에 물들어서 리더십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거예요?(모두 웃음)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리더십이 생기는 거예요. 전쟁 중일 때는 어떻게 해야 리더십이 생깁니까? 앞에서 치고 나가서 잘 싸워야 되겠지요?”

“예.”

“또 전략과 전술도 잘 구사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만약 거지들 속에서는 어떻게 해야 리더십이 생길까요? 대중들을 잘 얻어 먹여야 할 거 아니에요?”

“예.”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리더십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러나 리더십이 생기는 요인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겠지요. 리더십은 자기가 속한 그룹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생깁니다.

만약 5명이 등산을 갔다고 하면, 그 중 한 사람이 힘들다는 핑계로 공동 짐을 안 들려고 할 뿐만 아니라 본인의 짐까지 자꾸 남한테 떠넘기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얼굴이 예쁜들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 사람이 힘이 세다고 리더십이 생길까요? 아니면 그 사람이 말을 잘 한다고 리더십이 생길까요? 아니겠지요. 그러니까 내가 힘들더라도 남의 물건 하나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리더가 됩니다. 밥을 해먹을 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가 밥 다 해놓으니까 숟가락만 들고 오는 사람은 아무리 얼굴 예쁜들 리더가 될 수 있겠어요?”

“아니요.”

“하루 정도야 뭐 괜찮겠지만 우리가 남들과 며칠 살아보면 밥할 때 ‘걔 없으면 우리가 밥을 못 먹는다’거나 청소할 때 ‘그 사람이 없으면 청소가 제대로 안 된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 즉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든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게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권력이나 돈을 내세워서 명령이나 권위로써, 파워로써 지배하는 걸 지금까지는 ‘카리스마적 리더십’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리더십은 주로 그런 리더십이었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리더십은 그런 파워로 지배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함께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이 저절로 따르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그래도 그 사람이 있어야지.’ 하는 평가를 듣는 사람, 이런 게 리더십이지요.

우리는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는 걸’ 지향하잖아요. 즉 리더십을 생기게 하려면 우선 나부터 편안한 사람이어야 됩니다. 내가 힘들어서 상대에게 짜증내고 그러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러니까 리더십을 계발하려면 첫째, 남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우선 자신부터 좀 편안해야 되고, 두 번째, 놓인 상황이나 속한 그룹에서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리더십은 저절로 생깁니다. 그것이 리더십의 바탕이에요. 그런 바탕 위에서 그 다음으로 전쟁 때는 전략과 전술을 잘 세운다든지, 등산갈 때는 거기에 따른 준비나 기획을 잘 한다든지, 난관에 부딪쳤을 때는 치고 나가는 용기를 낸다든지, 평화스러울 때는 뒤에서 후원해 준다든지 하는,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앞으로 치고 나가주는 리더십이 필요하고, 평화로울 때는 다른 사람들이 나설 수 있도록 오히려 뒤로 좀 빠져서 도와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마지막 축하공연이 시작되자 그동안 오래 앉아있던 몸들을 푸느라 많은 학생들이 율동을 따라하며 흥겨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4시 정각에 사홍서원이 시작되자 어수선한 분위기가 다시 평안을 되찾으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졸업식 행사는 끝났고 각 지부별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멀리 경남 내서법당에서온 김순정님에게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를때 눈물이 나더라구요. 깊고 깊은 저의 업식을 알아차리게 해주시느라 뒤에서 많은 고생을 감내하고 계신 스님의 노고와 은혜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정토회 와서 좋은 분들 많이 만나게 해주신것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대전법당 임성택님에게 물었습니다.

“스텝들의 헌신으로 모든 진행이 물 흐르듯 되는 것에 감동을 받았어요, 개인소감 발표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6시간동안 모든 게 감동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더욱 정진하여 자유인이 되고자 합니다.”

갈 길이 먼 참가자들은 버스에 올라 떠났고, 무대 안에는 다시 이튿날 있을 불교대학 졸업준비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졸업식을 마치고 법사단과 회의를 늦은 시간까지 한 후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해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최익란(글) 김광섭(사진) 정란희(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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