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타아카데미에서의 삼일째 날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아침 기도를 마치고 순례대중들과 함께 전정각산 산책에 나섰습니다.

“아침에 여러분이 일정 없다고 빈둥거릴 까봐 제가 일부러 잡은 일정이에요.”

수신기 속 스님의 농담에 다들 웃으며 전정각산에 올랐습니다. 첫날,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때 갔던 칼산 등반이 아니라 또 다른 코스, 부처님께서 정진하셨던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는 안개도 적어 쌀쌀함이 덜하였습니다. 20분 쯤 돌산 길을 걸어 작은 연못(?)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곳은 ‘고타마의 샘’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당시 고타마 싯다르타를 비롯하여 이 곳 온갖 동물들이 물을 마시던 곳입니다. 건기 때는 이곳 물도 다 말라버리는데 지금은 아직 물이 있습니다.”

이어 도착한 곳은 바위 사위로 오목한 공간이 참 안온한 자리였습니다.

“이 곳에서 붓다께서는 명상을 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불편하거나 괴롭거나 힘들 때,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지켜보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봅니다. 우리들도 붓다의 모습을 생각하며 잠시 명상 하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400여명의 순례 대중은 각자 자리를 잡아 명상을 하였습니다.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이, 오직 지금 이 순간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관찰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더 없이 편안해진 마음을 안고 전정각산을 내려오는데 다시 안개가 밀려들어왔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대중들은 바로 설성봉 거사님의 추모제에 참여하였습니다. 매년 개교기념식에 앞서 설거사님의 추모제가 열립니다. 수자타아카데미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고와 헌신을 기리며 또 수자타아카데미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순례 대중들은 설거사님 추모비 앞에 차를 정성껏 올렸습니다.

순례대중의 음성공양 ‘빛으로 돌아오소서’▲ 순례대중의 음성공양 ‘빛으로 돌아오소서’

아침 공양 후, 학교 전체가 시끌벅적 하였습니다. 매년마다 개교기념식을 겸하여 마을잔치도 함께 하였는데 올해는 순례단이 400여명이나 되어 공간이 여의치 않아 마을 잔치를 겸하지 못하였습니다. 스님은 아쉽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마을 어르신들과 동네 사람들과의 시간을 마련하자 하였습니다.

인도제이티에스의 현지 이사이신 쁘리야팔 스님과 법륜스님▲ 인도제이티에스의 현지 이사이신 쁘리야팔 스님과 법륜스님

쁘락보디 홀에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 순례단, 내빈들이 자리를 꽉 채웠습니다.

초등학생들의 판차실 의례로 시작하여 태권도 공연, 여학생들의 춤 공연, 인도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영화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춤 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에 순례객들의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공연 중간 중간에 내빈의 인사말씀도 덧붙여졌습니다.

제이티에스의 이사장이신 법륜스님의 인사말씀을 청하는 사회자의 안내가 있자, 박수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스님은 단상에 올라, 먼저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인사말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이 6년 수행하신 둥게스와리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요?”

“네!”

아이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빠지지 않고 나올 수 있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손을 드는 아이들, 대중들의 박수소리)

아이들이 맑은 눈망울로 대답합니다. 빠지지 않고 학교에 나오겠습니다!▲ 아이들이 맑은 눈망울로 대답합니다. 빠지지 않고 학교에 나오겠습니다!

동전과 먹을 것을 구걸하던 아이들의 작은 손에 연필과 공책이 대신한지 하루하루가 쌓여 24년이 된 둥게스와리의 수자타아카데미. 스님의 질문에 우렁차게 대답하며 웃는 아이들의 조그만 얼굴에 순례대중들은 격려의 박수를 힘차게 쳐 주었습니다. 순례대중들의 박수소리에 말 할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이 묻어남을 느낍니다.

다채로운 공연을 마치고 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인도식 뿌리, 샐러드, 미타이, 유미죽이 학교 학생들, 순례객 용으로 1,000명분이 마련되었습니다. 싯다르타 하우스 앞에는 순례대중들을 위한 공양물이, 망고가든 앞에는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한 공양물이 차려졌습니다. 순례대중은 새롭게 경험하는 이 모든 상황과 새롭게 맛보는 인도식 공양에 기뻐하며 함께 하였습니다.

개교기념식 후 순례 대중들은 마을 방문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400여명의 대중들이 다섯 팀으로 나누어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저녁 공양 후 스님은 학교 스텝들에게 선물을 전하였습니다. 그 동안 성지순례 준비를 비롯해 학교 개교기념식 준비에 눈코틀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 학교 선생님 및 스텝들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겨울 파카를 전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를 다니고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자라면서 이제는 어엿한 활동가가 되어가는 그들의 모습에 스님도 함박웃음을 보였습니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스님의 인사와 수줍은 스텝들▲ “다들 수고 많았어요!” 스님의 인사와 수줍은 스텝들

스텝들은 입어보고 감사하고 뿌듯해 하며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스님께 선물받은 옷을 입어보고 즐거워하는 스텝들, 다함께 찰칵!
▲ 스님께 선물받은 옷을 입어보고 즐거워하는 스텝들, 다함께 찰칵!

저녁 예불 후에는 사흘간의 수자타아카데미에서의 시간에 대한 소감문 발표와 스님의 법문 시간이 있었습니다. 각 차량별로 한 명씩 발표자가 있었는데 청년들이 탄 10호차량에서는 ‘이번 생에 수자타아카데미에 와서 봉사하겠다’는 원(?)을 발표하기도 해서 순례객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후에는 스님의 법문이 있었습니다.

“....... 오늘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내용은 ‘연기법’에 대한 것입니다.

요즘은 진리의 기준이 뭘까요? ‘그건 비과학적이야.’ 이러면 진리가 아니라는 얘기잖아요? 진리의 기준, ‘참’의 척도가 되는 기준은 과학이에요. 그러니까 현재 종교는 진리의 세계에서는 멀어져서 그냥 하나의 이권집단, 이익집단의 역할만 할뿐 세상의 진보에는 아무 기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의 믿음이지, 불교의 가르침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불교신자라고 더 진보적이고, 불교신자라고 더 평화적이라는 증거가 하나도 없어요. ‘전국에 있는 살인범, 절도범, 사기꾼들을 조사했더니 불교신자가 특별히 더 적더라’거나 ‘불교신자는 없더라.’ 이런 통계가 나올까요? 전국에 있는 성추행범, 성폭행범을 잡아서 조사했더니 ‘불교신자는 확실히 적다.’ 이런 통계가 나올까요? 욕설하거나 술 마시고 행패부리는 사람들을 잡아서 조사하니까 ‘불교신자가 별로 없다.’ 이런 통계가 나올까요? 그러니까 요즘 ‘종교’는 더 이상 삶의 지침이 아니에요.

‘나는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평화주의자이다’, ‘세상이 뭐라든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하는 건 반대한다’는 개념이 없다는 거예요. ‘나는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아이가 아무리 울어도 때리지 않는다.’ 이런 게 없다는 거예요. 만약 여러분들이 지금 갖고 있는 어떤 견해, 즉 좀 더 의식이 깨이고, 민주화되고, 미래지향적이고, 자비로운, 그런 견해들이 불법을 만나서 이루어졌다면, 그때 불교는 굉장한 가르침인 거지요. 붓다의 가르침의 근본이 그런 거니까요.

저학년 학생들의 판차실, 악기 연주 선보이기▲ 저학년 학생들의 판차실, 악기 연주 선보이기

부처님 당시에는 불법을 만남으로써 삶이 바뀐 사람들이 무척 많았어요. 당시에는 수드라가 브라만의 그림자만 밟아도 죽임을 당할 정도로 신분차별이 엄했는데, 브라만(Brahman)이든 수드라(Sudra)든 부처님의 제자가 되면 한 승단에서 같이 먹고 살았거든요. 그러면 밖에서는 ‘저 브라만은 더러운 천민과 같이 산다’며 손가락질을 했어요. 그래도 그런 데에 구애를 안 받았습니다. 계급이나 신분이라는 것은 하나의 관념일 뿐임을 알고 극복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연기법(緣起法)이 뭡니까? ‘세상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는 거죠. 물질세계에서든 생명세계에서든 정신세계에서든, 그 어떤 것도 단독자(單獨者), 즉 단독의 알갱이로써 존재하거나 불변하는 존재는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불변하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작동은 합니다. 다시 말해서, 화학법칙으로서 질량보존의 법칙이 성립하지요? 수소 원자, 산소 원자가 각각 단독으로 존재하고, 또 작동도 합니다.

중등 여학생들의 공연, 남녀평등의 뜻을 춤에 담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 중등 여학생들의 공연, 남녀평등의 뜻을 춤에 담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핵변화 단계에 들어가면 그 원자들은 질량이 약간 다른 원자로 바뀝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의 일상생활에서도 각자의 까르마가 여러분들의 성격을 규정짓거나 해서 여러분들을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고정불변도 아니고, 그것이 여러분 자신도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여러 프로그램이 융합된 존재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감정에 너무 놀아나면 안 됩니다. ‘이건 내 감정이다’라고 너무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건 사실이고, 여러분들이 각자 판단한다는 것도 사실이고, 각자 ‘내 주장’과 ‘내 견해’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 감정, 판단, 주장, 견해가 옳다고 고집할 건 없다는 거예요. 사람마다 다를 뿐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전제에 따라 서로 인정해야지, 각자의 감정에 너무 치우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남학생들의 춤공연, 유명 영화의 OST를 배경으로 꾸민 춤극. ▲ 남학생들의 춤공연, 유명 영화의 OST를 배경으로 꾸민 춤극.

붓다가 연기법을 발견하시고는 이 세상의 현상 중에 지금까지 이해 안 되던 걸 다 이해하셨어요. 세상을 이해하던 기본 틀, 칸막이 쳐져 있던 틀이 탁 무너지면서 붓다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대화하실 수 있었어요. 부처님을 욕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마저도. 여러분도 누가 여러분을 욕하거나 비난하면 빙긋이 웃으면서 ‘저 사람은 자기 프로그램에 의해서, 제 감정에 의해서 화를 내고 있으니까 내가 거기에 동화되어서 끼어들 필요는 없다. 저 사람은 저런 프로그램이 깔렸구나.’ 하면서 웃어 보세요.(모두 웃음) 그럼 그 사람은 ‘왜 웃느냐?’며 시비를 걸지도 몰라요. 막 화가 나서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한테는 살짝 화제를 바꿔서 말을 던지는 게 효과적이거든요. 그래서 부처님은 욕하는 사람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태권도 공연,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로 나누어 높은 수준의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태권도 공연,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로 나누어 높은 수준의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당신 집에 가끔 손님이 찾아와요?’
‘오지!’
‘그럼 그 손님이 올 때 선물을 가져와요?’
‘가져올 때도 있지!’
‘가져온 그 선물을 당신이 안 받으면 그 선물은 누구 거예요?’
‘가져온 사람 것이지!’

영리한 사람은 이때 탁 깨달아야 되는데 이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건 왜 물어?’ 하니까 부처님께서 ‘당신이 나한테 욕을 했는데 내가 욕을 안 받으면 그건 누구 건가요?’ 하신 거예요.(모두 웃음) 이게 바로 붓다의 방편(方便)이에요. 붓다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보는 지혜도 있지만 그 지혜로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중생을 깨우치는 방법이 자유자재 했다, 즉 방편이 자유자재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팔만사천가지 법문을 하셨습니다. 하나의 원리를 상황에 따라서, 즉 질문하는 사람의 감정과 그 사람의 상황 등 조건에 맞게 법을 설하신 거죠.

그럼 붓다의 얘기를 들은 사람은 다 깨달았을까요? 아니에요. 경전에는 다 깨달았다고 되어있던데, 그건 깨달은 것만 기록하니까 그렇지요.(모두 웃음) 못 깨달은 사람들 얘기는 기록할까요, 안 할까요?(모두 웃음) 깨달은 사람들 샘플만 모아서 자료를 만들려고 해도 넘쳐나는데, 못 깨달은 사람들 샘플을 굳이 기록할 필요는 없겠지요. 굳이 시간이 좀 걸려서 깨달은 사례도 기록을 하려면 짧게 기록했을까요? 길게 기록했을까요?”

남학생들의 춤공연▲ 남학생들의 춤공연

“(순례객들) 짧게요.”

“예.(모두 웃음) 그런데 부처님이 말씀하시면 들은 사람은 다 깨닫고, 단박에 깨달은 것처럼 생각되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그럴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보면, 한 제자가 ‘오늘 날 누구나 운전을 배우면 한두 명을 빼놓고는 다 운전을 할 수가 있는데, 부처님 가르침도 그렇습니까?’라는 식으로 질문을 했어요. 참 좋은 질문이지요? 부처님께서는 ‘그렇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그 제자가 ‘그런데 왜 쟤는 못 깨닫고 아직도 저래요?’라는 식으로 말했어요.(모두 웃음)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도 못 깨달았거든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반문하셨어요.

‘너 지금 어디 사니?’
‘사위성에 삽니다.’
‘너 원래부터 사위성에 살았니?’
‘아니요, 원래는 왕사성에서 살았습니다.’
‘그럼 너는 가끔 왕사성에 가니?’
‘예, 갑니다.’
‘너 왕사성으로 가는 길을 잘 아니?’
‘잘 압니다.’
‘그래. 그럼 누가 너한테 왕사성 가는 길을 물으면 네가 가르쳐 줄 수 있니?’
‘그럼요. 제가 수백 번을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잘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그럼 네가 가르쳐 준다고 그 사람들이 다 왕사성에 도달하니?’
‘아니요, 제가 가르쳐준 곳으로 안 가고 엉뚱한 데로 가는 사람은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가르침도 그와 같다.’
‘아...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중등 여학생들의 춤 공연▲ 중등 여학생들의 춤 공연

이런 식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처지나 조건에 적절한 예를 들어서 설법하셨어요. 그건 부처님이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있었다기보다는 부처님께서 경험이 많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러분들도 명상할 때 이걸 명심하세요. 운전면허시험에 단박에 걸린 사람이 운전하는 법을 잘 가르칠까요? 20번쯤 떨어져서 겨우 걸린 사람이 운전을 잘 가르칠까요?”

“(순례객들) 많이 떨어져본 사람이요.”

“예. 많은 실패를 해 본 사람일수록 운전면허증 취득까지는 더뎠을지 몰라도, 가르치는 건 한 번만에 취득한 사람보다 더 잘 가르칠 거예요. 왜?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를 훨씬 더 잘 아니까요.(모두 웃음) 아마 자기보다 더 안 되어본 사람은 없을 거니까 안 되는 사람을 보면 야단치기보다는 ‘나도 그랬다. 그런데 그때 난 이렇게 해 봤다’고 얘기해 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더디게 가는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아셔야 돼요. 그건 게으른 것과 다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란 재능이나 능력과 관계가 없습니다.

여학생의 멋진 발차기. 큰 박수를 받았다.▲ 여학생의 멋진 발차기.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설법하는 것, 즉 중생을 교화하는 것은 약간의 재능이 필요합니다.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것은 재능, 능력, 나이와 아무 관계가 없는데, 가르치는 건 약간의 재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수학이나 과학을 잘한다면 학생들에게 뭔가를 깨우쳐줄 때 수학이나 과학 용어를 써서 가르칠 수가 있는데, 그런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은 그런 방법으로는 깨우쳐주질 못 하겠지요. 그러니까 왕자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왕자를 깨우치게 하려면 어렵겠지요. 왕자들이 어떤 고집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활하거나 사고하는지를 잘 모를 테니까요. 그런데 부처님은 본인이 왕자로 태어나서 살아봤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떤 교만이 있고, 어떤 고뇌가 있는지를 잘 아시니까 나중에 왕들을 깨우치는데 훨씬 용이하셨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깨달음은 능력이 아니에요. 깨달음은 어떤 경우에도 내 마음이 안온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고, 방편은 내가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많은 이에게 다양하게 설법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내가 교화를 얼마나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거나 그런 계획을 달성하려고 걱정할 일은 없잖아요.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다 인생을 살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안온해지는 그 수준에서 교화할 영역이 각자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그 기능을 익히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모두 박수)”

Heal The World. 피날레를 장식한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4 주년 기념 공연.
▲ Heal The World. 피날레를 장식한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4 주년 기념 공연.

사흘째, 수자타아카데미의 밤이 깊어갑니다. 순례대중들은 그 동안 사용했던 공간을 청소하고 뒷마무리 하였습니다. 눈코뜰새 없이 지나간 수자타아카데미에서의 시간들이 가슴 가득히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문수팀, 정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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