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모처럼 마당을 정돈하고 텃밭을 가꾸는 일을 했습니다. 함께 동행하고 있는 행자님들과 함께 텃밭의 잡초를 메고, 참깨와 파를 심고, 고추와 가지 지주대에 줄을 매고, 고구마 모종도 심었습니다.

텃밭 한쪽 편에는 하얀 고수꽃이 만개하였습니다. 고수 꽃을 처음 보는 몇몇 행자님들은 정말 고수 향이 난다며 신기해하였습니다.

쾌청한 날씨에 땀도 살짝 흘리며 일을 마친 스님은 몸을 씻고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강연을 하기 위해 부산 구치소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부산 구치소에서 직원들과 함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또 돈오점수와 돈오돈수라는 큰스님들의 말씀 중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묻는 질문도 있었고, 오랜 구치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상대방에게 비판적이게 되는 습관이 생겨 고민이라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수행과 관련한 세 질문에 대해 스님은 교리적인 내용과 실천적인 방법을 아울러서 직원들에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이후 스님은 저녁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저녁 강연은 올해 상반기 마지막 행복한 대화 강연입니다.

강연장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습니다. 마지막 강연이라 그런지 모두 재미있는 대화들이었지만, 그 중 한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에는 선생님에게 학대를 당했는데도 어머니는 그런 상황을 방치한 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집 안에서도 어머니는 저에게 많은 상처를 주셨는데, 그 과정에서 저는 점차 다혈질이면서도 소극적인 성격을 갖게 되어 초등학교 때에는 왕따를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저희 외에 다른 가정이 있고, 심장병이 있는 일용직 노동자이십니다. 예전부터 고된 노동과 지병으로 인해 가정을 돌보지 못하신 아버지는 매일 힘들어하셨습니다. 누나는 제가 하는 말마다 비꼬고 아빠에게 몰래 제 욕을 하는 등 엄마 못지 않게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 생활이 계속 되다 보니 얼마 전에는 급기야 가출을 두 번 하게 되었고, 학교도 무단 결석하는 등 큰 잘못도 많이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빠는 저로 인해 더 괴로워하시고, 그 모습을 보니 저도 괴롭고 힘이 듭니다. 요즘에는 어릴 때 친구들에게 저질렀던 잘못까지도 떠올라서 죄책감이 들고, 그럴 때마다 엄마가 원망스럽고 괴로운 감정이 듭니다. 이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네, 지금 질문자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이런 저런 감정으로 인해 힘들어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질문자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질문자가 뭘 잘못했는지 한 번 이야기해봐요."

"제가 어릴 때 친구가 거의 없었는데, 그 중 제게 말을 걸어주는 유일한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노는 도중에 그 친구가 실수로 던진 공에 제가 맞았습니다. 다혈질적인 제 성격을 참지 못하고 처음에는 그 자리에서 그냥 울다가, 그 모습을 본 친구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니 그 모습에 또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친구네 밥상을 엎고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언젠가 목이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게 되었는데,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옆에 있던 친구가 소리를 그만 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기 보다는 짜증부터 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결국 그 친구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양해를 구하지 않고 짜증부터 낸 제 잘못인데, 그 상황에서는 제가 먼저 화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고…“

"두 경우 다 아무 잘못이 없어요. 첫 번째 경우에는 질문자도 어려서 일어난 일이고, 두 번째 경우에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충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병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병이라는 게 꼭 나쁘거나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람은 속에서 감정이 올라와도 그걸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화가 나도 경우에 따라 드러내기도 하고 안 내기도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무슨 연유인지 그런 충동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한 경우예요. 그러니 질문자도 그런 행동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충동이 올라올 때 그걸 제어할 수 없어서 생기는 경우이기 때문에 우선 질문자의 잘못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꼭 잘못한 건 아니지만 남에게 피해를 줄 수는 있잖아요? 이런 경우에는 내가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치료하면 됩니다. 죄의식은 가질 필요가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그 부분을 고쳐나가는 거예요.

얼마 전에 어느 가수가 공연 도중에 욕을 해서 신문에 난 거 보셨어요?"

"네." (청중)

"그 분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예요. 공황장애를 겪고 있으면 충동이 올라올 때 자기 제어를 하지 못합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충동이 올라오면 어쩔 줄 모르는 거예요. 만일 일반적인 경우라면 무대에 올라오다가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어도 얼굴에 인상을 조금 찌푸리는 정도이지 강연이나 공연을 하는데, 공황장애나 충동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은 기분이 나쁘면 무대 위에서 정상적인 강연이나 공연을 하지 못합니다.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다 보니까 공연을 하러 무대 위에 올라왔는데도 그 사람 욕을 하게 되는 거예요. 막상 청중들은 공연을 보러 왔는데 무대에 서자마자 다른 사람 욕부터 하니까 이상하다고 느끼지요.

그렇다고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공황장애나 충동장애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조절하는데 장애를 겪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질문자도 장애로 인해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겪는 첫 번째 어려움은 그렇게 저질러 놓고는 그것에 대해 죄의식을 갖는다는 거예요. 질문자에게 필요한 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치료입니다. 즉, 죄의식은 갖지 않되 필요한 치료는 해나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네.“

"그리고 질문자 스스로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듯이 엄마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엄마도 스스로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질문자가 엄마에게 피해를 입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나쁜 사람이거나 잘못한 것은 아니에요. 엄마 역시도 그걸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질문자가 어릴 때부터 '아, 우리 엄마가 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구나' 하고 알았으면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을 텐데, 질문자도 그걸 모르니까 '나는 엄마한테 사랑 받지 못했어, 엄마 때문에 피해를 입었어'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질문자는 두 가지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는 '저는 편안합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하는 기도를 해야 해요. 또 다른 하나는 '제가 어려서, 어리석어 알지 못해서 어머니를 미워했습니다. 알고 보니 미워할 일이 없네요. 오히려 감사합니다' 하는 감사 기도를 해야 해요.

이건 스님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치료법이에요. 그런데 질문자의 상태를 봤을 때 우선 병원에 가서 급한 치료를 조금 받아야 해요. 병원에 간다고 하면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네가 미쳤냐, 왜 병원에 가냐' 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데 그건 엄마, 아빠나 그 사람들이 이런 장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 병원에 가서 전문가이신 의사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의사선생님이 '이 정도면 별도의 치료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면 조금 전 알려준 기도만 꾸준히 하면 돼요.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충동이 일어날 때는 이런 약을 드세요'하면 그걸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상태가 호전되어서 의사선생님이 '이제는 약을 그만 드셔도 괜찮습니다' 하고 진단을 내려도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서 비상약을 들고 다녀야 해요. 예기치 않게 급작스런 충동이 일어나면 바로 약을 먹는 게 좋아요.

그리고 사람들은 약을 먹으라고 하면 '얼마나 먹어야 하나요? 평생 먹어야 하나요?' 하고 걱정을 하는데, 하루에 밥도 세 번씩 먹으면서 왜 약 조금 먹는 걸 그렇게 걱정하는지 모르겠어요. (청중 웃음) 적은 양도 아니고 밥 공기에 가득 덜어서, 하루에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그것도 평생 동안 먹어야 되는데 밥 먹을 걱정은 안 하잖아요? 그런데 조그마한 약 하나 먹는 걸 왜 그렇게 걱정 해요? (청중 웃음) 어떻게 생각해요?"

"맞아요."

"그래요. 그러니 약 먹는 걸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아시겠지요?"

"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힘든 가정 환경으로 생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어린 나이임에도 직접 강연장까지 찾아 온 질문자의 간절함이 느껴져 안쓰러웠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로 괴로움을 해결해 나가는 길 위에 서게 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 뇌에는 자정 기능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병을 스스로 자각하면 그때부터는 병에서 나아지기 시작합니다. 가령 우울증이 있어도 스스로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그 증상이 나타나도 거기에 빠져들어가지 않습니다. 이 알아차림이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에요. 내가 나의 상태를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이거 아주 중요한 거예요. 내가 나를 알고만 있어도 벌써 소크라테스 수준, 성인의 수준입니다. (청중 웃음) 소크라테스가 뭐라고 말했어요?"

"너 자신을 알라." (청중)

"경상도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요? 경상도 말로는 '니 꼬라지 니 알라' (청중 웃음)

자기 자신을 알고 있으면 이미 성인의 지위에 오른 거예요. 그러니 훌륭하게 되려고 노력해서 훌륭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 내가 지금 화가 나네, 내가 욕심이 많네, 내가 지금 짜증이 나네, 내가 흥분되네' 하고 알아차림을 통해서 거기에 끌려가지 않는 거예요. 참지 말고 다만 알아차릴 뿐이에요. '화 내면 안 돼' 하고 참으면 언젠가 터집니다. 이 알아차림을 장기적으로 해나가면 차츰 나아지는 자정 능력이 생깁니다.

요즘 인공지능이 많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 알아차리고 자정해나가는 능력은 없습니다. 만약 인공지능에 이 능력이 생기면 그건 새로운 차원의 세상일 거예요. 왜냐면 인공지능이 자기 스스로를 자가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러면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현재는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인공지능에 사람이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인간의 통제 안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자정 능력이 생기기 시작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겠죠.

사람의 경우 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사람들을 모아놓고 아무리 기독교에 대한 세뇌를 시켜도 그 중 어쩌다가 한 사람은 불교를 믿는 사람이 생겨요. (청중 웃음) 북한처럼 아무리 사상 교육을 철저하게 시켜도 그 중 꼭 반대하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알아차리면 그것에 물들지 않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이에요. 알아차리지 못하면 무지(無智)의 상태에 머무르며, 카르마 혹은 업식(業識)에 계속 이끌려 살아갑니다. 즉, 감정이 일어나면 그 감정에 이끌려 반응하고, 그 반응이 축적되어 또다시 감정이 되어 일어나고 그 감정에 또다시 반응하기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하는 거예요.

대개 이렇게 사니까 흔히 '운명은 정해져 있다'라고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삶이 운명론에서 말하듯이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감정, 성격 등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처럼 살면서 형성된 것이에요.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소멸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현실에서 소멸시키거나 바꾸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바꾸는 방법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수행은 어느 정도의 결심과 각오도 필요하지만, 결심과 각오만으로는 대개 오래가지 못합니다. 참는 것도 오래가지 못해요. 참다가도 '참는 것도 한 두 번이지' 하거나 '보자 보자 하니까 한 두 번도 아니고 이게!' 하면서 주로 세 번만에 터집니다. (청중 웃음) 그런 다음에는 또 후회를 하고 자학증상이 생겨요. '아, 내가 그때 그걸 못 참아가지고, 내가 내 성질을 못 이겨서' 하면서 후회하는 게 자기를 학대하는 거예요. 참는 방식으로 해서는 오래가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학으로 갈 뿐 자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평소에 보면 주로 '열심히 하자, 잘하자' 하면서 각오를 다지는데, 자꾸 각오를 다지며 인생을 살면 피곤해지는 거예요. 인생에는 각오하고 결심할 게 없습니다. 다람쥐가 각오하고 결심하면서 사나요? 산에 사는 토끼가 각오하고 결심하면서 살까요? 아니에요.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갈 뿐이에요.

그런 것처럼 우리 인생도 기본적으로 자연스럽게 사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와중에 조금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되면 알아차림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변화를 바라지 않으면 그냥 생긴 대로 살면 됩니다, 아시겠지요? 그런데 변화를 바란다면 무엇을 해야 한다고요?"

"알아차림"

"네, 변화를 바란다면 알아차려야 합니다. 내 현재 상태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어, 내가 화가 나네.
어, 내가 짜증이 나네.
어, 내가 욕심을 내네.

이렇게 자기가 어떤지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운명, 자기 업식, 자기 카르마로부터 벗어나고 해방되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사람을 곧 '부처, 붓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부처, 붓다란 어떤 초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붓다란 자기 업식, 자기 습관, 자기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를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청중 박수)

무대 앞에서 본 청중들의 얼굴은 물결이 번지듯 환해졌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굳은 각오와 결심을 하고 살아가지만 번번이 잘 되지 않아 좌절하곤 하지요.

'다만 알아차리면, 우리는 누구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

스님의 안내에 밝아지는 얼굴들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심각하게 살 게 없습니다. 아까 남편 문제, 아이가 아픈 문제 등 많이들 말씀하셨는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 남편, 그런 아이와 함께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심각하게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괴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행복이라는 게 기분이 좋고 흥분되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람쥐가 기분 좋다며 폴짝폴짝 뛰는 거 보셨어요? (청중 웃음)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고 해서 이런 강연을 계속 하는 거예요. 그리고 최근에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국민 운동으로 '행복학교'를 만들었어요. 정토불교대학은 1년 프로그램인데 그걸 다하면 물론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조금 길다는 분들도 계셔서 이 행복학교는 4주 프로그램이에요. 그곳에 와서 우리의 행복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불행은 어디로부터 오는지 등에 대한 이치를 알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변에 알려서 행복학교에 많이들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행자대학원 11기(박세환 송치현 조혜림 백은하)
이준길 손명희 정란희 조태준

<스님의 하루 ‘휴간’에 대한 공지>

오늘 부로 상반기 ‘행복한 대화’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의 하루는 쉼없이 계속 되지만, 6월부터 8월까지 홈페이지에 연재되는 ‘스님의 하루’는 글쓰는 이가 없어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 기간 동안 스님은 하안거 및 명상 수련을 지도하며 동북아 역사대장정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해외 순회 강연이 시작되는 8월 말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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