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전에 수원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대전 충남대 정심화홀에서 대전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이 열리는 대전 충남대학교 정심화홀에 6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봄비가 내리고 쌀쌀해서 행사를 준비하는 봉사자들이 내심 염려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봉사자들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오전부터 비가 뚝 그쳤습니다. 

 


 

더구나 강연이 열리는 정심화홀 앞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서 강연장을 찾는 청중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매년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고 있는 정심화홀은 18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입니다. 강연 시작 세 시간 전부터 삼삼오오 짝을 지어오는 청중들로 인해 1층과 2층 좌석은 일찌감치 만석이 되었고, 급기야 자리가 모자라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1800여 명의 청중들이 열렬한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요즘 같은 화창한 봄날에는 야외에 나가 봄의 기운을 받아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강연장 입구에서 미리 질문지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스님이 무대 위에서 추첨을 하는 방식으로 질문자가 선정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해주셨지만 시간 관계상 8명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스님이 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활동들도 결국 욕망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욕망과 원을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은 단순했지만 스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각각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해결책은 무엇인지 통찰력 있는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희망세상 만들기’를 목표로 전 세계를 방문하시어 다양한 종교지도자들, 정치인들, 그리고 일반인들과 즉문즉설을 통해 세상의 여러 갈등을 해결하려 애쓰시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 더 행복한 세상은 스님에게 어떠한 세상을 의미하는 건가요? 그리고 그 또한 스님의 욕망이 아닐지요? 욕망이 아니라면 세상 사람들 중에 공공의 선을 목표로 하는 사람과 욕망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앞에서는 슬쩍 스님을 칭찬하더니 뒤에서는 ‘그래 봤자 네 욕망이지 않느냐’는 얘기네요? 혹시 교회에서 오셨어요?”(모두 웃음)  

 

“무교예요.”(모두 웃음) 

 


 

“내가 뭘 하고 싶다는 건 모든 중생이 다 갖고 있는 겁니다. ‘밥을 먹고 싶다’, ‘어디 가고 싶다’ 등. ‘뭘 하고 싶다’ 하는 건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다 나름대로 갖고 있어요. 이걸 ‘욕구’라고 그래요. 그 욕구가 바로 행위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욕계(欲界)’라 하고, 우리를 ‘욕계중생(欲界衆生)’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욕구는 3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생존에 관계되는 욕구가 있습니다. 배가 고플 때 ‘먹고 싶다’, 피곤할 때 ‘자고 싶다’는 것처럼 생존에 필요한 욕구가 그것인데, 이걸 사회적 용어로 ‘기본적 욕구’라고 합니다. 이 기본적 욕구는 보장되어야 해요. 기본적 욕구를 충족 시키려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건 선악개념으로 판단할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서 뱀이 쥐를 잡아먹는 걸 ‘악’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연생태계의 현상은 선악개념으로 판단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기본적 욕구라고 해요. 사람도 생물의 일부이기 때문에 생존적 욕구가 있고, 그 생존적 욕구는 보장이 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싶어 하지만 밥 한 그릇을 먹으면 더 이상은 못 먹잖아요. 또 자고 싶다고 해서 한 달 내내 잘 수 있는 건 아니고 몇 시간 자고 일어나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니 이 기본적 욕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둘째, 이와 달리 상대적 욕구가 있는데, 이것은 예를 들어 ‘더 맛있는 거 먹고 싶다’, ‘더 좋은 옷 입고 싶다’, ‘더 큰 집에 살고 싶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다’ 하는 식으로 상대적인 비교에 의해서 더 나은 걸 갖고 싶어 하는 걸 말합니다. 이건 끝이 없어요. 이걸 ‘욕망’이라고 합니다. 

 

셋째, 지나친 욕구가 있어요. ‘맛있다고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났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취했다’, ‘기분 좋다고 마약을 먹고 취해서 병이 났다’ 하는 식으로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 바로 자기에게 손해가 나는 것, 이것을 지나친 욕구, 즉 탐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욕구에는 ‘기본적 욕구’, ‘상대적 욕구’, ‘지나친 욕구’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기본적 욕구는 ‘생존 본능’, 상대적 욕구는 ‘욕망’, 지나친 욕구는 ‘탐욕’을 각각 의미합니다. 첫째, 개인적으로 살펴보면, 기본적 욕구는 충족시키되, 상대적 욕구는 멈출 줄 알아야 되고, 과도한 욕구는 버려야 합니다. 둘째, 사회적으로 살펴보면, 기본적 욕구는 보장해 줘야 되고, 상대적 욕구는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해 줘야 되고, 탐욕은 규제를 해야 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할 권리가 있으니까 정부는 서민들의 기초생활권이나 생존권을 보장해 줘야 합니다. 반면 상대적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경쟁이 공정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공정한 경쟁이 되고 있나요? 안 되고 있나요?” 

 

“안 되고 있어요.” 

 

“공정한 경쟁이 안 되니까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쉽게 말해서 ‘배고픈 건 참을 수가 있는데, 배 아픈 건 참을 수가 없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나라에서 살기가 어렵다’는 말은 생존권 보장이 안 된다는 뜻이 아니고, 상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공정한 경쟁이 보장이 안 된다는 뜻이에요. 여러분들이 지금 못 먹고사는 게 아닌데도 다 힘들다고 하잖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 개인적으로는 욕망을 절제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이 바로 ‘절제를 할 때 여러분들에게 더 큰 행복이 온다’ 하는 걸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스님이 왜 자꾸 사회적 발언을 할까요? 바로 이런 ‘상대적 욕구’로 괴로워하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공정하게 관리해 줘야 된다는 걸 깨우쳐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지나친 욕구인 탐욕은 사회적으로 규제를 해야 돼요. 예를 들어 산으로 다니면서 토끼 사냥을 하는데 저도 한 마리 잡고, 나도 한 마리 잡다가 어느 날 둘이 협력해서 세 마리를 잡았다고 칩시다. 생산량이 늘었지요. 협력해서 토끼 사냥을 하니까 각자 할 때보다 결과가 좋아진 겁니다. 다시 말하면, 생산이 효율적으로 됐어요. 그런데 생산만 보면 안 됩니다. 왜일까요? 혼자 사냥할 때는 한 마리 잡아서 그냥 자기가 가지면 되잖아요. 분배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런데 둘이 협력해서 세 마리를 잡았을 때는 분배 문제가 발생합니다. 

 


 

방법에는 네 가지 길이 있겠지요. 내가 세 마리 다 가져가고 상대는 한 마리도 못 가져가는 경우, 나는 두 마리 가져가고 상대가 한 마리 가져가는 경우, 상대가 두 마리 가져가고 내가 한 마리 가져가는 경우, 상대가 세 마리 가져가고 나는 한 마리도 못가져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경제가 곧 생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생산물을 어떻게 나눌 거냐 하는 것도 같이 봐야 합니다. 이 때 ‘내가 세 마리 다 가져가고 싶다’ 하는 게 탐욕입니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가져간다면 당장은 좋겠지만 한 마리도 못 가져간 상대는 내일부터는 나와 협력을 안 할 겁니다. 이것을 두고 ‘공동체가 깨진다’, ‘사회가 붕괴된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만 손해가 아니고 나도 손해이지요. 나는 오늘 하루만 세 마리를 가져가지, 내일부터는 바로 다시 한 마리만 가져갈 수밖에 없게 되는 거예요. 그럼 내가 한 마리 이상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을 지속적으로 보장받으려면 상대한테 최소한 한 마리는 줘야 합니다. 그래서 다수 국민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부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은 욕망이 큰 편이예요? 아니면 거의 탐욕 수준이에요?” 

 

“탐욕 수준이요.” 

 

“그래서 사회가 그걸 규제해야 된다는 거예요. 안 그러면 사회가 붕괴됩니다. 이런 탐욕을 규제하지 않으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붕괴 조짐이 보이는 거예요. 지금 당장은 사회적 약자들만 고통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한국사회 전체가 붕괴되면 부자도 당연히 손해를 입게 되겠지요. 그걸 모르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맛있다고 치킨을 과식하면 배탈이 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그러니 탐욕은 버려야 됩니다.

 

그럼 남은 문제를 살펴볼까요? 협력해서 잡은 세 마리를 먼저 나 한 마리, 상대 한 마리, 이렇게 나누어 가진 뒤 남은 한 마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여기서 내 몫은 최대 두 마리, 최소 한 마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이에서 분배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론적으로는 1.5마리씩 나눠 가져야 하겠지만 그게 정답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사냥에 능숙한 30살 짜리와 미숙한 15살 짜리가 협력을 했을 때 30살 짜리 입장에서는 똑같이 나누는 건 자기 손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래서 둘 사이에 합의가 필요한 겁니다. 이상적인 건 1.5마리씩 나눠 갖는 건데, 현실적으로는 한 마리와 두 마리 사이에서 분배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크게 기여했어도 두 마리 이상 가져가면 안 되고, 아무리 상대가 노력을 안 했어도 최소 한 마리는 줘야 됩니다. 이게 기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만 잘 살펴봐도 우리 사회의 문제가 뭔지는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런 건 제가 경제전문가보다 설명을 더 잘 하는 것 같죠?(모두 웃음) 

 


 

이 한 마리와 두 마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분배는 ‘경쟁’입니다. 그런데 경쟁은 승복을 해 줘야 그 의미가 있는 건데,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배 아픈 건 못 견디거든요. 그래서 승복을 잘 안 합니다. 그러니 경쟁의 과정이 공정하도록 관리해 줘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나오는 건 사람들이 느끼기에 경쟁이 공정하기 때문이에요? 불공정하기 때문이에요?” 

 

“불공정하기 때문입니다.” 

 

“경쟁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으면 불만이 많아지고 즉, 배 아픈 사람이 많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스님 같은 사람이 하는 역할은 ‘누굴 탓하기 전에, 내가 자꾸 남과 비교해서 남을 따라가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헐떡거리다가 죽게 된다. 그러니까 조금 절제해라. 그래야 네 행복도가 높아진다’ 하는 걸 가르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만 하면 안 되고, 정치하시는 분들은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 태어나면 무조건 밥은 먹을 수 있게 기본권은 보장해 주고, 두 마리 이상 가지려는 재벌의 탐욕은 규제해야 합니다. 개인의 뛰어난 능력도 사회적으로 나누고 공유해야 하는 거니까요. 단, 분배는 사회의 발전 정도에 따라서 적절하게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1.1마리 대 1.9마리, 그 다음에는 1.2마리 대 1.8마리, 그 다음에는 1.3마리 대 1.7마리씩 나누는 식으로, ‘그래, 그 정도는 네가 가져가도 좋다’ 하고 국민들이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배를 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욕구를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버려라’라고 하신 건 ‘탐욕을 버려라’, ‘욕망을 절제하라’는 뜻으로서 ‘기본권은 보장하라’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셨어요?”

 

“예.”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원(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과 욕망은 심리적으로 똑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내가 대통령 역할을 하겠다’라는 원을 가진 사람이 있고, ‘내가 권력을 잡아 출세해야 되겠다’라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 있단 말입니다. 둘 다 뭘 하고 싶다는 것인데, 무엇이 원이고, 무엇이 욕망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 걸까요? 욕망은 버려야 되고, 원은 가져야 되는 건데 말이에요. 

 

제일 쉬운 방법은 이겁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다가 안 됐을 때 괴로우면, 내가 가졌던 건 욕망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는데, 떨어져서 괴롭다’ 하는 사람은 욕망을 갖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떨어졌구나. 앞으로 4년간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도전해 보겠다’ 하는 사람은 원을 품은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가만히 돌아보세요. 어떤 일을 할 때 주로 욕심으로 했습니까? 원으로 했습니까?(모두 웃음) 

 


 

예를 들어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어린 아이가 한 번, 두 번, 세 번 넘어지자 엎드려서 울면 걔는 자전거 타는 걸 배우고 싶은 욕심을 낸 것이고,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타고,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타고 하는 아이는 배우겠다는 원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을 세운 사람은 넘어질수록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는 쪽에 가까워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 경우를 두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 겁니다. 실패가 다음 성공의 기초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실패했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어요. 실패했다고 절망하는 건 욕심을 냈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 연습해야 될 일을 두 번만 하고 공짜로 먹으려는 심보이지요.

 

그렇다면 스님이 통일운동을 하거나 우리 사회가 잘 되도록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인지 원인지 구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님이 하다가 안 된다고 실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고, 힘들다고 투덜대면 ‘저 중이 정토를 만들 욕심을 냈구나’라고 보시면 됩니다.(모두 웃음) 

 


 

그런데 스님이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다음날 또 하고, 이렇게 해 보고 안 되면 저렇게 해 보고 하면 ‘원을 세웠구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원은 끝이 없다’라고 해요. 질문은 이상하게 했는데, 제가 답을 잘 했지요?”(모두 웃음)  

 

“예.” 

 

“수행한다고 했을 때 아무 것도 안 하고 식물이나 돌멩이처럼 앉아만 있는 게 수행이 아닙니다. 뭐든지 부지런히 하는 게 수행입니다. 인상 쓰고, 괴로워하는 건 욕심으로 하는 것이지 수행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어떤 일도 웃으면서 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예.”(모두 박수)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지금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정리가 되면서 머리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질문자도 스님의 답변에 아주 만족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8명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온 새터민은 도매시장에서 일을 하는데 옆가게 사람들이 북한에서 왔다며 인격 모독을 해서 속상하다고 질문했고, 다리를 다쳐 휴식이 필요한 초등학생은 운동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다며 어떻게 마음을 달래야 하는지 질문했고, 미국과 일본에서 사신 할머니는 돌아가신 시부모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롭고,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힘들다고 질문했고, 건강 상의 문제로 퇴사를 결정한 남성분은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한 막막함과 직장생활 동안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질문했고, 또 다른 젊은 여성분은 지나간 과거를 부여잡고 있어서 실천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여성분은 편법을 써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억울한 마음이 든다고 질문했고, 젊은 남성분은 어머니가 지인에게 너무 큰 돈을 빌려주려고 해서 어떻게 이를 막을 수 있는지 고민이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오늘은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질문자들이 있어서 더욱 풍성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긍정을 바탕으로 사회를 개선하는 혁신의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하면서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살다보면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됩니다. 또 세상사람이 원하는 대로 내가 다 해줄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못하는 건 포기하고, 그래도 미련이 남으면 또 하고, 그러면 되지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남이 원하는 걸 해 줄 수 있으면 해 주고, 못하면 미안하다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 좋게 생각하지도 말고, 나쁘게 생각하지도 마세요. 그냥 이런 게 세상이니까요. ‘대한민국이 문제다’ 라고 하지만 베트남이나 중국에 가서 보면 그래도 대한민국이 괜찮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다들 대한민국에 와서 살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대한민국은 살만한 곳입니다. 그렇다고 이대로도 괜찮다는 건 아니지만 무조건 부정만 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긍정을 바탕에 깔고 개선할 건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긍정을 바탕에 깔고 비판하면 혁신이 일어나지만, 부정을 바탕에 깔고 비판하면 파괴가 일어납니다. 지금은 혁신을 할 때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많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괜찮다는 긍정을 바탕에 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이러한 것은 개선을 좀 하자고 해야 대화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함께 행복해지는 길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2시간이 넘도록 열강을 해준 스님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강연장을 나서는 청중들의 얼굴도 모두 한층 밝아진 모습이었습니다. 몇몇 분들에게 오늘 강연에 참가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동료들과 같이 강연을 들으러 왔다는 한 직장인은 “우리 사회가 지금 처해있는 위기의 본질에 대해 어떤 경제전문가보다도 알기 쉽게 설명을 해준 것 같다”며 강연 내용에 아주 만족해 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스님의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신간 '행복'을 비롯해 부스에서 구매한 따끈따끈한 새 책에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스님은 사인을 받으러 온 청중들과 눈을 맞추며 일일이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책 사인회가 끝나고 강연을 준비한 대전정토회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촬영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모두들 성황리에 끝난 강연을 자축하며 '대전정토회 화이팅!'이라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전국에서 모인 정토불교대학 모둠장들과 함께 문경 근처에 위치한 용추계곡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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