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해외 100강 중 113번째 일본 강연이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3번째로 열리는 강연입니다.  

 

아침 7시에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8시에 나고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정체가 매우 심해 고속도로 진입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는데 차량 봉사하신 분에 의하면 다른 시간대에 비해 1시간 30분이 더 걸렸다고 할 정도로 도쿄의 도로 정체도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 나고야(名古屋)

 

나고야시(名古屋市)는 일본 중부 지역의 가장 큰 도시로서, 일본 전체에서 세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아이치현의 현청 소재지입니다. 아이치현의 총생산량은 동경, 오사카에 다음가는 전국 3위로, 덴마크 오스트리아와 맞먹는 경제력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아이치현은 산업별로는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일본 내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지역특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자동차 산업품 관련이 약 60퍼센트, 그외 식료품 플라스틱제품 등 기타 소형 품목이 40퍼센트를 차지해 자동차산업 중심으로 경제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토요타 자동차 공장과 그 부품 업체가 나고야시 근방에 있기 때문이며, 나고야도 토요타와 함께 발전해 온 산업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울산이나 포항이 현대 및 포철과 함께 발전한 것과 비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고야 사람들은 일본 내에서 평소에는 구두쇠고 견실한 반면 명품이나 고급품을 좋아한다고 재밌는 정평이 나 있기도 합니다. 

 


▲ 나고야시 전경 

 

나고야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겨울이라기 보다는 봄이나 늦가을 같았습니다. 아직 고운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 억새풀을 볼 수 있어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고속도로가 계속해서 외벽으로 막혀 있어 바깥 풍경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소음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그렇다고 하는데 남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일본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본에서 가장 특이했던 것은 이른바 공사판까지도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사판이라는 단어가 뭔가 무질서하게 놓여있거나 어수선한 이미지를 주는데 비해 일본은 모든 공구가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먼지도 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운전 봉사하시는 김세환님이 오른쪽을 가르켜서 보니 일본의 영산인 후지산이 보였습니다. 정상 부분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굉장히 큰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후지산  

 

김세환님은 목소리도 작게, 주로 손짓으로 이야기를 하셨는데 알고 보니 집에 계시는 보살님한테 편찮으신 스님을 배려하여 묻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교육을 받고 왔다고 하여 함께 웃었습니다. 

 


▲ 예쁘게 다듬어진 차밭

  

바다가 보이는 마을도 지나고 예쁘게 다듬어진 차밭이 유명한 곳도 지나고 어느샌가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도 하여 일본의 가을, 겨울의 계절도 경험할 수 있었고 휴게소라기보다는 우리의 대형 마트나 쇼핑몰 같은 느낌을 주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가다보니 6시간 정도 걸렸지만 지루하지 않고 짧은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 

 

2시쯤에야 강연 시간 전까지 쉴 곳을 제공해주시기로 한 분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김경미씨라고 나고야 시에서 가까운 아이치현의 나가쿠테시라는 신도시에 사는 분인데 기업체 연수를 주로 하다가 동북대지진 이후 국내 대기업의 연수가 딱 끊겨 지금은 한글 강좌, 스포츠웨어 총판, 통역이나 번역 등의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 분은 천주교 신자인데 남편이 스님의 유투브 즉문즉설을 열심히 들으면서 성격이 바뀌어 삶이 많이 편해졌다고 하면서 정성껏 어묵국을 끓이고 맛있는 배추김치를 내어 주고 쉴 곳을 제공해 주셔서 스님과 일행은 맛있게 음식을 먹고 편안히 쉴 수 있었습니다. 

 


 

이 분에게는 다섯 살짜리 딸이 있는데 전날 스님의 희망강연 포스터를 따라 스님의 모습을 그리고 어떤 과일을 좋아하시냐는 편지까지 써놓은 것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 김경미씨의 5살 된 딸이 그려 준 스님 얼굴과 희망세상만들기 글자  

 

스님께서는 강연 전에 일본 중부지역 총영사관의 김인환 부총영사와 저녁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10분 늦게 출발한데다 모두 나고야 초행길이라 약속 장소를 잘 못 찾아 빙빙 돌다 시간이 늦어 스님께서는 매우 미안해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꼭 현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을 태워서 다녀야겠다는 것을 또 하나 크게 배우는 날이었습니다.

 

오늘 강연이 이루어진 곳은 나고야 시내에 있는 윙크 아이치 산업노동센터로서 108개의 좌석을 마련했는데 좌석이 거의 다 차서 봉사자 포함하여 110명의 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113강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인생을 살면서 꼭 지녀야 할 기본 가치관 네 가지를 말씀해 주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불어 살기 때문에 타인의 자유를 뺏을 권리는 없어요. 그래서 첫째, 남을 헤치지 마라. 둘째, 남을 손해끼치지 마라. 셋째, 남을 괴롭히지 마라. 넷째, 말로 남을 괴롭히지 마라. 이 네가지를 제외하고는 인간은 마음껏 살아도 좋습니다. 나도 남 눈치 보지 말고 살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네가지를 어기는 것이 아니면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수업 시간에 졸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네 가지에 들어가요? 안 들어가죠. 그러니 야단치면 안돼요. 성적이 떨어졌다고 합시다. 남을 헤쳤어요? 손해 끼쳤어요? 괴롭혔어요? 말로 괴롭혔어요? 그래서 이것도 야단치면 안돼요. 성적이 떨어진 것은 오히려 칭찬 받을 수 있는 일이예요. 남의 성적을 올려주었기 때문에 그래요. (청중들 웃음) 

 


 

그런데 수업시간에 떠든다고 합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공부에 방해를 주었잖아요. 이것은 잘못된 행동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행동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바로잡아 주어야 해요. 3살짜리 4살짜리라고 하더라도 남을 때리면 안 된다고 얘기해줘야 해요. 남의 장난감을 뺏으면 안 된다고 야단을 쳐야 합니다. 남을 괴롭혀도 안 되고, 욕설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 가치관을 어릴 때부터 안 심어주니까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부를 안 하는 것은 나쁜 짓은 아니에요.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에 속합니다. 나쁜 것과 어리석은 것은 틀려요. 어리석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손해 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공부를 안 해서 자기한테 손해 끼치고 수업시간에 졸아서 자기한테 손해 끼치죠. 어리석은 것은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잘못한 것은 아니에요. 깨우쳐줄 때는 야단치면 안 돼요. 열 번 이야기해서 말을 안 들으면 열 한번 깨우쳐 줘야지 야단치면 안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성적이 떨어졌다고 야단을 치잖아요. 이것을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사회질서가 안 잡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억압을 받아요.

 

그래서 이 네가지에 해당이 안되면 남의 인생에 간섭도 하지 말고, 이 네가지에 해당이 안되면 남의 눈치도 볼 필요 없어요. 우리 인생은 마음껏 살아도 좋아요. 그러나 이 네가지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내가 마음껏 산다고 남을 헤치거나 손해끼칠 권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다보면 고뇌가 생기고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 얘기를 오늘 마음껏 해보자는 것입니다. 답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인생의 문제를 갖고 대화를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좀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답을 주는 것이 아니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자기 고민이 해결이 되면 마이크를 놓지 그 전에 마이크를 놓으면 안 됩니다. 끝까지 대화를 해서 ‘아, 그렇구나’ 해서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으면 “알겠습니다”하고 마이크를 놓으면 됩니다. 같이 대화를 하면서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입니다. 자, 시작해 봅시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둘째 딸아이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학교생활이나 일본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활동이나 이런 것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딸이 학교 생활에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공부를 집중해서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걸 제가 편안히 바라보지 못하겠습니다.”

 

 

“15년 전에 결혼했으나 이혼을 했고 애가 하나 있어요. 음식을 잘 해서 10년 전부터 식당을 시작했으나 말아 먹었어요. 다시 청소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잘되는 한류 이자카야(술집)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한 당뇨에 걸려 쓰러지기를 반복하고 목에도 종양이 생겼어요. 병원마다 처방이 다르고 너무 힘들었는데,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무당이여서 굿이란 걸 한 이후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아졌으나 3개월 후 또 나빠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더 굿을 하고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말 무병이라는 게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요?” 

 

그리고 12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가 질문을 해서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해서 고민이에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이런 걸 잘 결정 못해서 고민이에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감정기복이 너무 심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산책하는 것도 기쁜데 나쁠 때는 다 싫습니다. 좋은 기분을 항상 유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님께서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유롭게 행하되 4가지를 유념하면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만약에 자유를 침범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하면 됩니까? 남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요? 예를 든다면 이번에 대한항공의 부사장님 사건이 큰 이슈가 되었는데 그 사무장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나고야에 온지 23년인데요. 부모님이 함경도에서 오셔서 그런 것도 있고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사춘기 아이가 불만이 많아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자신 없어 하는 재일교포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이 길게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옆에 앉아 있던 딸도 자신의 모습을 돌이키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재일교포 엄마입니다. 요즘에 아이들이 사춘기가 와서 조금 힘들어요.”

 

“사춘기가 왔다는 기준이 뭔가요? 말을 안 듣는다는 거예요? 요즘은 말 안 들으면 무조건 사춘기라고 그래요. (청중들 웃음) 어떤 분이 “우리 애가 사춘기를 너무 일찍 시작했어요”  해서 스님이 “몇학년이에요?” 라고 하니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그래요. 이것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이고요. “우리 애는 사춘기가 좀 늦어요” 해서 “몇학년이에요?” 라고 하니 “고등학교 1학년요” 그러면 고등학교 1학년부터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에요. 사춘기가 아니고 엄마 말을 안 듣는다 이 말이지요?” 

 

“네. 말을 안 들어요. (청중들 웃음) 요즘에는 제가 좀 많이 힘들어서요.”

 

“애가 힘든 게 아니고 왜 어른이 힘들어요?” (청중들 웃음)

 

“저는 한국에서 결혼해서 남편이 주재원으로 일본에 왔는데요, 재일교포로서 한국으로 시집을 가서 다른 엄마들보다 교육같은 것이 부족해서 좀 자신이 없거든요.” 

 

“질문자가 자신이 없다고 하는데, 질문자는 개보다는 나아요? 못해요? (청중들 웃음) 질문자가 생각할 때 한국말이 좀 부족해도 강아지보다는 나아요? 못해요?” 

 

“강아지보다는 낫구요.” (청중들 웃음)

 

“개도 새끼를 낳아서 키우는데 사람인데 왜 못 키우겠어요? 아무 문제없어요. 부족한 것 없어요. 질문자가 그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애를 낳아서 키우는 것은 한국말을 못하는 것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한국말을 못하면 그냥 일본말을 하시면 돼요. 그러면 아이들은 한국말도 배우고 일본말도 배우고, 2개들 다 배우게 돼요.” 

 

(질문자가 눈물을 보이며 앉으려 하자, 청중들이 박수로 질문자를 격려해 줍니다.) 

 

“앉지 말고요. 서서 계속 얘기해요. 벌써 그만 둘려고 그래요? 뭐가 어려워요?”

 

“저는 잘해주고 싶은데요, 다른 엄마들과 비교했을 때 저한테 불만이 많아요. 밥 같은 것은 제가 잘 하는 데요.” (청중들 웃음)

 

 

“밥만 해주면 돼요. (청중들 웃음) 옷도 빨래해서 입혀요? 빨래는 안 해줘요? 질문자가 집안 청소는 해요? 집을 엉망으로 해놓고 살아요?“

 

“아니요. 깨끗하게 해놓고 살아요.”

 

“일본에서 살았으니 뭐든지 깔끔하게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됐어요. 그게 엄마가 해야 할 거 다에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어려워요?”  

 

“애들이 엄마한테 불만이 좀 많아서요. 그게 좀... 제가 좀 많이 만만한 것 같아서요. 애들이 남편은 좀 무서워하거든요.” 

 

“아빠는 주먹이 있으니까 겁내는 것이고, 질문자는 주먹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그것은 당연하지요.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힘드는 데요? 남편하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요? 아니면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요?”

 

“애들 때문에 그런 것 같애요.”

 

“남편하고는 문제가 없어요? 남편하고 문제가 없으면 애들하고 힘들 일이 없어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청중들 웃음)

 

“특히 우리 딸이 자신감이 없습니다. 저가 좀 많이 부족해서 딸이 그렇게 자신이 없나 싶어가지고요.” 

 

“질문자는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금 그런 것을 자학이라고 그래요. 자기를 학대한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또 뭐가 문제예요?” 

 

“다른 것은 없습니다.” (청중들 웃음) 

 

“애가 말을 안 듣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말을 안 들어요?” 

 

“그냥 좀 많이 짜증을 내는 것 같애요. “엄마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얘기도 하고요.” 

 

“엄마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하면, “엄마는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학교 보내주면 그것으로 다 했지, 나머지는 엄마가 해 줄 의무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돼요.”  

 

“알겠습니다.”

 

“강아지도 새끼 낳아서는 젖만 먹여주면 돼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해줘도 돼요. 학교 안 보내줘도 되고, 옷 안 입혀줘도 되고요. 그래도 사람이니까 학교도 보내주고, 옷도 입혀주는 것인데, 그럴 때는 웃으면서 “아이고, 밥해주고 빨래해주면 됐지. 엄마가 뭘 더 해주냐?” 이렇게 편안하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런데 ‘왜 나는 해주는 게 없다’ 이렇게 생각해요?” 

 

“저가 원래 자신이 없는 것 같애요.” 

 

“질문자가 자신이 없으니 애도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지금부터 “밥해주면 됐지? 뭐가 문제니?” 이렇게 자신있게 답을 해주면 애도 자신이 있어져요.”

 

“네”

 

“또 뭐가 문제예요? 얘기 꺼낸 김에 다 얘기해봐요. 진짜 어려운 게 뭐에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일본 사람들은 자기 속내를 잘 안 밝힌다고 하더니 일본에 살아서 그래요?”

 

"우리 딸이 좀 아팠습니다. 몸이 아팠는데요,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는데요."

 

“딸이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면 되지요. 의사가 할일이지, 질문자가 할일은 아니잖아요. 진짜 뭐가 문제예요? 사는데 뭐가 힘들어요?”  

 

“우리 딸이 저보고 “왜 태어나게 했냐?” 고 그런 얘기도 하고요.”

 

“너희 아버지하고 좋다가 보니 생겼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요. (청중들 웃음) 그러면 “나도 너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니다. 그럼 너는 왜 나한테 태어났니?” 이렇게 말하면 되잖아요. (청중들 웃음) “왜 나를 낳았나?” 그러면 “왜 나한테 태어났니?”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러면 비기잖아요. (청중들 웃음). 뭐 그것을 가지고 걱정을 하고 그래요. 또 얘기해봐요. 스님이 다 답해 줄테니까요.” 

 


 

“그냥 그런 것만 힘든 것 같애요.” 

 

“그것 밖에 없어요? 그러면 힘든 것도 아니네요. 딸이 말을 어떻게 안 들어요? 그냥 얘기해요. 남 눈치 보지 말고요. 뒤에 계신 분이 누구에요? 시어머니요? 언니에요?” 

 

“친구언니입니다.”

 

“친구언니인데 왜 자꾸 뒤를 쳐다보고 얘기를 해요. 스님을 보고 얘기를 해야지요.”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어요. 통역을 해주고 있어요. 자기 표현을 못해서요.”

 

“그러면 천천히 얘기를 해보세요. 스님도 천천히 말 할게요. 자, 다시 물을게요.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뭐가 힘들어요?”

 

“애기 키우는 것이요.”

 

“애기는 밥만 주면 본인이 알아서 크는데 왜 힘이 들어요?” 

 

“마음이 힘들어요. 짜증내면서 저한테 부족한 것을 많이 얘기할 때요. 그냥 계속 외모에 자신이 없어 해요” 

 

“외모에 자신이 없을 때는 지체부자유 아이들이 있는 곳 있지요? 거제도에 가면 애광원이 있는데, 그런 곳에 봉사를 시키면 돼요. 그러면 ‘내가 건강한 것만 해도 엄청난 복이구나. 내가 제대로 말하고 걷는 것만 해도 엄청난 복이구나.’ 이렇게 자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외모가 조금 열등의식이 있다는 것은 잘났다는 얘기에요.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못났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잘났기 때문에 외모에 열등의식이 있는 거예요. 즉 딴 것은 다 괜찮은데 눈만 조금 크면 이렇게 되기 때문에 눈에 열등의식이 생기고, 눈을 수술하고 나면 코만 조금 높으면 미인인데 이렇게 해서 또 코가 문제고요. 또 코를 고쳐놓으면 턱이 조금 문제인데 하면서 턱을 조금 깍아놓고, 이러고 나면 볼이 조금 나와가지고 이렇게 해서 성형 병에 걸리게 되거든요. 그런데 스님같이 못난 사람은 어디부터 뜯어 고쳐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예 문제가 안돼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얼굴에 흉터가 있다거나, 언청이라든지, 아예 부상을 크게 입어서 그런 것은 예외이고요. 얼굴에 열등의식이 있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어릴 때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예쁘다고 소리를 들었는데 본인보다 더 예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열등의식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은 “괜찮아, 괜찮아. 너 잘났어” 이렇게 말해주면 돼요. “엄마보다 잘났나? 못났나?” 이렇게 한번 물어보고 엄마보다 못 났으면, “그것은 네 아버지 탓이야” 이러고요. (청중들 웃음) 엄마보다 잘나도 “그건 네 아버지 공덕이다. 엄마하고는 관계가 없다. 아버지한테 가서 감사하다고 얘기해라. 네가 못생겼으면 아버지한테 가서 따지고, 칭찬을 해도 아버지한테 가서 얘기해라”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해요. 애들 얘기에 무슨 어른이 그것을 듣고 상처를 입어가지고 질질 짜고 울고 그래요. 그냥 애들이 하는 소리에요. 사춘기가 되면 온갖 것이 다 불만이에요. 얼굴에도 불만이고, 옷 입는 것도 불만이고, 뭐도 해달라고 그러고 원래 그래요. 

 

그러면 그것이 나쁘냐? 그게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에요. 시켜서 말을 잘 들으면 어린애이고요. 반항도 하고 불평불만도 하면 ‘우리 딸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구나’ 하고 이렇게 지켜봐야지요. 그것을 힘들다고 하면 안돼요. 애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 애들이 커서 잘못돼요. 왜 그럴까요? 조그만한 아이가 벌써 엄마를 괴롭히잖아요. 그러면 불효하는 거잖아요. 불효하는 아이는 크면 훌륭한 사람이 못돼요. 엄마는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어도 항상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아야 돼요. ‘아이고,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 엄마는 너 보는 낙으로 산다’ 이런 기분으로 살아야 애가 잘 돼요. 그 이유는 아이가 엄마를 즐겁게 해준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러면 아이가 효자라는 얘기거든요.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애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항상 즐거워야 해요. 아이가 그런 불만을 말하면 ‘아이고 그래그래. 그래도 잘났다. 엄마 보기에는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쁘다’ 이렇게 웃고 넘어가야지 그것을 애들처럼 하나하나 다 가슴에 새기고 힘들어 하면 안돼요. 애를 둘이나 낳은 여자인데 지금 질문자는 애 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청중들 웃음)

 


 

어른이 되세요. 아이만 낳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하는 얘기를 그냥 웃어넘겨야 돼요. 빙긋이 웃으면서 ‘그래그래’ 하면서 그것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요.”

 

“감사합니다.” (청중들 박수) 

 

“옆에 앉아 있는 딸에게 마이크 한번 줘봐요. 스님하고 얘기하면 재미있어요. 학생은 뭐가 엄마한테 불만이에요? 그냥 얘기해봐요.” 

 

지금부터는 딸과 스님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불만 없어요.” 

 

“미인이지요? (청중들 “네” 하면서 웃음) 제가 얘기했잖아요. 잘 생긴 사람이 성형한다구요. 스님같이 못생긴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할 여가도 없어요. 학생은 지금 뭐가 힘들어요?” 

 

“힘든 것 없고요. 그냥...”

 

“그런데 왜 엄마가 힘들다고 그래요?” 

 

(울음)

 

“힘든 것 없는데 왜 울어요?”

 

“그냥 눈물이 막 나요.”

 

“엄마 눈물 닮았구나. 엄마 딸 아니라 그럴까 싶어서 그래요. (청중들 웃음)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요?” 

 

“공부하는 게 힘든 게 아니고, 그냥 저보면 한심해요. 그냥 제가 싫어요. 그냥 다 불만이 많아요. 얼굴도 그렇고 그냥 다요. 그냥 못 생겼어요.” 

 

(청중들 “어머, 매력적으로 생겼는데…”) 

 

“그냥 못 생겼어요? 영화배우들을 너무 쳐다보다가 저래 생겨놓으니 그래요. (청중들 웃음) 영화배우보다 못 생긴 것은 맞아요. 못 생겼어요. (청중들 웃음) 

 

자, 여기 스님 책상 앞을 봐요. 여기 마이크 스탠드가 있고 여기 물병이 있고, 여기 물잔이 있어요. 자, 여기 물병을 들고 마이크 스탠드하고 비교하면 물병은 커요? 작아요?”

 


 

“작아요”

 

“물잔하고 비교하면 커요? 작아요?”

 

“커요.” 

 

“그러면 이 물병 하나만 딱 놓고 보면 커요? 작아요?”

 

“모르겠어요.” 

 

“지금 본인이 한 번은 크다고 그러고 한번은 작다고 그랬는데 비교해서 얘기했잖아요. 그러면 비교하지 말고 물병 하나만 딱 놓고 보면 커요? 작아요? 물병 이것 자체는요?”

 

“몰라요.” 

 

“그러니까 이 물병은 이 스탠드하고 비교하면 작다. 이 물잔하고 비교하면 크다가 돼잖아요. 그러면 크다 작다라고 하는 것은 이 물병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인식 상에 있어요. 즉 스탠드하고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작다고 머리가 인식을 하고, 물잔하고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크다고 머리가 인식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물병은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이 물병이 나한테 인식이 될 때 어떤 때는 크다고 인식이 되고, 어떤 때는 작다고 인식이 된다 이말이에요. 그러니까 큰 것하고 비교하면 작다고 인식이 되고, 작은 것하고 비교하면 크다고 인식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물병 자체를 두고 크냐 작냐고 물으면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크냐 작냐고 묻는 그 용어를 빌려서 대답을 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스님이 묻기를 ‘크냐? 작냐’고 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스님이 묻기를 ‘무거우냐? 가벼우냐?’고 하면 ‘가벼운 것도 아니고 무거운 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새것이냐? 헌것이냐?’ 라고 물으면 ‘새것도 아니고 헌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긴가? 짧은가?’ 라고 물으면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다’가 됩니다. 즉 존재 그 자체는 존재 그 자체일뿐이지, 이것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에요. 이것을 한문으로 고쳐서 말하면, ‘비대비소’,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것을 선적이 언어로 표현하면 ‘다만 그것이다’,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공이다” 그래요. 

 

그러면 여기서 자네는 지금 이 물병을 가지고 작다고 얘기해요. 작다고 얘기할 때는 스탠드하고 비교할 때 작다고 했는데, 지금 본인이 못생겼다 라고 하는 말은 지금 본인이 영화배우하고 본인의 얼굴을 비교해서 못생겼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말이에요. 그러면 본인은 죽을 때까지 못생겨요. 이 물명을 계속 스탠드하고만 비교하면 나는 영원히 작아요. 그래서 내 존재 자체가 작은 줄 아는데 원래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비교를 스탠드하고 하기 때문에 작다고 인식되는 거예요. 이 물컵하고 비교를 하면 크다고 인식이 돼요. 자네가 2m 키의 사람과 비교를 하면 늘 작아요. 그런데 150cm 키의 사람과 비교하면 늘 커요. 그러면 자네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못 생긴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착한 사람도 아니고 악한 사람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 못하는 사함도 아니고, ‘나는 그냥 나다’ 이거예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과 반 편성을 하면 자네는 꼴찌를 해요. 그런데 본인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과 반 편성을 하면 본인은 일등을 해요. 그러면 비교해서 일등하고 비교해서 꼴찌를 하는 것이지, 일등한다고 공부 잘 한다, 꼴찌한다고 공부 못 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본인보고 못 생겼다느니, 잘 생겼다느니 하지 말고, 본인이 못 생겼다 해도 본인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고, 본인이 잘 생겼다 하고 우월감을 가져도 본인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본인은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못 생긴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니고, 잘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착한 아이도 아니고 악한 아이도 아니고, 나는 다만 나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다 존엄하다.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차별해서는 안 된다. 피부 빛깔이 검다고 희다고 차별해도 안 되고, 남자 여자라고 해서 차별해도 안 되고, 신체 장애 유무를 가지고 차별해도 안 되고, 성적 지향을 가지고 차별해도 안 되고, 태어남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가지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이것이 불교 철학의 가장 핵심이에요. 그러면 지금 본인은 잘 생겼어요? 못 생겼어요?”

 

“못 생긴 것도 아니고 잘 생긴 것도 아니에요.” (청중들 박수)

 

“그래요. 그럼 본인은 공부 잘 해요? 못 해요?”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청중들 박수)

 

“나는 나다, 아시겠어요? 지금 자네 실력을 가지고 전국에서 꼴찌하는 학생들 모아놓고 그 반에 자네가 들어가면 일등을 하겠지요. 전국에서 일등하는 아이들만 모아놓은 자리에 자네가 들어가면 꼴찌 하겠지요. 그러니 꼴찌했다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일등했다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번 시험에 성적이 올라갔다고 내 실력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낮아졌다고 나빠진 것도 아니에요. 내가 공부 안하고 놀아도 다른 친구가 내보다 더 놀아버리면 내 성적이 올라가고, 내가 죽어라고 공부해 갔는데 다른 애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버리면 성적이 못 나오고 그러는 것이지요. 시험은 다만 상대적 평가를 할 뿐이에요. 그러니 본인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지, 본인을 못났다든지, 열등의식을 가져도 안 되고 거꾸로 잘났다 하는 우월의식을 가져도 안돼요. 알았지요?” 

 

“네, 감사합니다.” (청중들 박수)

 

“그래요. 딸이 엄마보다 훨씬 낫네요. (청중들 웃음) 딸은 말귀를 알아듣는데 엄마는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청중들 웃음) 한국말이 서툴다고 못난 여자도 아니고, 본인은 뭘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는 나일 뿐이다’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 애들이 좋은데 엄마가 저렇게 자신감이 없으니까 아이들도 영향을 받는 거예요. 알았지요? 그러니까 앞으로 자꾸 나는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그렇다고 나는 잘났다 이래도 안되고요.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이러면 되고, 틀리면 ‘아이고 틀렸네요, 고치겠습니다’ 하고,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요. 그런것을 가지고 우리가 위축될 필요가 없어요. 

 


 

스님이 지금 말을 쉽게 해도 이것은 굉장한 철학이에요. 이것이 전부 반야심경, 금강경 교리의 요점이에요.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종교는 성인의 말씀은 성인의 말씀으로 따로 하고, 생활은 생활대로 따로 하고 그래서 지금 문제예요. 그래서 절에 다니고 교회에 다녀봐야 삶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은 그것은 하늘의 얘기 따로 두고 땅의 얘기 따로 두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땅과 하늘이 둘이 아니에요.”

 

질문한 엄마도 활짝 웃고, 엄마와 갈등하던 딸도 활짝 웃고, 강연장 전체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청중들은 다시 한번 모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오늘은 강연장 대여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 곳이라 닫는 말씀을 따로 하지 못하고 시간이 다 되어 곧바로 강연을 마치셨습니다. 

 

2시간 20분간의 강연이 끝나고 바로 스님의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청중 중에는 일본인들도 간혹 보였는데 어떤 분들은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이라 어느 정도는 알아듣지만 좀 어려운 내용일 때는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하고 또 어느 부부는 부인이 열심히 수첩에 스님의 말씀을 일본어로 적어주면서 남편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강연을 듣고 감동한 분들이 책을 사서 스님의 사인을 받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장소 대관 시간의 제약 때문에 스님께서는 서둘러 책 사인을 하시면서도 웃으시며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주셨습니다. 

 


 

강연을 잘 치러낸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강연 담당자 부부에게 책을 선물하고 사진도 같이 찍었습니다. 특히 이 부부는 신혼여행을 갔다가 이번 해외 100강 중 핀란드 강연에 참가하여 스님께 나고야에서 뵙겠다고 인사를 했는데 마침 나고야 담당자가 중간에 비는 바람에 스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연을 담당하여 열심히 준비해왔다고 하여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오늘 봉사자는 거의 대부분 학생들로서 처음 자원봉사를 해보며 함께 이루는 기쁨을 경험한 게 좋아서 다음에도 꼭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 한금화 동아시아 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  

 

오늘은 바로 교토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스님께서 먼저 들어가 쉬시지 못하고 봉사자들의 나누기 시간을 기다려 주시고 정리정돈과 짐 챙기는 것도 손수 함께 도와주셨습니다. 

 


 

서둘러 짐을 챙겨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고야의 첫 눈이라고 하는데 차량 봉사를 하신 김세환님은 약간 들뜬 목소리로 첫 눈이 오는 날 스님을 모실 수 있어서 너무나 뜻 깊은 날이라고 기뻐했습니다.

 

교토로 가는 길에 밤인데도 약간의 정체가 있어 일본에서는 강연장 근처에서 자고 밥은 도시락으로만 먹어야겠다며 일본의 교통 정체를 경험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교토의 호텔에 도착하니 1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하루에 2번의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오후 2시에는 114번째 강연이 교토에서, 저녁 6시30분에는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의 마지막 강연인 115번째 강연이 오사카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지난 8월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첫 번째 강연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5개 도시를 거쳐 마지막 115번째 강연이 드디어 내일 열립니다. 마지막 강연을 앞두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내일 마지막 강연 소식까지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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