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15회 연속 강연 중 107번째 강연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베트남 호치민의 호텔 로비에서 오전 6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7시에 호치민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호치민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최대현 유영아 부부가 새벽부터 찾아와 스님 일행을 공항까지 안전하게 배웅해 주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 개미때처럼 몰려가는 출근길 오토바이 행렬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 베트남 호치민. 출근길 오타바이 행렬.  

 

스님께서는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전부 자동차를 몰고 나온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하셨는데, 앞으로 베트남의 발전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오전 7시 30분에 공항에 도착하여 최대현, 유영아 부부와 작별 인사를 하고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어제 스님께서 두 부부에게 정토회 모임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해주셨는데, 베트남에서 새로운 씨앗이 싹트길 기원하면서 두분에게 희망을 기운을 보내주고 출국장으로 들어왔습니다. 

 


▲ 베트남 호치민 강연을 담당해 준 최대현, 유영아 부부

 

그리고 지난 12월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강연부터 어제 베트남 호치민 강연까지 총 7개 도시에서의 강연을 준비하고 총괄한 홍정혜 지구장님과도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홍정혜 지구장님은 각 도시마다 봉사자를 모집하고 연결하고, 강연 준비를 위한 실무 지원을 도맡아 해주셨습니다. 동남아시아 강연 모두를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마치고, 오늘 방콕으로 돌아가십니다. 스님께서는 홍 지구장님에게 "정말 수고 많았다"고 하시며 손을 꼭 잡아 주셨습니다. 

 


▲ 동남아시아 7개 도시 강연을 총괄해 준 홍정혜 지구장님 

 

호치민 공항에서 9시3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1시 15분에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아 도착장으로 나오니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과 필리핀정토회 윤경숙 총무님이 환영 푯말을 들고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스님을 마중하러 나온 필리핀정토회 이원주 대표님과 윤경숙 총무님 

 

필리핀(Philippines)은 서태평양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입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필리핀은 지진과 태풍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이번 세계 100회 강연 중에도 태풍이 찾아와 오늘 마닐라 강연이 취소될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리핀은, 크게 루손 섬, 비사야 제도, 민다나오 섬의 세 지역으로 나뉩니다. 인구는 1억 명으로,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입니다. 또한, 약 1,10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이 필리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식민 지배 동안에 마닐라는 아카풀코와의 무역 연결점이 되었으며, 필리핀에는 카톨릭이 널리 전파되게 됩니다. 19세기 말에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고,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된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세워졌습니다. 그 뒤를 이어 미국-스페인 전쟁과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을 할 때까지,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지배를 계기로 영어와 서양 문화가 필리핀에 많이 전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필리핀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으나, 마르코스 정권 말기의 타락, 몰락과 함께 빠르게 쇠퇴해 갔습니다. 

 


▲ 필리핀 마닐라(Manila)

 

마닐라(Manila)는 루손 섬 남서부에 있는 필리핀의 수도로 면적은 약 38㎢, 인구는 약 165만 명입니다. 메트로 마닐라로 확대하면 인구 약 1,185만의 대도시권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항만으로 일컬어지는 마닐라 만에 임한 항구 도시로, 시가지는 파시그 강을 끼고 그 남북으로 펼쳐집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찾는 대표적인 어학 연수지입니다. 북쪽에는 비옥한 중부 루손 평야를, 남쪽에는 남부 루손의 화산성 저지를 끼고 있습니다. 동양 최고의 대학인 산토토마스 대학(1611년 설립), 필리핀 최고의 대학인 필리핀 국립대학과 아테네오 대학, 미리암 대학 등을 비롯한 교육 기관이 퀘존 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고 합니다. 

 

현재 필리핀에 거주 및 체류 중인 교민 수는 약 10여만명으로 추정하는데, 1990년대 들어 대기업의 직접투자, 중소기업 투자에 따라 교포 수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IMF 경제위기 이후 개인사업자들의 유입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특히 2000년 들어 유학생 및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2007년 필리핀 체류 및 거주교민은 역대 최대 규모인 15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공항을 나오니 태풍이 지나가긴 했지만 아직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곧바로 오늘 숙소인 이원주 대표님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댁에 도착하자마자 이원주 대표님, 한금화 지구장님, 윤경숙 총무님은 마닐라를 방문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 온 스님 일행에게 한금화 동아시아 지구장님이 정성껏 점식 식사를 준비해 주어 감사히 먹었습니다. 식사 후 스님께서는 이원주 대표님과 필리핀JTS 사업 전반에 대해 회의를 하셨습니다. 

 


▲ 필리핀JTS 사업 논의를 하고 있는 모습 

 

스님께서는 회의 후 저녁  강연을 위해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오후 6시20분에 강연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 

 


▲ 오늘 강연장, Asia and the Pacific College Auditorium

 

오늘 강연장은 Asia and the Pacific College Auditorium 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대학생 봉사자들이 골목 곳곳에서 자리해 주차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 "태풍을 뚫고 오신 스님" 이라는 푯말로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대학생 봉사자들 

 

오후 6시30분부터는 필리핀 지역 교민사회의 주요 인사 분들과 차담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오충석 한국문화원 원장님, 진현용 참사님, 김근한 한인회 회장님, 민주평통 동남아 북부 협의회 이영백 회장님, 필리핀 대한체육회 윤만용 회장님, 김영기 회장님, 이관수 전직 한인회 회장님, 이원주 필리핀정토회 대표님 등 많은 분들이 오셔서 스님과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세계 115회 연속 강연 소식을 듣고 스님의 건강을 많이 염려하셨고, 스님께서는 세계를 다니시며 있었던 에피소드와 소회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 강연 전, 마닐라 교민사회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시는 모습 

 

특히 이영백 회장님은 스님께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립심이 많이 부족한데, 스님께서 젊은 사람들을 위해 이런 좋은 강연을 많이 해주셨으면 한다”는 바램을 이야기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그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들이 자식을 과잉보호 해서 생긴 문제”라고 하시면서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 되어서 다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강연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 

 


▲ 마닐라 지역 교민 사회를 일궈오신 지역 인사 분들과 함께 

 

오늘 마닐라 강연은 총 300명이 자리해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환영 영상과 소개 영상에 이어서 저녁7시에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태풍으로 인해서 강연이 취소될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태풍 피해는 없었습니까? 저는 어제 호치민에서 강연을 하고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안뜰수 있다고 해서 홍콩으로 들러서 와야 한다고 얘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아침에 공항에 나가니까 다행히 비행기가 출발한다고 해서 무사히 잘 왔습니다. 115강 중에서 태풍으로 강연 하나가 빠지는가 했는데 사고 없이 잘 끝날 것 같아요. 오늘이 107번째 강연입니다. 이제 거꾸로 메달아 놓아도 마칠 수 있을만큼 왔어요, 9번만 더하면 끝이 나니까요. 오늘이 고비였던 것 같아요. 만약에 태풍이 심해서 비행기가 뜨지 않았으면 여러분들 얼굴을 못 볼뻔 했습니다. 

 


 

저희들도 작년에 태풍 하이옌이 지나가고 긴급구조단을 파견해서 학교 열 몇 개를 복구했습니다. 저희들이 가장 빨리 복구를 해서 그 지역에서 표창도 받고 했는데,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원주 회장님이 아주 신속하게 대응을 하셔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는 2002년도에 제가 큰 일을 한 것도 없는데 막사이사이상 평화와 국제이해 부문에서 상을 수상하는 것을 계기로 해서, 필리핀에서 상금을 받는 게 좀 그래서 그 상금보다 열배는 더 돌려줘야 되겠다 생각해서 그 이듬해에 민다나오로 들어가서 원주민 마을과 무슬림 분쟁지역에 가서 작은 학교 40여개를 지금까지 건설을 했습니다. 5년 전부터는 ‘다물록’이라고 하는 곳에 중학교도 만들고 지역 보건소도 만들면서 시와 협력해서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다른 나라보다는 필리핀에는 1년에 한두번씩은 꼭 오는 편이예요. 

 

인류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많은 물질적인 발달과 성장을 해왔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의 행복이라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GDP 순위와 행복도 순위가 서로 다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면 과연 인간이 좀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밥을, 병든 사람은 약을, 목마른 사람은 물을, 헐벗은 사람은 옷을 주는 등 이런 기본적인 인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집도 있고 잘 사는데 행복하지 못하고 괴로운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위로를 위해 성인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현대사회야 말로 이런 성인의 가르침이 더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구사회에서는 불교의 가르침이 새로운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구글 본사에서 저를 초청한 것도 그런 측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붓다가 가르친 가르침은 종교를 초월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각자가 갖고 있는 종교적인 문제를 뛰어넘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인간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함께 얘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각자 자기 종교를 갖고도 우리는 새로운 문제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종교와 관계 없이 대화를 해보려고 합니다. 

 

즉문즉설은 인생을 살면서 겪는 고뇌와 의문에 대해서 아무런 주제의 제한 없이 금기사항 없이 마음껏 대화해보는 자리입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학업과 연애 대해서 질문드립니다. 제가 여자친구가 한명 있습니다. 20살이 되어서 대학을 가야할 나이인데 대학을 해외에 가기로 했어요. 서로 떨어져서 연애를 해야 하는데, 하지만 제 신분은 학업에 충실해야 하는 신분이고요. 학업과 연애를 같이 하는 건 욕심인 것 같은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카톨릭 신자인데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들어도 되는지요? 스님 법문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왠지 마음에 걸림이 있습니다.” 

 


 

“최근에 반야심경을 읽고 궁금증이 생겼어요. 대승불교는 기원전 1세기 경에 일어난 운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리자와 부처님은 기원전 6세기경의 사람이구요. 같은 시간대에 언급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공이라는 개념과 무라는 개념이 같은 의미인지요? 이것은 또 금강경에 나오는 범소유상 개시허망과 같은 의미인지요?” 

 

“만약 스님이라면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일이라면 무엇을 택할 것인지요? 계속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는데 그것 땜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유별나게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며 놔둔 결과, 현재는 그런 행동들이 개념이 없다는 피드백을 받아서 매일 매일 저에게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입니다.” 

 


 

“나이가 39세입니다. 한국에서 이곳 필리핀에 파견 와서 혼자 지내다 보니깐 적적합니다. 여러가지 취미를 하는 도중에 티비에서 아이들이 크는 모습들을 보니깐 결혼도 하고 싶은데, 필리핀에서 한국 여자 만나기도 어렵고 필리핀 여자 만나기도 힘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친어머니와 사별하고 새어머니를 만났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인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 스님의 지혜가 깃든 말씀에 많은 청중들이 깊이 공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살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은, 어머니와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아요. 사실 어머니가 친어머니는 아니세요. 이제 2년 된 새어머니세요. 제가 필리핀에 살고 있어서 같이 오래 살아본 적은 없는데, 한두달 정도 같이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저를 싫어하신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둘이서 얘기로 풀어볼려고 한 적도 있는데, 시도했을 때마다 더 관계가 악화되고 요즘은 너무 사이가 안좋아요.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스물살이면 독립해야 되잖아요. 집에서 나오면 되지요.” 

 

“그런데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살고 있는데, 저는 정말 독립을 하고 싶어요. 저는 혼자 살고 싶은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를 너무 애 취급하시는 게 있어요.”

   

“지금 질문자가 재정적으로 독립했어요? 아니면 부모님이 도와주는 것으로 살고 있어요?”

 

“부모님이 돈을 보내주셔서 그 돈으로 살고 있어요.”

  

“부모님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살고 있는데 어떻게 독립을 해요? 독립하고 싶으면 먼저 재정적으로 자립을 해야지요. 질문자는 지금 필리핀에 있고, 아버지는 어디에 있어요?”

 

“아버지는 파퓨아뉴기니에서 사업하고 있고, 새어머니도 같이 계세요.”

     

“떨어져 있는데 갈등이 왜 있고 나쁠 게 뭐가 있어요?”

 

“앞으로 관계를 회복해야 될까? 아니면 저도 그냥 …” 

 

“부모님이 어떻게 했길래요? 지금 뚝 떨어져서 사는데 관계 회복할게 뭐가 있어요?”

 

“그냥 앞으로 관계에 있어서 고민이예요. 아무래도 그럴 기회가 오면은...” 

 

“질문자가 지금 도움을 얻고 살고 있다면서요? 도움을 얻고 살고 있으면 항상 ‘감사합니다’ 하면 되지요. 본인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질문자의 스폰서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스폰서라고 생각하면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청중들 웃음) 

 

“고마워요.”

 

“그래요. 고마우면 사모님한테도 잘 해야지요. 사모님한테 질문자가 잘못하니까 지금 이런 것이지요. 사모님이라고 생각하고 잘해요. 아버지는 스폰서이고, 엄마는 스폰서의 사모님이예요. 그러니 사모님한테 잘 하면 금방 해결이 돼요." (청중들 웃음) 

 


 

"아버지가 원래 생모인 엄마하고는 이혼했어요? 사별했어요?

 

“사별하셨어요.”

 

“그러면 이 어머니는 새어머니가 아니고 그냥 어머니예요. 새어머니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어머니’예요. 그런데 친어머니라 하더라도 내가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는 더이상 나를 도와 줄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스폰서예요. 스폰서로부터 지원을 계속 받을려고하면 스폰서한테 잘해야 될까요? 못해야 될까요?” 

 

“잘해야죠.”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스폰서라고 생각하고 깎듯이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관계를 개선하니 안하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어머니하고 둘이서 말로 풀려고 하지 말고, 스폰서에게 깎듯이 공손하게 대하면 저절로 풀려요. 스님 얘기를 듣고 본인의 소감을 얘기해 보세요.”

 

“저는 정말 사이가 좋았으면 했어요.”

 

“아니, ‘사이가 좋았으면’ 하는 그런 말로 안된다니까요? 스폰서라고 생각하고 깎듯이 예우를 갖추면 관계가 좋아진다니깐요. 요점은 결국에는 새어머니하고 관계가 좋아지고 싶다 이 말 아니예요?”

 

“그런 셈이지요.”

 

 

“요점은 스폰서라고 생각하고 사모님한테 깎듯이 예의를 갖추면 관계가 좋아져요. 만난지 2년밖에 안되었는데 그냥 말로서 관계를 좋게 하자 이런 것은 없어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더구나 어머니는 아버지를 좋아해서 결혼했을까요? 질문자를 좋아해서 결혼을 했을까요? 

  

“당연히 저희 아버지이죠.”

 

“그러면, 아무 관계도 없는 질문자가 붙어 있으니까 좋아할 리가 뭐가 있어요? (청중들 웃음) 자꾸 돈이나 가져가고 나쁘지요. 그런데 그것을 자꾸 말로 해결할려고 하니 그것이 어떻게 좋아지겠어요? 말로는 ‘어머니’ 하지만, 사장집 사모님 대하듯이 깎듯이 대하면 관계는 저절로 좋아져요.”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하고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는데 관계가 왜 나빠졌어요? 말을 안들었나 보네요?”

   

“제가 계속 공부를 잘 못해서 실망을 시키는 모습을 아버지한테 많이 보여드려서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그러니까 자기 남편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좋아할 리가 있나요?”

 

“네.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어머니가 ‘너가 아버지 힘들게 하면 용서 못한다’ 고 했어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라고 해야지요. 질문자한테는 아버지이지만, 그 엄마한테는 남편이잖아요. ‘사모님, 제가 남편을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모님, 제가 남편 돈을 계속 받아서 죄송합니다’ 어머니에게 이런 마음을 가져야지요. 말은 어머니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사모님 같이 대하세요. 그러면 관계가 금방 풀려요. 들은 소감을 말로 한 번 해봐요.”

 

“그런데 제가 걱정되는 것은 저도 어머님을 많이 싫어하게 될까봐요.”

 

“질문자도 어머니를 싫어할 수 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저게 어디서 굴러와서 남의 아버지를 데려가나?’ 이렇게 생각하지요. 질문자는 ‘아버지 빼앗겼다’ 생각하니 싫고, 그 여자는 ‘저게 어디서 우리 남편 돈을 계속 가져가고 걱정을 끼치나?’ 이렇게 생각해서 싫어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은 자연의 이치예요.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그 분은 우리 아버지의 부인이고, 아버지는 나를 지원해주는 스폰서이고, 그 분은 스폰서의 사모님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항상 깎듯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돈이 내 돈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나는 아버지 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돈을 자기 돈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이해가 상충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스무살 이전에는 괜찮은데, 이제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아버지 돈은 본인 돈이 아니예요. 결혼한 부인은 자기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질문자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 돈을 본인 돈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그래서 스님이 스폰서라고 그러는 거예요. 스폰서에게 후원을 받을려면 스폰서가 요구하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장학금을 계속 받겠지요. 원하는 정도로 공부를 하지 않든지 기대만큼 안하면 지원을 끊어버리겠지요. 그러니까 스폰서의 요구 조건을 잘 들어주어야지요. 그게 싫으면 지금이라도 경제적으로 딱 자립을 해버리고요. 본인 얘기 한 번 해봐요.”

 

“그러면 제가 자립하기 전까지는요?” 

 

“자립하기 전까지는 지원을 받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지원하는 사람이 고마워요? 안 고마워요? 고맙지요. 그러니 깎뜻이 예를 갖추어서 대하면 아무 문제가 안생겨요. 말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요. 알았지요?” 

 

“네, 잘 알겠습니다.” (경쾌한 목소리)

 

“어떤 사람이 돈을 백만원을 빌려가 놓고 말로 해결하려고 하면 기분이 나쁘겠지요? 돈을 갚든지, 아니면 사근사근하게 심부름을 잘 해주든지, 뭐 둘 중에 하나는 해야지요. 그러니까 사모님을 깎듯이 모셔요. 알았지요?” 

 

“네” 

  

“재혼을 했을 때 이것이 제일 큰 문제예요. 애들 생각에 아빠는 자기들 아빠이니까 ‘우리 아빠인데, 우리 아빠 돈을 왜 너가 마음대로 하냐?’ 이렇게 생각하고, 부인은 애들이 있든지 말든지 남편은 내 남편이니까 내 돈이지요. 그런데 ‘왜 애들이 자꾸 가지고 가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전혀 관점이 서로 달라요. 

 

그래서 스무살 밑으로는 아이들이 아버지로부터 보호받을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어요. 그러나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질문자는 아버지한테 더이상 지원받을 아무런 권리가 없어요. 이제는 딱 독립을 해야돼요. 그러니까 더이상 그 쪽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새어머니하고 관계를 해결할 필요도 없고, 그냥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관계를 딱 끊고 본인 인생을 살면 돼요. 그런데 지금 본인이 경제적으로 그럴 형편이 못되니까 좀 스폰서한테 사근사근하게 곱신곱신하게 해서 지원을 받고, 그 스폰서 부인인 사모님한테도 잘못 보이면 안돼잖아요. 

 


 

요즘 남자들은 부인한테 꼼짝을 못해요. 사회 분위기가 남자들이 여자 말을 다 듣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사모님한테 깎듯히 대해야 해요. 엄마를 넘어서서 사모님처럼 모셔야 돼요. 그래야 이 문제가 해결돼요. 요즘 남자들은 본인이 어떤 결정을 못해요. 남자들이 어쩌다가 이리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무 결정권이 없어요. 저도 몇 번 경험이 있는데 여자가 딱 얘기를 하니 저절로 돼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 어떤 문제가 있으면 남자하고 얘기 안할려고 그래요.(웃음) 허수아비예요. 그래서 사모님한테 잘해야 돼요. 내 아버지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아버지는 허수아비예요.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사모님을 잘 모셔야 해요. 그래야 지원을 받지요.”

 

“네” (아주 경쾌하게)

 

스님께서 ‘새어머니’가 아니라 ‘사모님’이라고 표현하는 순간부터 청중석에서는 ‘사모님’ 표현이 나올 때마다 박장대소가 터져나왔습니다. 같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서 마음이 이렇게 가벼워질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무거웠던 얼굴 표정에 웃음이 드리우고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학생에게 청중들도 격려의 박수를 크게 보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지금 이대로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안돼요. 지금이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 학생들이 많이 봉사를 하고 있는데,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시기가 인생에서 얼마나 될까요? 학생 때 밖에 없죠. 어른이 되어서 아무 일도 안하고 공부만 하면 밉상이지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하고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그저 이쁘기만 한 때가 학생 때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밥만 먹고 공부만 하는 이 시기를 만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게 좋아야 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은 직장 다니는 게 재미있어야 하고, 결혼한 사람은 결혼생활이 좋아야 해요. 저처럼 늙으면 늙은 것이 좋아야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게 좋아야 합니다. 저는 혼자 사니까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전세계를 돌아다녀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결혼해서 이렇게 돌아다니면 밉상이겠죠? 그러니까 같이 있으면 같이 있어서 좋고,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좋아야 합니다. 살아 있을 때는 삶을 만끽하고, 때가 되면 기꺼이 죽어줘야 돼요. 늘 주어진 상황이 좋음을 알아야 합니다. 평상심이 도입니다. 지금 이대로 좋아야 돼요. 필리핀에서 사는 게 좋아야 해요. 그렇게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시간 20분 동안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마닐라 교민들은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로비로 이동하여 책 사인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인을 해주시는 스님께 마닐라 교민 분들은 반가운 인사를 건냈고, 스님께서 세계 100회 강연을 건강히 잘 마치시길 모두들 응원해 주었습니다. 

 


 

다시 강연장으로 이동하여 오늘 강연을 위해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준 자원봉사자 모두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특히 필리핀에 유학을 와 있는 대학생들 20여명이 자원봉사 신청을 해서 주차 안내부터 무대 시설까지 팀별로 역할을 나누어 많은 일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정토회에서 활동하시는 교민 분들이 곳곳에서 큰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이번 강연을 총괄해준 윤경숙 필리핀정토회 총무님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하고 기념사진도 함께 찍었습니다. 

 


▲ 오늘 마닐라 강연 총괄을 맡아 수고해준 윤경숙 필리핀정토회 총무님  

 

자원봉사자 모두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단주를 손목에 걸어주시며 선물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스님께서 직접 주신 단주를 의미있게 여기며 감사해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매일 강연을 하다보니 몸이 많이 안좋다” 하시면서 “마음나누기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하세요” 라고 부탁하시고, 숙소로 바로 이동하셨습니다. 

 

행사장 뒷정리를 모두 마친 자원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마닐라 강연의 가장 큰 특징은 40대 50대 남자 분들이 자원봉사에 많이 참여해 주신 점입니다. 한 거사님은 “홍보 담당을 하면서 태풍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많은 분들이 왔다” 하시면서 “마닐라 강연 소식이 지역 신문에 기사도 나고, 또 오늘 아침에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카톡 메시지를 날려 보았다” 며 보람있어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강연을 준비할 때는 지금보다는 더 체계화된 초청리스트를 만들어서 사전 작업을 해보겠다”고 하빈다. 또 다른 거사님은 “욕심이 자꾸 생기더라” 면서 “우리끼리는 모든 객석을 다 채워보고 싶었는데 태풍 때문에 3분의1은 안 온 것 같다” 고 아쉬워 했습니다. 주부 봉사자 중에 한 분은 “사람 수를 채우기 보다는 스님의 법문들 듣고 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젊은 친구들이 질문도 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니 많이 대견스러웠다.”고 합니다. 또 한 분은 “기독교 신자인데 청년들이 많이 참여한 것을 보니까 참 좋았고, 정토회가 참 발전하는구나 느꼈다.”고 합니다. 또 한 분은 “젊은 친구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고맙고, 청년들이 불교대학도 들어서 마닐라 정토회에 청년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 묘덕 법사님과 함께한 마음나누기 

 

묘덕 법사님은 마음나누기를 마무리해 주시면서 “오늘 많은 분들이 오셔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죠? 봉사자 여러분들도 다들 뿌듯해 하시는 것 같아요. 이런 좋은 시간을 봉사자 여러분들이 만들어주셨어요” 라고 하시며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봉사자들의 땀과 정성으로 107번째 필리핀 마닐라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필리핀 세부에서 108번째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럼 세부에서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스님의하루 텔레그램 구독하기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읽고 댓글로 마음을 나눠보세요. 단, 욕설, 비방, 광고, 도배하는 댓글은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