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5번째 강연이 베트남 하노이(Hanoi)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캄코시티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묵은 스님 일행은 새벽 5시30분에 최말순 보살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새벽부터 요청 들어온 원교 교정 업무를 마치신 후 6시30분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강연을 준비해준 황영금 김재성 부부와 배한교님이 박주선님과 함께 새벽녘에 찾아와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사인한 책을 두 부부와 배한교님에게 선물하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분은 프놈펜 공항까지 스님 일행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 출발하는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리는 캄보디아 강연 준비 봉사자들 

출국 수속을 마치고 7시20분에 프놈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8시20분에 베트남 호치민 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 

오늘 스님께서는 호치민 공항을 경유하여 국내선을 타고 다시 하노이까지 가야 하는 일정입니다. 그래서 일단 호치민 공항에서 베트남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왔습니다. 공항에는 내일 호치민 강연 담당자인 최대현 유영아 부부가 나와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하노이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호치민 공항에서 3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최대현 유영아 부부가 공항 라운지 내의 음식점에서 쌀국수를 대접해 주셔서 감사히 먹고, 스님께서는 베트남에서 8년 동안 많은 경험을 해오신 최대현님과 베트남의 발전 상황과 교민사회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 하노이로 가기 위해 베트남 호치민 공항에 내린 스님 일행을 마중나온 최대현 유영아 부부 


▲ 베트남의 현황에 대해 안내해 주고 있는 최대현님 

최대현님은 어제 프놈펜 강연을 준비하고 차량지원을 해주신 최대룡님과 형제 사이인데, 최대룡님의 부인인 배한교님의 소개로 최대현님이 이번에 호치민 강연을 흔쾌히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하노이행 비행기를 타려고 국내선 출국장으로 이동했는데, 체크인 카운터에 도착하니 직원이 마감 시간이 끝났다고 해서 놀라 비행 시간을 다시 확인하니 비행기 시간이 갑자기 50분 앞당겨졌다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스님 일행은 비상 상황이 되었습니다. 카운터에 도착한 시간은 10시40분인데 비행기 출발시간은 원래 11시 50분인데 11시로 변경 되었습니다. 20분 만에 모든 수속을 밟고 탑승해야 하는 상황에 모두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11시에 스님 일행 모두가 비행기에 탑승하고 하노이행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저가항공사 비행기는 탑승객이 없을 경우 앞시간 대 비행기로 합승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 비행기 안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고 계신 스님 

우여곡절 끝에 오후1시30분에 무사히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게이트를 나오니 오늘 하노이 강연을 준비한 박미선님을 비롯한 혜명회 회원분들이 스님을 환영하는 푯말과 함께 스님 일행 모두에게 각각 꽃다발 하나씩을 준비해 열렬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한 분은 셀카봉을 준비해와서 꽃다발을 든 스님과 셀카를 찍었습니다. 


▲ 하노이 공항에 마중 나온 혜명회 회원들과 운전 봉사자 이병국님(맨 오른쪽)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면서 공항에서 이렇게 큰 환대를 받아 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정성 가득한 환영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곧바로 오늘 강연장과 숙소가 함께 있는 그랜드 프라자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베트남에 온지 15년이 되는 이병국님이 스님의 일행의 차량 운전을 해주셨습니다. 

베트남(Vietnam)은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라오스 및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남중국해에 면해 있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약 8700만명으로 세계에서 13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입니다. 수도는 하노이이며, 최대 도시는 호치민 시입니다.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가진 명목상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근세에는 프랑스 식민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후 베트남은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분단되어 싸우다가 1976년 통일을 한 후 전후 복구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 중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고, 1986년 베트남 공산당은 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시장 경제를 도입하였고, 2000년에는 대부분의 국가와 수교를 맺었습니다. 


▲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Hanoi)

하노이(Hanoi)는 베트남의 수도로, 홍 강 삼각주와 송코이 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2007년 통계자료 기준으로 340만명이라고 나와 있으나, 현지 교민 분들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1~2년 사이에 급격한 인구 유입이 이뤄지고 있어 벌써 800만명은 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로 6세기경부터 홍 강 삼각주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고, 이조(李朝)·진조(陳朝)·여조(黎朝) 등 베트남 역대 왕조는 이 곳에 수도를 두었고 원조(阮朝)는 안남의 후에를 왕도로 삼았으나 프랑스 통치 시대에는 1887년부터 1954년까지 식민지 기간에 이 곳에 통킹 지방의 정청(政廳)을 두어 행정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1945년부터는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고, 1954년에서 1976년까지 북베트남의 수도였고, 1976년 통일 후에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하노이는 홍 강의 오른쪽 편에 위치해 있으며, 호치민 시에서 1,760km 떨어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삼성에서 세운 세계 최대의 휴대폰 생산 공장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대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베트남 교민사회의 규모도 폭발적으로 커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하노이에만 약 3만명 정도의 교민이 살고 있습니다. 


▲ 오늘 강연장, 하노이 그랜드 플라자 호텔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강연 준비를 위해 도착한 혜명회 회원 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중을 나오신 모든 분들과 호텔 로비에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모두들 “일찍 봉사하러 나오니까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렸다”며 즐거워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스님은 짐을 풀고 저녁 강연을 위해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후 5시30분 대기실로 오신 스님은 하노이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오늘 강연 장소와 숙소를 후원해 주신 고상구 하노이 한인회 회장님, 박낙종 하노이 한국문화원 원장님, 김정인 코참(한국상공인연합) 회장님, 유경호 공사님, 신현갑 한인회 고문님 등 하노이 교민사회를 대표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다들 세계 115회 강연 일정을 듣고 스님의 건강을 많이 염려하셨고, 스님께서는 100회가 넘는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소회를 함께 나눠주셨습니다. 
 


오늘 강연은 그랜드 플라자 호텔 2층 밀레니엄 볼룸에서 열렸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오후 6시가 되어 스님께서 강연장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300여명이 넘는 하노이 교민들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스님께서 강연장에 들어오시자 모두들 열렬한 환영을 보내주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이 있기까지 수고해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베트남에 사시는 게 좋아요? 저는 2000년 1월1일에 베트남에 왔었습니다. 그리고 14년 만에 이곳에 왔는데 하노이가 많이 변했네요. 베트남에 2000년 이전에 오신 분 계세요? 그 때 저는 중국에서 북한 난민들을 돕고 있었는데, 난민들 중에서도 국군포로라든지 재일동포 자녀라든지 중국에서 도저히 보호할 수 없는 분들을 한국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하노이에서 중국 국경 쪽으로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해외 교포들이 살고 있는 전세계 지역을 다니면서 삶의 애환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8월26일에 유럽을 출발해서 북미주, 중남미, 오세아니아를 돌아 지금 동남아를 다니고 있는데요. 오늘 이렇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마련하고 후원해주신 한인회 회장님과 관계자 여러분들과, 지금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자원봉사를 해주고 계신 혜명회 회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후원해주신 분들과 자원봉사 해주신 분들을 위해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즉문즉설은 강연이 아닌 대화입니다.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그럼 누가 한번 주제를 던져보시죠. 이야기하고 싶은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하노이에는 현재 한국인이 약 3만명이 있다 보니 월 1회 정도 한인 사망사고가 발생을 합니다. 올해도 구정 1월1일 떡국을 먹고 있는데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떡국을 먹다 말고 중간에 불려갔습니다. 외국에서는 아는 분이던 모르는 분이던 시신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데요, 매번 그 시신을 보고 나면 몇 달 동안 밤에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 봉사를 계속 할 계획인데 시신을 보고도 무섭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지금 한국은 사상적으로나 연령별, 세대별로 여러가지 사회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국의 경제가 잘 발전해야 우리 교민들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 5명중 3명은 종교를 가지고 있고, 스님처럼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은데 왜 우리 사회는 늘 어려움에 직면할까요? 정치를 하는 분들이 좀 더 잘 행동하면 좋지 않을까요?”

“아들이 베트남에서 집을 얻어서 광고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꿈 얘기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처음 베트남에 와서 혼자 방에서 잠을 자는데 새벽에 5~6살 짜리 꼬마 세 명이 머리 옆에서 춤을 막 추는 거에요. 너무 깜짝 놀래서 깼는데 이게 무슨 꿈인가 궁금해서 며칠 동안 너무 신기하고 이상했는데. 마침 스님이 베트남에 오셔서 물어보려고요, 꿈 해몽 좀 해주세요.”




“저는 출장 때문에 하노이에 왔는데요. 스님을 카카오스토리로만 매일 뵙다가 오늘 직접 뵙네요. 제 주변에 주말 부부가 정말 많아요, 그리고 저도 결혼을 하더라도 주말 부부로 지낼 것 같습니다. 주말 부부인 제 친구를 보니깐 굉장히 힘들어 하던데, 이분들을 위해 위로의 한 말씀해주세요.”

“스님은 통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현재 남북관계는 긴장과 분쟁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데요. 통일의 방법 중 하나로 북한의 민심을 얻자라고 하셨는데, 통일이 왜 필요한지 스님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얼마 전부터 식생활을 채식으로 바꾸고 자연식으로 먹으려고 하는데요. 사실 쉽지가 않아요. 이상하게 보는 시선도 있고요, 집안에서는 그나마 어떻게든 하겠는데 여행을 가거나 나가게 되면 식생활을 맞추기가 참 쉽지가 않아요. 스님께서는 이곳 저곳 많이 다니시고 여행도 다니실 텐데 어떻게 음식을 맞춰서 드세요?”

“하노이에서 9년째 살고 있습니다.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지치고 힘들 때 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이 좀 필요한데 그걸 못하고 살아요. 그리고 남편에게도 좀 용기를 주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베트남에서 스스로 개척을 해나가는 게 지치고 힘이 듭니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아내와 두 명의 자녀는 호치민에서, 그리고 본인은 하노이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그동안 기리기 엄마가 된 여성 분들의 질문은 많았는데, 오랜만에 기러기 아빠가 된 남성 분의 질문이 있어서 함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결혼한지 8년째 되었고, 7살, 5살 아들 딸이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되고, 좋은 가장이 되고, 저희 가족을 더 잘 이끌 수 있을까요? 아내와 아이들은 호치민에서 지내고 있고, 저는 혼자 하노이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떤 공허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따로 살고 있으니까 그런 마음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그것도 모르는데 왜 장가를 갔어요? 그것을 아는 나도 장가를 안갔는데요.” (청중들 웃음)
 

 
“예, 맞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면서 공허함은 왜 생기는지 잘 모르겠어요.”
 
“가족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그런 생각을 자꾸 하면 앞으로 살기가 힘들어지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게 되지요. 그러니까 ‘가족을 위해서 내가 헌신한다, 희생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헌신한다, 희생한다’ 이런 것은 사명감이잖아요. 사명감을 가지면 어깨가 무거워요. 그러면 얼굴이 밝지 못해요. 그러니까 ‘누구를 위해서’ 이런 생각을 버리고요. 질문자 스스로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혼자 사는게 나아요? 아내와 함께 사는게 나아요? 본인한테는 어느 것이 나아요?”
 
“같이 살면 물론 좋지요.” 
  
“같이 사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요,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것이 질문자 본인한테 좋으냐? 같이 살든 떨어져서 살든 어쨌든 결혼해서 사는 것이 질문자한테 좋으냐는 거예요. 질문자는 어느 것이 더 좋아요? ‘결혼해서 사니 너무 너무 힘들다,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거예요? 안 그러면 ‘혼자 사는 것 보다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는 있어도 그래도 결혼한 것이 좀 나아요?” 
 
“종교에 귀의하지 않는 이상은 남자와 여자가 분명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요. 결혼한 것이 더 나아요? 혼자 사는 게 나아요? YES인지 NO인지만 분명히 얘기해 봐요.”
 
“제 입장에서는 결혼 생활은 당연히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아이들 없이 부부 둘이서만 사는 것이 나아요? 돈도 들고 힘도 들지만 그래도 아이 둘이 있는 것이 질문자에게 나아요?”
 
“후자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거죠.” 
 
“다른 얘기하지 마시고요. 질문자는 아이들 없이 부부 둘이서만 사는 것과 아이들이 있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본인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나요? 아이들이 없는 것이 도움이 되나요? 아이들이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생겼으니까 지금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있는 것이 낫죠.”
 
“저런 남자하고 사는 여자는 속이 터지겠어요. (청중들 웃음) 사람이 쌀과자처럼 좀 바싹바싹하지 못하고, 엿처럼 찐덕찐덕하게 그렇게 말을 하시네요. ‘아내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어떤 가장이 되고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이냐?’ 고 하는 사명감적인 얘기는 자기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요. 그런 성인군자 같은 생각 그만 하시고요. 본인은 속물에 찌든 한 인간이지요. 본인에 대해서 솔직하게 먼저 인정을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혼자 사는 것하고 아내하고 사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좋으냐 했을 때 결혼해서 사는 것이 낫다고 했고, 자식 없는 것하고 있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나은가 했을 때 자식이 있는 것이 낫다고 했어요. 물론 여기에는 자식이 애를 먹이는 것도 다 있지만, 플러스 마이너스 해보니까 51점이라서 1점이라도 낫다면, 질문자가 아내하고 사는 것이 본인한테 좋은 것이지 아내 좋으라고 질문자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예요. 자식 좋으라고 질문자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요. 자식이 있는 것이 본인한테 좋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가 좀 있지만 ‘당신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너희가 있어서 나는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질문자는 부인 때문에 본인의 인생을 희생하거나, 자식 때문에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해도 된다는 거예요. 항상 아이들한테도 ‘고맙다. 너희가 있어서 내가 행복하다’고 하고, 아내한테도 ’가끔 잔소리도 하지만, 당신이 있어서  내가 사는 재미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면, 저절로 좋은 가정, 좋은 남편이 되고, 저절로 좋은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질문자처럼 ‘내가 당신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 본인을 희생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오래하지 못해요.
 
사람이 참는 데는 한도가 있어요. 주로 몇 번 참아요? 삼세번이지요. 자기를 희생하면 남이 볼 때 좋아보이지, 자기가 오래 못 참아요. 그러면 회의가 들어요. ‘인생을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내가 왜 가정에 묶여가지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러면서 삶이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돼요. 그래서 결국에는 중간에 회의가 들어서 터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항상 ‘아내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있어서 내가 득을 본다’, ‘아이들이 있어서 내가 득을 본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저절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저절로 좋은 남편이 되지요.
 
‘아내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하겠느냐?’ 그런 쓰잘대기 없는 생각을 하지말야야 돼요. (청중들 웃음). 질문자가 뭐 남을 위해서 하기는 해요? 자기 좋으라고 하는 일이지요. 질문자는 들은 소감을 얘기한 번 해봐요.”
 
“여기 나와 계신 선배님들하고 가족분들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지요? 
 
“질문자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가끔 있지 많지는 않아요.” (청중들 웃음)”

“가족들을 위해서 열심히 해외에서 근무하시는 선배님들 더 노력해 주시고, 가족을 위해서… 화이팅 하십시오”
 
“무슨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요? 또 저런 소리 하네요. (청중들 웃음)
  


누구를 위해서 한다는 생각을 너무 하면 보상심리가 생깁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데 너는 나한테 이것 밖에 안하나?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데 너희들은 공부도 안하고 이러니?’ 이렇게 섭섭해지고 나중에는 자기 신세 한탄이 됩니다. 자꾸 누구를 위해서 산다고 내세우지 마세요.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두 부부가 악을 쓰고 싸우면서 아이 잘 되게 하려고 온갖 돈 들여서 아이들을 키우면 아이들이 나빠져요. 그러나 부부가 서로 행복하게 살면 아이들은 저절로 잘돼요. 공부를 못해도 나중에 다 잘돼요. 그러니까 아이들 갖고 부부가 싸우는 것은 바보 짓이예요. 부부가 화목하게 살면 그것이 아빠 역할이 되고, 엄마 역할이 되는 것이예요.
 
‘아내가 있어서 참 내가 행복하다. 그래도 한 달에 한번 당신 손이라도 잡아보니 내가 얼마나 좋아?’ 이렇게 해보세요. 사실은 스님은 한달에 한번은 고사하고 1년에 한번도 잡아볼 손이 없는데요. (청중들 웃음) 




질문자는 그래도 한달에 한번 손이라도 잡아보니까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내 귀한 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결혼을 했다는 것은 같이 살려고 결혼했어요? 떨어져 살려고 결혼했어요? 같이 살려고 결혼했으니 가능하면 부부가 같이 살면 좋지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같이 못살 형편이 된다면, 그것도 서로 합의하면 되지만, 그러나 가능하면 같이 사는 것이 좋아요.
 
다시 말하면 호치민에서 가족이 같이 살면서 수입이 300만원이고, 여기와서 혼자 살면서 수입이 500만원이다 그러면 2백만원 포기하고 같이 사는 것이 스님이 볼 때는 훨씬 낫다는 거예요. 호치민에서는 아이들을 좋은 국제학교에 보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아직 시설이 안되죠. 그래도 떨어져 살면서 아이들을 아무리 좋은 학교에 보내봐야 아이들은 나빠져요. 오히려 아이들을 여기서 아무 학교나 보내도 두 부부가 화목하게 살면 훨씬 아이들한테 장래적으로 좋다는 거예요. 
 
절대로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을하면 안 돼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면 자식이 나빠집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희생하면 부모는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크고, 거는 기대가 커면 자식은 부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젊은이가 활기가 없어져요. 항상 부모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고요. 이런 남자는 결혼해 놓으면 부모 눈치를 너무 봐요. 부모에게 효도해야 된다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도 한 남자로서 별 볼 일 없어요. 
 
그래서 항상 우리 아이는 부모의 짐을 지지 않도록 ‘너희들 맘껏 살아라, 이 세상에 나가서 마음껏 살아라. 혼자 살아도 좋고, 결혼해도 좋고, 흑인하고 결혼해도 좋고, 장애인하고 결혼해도 좋고, 너 뜻대로, 너 원하는대로 살아라. 엄마는 너를 지지한다.’ 이렇게 탁 풀어서 황야에 내 보내줘야 아이들이 활기차게 살지, 무슨 강아지처럼 끈을 묶어가지고 이리로 가면 안되고, 저리로 가도 안되고, 그러니까 아이가 강아지 밖에 안돼잖아요. (청중들 웃음)
 


여러분들은 자식을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본인 욕망을 아이에게 실현하는 것이지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예요. 헤어져 살면서 아이를 위한다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예요. 부부가 같이 살기 귀찮으면 아이 핑계대고 미국가서 살고 그래요. 알았어요? 그러니까 그런 얄팍한 생각하지 말고 딱 결혼했으면 부부가 중심을 딱 잡으세요. 아이라는 것은 아무곳에서나 키워도 잘 자라요. 우리가 어렸을 때 언제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살았아요? 그냥 마당에 내어놓으면 닭똥 주워먹고 그냥 사는 거지요. (청중들 웃음). 보리밭 메는데 그냥 밭구석에 놓아두고 사는 거고요. 뭐 다람쥐도 자기 새끼 키우고 개도 자기 새끼를 키우는데, 사람이 자기 자식 키우는게 뭐 그리 힘들어요?
 
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너무 괴롭다 하면 자식은 잘못됩니다. 왜냐하면 조그만 아이 때부터 부모를 괴롭히니까 부모에게 불효하잖아요. ‘너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하면 조그만 아기 때부터 아기가 그냥 효자잖아요. 부모를 즐겁게 만들어 주잖아요. 그래서 조금 힘이 들어도 아이 키우는 것을 항상 즐겁게 생각하고, 좋게 생각해요. 부담으로 느끼면 안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저놈의 자식, 없었으면 얼마나 좋겠냐? 저놈의 자식만 없었다면...’ 이런 생각들 많이 하시죠. 그러다 자식이 갑자기 죽고나면 또 울고불고 난리예요. 
 
이번에 세월호에서 아이가 죽은 어는 한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와 외식도 한 번 못해 봤다는 거예요. 아이들 좋은 대학 보내고, 공부 시킬려고 돈 번다고요. 아이와 대화도 한번 제대로 안 해보고, 밥도 한끼 안먹고, 죽어라고 돈 벌어서 애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아이가 죽고 나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밥이라도 한끼 먹을 걸, 하루 소풍이라도 갈 걸...’ 이러잖아요. 그런 후회되는 인생을 살 필요가 없잖아요.” 
 
답변을 마치니 청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재미있었어요?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않으면 끝나고 나서 허전해요. 유익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으면 지금 지루해요. 그래서 재미도 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오늘 강연이 재미도 있고 자기 삶에 유익하기도 했어요? (청중들 "네") 
 
재미있다는 것은 지금 좋다는 뜻이고, 유익하다는 것은 나중에도 좋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은 좋은데 나중에 손해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생이 공부 안하고 놀면 지금은 좋은데 나중에는 손해가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 좋고 나중에 손해가 되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죽기 살기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중을 위해서 지금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다가 내일 죽어버리면 얼마나 억울해요? 그래서 우리는 나중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도 안되고 지금을 위해서 미래를 희생해도 안되요. 그래서 항상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합니다. 



두 번째, 나한테는 이익인데 저 사람한테는 손해가 되면 안돼요. 나는 좋은데 저 사람한테는 나쁘다면 이 일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즐거움이 지속될 때 행복이라고 합니다. 쾌락은 순간적인 즐거움이지만 행복은 그 즐거움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나는 좋은데 남한테는 해로운 것은 이 좋음이 지속될 수가 없어요. 또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사람도 이 희생을 오래 지속할 수 없어요. 참는 것은 결국 터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남을 희생해도 안되고,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도 안돼요. 즉,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진리는 네 가지가 갖춰져야 합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이여야 합니다. 진리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돼요. 이 진리에 근접하면 삶이 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정리 말씀까지 하고 나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흘렀습니다. 긴 시간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다시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집니다. 



곧바로 책 사인회가 열리는 로비로 가서 강연장을 찾은 한분 한분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늘 강연 듣고 큰 힘을 얻고 갑니다” 라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행사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 모두가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을 했습니다. 


▲ 하노이 강연을 후원해준 한인회 관계자 분들과 혜명회 회원 분들

특히 강연 총괄 책임을 맡고 모든 실무들을 하나씩 챙겨 준 혜명회 박미선 회장님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하고 스님과 기념촬영을 한번 더 했습니다. 함께한 봉사자들도 “가장 수고가 많았던 사람”이라며 이 모습을 지켜보며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 하노이 강연 총괄 책임을 맡아 준 박미선님 

그리고 봉사자 한분 한분에게 선물로 한국에서 가져온 단주를 손목에 직접 끼워주고 나서 “계속 강연을 다니다보니 몸이 좋지 않아서 마음 나누기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해주세요”라고 부탁하고 스님께서는 숙소로 올라가셨습니다. 


▲ 스님께 단주를 선물받고 있는 봉사자들


▲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나시는 스님

행사장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하노이 한인회에서 후원하고 혜명회에서 주축이 되어 준비해 주었습니다. 마음나누기는 주로 혜명회 회원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어떤 분은 “유튜브로만 보는 것보다 직접 강연을 들어보니 훨씬 생생하고 느낌이 달랐다”고 하고, 한 분은 “식당을 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야단을 많이 쳤는데, 오늘 스님 법문을 듣고 나니 내일부터는 다른 표정으로 대해줘야겠다 싶었다”고 하고, 한 분은 “6년 동안 하노이에서 생활했는데, 하노이는 교회가 많아서 불자라고 말하기가 늘 위축되었는데 오늘 스님께서 이 먼 곳까지 오셔서 너무 감격스럽다” 면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 묘덕 법사님과 함께 하는 마음나누기 시간

그리고 한 분은 “공항 마중팀을 했는데 스님과 단독으로 사진을 찍어서 너무 좋았고, 지금 10개월 아들을 둔 아이 엄마인데 스님 법문을 들었으니 집에 가서 아이에게 좋은 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이 너무 좋아서 그동안 다운받아 두었던 즉문즉설 동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분도 있었고, “이 먼 베트남에서 정토회와 법륜 스님을 만나서 너무나 기쁘고, 이 머나먼 하노이 사람들에게 좋은 법문을 선물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은 “법륜 스님 강연을 준비하기로 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두가 내 일처럼 오늘 강연을 준비해 왔다” 면서 “법당 하나 없는 혜명회이지만 법륜 스님 덕분에 더욱 단합할 수 있어 기쁘다”고 합니다. 


▲ 마음나누기 하고 있는 하노이 강연 봉사자들

혜명회 회장 박미선님은 오늘 강연을 총괄해주신 분인데 “생각이 다른 상대에게 맞춰나가는 경험을 통해서 내가 더 커지는 느낌이 들었고, 정말 감사한 것은 이 강연을 준비하면서 살이 쭉 빠졌다는 겁니다” 라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스님 법문이 스폰지처럼 제 가슴에 스며들었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어서 너무 큰 행복을 얻어간다” 며 기뻐했습니다. 또 한 분은 “스님이 강연장에 들어오는 순간 눈물이 났다”면서 너무 감사해 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105번째 베트남 하노이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베트남의 최대 도시 호치민에서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호치민에서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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