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1회째 강연이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인구가 약 2,500만 명으로 다민족 국가입니다. 여러 종교를 축으로 각각의 국민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구의 약 50%는 말레이인인데 이들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릅니다. 약 25%는 말레이시아 화교, 중국계 말레이인 등으로 불리는 화교들입니다.대부분은 불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르며 광동어 등의 중국어 방언을 씁니다. 또다른 집단은 인구의 약 8%를 차지하는 인도계로 대부분은 힌두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릅니다.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각각의 지역 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말레이시아만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 

콰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1942년 1월 11일에 일본군이 쿠알라룸푸르를 점령하여 44개월 동안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쿠알라룸푸르는 1990년대 아시아 경제 성장 붐을 타고 연 10% 대의 성장을 했습니다. 활기 없던 식민지 도시였던 쿠알라룸푸르에는 고층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차고, 진보한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발전 계획 없이 커진 도심의 대부분의 도로는 비좁고, 복잡하며, 정체가 매우 심한 것 같았습니다. 한국 교민은 말레이시아 전체에 약 1만 5천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 콰알라룸푸르의 상징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건물이자 세 번째로 높은 건물입니다. 강연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지나갔습니다. 

오전7시 싱가포르 YMCA 숙소에 한인여성회 회장님을 비롯한 회원 분들과 박기태 영사님이 도시락을 들고 찾아와 숙소 로비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8시 무렵 싱가포르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한인여성회와 박기태 영사님은 공항까지 무사히 스님 일행을 배웅해 주셔서 공항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전10시 싱가포르를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11시30분 말레이시아 콰알라룸푸르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수속을 밟고 나왔지만 게이트에 아무도 마중을 나온 분이 없어 스님 일행은 잠시 당황했습니다. 게이트에서 터미널 출입문까지 왕복하며 마중 나오기로 한 분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최초에 스님 일행이 나왔던 출구 앞으로 가서 1시간 정도를 기다리며 강연 담당자와 연락을 시도하고, 희망세상만들기 주황색 티셔츠를 들고 스님과 함께 공항에 서 있으면서 강연 담당자가 우리를 빨리 발견하기를 기다렸습니다. 


▲ 희망세상 티셔츠를 들고 강연 준비 담당자를 기다리는 스님 일행

오늘 공항 마중을 나오기로 한 분들은 강연 주관 단체인 반야원 회원분들인데, 연락이 닿게 되어 원인을 알아보니 비행기 편명을 착각해 다른 공항 터미널에 가 계셨던 것입니다. 결국 공항 대기 1시간 만에 반야원 회원분들과 감격의 조회를 했습니다. 정은강 회장님을 비롯한 반야원 회원 분들은 스님을 뵙자마자 거듭 머리를 숙이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며 몸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괜찮다” 며 마음을 계속 달래주셨지만, 모두들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다들 식은 땀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오후2시 무렵 공항에서 무사히 한국 사찰인 ‘반야원’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법당의 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한 후 반야원 회원들과도 삼배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식사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신 후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연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쐬었는지 스님께서는 감기 기운이 심해져 반야원 법당 한쪽 방에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후 5시 30분에 반야원을 출발해 오늘 강연이 열리는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6시 20분부터는 주 콰알라룸푸르 대사관의 조병제 대사님이 다담 초대를 하셔서 대사관 관저에서 지역 인사 분들과 간단한 다담 및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 스님을 반갑해 맞이해 주신 대사님

대사님은 “인터넷으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많이 읽어보았다”고 하시면서 스님께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게 된 계기와 미국에서 외국인 강연도 많이 하셨는데 외국인들은 주로 어떤 질문을 하는지 등을 물어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며 일어났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말씀해 주셔서 모두들 관심있게 경청했습니다. 대사님은 스님의 115회 연속 강연에 대해 무척 놀라워하시면서 스님께서 마지막까지 무사히 강연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해 주셨습니다. 




대사님 부부를 비롯하여 함께 자리한 유선규 한인회장님, 윤금주 부회장님, 한국국제학교 권병화 이사장님, 말레이시아 관광청 이진복 고문님, 대사관 윤창렬 공사님, 최용규 영사님, 그리고 반야원에서 정은강 회장님께 인생수업 책과 새로운 백년 책을 사인해서 선물해 드리고, 대사관 입구에서 다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오늘 강연이 열리는 대사관 강당으로 대사님과 함께 이동하셨습니다. 




▲ 오늘 강연장, 주 콰알라룸푸르 한국 대사관 강당 

7시가 되자 오늘이 101번째 강연임을 알리는 사회자의 안내가 나가고, 조병제 대사님과 권병화 한국국제학교 이사장님의 환영 인사말씀이 있은 후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콰알라룸푸르 강연에는 300여명이 자리해 빈 자리 없이 꽉 찼고, 강연장 뒤편에서 서서 강연을 들으셔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이른 저녁에 강연을 시작한 관계로 저녁을 드시고 오셨는지 청중들에게 물어보시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콰알라룸푸르에 오늘 처음 왔습니다. 다들 잘 살고 계세요? 저는 어제 저녁에 싱가포르에서 강연을 하고 오늘 낮에 콰알라룸푸르에 도착했고요. 조금 전에 대사님과 얘기 나누면서 김밥을 먹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다들 하시고 오셨어요? 여러분들은 아직 저녁을 못 드신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육신을 위한 식사는 그동안 많이 했으니까 오늘은 우리들의 정신, 마음, 영혼을 위한 양식을 먹어보도록 합시다.“   



강연 전에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서 확인해 본 결과, 대부분 유튜브와 팟캐스트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매일 접하고 있으신 분들이 많아 즉문즉설에 대한 설명은 짧게 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저희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길을 갈 때도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혹은 우리가 가는 궁극적 길을 알 때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와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면 불교를 전할 수 있을까요? 나는 불교가 좋은데,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독교 신자입니다. 우연히 스님을 알게되고,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통해 인생관과 신앙관에도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스님 말씀에 자녀가 스무 살이 넘어가면 독립된 인격체이니 정을 떼라 하시는데, 구체적 문제 앞에 서면, 좋게 조언하려는 것이 나중에는 싸움으로 끝납니다. 예전에는 제가 윽박질러서 결국 이겼는데, 지금은 제가 울면서 끝이 납니다. 조언과 간섭 사이에서, 조언을 하고 싶으나 결국은 간섭인 것 같습니다. 중도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기독교에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왔는데, 불법을 좀 더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20대 때는 힘들어도,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30대에는 스트레스도 없고 사는 것은 편안한데,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2시간 30분 동안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자아실현과 가정의 행복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남편 분과의 문답에 이어서 아내와의 문답이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청중들의 의견까지 수렴하는 배심원 판결까지 갔고, 최종적으로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조언도 들려주셨습니다. 이쪽 저쪽 상대편의 입장까지 모두 고려해보는 즉문즉설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만 하며 살다가, 5년 전에 아이가 많이 아팠던 것을 계기로 쿠알라룸푸르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 와서는 제 일이나 개인적인 자아실현 등을 모두 포기하고, 아이만 돌보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려면 한국으로 가야 합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편하게 애들 잘 키우고 싶어 왔고, 아직 10년은 아이들을 더 키우고 아버지로서 살아야하는데, 개인적인 자아실현 등을 이유로 몇 년간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제가 원하는 일을 하는게 맞는지,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스님의 경우를 가지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질문자의 경우를 가지고 얘기하면 잘 못 알아 들을 수도 있으니까요. 남의 경우를 듣고 얘기를 해보면 판단이 빠르잖아요. 그죠? 그러면 스님이 지금까지 승려생활 사십 몇년을 해왔는데 갑자기 예쁜 여자가 나타나서 결혼을 요청했어요. 나도 마음이 움직여서 ’죽기 전에 결혼을 한번 해볼까?’ 그래도 이제까지 승려생활을 해왔는데 ‘지금 늙어가지고 무슨 짓인가?’ 이러면서 스님이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고민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질문자에게 상의하면 질문자는 어떻게 할래요?  그냥 스님이 질문자에게 상담한다고 생각하고 본인 생각대로 한번 얘기해봐요.” 
 
“둘 중에 저질렀을 때 나중에 후회가 덜할 것을 골라서 하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본인이 볼 때 어느 것이 후회를 덜 할 것 같아요?”
 
“결혼하는거요.” (청중들 웃음 )
 
“질문자는 40년 승려생활을 안했으니깐 답이 금방 나왔는데요. 40년 이상 승려생활을 한 사람한테는 그렇게 답이 금방 나오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리고 만약에 이런 문제를 가지고 혼자서 고민할 때 여기 청중들한테 조언을 구해봅시다. ‘결혼 한 번 해보세요. 승려생활 40년 그거 뭐 중요해요?’ 하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그냥 마 참으세요’ 하는 분 손 들어봐요. 자, 이것 봐요. 차이가 나지요. 나중에 손 든 사람은 주로 불교신자일 거예요. (청중들 웃음) 




그러면 또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봐요. 스님이 승려생활을 30년 했는데 저희 부모님이 ‘너 결혼해라’ 이렇게 얘기해요. 그럴 때 제가 안하겠다고 하니까 ‘그럼 너 나 죽는꼴 보고싶니? 만약에 너 안나오면 나 그냥 약 먹고 죽겠다’ 이렇게 저한테 문제제기를 했어요. 이렇게 할 때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승려생활을 하면 부모가 돌아가실 것 같고, 부모 돌아가신다고 해서 결혼을 해버리면 내가 추구하던 꿈이 다 없어질 것 같아요. 이럴 때 질문자는 어떤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굉장한 딜레마예요. 여러분들은 세속적인 딜레마가 있지만 우리도 딜레마가 있어요. 어떨까요? 질문자 얘기 한번 해봐요.”
 
“몰래 결혼을 하고 승려생활을 하겠습니다.” (청중들 박장대소 웃음) 
 


“양다리 걸쳐라 그말이네요. 자 이런 얘기를 들어보면, 스님들 중에 비공식적으로 결혼해서 사는 소위 은처승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 들었죠? 그런 분들 이해되요? 안되요? 여러분들 앞으로 이런 스님을 욕하지 마세요. 질문자 얘기처럼 어머니는 안 돌아가시게 해야하고, 승려생활도 해야하고 하니까, 그럼 비공식적으로 결혼을 해서 부모님부터 우선 살려놓고 보자 이런 아이디어를 내잖아요. 그러니 그런 은처승 중에는 이런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예요. 또 아까 앞의 경우처럼 한번 결혼해봐야겠다 한다면 유명한 스님이 속퇴해서 결혼했다 할 때 함부로 욕하면 안되요. 그 사람도 또 그런 고뇌가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솔직하게 살기 위해서 출가해서 사는데, 그 은처승은 숨어서 들통날까봐 늘 조마조마하면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살면서 승려 생활을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우리가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남으로부터 훌륭한 스님이라는 소리도 듣고 부모님도 모시고 살지만, 결혼했다는 것이 폭로가 되면 내 인생 망신 사잖아요? 그렇게 불안, 초조하게 살 필요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이런 삶이 앞에서 솔직하게 승복 벗고 나가서 결혼하는 것보다 사실은 더 불행을 자초할 가능성이 있잖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결론 내리는 것을 보면  지금 본인 문제를  결론내릴 때도 좀 어렵겠어요. (청중들 웃음) 스님이 왜 물어봤느냐 하면 질문자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는 문제이거든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나이도 얼마 안되는데 아이가 아프다고 은퇴를 왜 하느냐? 이것부터 잘못 선택한 거예요. 아이한테 시간을 좀 더 많이 투자하면 되지, 은퇴를 해가지고 완전히 인간 관계를 끊고 가정일에만 집중하겠다 이런 선택은 너무 치우쳤다는 거죠. 그 전에는 너무 일에 치우쳐 가지고 가정이고 뭐고 그저 돈버는 데만 집중하다가 아이가 덜컹 아프다고 하니 ‘아이고 내가 헛살았구나’ 해가지고 이번에는 일을 확 버리고 아이하고 같이 산다고 여기와서 아이 하고만 붙어 있잖아요. 돈 버는게 극단이면 여기 온 이 선택도 극단이 되는 거예요. 또 이렇게 살다보니 질문자는 아직 나이도 젊은데 세상하고 완전히 단절하고 사니깐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자식이나 아내를 위해서 나를 완전히 희생하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나도 내 인생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기회가 오니까 또 저쪽으로 갈려고 그러잖아요. 그럼 그렇게 해서 자기 일을 성취하다가 아이가 덜렁 죽어버리거나 아내가 ‘당신은 약속을 안 지킨다’고 하면서 이혼을 요청하면 질문자는 어떻게 할래요?” 
 
“지금 저의 집사람이 여기에 와 있어요.” 
 
“어떻게 할래요? 집사람 여기 있는 것 따지지 말고요. ‘나는 이 길을 가야하니 이혼해 달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딱 결심이 섰어요?” 
 
“아니요.”
 
“그런데 그렇게 요구하면 어떻게 할래요? 그러니까 이것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을 해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고 자꾸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중도라는 것은 극단에 치우쳐서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 이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 전의 질문자도 간섭을 해야 하느냐 외면을 해야 하느냐 이렇게 하는 것이 극단이란 말이예요. 간섭도 하지말고 외면도 하지말고. 집착을 안하면 이 두 모습이 다 극복이 돼요. 간섭도 안하고 외면도 안하게 돼요. 간섭하고 외면하는 것은 정반대인데 사실은 같은 거예요. 그래서 속박을 받는 거에요. 이것하면 저게 문제이고 저거하면 이게 문제이고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사업에도 한번 집중해 보았고 가정에도 집중해 보았는데 이것은 이것대로 문제고, 저건 저것대로 문제인 거예요. 사업에만 집중할 때는 내 인생은 되는데 가정의 가치를 훼손하고, 가정에만 집중하니까 가정의 가치는 되는데 내 인생이 훼손되고요. 그러니 이 둘 다가 아니구나. 그러면 여기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은 뭘까? 자기 일도 하고 가정에도 충실한 그런 일을 해야 되겠지요. 사고가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안 돼요. 지금 사고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거예요.
 


아까처럼 은처승, 결혼도 하고 승려생활도 하고, 이런 방식을 욕심이라고 해요. 이것은 중도가 아니고 욕심이예요. 둘 다를 잡을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내 인생을 실현해야 되겠다 딱 결정을 하게 되면, 아내가 이혼하겠다 해도 이 길을 갈 것이다, 아이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결심을 해야 돼요. 즉 내가 승려생활을 할려면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돌아가시면 장례는 치뤄드려야지, 이 정도로 생각해야 돼요. 굉장히 독하죠? 이렇게 해야 이 길을 갈 수 있어요. 

그 다음에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결론을 내면 그 사십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면서의 명예 이런 것들은 다 포기를 해야 해요. 움켜쥘려면 안되요. ‘신도여러분, 그동안 저를 지지해줘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수준이 여기까지 입니다. 저도 이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 제가 승려생활을 하면서 시건방을 떨었다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고 그냥 결혼생활로 돌아가서 그냥 평범한 신자로 돌아가주면 됩니다. 그렇게 질문자가 선택을 해야 돼요. 그러면 신자로 돌아가도 승려로서 내가 가진 경험을 승려로서가 아닌 신자로서 주위에 전하면 승려못지 않은 역할을 할 수가 있어요. 또 승려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내가 어머니를 위해서 천도재도 지낼수 있고 장례도 치뤄줄 수 있고 할 게 많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회사 일을 결정하면 가족의 문제에 대해서 포기해야 돼요. 두 개를 다 움켜쥘려면 은처승의 길을 가게 되죠. 그러면 양쪽 다 망해요. 그러니까 가족하고 의논해서 하는 것이 제일 좋지요. 그런데 지금 그 일을 할려면 가족을 여기에 두고 가야해요? 데리고 가야해요?“ 
 
“가족을 여기 두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예요. 그건 곧 후회할 일이예요. 가족하고 같이 안 살려면 자기가 이혼을 해서 부인이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지요. 무슨 그런 해괴한 생각을 해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돌아갈려면 부인하고 의논해서 아이들을 다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가야 돼요. 아이들은 여기 남아있고 나만 들어가는 것은 아까 은처승 길처럼 양쪽을 다 쥘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인하고 의논해서 아이들 같이 데리고 한국에 들어가서 내 기회를 잡되 지금까지처럼 집을 버리는 행동을 하지 말고 항상 가정을 중요시하면서 회사 일을 하는 기회를 잡고,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아이나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기회는 내 것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제일 좋은 것은 부인하고, 아이들하고 의논하는 거예요. 그런데 ‘너는 여기 있고 나는 가고’ 이런 선택을 하면 안 돼요. 이것은 양쪽을 다 쥘려는 욕심이예요. 그러니까 ‘이런 기회가 왔는데 어때요?’, ‘아, 여보, 당신 한번 해보세요. 우리 같이 살면서 한번 해보자’ 그러면 돌아가고, ‘여보, 아무리 좋아도 우린 그렇게 못해요’ 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제안이왔다고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거기에는 아무 미련을 갖지말고 버리고 나중에라도 부인한테 ‘그 좋은 기회가 왔는데 너희들 때문에 내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요. 그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낚시밥이고 쥐약이예요. 그것은 버리고, 여기 있으면서 사람하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살지말고 여기서 가정을 이루면서 여기 나름대로 직업을 가지고 직장을 가지고 이렇게 한인회 활동도 하고 이렇게 생활을 하면 돼요. 
 
부인이 여기에 왔다니까 한번 얘기를 들어보죠. 그냥 얘기해봐요. 괜찮아요.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고요.” (청중들 박수)
 
“네. 저희 신랑이 그 얘기를 처음 했을 때, 저는 아이들과 남고 신랑 혼자 가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저희 신랑이랑 얘기해보고 결정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안 돼요. 신랑은 가고 나는 여기에 있는 거요. 남편이 군대를 갔다. 남편이 전쟁에 나갔다. 남편이 한 30년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동행하기가 불가능하잖아요. 그죠? 이럴 때는 떨어져서 사는 것도 어쩔수 없기 때문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인데, 돈벌이가 더 잘된다고 아내 남겨놓고 간다든지, 돈벌이가 더 잘 된다고 남편보고 가서 돈 좀 벌어오라고 하는 이것은 인생의 제일의 가치가 돈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돈의 노예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가정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우리는 결혼을 했으니까 함께 살아야 된다, 이게 딱 첫째 원칙이고, 그런데 내가 여기 살아야 되고, 자녀가 이런 문제가 있다면 남편은 나한테 온 기회라고 다 기회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스님한테 예쁜 여자에게서 청혼이 들어왔다면 그것이 기회가 아니고 쥐약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인은 지금 어때요? ‘남편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내가 한국에 따라가서 살면서 한번 같이 해보자’ 이런 생각이 있어요?” 
 
“없어요. 우리 신랑은 한국에 가서 좋은 일 하고 저는 여기서 아이들 잘 키우고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해요.” 
 
“별로 같이 살고 싶지가 않군요. (청중들 웃음) ‘너는 돈이나 벌어 ``다 주면 된다, 너 할일이 뭐고? 돈이나 벌어다 주면 되지’ 이 얘기네요. ‘나 여기서 생활할 돈만 보내주면 너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 지금 이 얘기네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그래요. 저 인간은 돈만 벌어다 주면 돼요. 심심한데 한달에 한번씩 와서 그냥 나를 외롭지 않게만 해주면 된다’ 이 얘기 맞죠? 아니예요?”
 
“같이 살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저희 신랑이 지금까지 여기서 살면서 많이 힘들어 하는 부분도 제가 알기 때문에 서로 각자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신랑이 저희랑 같이 여기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그래요. 그러면 신랑이 큰 돈 안 벌어도 되고 작은 돈 벌어도 되고, 내가 예를 들어 신랑이 한국에 가면 한달에 천만원 벌고, 여기 있으면 한 달에 이백만원 밖에 못번다고 하면, ‘너 천만원 벌어서 나한테 팔백만원 보내주고 너하고 떨어져 살아도 좋다.’ 이런 가치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같이 살면서 이백만원 밖에 못 벌면 집이 조금 작아도 괜찮고 먹는게 좀 작아도 괜찮으니 우리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이예요?”
 
“남편이랑 같이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너는 가라’ 이런 소리는 하면 안되지요.  ‘너는 가라’ 이 소리는 ‘너 돈이나 벌어 오너라’ 이 소리와 똑같아요. 그러니 솔직해야 돼요. 그러니 ‘여보, 당신이 가서 출세하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좋은데 그게 나한테는 행복은 아니예요. 당신한테 행복이라고 당신이 선택하면 어쩔 수 없지만은 나한테는 행복이 아니예요. 돈을 조금 적게 벌어도 내가 감내 할께요.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기꺼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남편에게 이런 기회가 왔으니까 ‘여보, 여기도 좋지만은 돌아가서 당신 이상을 한번 실현해봐요. 내가 가서 살겠어요.’ 이렇게 딱 자발적 포기를 하든지요. 안 그러면 내 의사를 좀 더 분명히 얘기해요. 이렇게 어중간하게 타협하면 안되요. 지금처럼 ‘당신 좋다니 당신 좋은대로 살고 나는 나 좋은대로 살고’ 이렇게 할 때는 이미 결혼 생활의 절반은 금이 간 거예요. 

그러면 남자가 한국 가서 돈 벌고 지위도 높아지고, 그러다가 외로우면 여자가 생길까요? 안생길까요? 남자가 바람핀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부인과 같이 오밀조밀 재미있게 살 때는 여자가 오더라도 한 눈이 안팔아지는데, 이렇게 떨어져서 오래 살고 있는데 외로우면 사람 생각이 바뀐다는 거요. 자기도 옆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지나가면서 눈독 들이는 사람이 생길까요? 안생길까요? (청중들 웃음) 



따로 살면 반드시 파탄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 때 보다는 일단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분명히 해서 본인이 선택을 해야해요. 남편의 꿈을 조금 키워주고 자기도 같이 살려면 자기가 여기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자기가 여기 생활과 아이들이 더 중요하다면 남편에게 그것을 확실하게 얘기를 하세요. ‘갈려면 가라’ 이렇게 얘기를 하지 말고요. 

각자가 모두 나는 여기 죽어도 있어야 되고, 죽어도 가야 되고 이럴 때는 위험이 높아진다는 거예요. 헤어질 위험이 높아질 각오를 해야 됩니다. 오늘 집에 가서 한번 협의해 보시겠어요? 오늘 스님하고 얘기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소감을 한번 얘기해봐요.” 
 
“오늘 밤에 다시 한번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보고요. 좀 더 진중하게 생각을 해볼께요. 저도 신랑이랑 가족이랑 같이 말레시아에서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가장 크구요. 잘 알겠습니다.”
 
“어떤 선택이 좋으냐 이런 것은 없습니다. 선택은 3가지가 있는데, 그 3가지 선택에 따르는 각각의 결과가 이미 눈에 보입니다. 나중에 후회하면 안된다는 거예요.  감수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감수를 안할려고 하니 어느 것이 나을까 자꾸 고민을 하게 돼요. 고민을 할 필요는 없어요. 침을 딱 튀겨서 아무거나 선택해도 돼요. 돈을 빌리면 갚아야 되고, 갚기 싫으면 빌리지 말아야 되는 것처럼 선택이 지금 3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여기 사는 것, 그랬을 때 결과는 이런 결과가 나와요. 여기 사는 선택을 하면 남편이 계속 살면서 자기 기회를 잃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겠지요. 그러면 자기가 그런 것을 조금 감수하고 그럴 때는 ‘여보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 꿈을 실현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등 두드려 줘야 해요. 남편은 ‘그게 아내 탓이 아니고, 그건 본래 내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고 버려줘야 해요. 그런데 남편은 ‘거기에 갈 걸’ 하고 꽁해 가지고 있고, 아내는 ‘당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이제 같이 있어도 갈등이 더 생기게 돼요. 
 
그 다음에 한국으로 따라가면 이제 아내가 불평을 해요. ‘내가 당신 때문에 여기에 따라와서 이 고생을 한다. 애도 문제다.’ 이렇게 자꾸 투덜거리면 남편이 이 때는 ‘여보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해요’ 이러고 다독거려서 가면 되는데, 본인 일에 빠져가지고 아내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생각을 안하면 갈등이 더 생길 수가 있어요. 그다음 둘이서 ‘나는 여기에 있고 싶으니 여기 있고, 당신은 가고 싶어 하니 가거라’ 이렇게 되면 또 그에 따르는 제 3의 결과가 나타날 소지가 있어요. 그래서 그것은 어느 것이 좋으냐가 아니고, 각자 3가지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있는 것을 미리 알고 자기가 선택을 해야지, 그냥 선택하면 좋아지겠거니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청중들 박수)

자, 그러면 마이크를 본래대로 남편에게 얼른 가져다 주세요. 결론은 질문자가 내면 되는데 질문자는 여기에서 있었던 대화를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세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할 지는 좀 더 얘기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두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두 사람 다, 한 사람은 여기 있고 싶다는 것을 포기 안하고 끝까지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있고요. 질문자도 가겠다는 것을 딱 포기 안해버리고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있네요. 미련을 둘 다 가지고 있는데, 있고 싶다는 미련과 가고 싶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집에 가서 의논을 해봐야 결론이 잘 안날 것 같네요. (청중들 웃음) 




왜냐하면 진실이라는 것은 명확하기 때문에 금방 얘기를 듣는 순간에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하고 탁 교통정리가 되어야지, 지금 그것이 안되고 있다는 것은 각자 있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것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이렇게 결론이 안나는 거예요. 그럼 현재 상태에서 스님이 볼 때는 어떤 결론이 날 확률이 높냐면 따로 따로 갈 확률이 제일 높아요. 

그렇다면 여기 청중들하고 다시 얘기해봐요. 도움이 될 겁니다. 세 가지 결정이 있어요. 하나는 남편이 자기의 이상을 잃더라도 여기 있는게 낫겠다 하는 것 하고, 하나는 아내가 따라가는 것이 낫겠다. 또 하나는 각자 한번 있어보는 게 낫겠다. 셋 중에 투표를 한번 해봐요. 배심원이라고 생각하고 재판을 한번 해줘요.

1번, 남편이 가고 아내도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2번, 아내가 여기 있는데 남편이 가능하면 아내와 같이 이곳에 있는게 낫겠다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
 


3번, 따로따로 가는 게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 
 


남자편을 많이 드네요. 왜 그럴까요? 판정이 부인한테 좀 불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다수결로 할 수 없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저도 주위사람이 스님 되지 말라고 했어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분, 가족도, 친구도, 선생님도 반대했지만 그래도 결정을 해서 이렇게 살잖아요. 그러니 이것은 다수결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두 사람이 협의를 잘 해보세요. 스님이 마지막으로 조언을 해준다면, 배심원과 판사의 판결이 균형을 맞추어야 하니 아내 뜻을 더 깊이 진지하게 고려해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님.” (청중들 박수) 
 


처음에 남편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와 그 다음에 아내의 입장을 들었을 때를 함께 비교해보니 조금 더 시야가 넓어지고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생각하게 되는 경험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한쪽 측면에서만 보던 질문자의 시각을 반대편에서도 보게 하고 위에서도 보게 하고 아래에서도 보게 하는 등 다양한 측면을 보게해서 균형잡힌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주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6명의 질문에 모두 답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것이 진리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인생의 고뇌를 얘기했는데, 그래도 재미있잖아요? 어제는 자살하겠다는 사람하고 스님이 대화하는데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재미있어 했어요. 그러니 우리 인생이 한쪽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꼭 죽어야 될 것 같고 괴로울 수 밖에 없는데, 관점을 바꿔놓고 보니까 별 일 아니지요? ‘아, 내가 너무 좁게 생각했구나’, ‘크게 생각해보니 사실 별 것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혼해서 살아보니 어때요? 꼭 이 남자 아니면 안되었을 것 같아요? 다른 남자와 살아도 별 문제 없었을 것 같아요? 사실은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살아도 큰 문제 없어요. 내 마음에 꼭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천하에 어떤 사람을 만나도 거기에 맞는 사람은 없고, 내가 적당히 맞춰서 살겠다고 하면 길 가는 아무하고나 살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찾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하지만 이만한 남편, 이만한 아내가 이 세상에 없어요. 지금 귀한 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으면 또 다른 남자, 다른 여자와 같이 살면 됩니다. 같이 살 때는 ‘너만이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돌아가거나 헤어지면 ‘너 없어도 나는 잘 산다’ 이렇게 되어야 인생이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자유로워서 좋고, 같이 있으면 같이 있어서 좋고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못 살겠고, 같이 있으면 귀찮아서 못 살겠고 이럽니다. 인생을 그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없어요. 오늘 우리가 이렇게 괴로운 문제를 웃으면서 얘기했다는 이 말은 인생살이가 원래 이렇게 괜찮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즉 일시적 기쁨을 ‘즐거움’이라고 하고 지속적 기쁨을 ‘행복’이라고 합니다. 순간의 기쁨은 행복이 아닙니다. 기쁨이 지속가능할 때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너도 좋고 남도 좋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도 안되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손해끼쳐도 안됩니다.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 어느덧 강연을 시작할 때보다 마음이 가벼워져 있고 기쁨이 생겨납니다. 스님께 감사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오늘따라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떠 크고 길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강연을 모두 마치고 무대 위에서 곧바로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강연 내용이 너무 좋았는지 책은 완판이 되고, 없어서 못 산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들 모두가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먼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스님의 말레이시아 강연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신청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기념사진을 같이 찍었습니다. 



이어서 오늘 행사를 주관한 반야원 신도님들이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단주를 스님께서 손목에 직접 끼워주셨습니다.  



특히 강연 준비를 애써주신 네 분은 스님과 함께 별도로 더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해 주신 반야원 임원진 분들. 최민숙님(자원봉사자 관리), 박연희님(자원봉사자 관리), 정은강님(반야원 회장님), 최정숙님(운영위원, 강연총괄)

행사장 뒷정리를 모두 마친 봉사자들은 다함께 모여서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한 분은 “스님께서 매일 고생하시며 돌아다니시는 것이 저희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고, 또 한 분은 “정토회가 굉장히 기획력도 좋고 조직적이라는 것을 많이 배웠다”고 하였고, 또 “반야원은 10년 되었지만 부족했는데 법륜 스님을 보고 지도자에 대한 갈구를 느끼게 되었다” 고 얘기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또한 “스님이 오신 덕분에 반야원이 단합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강연 책임을 맡은 최정숙님은 “콰알라룸푸르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강연을 통해 반야원도 좋은 일에 함께 동참해서 기뻤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니터와 사진으로만 뵙던 스님을 직접 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동적이고 기뻤다” 고 합니다. 학생 봉사자들 운영을 맡으신 분은 “학생들이다보니 조금 우왕좌왕했지만 각자 역할에서 다들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다” 고 합니다. 한 분은 “오늘 예배가 있는 교회도 많았는데 종교를 넘어서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인 것은 너무 흡족한 일이다” 고 하며 보람있어 했습니다. 한 분은 “2년 전에 싱가폴에서 뵈었을 때보다 많이 야위워서 스님의 건강이 걱정되었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2시간 넘게 강의해 주신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곧바로 오늘 숙소인 윤금주 한인회 부회장님 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윤금주님은 외국인 남편 피터씨와 함께 살고 계셨는데, 피터씨도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 일행을 위해 정성껏 다과를 준비해 주시고 내일 새벽에는 식사도 제공해주실 예정입니다. 


▲ 숙소를 제공해주신 윤금주님 한인회 부회장님과 남편 피터씨

스님께서는 다과 후 원고 교정을 늦게까지 보시다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 덕분에 101번째 콰알라룸푸르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미얀마로 갑니다. 미얀마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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