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95번째 강연이 뉴질랜드의 오클랜드(Auckland)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오늘부터 4일간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열리는 4회의 강연은 시드니 정토회 강여경님이 현지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뉴질랜드는 원주민인 마오리 언어 로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인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불립니다.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0km 떨어져 있고, 본토는 태즈먼해 Tasman Sea와 남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북섬(11만 4000㎢)과 남섬(15만 1000㎢)으로 이루어지며, 남쪽으로 스튜어트섬·캠벨섬·오클랜드 제도, 동쪽의 채텀 제도 등 부속 도서와 북쪽으로 케르매덱·쿡 제도, 니우에섬, 라울섬, 토켈라우 제도, 남극 대륙에 있는 로스 속령 등도 포함됩니다. 오스트레일리아·미크로네시아·피지·통가 등 15개 국가와 함께 태평양제도포럼(PIF: Pacific Islands Forum)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 뉴질랜드

 

뉴질랜드의 면적은 27만㎢이고, 인구는 약 424만명이며, 민족적 배경은 유럽계(74%), 마오리계(14.9%), 아시아계(11.8%), 폴리네시아인(7.4%)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한국 교민은 약 3만여명 정도 살고, 이는 뉴질랜드 내 아시안 인구 중 중국(약 15만명)과 인도(약 10만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것이며 전체 인구의 약 0.7%를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뉴질랜드는 UN 세계인간개발지수 세계 5위, 부패인식지수 1위, 삶의 만족도 11위를 차지할 정도로 삶의 질이 높으며 청렴도와 준법, 질서의식이 높은 곳으로, 세계 최초(1893년)로 여성참정권을 부여하고 2013년 동성 결혼을 허용한 진보적 성향의 국가이며, 평등주의, 인권, 개인 사생활 보호 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 오클랜드 

 

오늘 강연이 열리는 오클랜드(Auckland)는 북섬 북단에 자리 잡고 있고, 인구는 122만명의 뉴질랜드 최대 도시로,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오클랜드에 거주하고 있다. 오클랜드의 마오리 이름은 Tāmaki-makau-rau 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많은 부족이 탐내며 서로 침략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1865년까지 뉴질랜드의 수도였고, 현재도 상공업의 중심지입니다.

 

뉴질랜드에서는 강연이 처음이고 특히 이번 세계 100회 강연 중에 불교 단체가 주관을 맡아준 곳으로는 유일한 곳입니다. 오클랜드의 한국절인 남국정사에서 모든 실무와 전체 운영을 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시드니 정토회에서 실무 지원을 하기 위해 정은지 총무님과 강여경님이 합류했습니다. 먼 칠레 산티아고에서 14시간 비행을 하고 오시는 법륜스님을 환영하기 위해 남국정사 신도님들은 새벽 4시에 꽃다발까지 준비해 공항 마중을 나와주셨습니다. 

 

  

 

스님은 남국정사 신도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남국정사에 대한 소개와 함께, 뉴질랜드의 현황과 교민 사회에 대해 잠시 관심있게 담소를 나눈 후 긴 비행의 여독을 풀기 위해 오전에는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12시에 이번 행사를 주관해주신 남국정사의 주지스님이신 동진스님께서 스님을 초청하셔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오클랜드 북부지역 Kumeu에 자리한 남국정사를 방문하였습니다. 

 


  

신도님들께서 손수 준비하신 정성스런 다과와 정통사찰공양에 모두 놀라움과 감사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식사를 준비해 주신 보현심 보살님이 스님께 인사드리며 “스님께서 몸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공양 준비에 고민이 많았다”고 이야기 하자, 스님께서는 “유럽에서는 많이 아팠는데 걱정해주셔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맛나게 먹어 잘 낫겠다”는 말씀과 함께 참 수고 많았다고 감사의 표현을 하셨습니다. 

 


 


 

식사 이후에 남국정사의 터를 한바퀴 둘러 본 후 내년부터 법당 불사를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보시도 하시고 정성껏 불사원만성취를 기도해 주셨습니다. 남국정사 방문 후에는 로즈 가든과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기념비 탑을 참배하시고 숙소로 돌아오셨다가  오늘의 강연장인 QBE Stadium으로 향했습니다.


  

 로즈 가든

 


▲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의 기념탑 참배

 


▲ 운전을 지원해 주신 도언태 거사님, 청봉거사님, 황경호 전 신도회장님 외

 

  

 오후 6시에는 강연장 QBE Stadium에 도착해서 강연전 남국정사의 동진스님, 환희정사의 동인스님과 혜담스님, 원불교의 안정명 교무님과, 오클랜드한인회장, 민주평통회장, 영사관 및 여성회 등의 지역인사들과의 환담을 가졌습니다.

 


 오늘 강연장, QBE Stadium

 

원래 300여명이 참석할 것을 예상했던 강연인데 참석 인원이  480여명이 넘게 와서 양해를 얻어 추가로 돗자리를 깔아 바닥에 앉았지만, 그래도 늦게 오는 분들은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3시간 내내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 청중들이 많았는데, 모두들 스님의 강연에 흠뻑 집중된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강연을 주관해 주신 남국정사 주지 동진스님의 인사말에 이어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세계 100강 중에서 처음으로 불교에서 강연 장소를 제공해주었다고 하시면서 남국정사 주지스님과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뉴질랜드에는 처음 왔습니다. 여러분들 정말 좋은 곳에 사시네요. 이렇게 좋은 곳인줄 알았으면 제가 일찍 올 걸 그랬어요. (웃음) 

 

저는 강의를 많이 해서 그런지 기관지가 안 좋습니다. 그래서 공기가 굉장히 건강을 좌우해요. 여기 도착하니까 숨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 것 같아요. 술이 아니고 숨이요. (청중들 웃음) 

 

지금 세계 115개 도시를 115일간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무조건 하루에 한강좌를 하고 있어요. 어제 칠레에서 출발해서 오늘 아침에 여기 도착했는데 14시간 걸렸어요. 그런데 하루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면 날짜에 맞춰서 매일 강의를 못하지 않느냐 하시는데, 그런 날이 생기면 그 전에 하루에 두 강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115일 동안 115강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교회에서도 준비하고 성당에서도 많이 준비해 주었는데, 불교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오늘 남국정사에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남국정사 주지 스님과 자원봉사자들에게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10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싶은데 눈물이 메말랐는지 나오질 않아요. 가끔씩 울고 싶을 때가 있는데 감정이 메말랐는지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중학교 때부터 하고 싶은 일과 부모님이 원하는 일 사이에서 많이 갈등했습니다. 아버지께 말하고 싶은데 대화가 안 됩니다. 

 

  

 

“스님께서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셨나요? 미래가 불안하고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기독교인이지만 항상 불교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부처님께 드리는 예불은 경배인가요? 아니면 깨우친 선각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가요? 의식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경배할 때 꼭 절을 해야하나요?” 

 

  

 

“물질적인 것 보다 정신적인 불법을 믿습니다. 저는 환생을 믿습니다. 스님께서는 윤회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가정사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요. 평범한 가정주부 생활만 36년, 그동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말 못할 고민에 빠진 남편이 그 ‘고민’을 가족들이 알게 되자 갑자기 집을 나간지 5개월째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곳에 와 5개월만에 처음으로 대면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희망세상만들기’여서 나에게도 희망을 만들고 싶습니다. 남편을 받아드리고 싶어요.” 

 

“유학생인데 혼자 있으면 극도로 불안하고 외롭습니다. 공부에도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지요?” 

 

“요즘 한국뉴스를 보면 참 답답하고 가만히 있는 한국인들이 참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나는 울분에 넘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한국 국민들은 가만히 있고 잠잠합니다. 한국 국민들의 사고가 요즘 어떤지요? 정말 답답합니다.”

 

  

 

“몸이 아프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지 이미 2년이 넘었습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남편의 죽음을 90세 노모에게 차라리 숨기고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난 솔직히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요?”
 

 

“남편이 과거에 집을 잘 못 팔아 경제적으로 타격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몇 년 전 이야기를 아직까지 끌어안고 밤에도 잠을 못자고 끙끙 앓을 정도로 집착이 심합니다. 나약한 남편이 못나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집안의 독자로서 결혼을 해야 하는 의무와 그렇지 않은 자신의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제 가치관과 의무 사이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제가 올해로 나이가 서른  둘입니다. 저한테는 누나 두명이 있어요, 제가 막내이고요. 작년에 노처녀인 저희 누나가 품절녀가 됨으로써 모든 포커스가 저한테 맞춰진 불편한 상황입니다. 이제 제가 나이도 있고 하니까 “장가 언제 가냐?” 하시는데, 저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해봤어도 ‘굳이 해야 되나?’ 했었고, 2세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저는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런 쪽으로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데, 집에서는 난리가 나신 거죠. 제가 독자이고 아버지도 독자이신데, 제가 장가를 안 가면 대가 끊기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든 싫든 의무로써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고쳐보려고 노력했는데 안 고쳐지더라고요. ’결혼 싫다, 2세 생각 없다’ 하는 생각이 너무 센 듯해서 “저 결혼하면 이혼할 것 같습니다, 자신 없습니다“ 하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한 번은 해라, 한 번은 봐줄게. 그런데 안 한다고는 하지 마라“ 말씀하십니다. 제 의무를 생각하면 결혼을 해야 하지만 저는 그게 안 와닿습니다, 너무 힘들 것 같고요.”

 

“첫째, 스무 살이 넘으면 스님이 되든지, 신부가 되든지, 혼자 살든 뭘 하든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는 거예요. 대신 부모님은 나에게 애정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조언으로 받아들이되, 결정은 내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인생이니까 자기 뜻대로 살면 돼요. 그 때 ”전 결혼 안 합니다. 아버지가 왜 간섭합니까?“ 하면 안 돼요. ”아버지 알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그걸 바라는 마음은 부모의 심정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언제 가니?“ 하고 물으시면 ”네, 지금 찾고 있는 중입니다. 잘 없네요“ 하고 지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여자에 대해 호기심이 별로 없어요?”

 

“그건 아니고요.”

 

“여기 어른들이 계시니까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네 가지 성향이 있습니다. 남자인데 여자에게 호기심이 있는 사람, 여자인데 남자에게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성애라고 해요. 그리고 남자인데 여자에게는 호기심이 없고 남자에게 호기심이 있고, 여자인데 여자에게 호기심이 있는 사람을 동성애라고 합니다. 남자에게도 호기심이 있고 여자에게도 호기심이 있는 것을 양성애라고 해요. 남자에게도 호기심이 없고 여자에게도 호기심이 없는 사람을 무성애자라고 합니다. 실제로 조사를 해봤더니 네 가지 종류가 나왔어요. 만약 이 중에 무성애자가 출가해서 스님이 되거나 신부가 되면 어떻겠어요? 끝내줍니다. (청중들 웃음) 

 

출가해서 30년간 도를 닦은 사람도 이성에 대해서 아직 집착을 잘 못 끊는데, 이 사람은 머리 깎자마자 벌거벗은 여성을 수도 없이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그러나, 이런 걸 가지고 도라고 하면 안 맞겠죠.. 이런 사람이 승려나 신부가 되면 굉장히 좋은데, 이런 사람이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가정 파탄이 일어납니다. 여자가 남편한테 호기심을 보이는데 남편은 나무토막 같이 아무 관심이 없으면, 억지로 부부관계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그러면 ‘ 혹시 딴 여자 있나’ 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몸뚱이는 멀쩡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이 우리는 사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을 상담하잖아요. 남자가 동성애자인데 억누르고 결혼을 해서 애를 둘까지 낳았는데 커밍아웃을 했어요. 그러니까 부모와 부인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의무보다 행복할 권리가 더 앞서니까, 이걸 서로 의논해라. 그래서 결혼을 그만두고 자기 길을 가게 하든지, 아니면 결혼은 유지하고 이런 성향은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든지! 그런 걸 우리가 알아야 하는데 자꾸 껍데기만 가지고 얘기를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그런 케이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나는 결혼에 별 흥미가 없다’고 했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도 돼요. 결혼에 별 흥미 없는 사람을 결혼시켜서 1년 있다가 이혼을 하면,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니까 “이혼을 하더라도 한 번 해봐라“ 하지만 남의 딸은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청중들 웃음) 

 

결혼을 하려면 최소한도 자기 권리의 절반을 포기해야 합니다. 즉 상대방에게 맞춰야 된다는 말이에요. 100% 포기하면 100% 성공하고, 절반 포기하면 절반을 성공하고요. 결혼하려면 50% 이상 좋을확률이 나와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질문자는 자기 성향을 중요시하잖아요. 그러면 결혼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자기가 결정하면 돼요. 지금 32세의 성인이니까요. 

 

그러나 부모님의 그러한 마음에 대해 서로 이해해야 돼요. ‘아버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요. 그렇다고 그것이 내 가치를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스무 살 이전에는 부모님이 나를 도와주는 훌륭한 분이셨지만, 스무 살을 넘어서면 때로는 부모가 최대의 장애 역할을 해요. 부처님이 출가할 때 부모님이 반대를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부모님 말을 들었으면 부처가 됐을까요? 못 됐겠죠. 예수님도 어머님이 얼마나 가슴 아프셨겠어요? 서른세살에 죽은 아들을 무릎 위에 앉힌 엄마의 심정이 어떠했겠어요? 한 번 상상해봐요. 우리는 예수님이 훌륭하다고 하지만 그 부모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기의 길을 자기가 선택해서 가면 돼요. 그건 절대로 불효가 아닙니다 ‘부모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하면 그렇게 하면 되고요. 그러나 ’부모님이 저렇게 원하시니 내가 소원 들어 드린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책임을 부모님한테 떠 넘기기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원수가 돼요.”

 

“감사합니다, 가슴이 뚫렸습니다.” (청중들 박수)

 

근심 가득했던 청년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줍니다. 스님께서는 또 “이런 얘기 하면 부모님들은 제가 좀 밉죠? 애들한테 저런 얘기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미움을 받을 각오를 하고 얘기를 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부모들의 심정도 함께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안돼요.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지금 행복해야 돼요. 지금 40세이면 40이라서 좋고, 지금 50세이라면 50이라서 좋고, 결혼했으면 결혼해서 좋고, 남편이 죽었으면 혼자 있어서 좋아야 해요. 혼자 있으면 얼마나 좋은줄 알아요? 혼자 살아도 되고, 결혼 한번 더 해도 되고 얼마나 좋은 장점이예요? (청중들 웃음) 

 

같이 백년 해로하면 해로해서 좋고, 먼저 돌아가시면 먼저 돌아가셔서 좋습니다. 먼저 돌아가시면 ‘아이고, 여보. 그동안 행복했어요. 먼저 가세요. 내가 늙어서라도 혼자 좀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이렇게 먼저 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요렇게 인사를 하면서 탁 놓아야 천도라고 말하는 겁니다. 놓아야 천도가 되지, 돈을 아무리 줘도 놓지 못 하면 천도가 안돼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웃으면서 놓아주어야 합니다. 

 

뉴질랜드에 온다고 행복이 보장돼요? 안돼지요. 지역을 옮긴다고 행복이 보장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한국에서는 뉴질랜드 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해결 안되는 문제가 생기죠?  그걸보면 천국 간다고 해결이 안돼요. 항상 지금 좋아야 합니다. 늙어도 좋아요. 눈이 침침해져서 보이지 않으니까 분별심이 안 생겨요. 다리가 잘 안 움직이니까 점잖게 걷게 되고요. 공부할 일이 있나, 아이 키울 일이 있나, 직장 다닐 일이 있나, 늙은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요? 그래서 늙는 건 좋은 거예요.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을 흉내내려고 할 때 한탄이 생기는 겁니다. 늙음을 만끽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행복합니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데 여러분들이, 태산 같은 행복은 눈에 안 들어오고, 티끌 같은 불만을 갖고 죽니 사니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재앙을 주는 겁니다. 지금은 불행하니 어쩌니 하지만 병이 들거나 눈이 안보이거나 하면 ‘옛날이 좋았다’ 이렇게 되죠. 그래서 지금을 불행하게 여기는 사람은 재앙을 자초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지금이 좋은 줄을 알아야 돼요. 설령 계단을 내려가다가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하더라도 안 부러진 다리를 탁 잡고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 다리는 안 부러졌습니다’ 이런 정도로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기도하고 나오는데 다리가 왜 부러지노? 하나님이 없나?’ 요렇게 방정맞은 생각을 하잖아요. 그럴 때 ‘아이고, 오늘 교회 다녀왔더니 한쪽 다리는 안 부러졌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몸과 마음에서 굉장히 좋은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래서 아침에 눈 뜰 때 세 번 소리쳐 보세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기분 좋아요? 안 좋아요?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세 번 외치면 굉장히 좋은 에너지가 나와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이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청중들 모두 “오늘도 살았네” 따라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려 3시간 1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열정적인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를 다시 한번 보내주었습니다.  

 


▲ 강연에 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 이후에는 자원활동을 해주신 봉사자들과 함께 마음나누기와 사진촬영도 했습니다.

 

  

▲ 그리고 오늘 행사를 전체 총괄하신 수운 거사님께 감사인사와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또한, 이틀 동안 저희 일행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숙소를 제공해 주신 박정진 보살님께도 감사 인사와 사인한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후 행사를 주관하는데 애써 주신 남국정사 신도님들, 주지스님과 담소를 나누시고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30분에 호주 멜번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라 새벽 4시에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고, 원고 교정 후 일과를 마치셨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95번째 뉴질랜드 오클랜드 강연을 성황리에 모두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96번째 강연이 호주 멜번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멜번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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