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93번째 강연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아르헨티나(Argentina)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부에 위치하며, 수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입니다. 동쪽의 대서양과 서쪽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2,766,890 km²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넓으며,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이며, 스페인어 사용 국가 중 가장 큰 나라입니다. 인구는 약 3,400만명 정도이고,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전체 교민 수는 약 2만명 정도이나 90%정도가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백인 인구가 국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로 유럽인 후손이 85%, 메스티조 15%이며 기타 인디언과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최장거리는 3,700㎞, 동서의 최대거리는 1,700㎞라는 넓은 국토의 서부를 안데스 산맥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며 조인빌 섬을 포함하여 남극의 일부도 아르헨티나의 영토이며, 남미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콩카과 산 역시 아르헨티나에 있습니다 .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인데 남아메리카 동남부 라플라타 강의 하구에 자리한 항구 도시로서,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약 1,300만명이 사는 지역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탱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 지역에서 탄생한 음악입니다. 고온 다습한 아열대 기후로 연평균 기온은 17.6 °C이며, 연중 비가 꾸준히 오며, 강풍이 보통 동반된다고 합니다. 

 

이 곳에 한인은 약 2만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민 사회는 46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1세대는 실향민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1.5세 2세들이 아르헨티나 사회에 배출되어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종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한인촌은 아베자네다 지역인데 한국의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 형식으로 거의 봉제, 의류도매상, 여성의류 쪽으로는 한국인들이 점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상파울로의 숙소에서 새벽 4시까지 짐을 싸고 업무를 보시다가 오전 7시에 숙소 앞에 있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셨습니다. 오늘 밤 머문 숙소가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한인 상가가 있는 곳이라 스님을 알아보시고 인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한 숙소의 옆방에는 5~6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보살님이 스님 강연에 참가하였다가 머물고 계셨는데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이창석 진각사 신도회장님, 정석호 총무님, 숙소를 제공하여 주신 심성구님, 그리고 오늘 공항까지 운전해주실 이태환님이 오셨습니다. 스님과 함께 잠시 인사를 하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공항으로 출발 전 상파울루 강연에 도움주신 분들과 함께 

 

모두들 스님께서 이곳까지 오심을 다시 한번 감사해 하셨고, 스님께서도 이렇게 잘 준비해주시고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9시에 상파울루 국제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 상파울루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 극빈층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숙소 옆에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패션 상가를 지났습니다. 한국인들이 거의 옷가게를 선점하여 있었고 화려하기가 이태리 밀라노처럼 아주 멋있었습니다. 한인들의 위력과 저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브라질,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패션 상가 밀집 지역 

 

그렇게 다운타운을 떠나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태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스님께서는 선물로 사인한 새로운 백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태환님은 초등학교 때 브라질로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와서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사업을 하고 계신데 한국 역사와 이곳 브라질 역사에 잘 알고 있어서 브라질의 여러 문제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 공항까지 배웅을 해주신 이태환님

 

이태환님과 인사를 하고 게이트로 들어오니 인터넷이 되어서 잠시 업무를 보고 11시 40분에 브라질 상파울루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출발했습니다. 

 

3시간의 비행 후에 오후 2시30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으나 -1시간 시차로 인해 현지 시간으로 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입국 수속을 하고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도착하니 김윤신 화가 선생님, 오늘 자원봉사를 하는 김기완님, 그리고 재외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KOWIN) 회원인 김윤정님과 이성미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과정에서 프린터기를 잃어버리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남미에서는 물건을 분실하면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네요. 

 


▲ 공항 마중을 나와주신 김윤신 화가님과 김기완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강연은 김란님이 총괄을 맡아 행사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김란님은 뉴저지법당 정토회 회원인 김명님의 언니입니다. 김명님이 “언니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고 있으니 도움을 요청해 보라”고 하여 연락을 드리게 되었는데, 김란님은 천주교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흔쾌히 스님 강연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재외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KOWIN) 아르헨티나 지부에서 공동주관으로 하여 재 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 재 아르헨티나 한인회, 민주평통 남미서부협의회, 한국일보, 꼬르넷뉴스가 후원해 주셔서 오늘 아르헨티나 강연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짐을 찾아 오늘 숙소인 김란님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김란님은 현재 화가이면서 재외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KOWIN) 아르헨티나 지부 회장님이십니다. 김란님 댁에 도착하니 김란님과 김정선님이 반갑게 스님께 인사를 하고 이곳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심을 진심으로 환영해주었습니다. 김정선님과 김란님이 준비한 음식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정갈한 한국 음식으로 아주 정성스럽게 차려주셨습니다. 식사 후 스님께서는 강연을 준비하고 숙소를 제공해 주신 김란 회장님을 비롯한 김윤신 화가 선생님, 그리고 식사 준비를 해주신 김정선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리고 같이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점심 식사 후. 김윤신 화가님(왼쪽 아래), 김란님(왼쪽 뒤), 김정선님(오른쪽 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3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연일 강행군을 하고 계신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하신 후 5시 15분에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 오늘 강연장, 
천주교 재 아르헨티나 한국 순교 한인성당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천주교 재 아르헨티나 한국 순교 한인성당입니다. 참 멋진 건물이 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하여 신부님, 대사님 등 관계자 분들이 반갑게 스님께 인사를 하였습니다. 

 


▲ 환한 웃음으로 스님을 맞이해 주신 방의성 베드로 신부님 

 


▲ 미리 강연장에 도착해 스님을 기다리고 계셨던 추종연 주 아르헨티나 대사님 

 

그리고 방의성 베드로 신부님, 추종연 대사님, 전조영 공사님 뿐만 아니라 오늘 강연을 후원해주신 방종석 평통회장님, 이병환 한인회장님, 류한성, 김종수 두 분의 사목회장님이 모두 나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스님께서 이곳에 방문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장 안으로 들어와서 행사를 준비하고 계시는 자원봉사자들께 수고한다고 감사의 인사와 격려를 해주시고 옆에 마련된 대기실로 갔습니다. 대기실에서 대사님 이하 관계자들과 함게 잠시 대담을 나누시고,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사인한 새로운 백년 책과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리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신부님, 대사님 일행 분들과 강연 전 환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 

 

 

오후 5시50분 스님의 소개 영상이 나오고 사회자의 인사말과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방의성 베드로 신부님과 함께 손을 잡고 성당 안으로 걸어 들어오니 청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하고 환호하며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신부님, 대사님과 함께 입장하는 모습은 종교 간의 화합을 보여주는 감동스런 장면으로 다가왔습니다. 

 


▲ 스님과 신부님이 함께 나란히 등장하는 감동적인 모습 

 

사회자가 오늘 강연을 위해 도움주신 단체와 내빈을 소개해 주니 모두들 큰 박수로 보내주었는데 특히 방의성 베드로 신부님이 소개되자 모두들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어서 모든 내빈들과 후원 단체를 대표하여 류한성 사목회장님의 환영 인사가 있었습니다. 

 


▲ 인사말씀을 해주시는 류한성 사목회장님  

 

“오늘 연휴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먼 곳까지 오신 법륜 스님을 위해서 큰 박수로 환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청중들  뜨거운 박수) 스님께서는 오늘 오후에도착해서 내일 새벽에 칠레로 출발하십니다. 이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지만, 해외에 계시는 교민들은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도록 그리고 우리가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님의 지혜의 보따리, 말씀들을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목회장님의 환영 인사가 끝나자 스님께서 큰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강연에는 약 450여명이 참가하여 높은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중남미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인 450명이 참석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강연 

 

아직 강연도 하지 않았는데 책 판매도 사전에 거의 다 되어서 준비해 온 책이 모자라게 되어버렸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연휴임에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나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만나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저는 아르헨티나에는 처음입니다. 상파울루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산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길이 멀어서 그런지, 오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제 발로 찾아왔어요. 아는 인연이 전혀 없어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만들까 하다가 성당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신부님께서 기꺼이 승낙해주시고 후원해 주셔서 오늘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또 사목회장님 이하 형제, 자매님들께서도 적극적으로 자원봉사를 해주셔서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혹시 카톨릭 신자가 아니신 분들은 부에노스아이에스 한인성당 신부님과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청중들 박수) 

 


▲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계신 신부님과 대사님 

 

오늘은 연휴라 바쁘신데 참석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말씀 드리고요, 지금 대사님께서 부임하신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공사님, 한인회 회장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말씀 드립니다. 또 행사를 준비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말씀 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고 세계를 돌아 다니냐고 물으시는데, 따로 전할 메시지는 없습니다. 그러면 전할 메시지가 없는데 왜 돌아 다니냐고 하세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다 행복하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실제로 살아 보면 내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고뇌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고뇌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가볍게 할 수 있을지 여러분과 대화해보고 싶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고뇌가 깊어지면 큰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 ‘인생이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이렇게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되는데, 이런 것을 어딘가에 물어볼 데가 별로 없어요. 물으면 ‘믿음이 부족하다’고 핀잔받기도 쉽고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그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제약 없이 개인 문제든, 사회 문제든, 종교 문제든, 과학의 문제든, 인간 문제든, 자연의 문제든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는 고뇌, 의문을 마음껏 얘기하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입니다. 그렇게 하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고뇌가 더 가벼워지고, 의문이 조금 풀리고, ‘문제가 별 거 아니구나‘ 하는 경지에 이른다든지 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가 조금 더 마음이 가볍다, 기쁘다‘ 하게 하려는 목표가 있다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강의가 제가 혼자 하는 강의가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하는 대화의 모임이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주셔야 해요. 그러니까 솔직하게 얘기해주시는 게 좋아요. 그런데 솔직하게 얘기를 잘 안 합니다. 동네에 소문나니까요. (청중들 웃음) 그래서 강의가 끝나고 나가면 저를 붙잡고 “스님, 한 개만 물어봐도 됩니까?”하세요. 저도 근무시간이 있잖아요. (청중들 웃음) 

 

 

 

드러내 놓으면 정답이 해결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부부관계든, 부모자식의 문제이든, 세상 문제든 내놓고 보면 다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움켜쥐고 있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드러내 놓으면 사실은 별 일 아니에요. 그러니까 조금 더 편하게 얘기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고뇌의 문제가 아니라도 의문이 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물으셔도 돼요. 오늘은 평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는 자리니까 기죽지 마시고 뭐든지 하나하나 따지고 속이 시원할 때 까지 물으셔야 합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첫 질문부터 유쾌하고 빵빵 웃음이 터지면서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화 중에 시종일관 웃음이 넘치고 답변이 끝날 때마다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사님, 공사님, 평통회장님, 한인회장님, 사목회장님도 끝까지 함께 자리를 해주셨고, 청중들도 자리를 뜨는 분 없이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재미있고 즐거운 강연이 되었습니다. 

 

“결혼한지 4년이 되었고 아기가 3살, 2살입니다.  남편은 아르헨티나 한국인 혼혈입니다. 남편이 고혈압이 있는데 야채도 먹지만 고기를 더 많이 먹습니다. 이 나라는 고기가 유명한데요. 남편이 건강을 위해서 고기를 적게 먹고 채식을 좀 더 하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설득 할 수 있을까요?”

 


 

“남편이 다혈질입니다. 앞차가 운전을 잘못하면 남편이 거칠어지고 화를 내요, 그러면 옆에 앉은 저는 무섭고 기분도 나쁘고 그래요. 화를 내면 남편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고, 애들이 뒤에 앉아있는데 욕하는 것을 그냥 두어도 되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천주교 신자인데 깨달음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깨달음은 불교의 교리를 이해하는 것이 깨달음인지 마음의 번뇌가 없어진 상태가 깨달음인지, 아니면 따로 다른 것이 있는지요?”

 

“이민 온 지 40년이 되었고 아들이 3명 있습니다. 믿음이 상실되고 서로 못 믿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이런 사회에서 내 자신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하고 어떻게 믿음의 사회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까요? 교회는 나가는데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성질머리를 죽이는 게 최고로 안 됩니다. 불쑥불쑥 올라올 때는 저도 감당이 안 되고 주위사람들도 힘들어 하고요. 사람들이 늦게 오면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에 스님의 좋은 얘기가 많고 해서 조금 마음이 누구러지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성질머리를 고칠 수 있을런지요?”

 


 

“스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삼시 세끼 밥 먹고 애들 건강하고 큰 욕심 부리지 말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마음 편히 즐겁게 살자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좋고 싫고가 분명해서 좀 힘듭니다. 다른 사람의 나쁜 것들이 계속 보이고 매일 사람들과 부딪치는데,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가 저를 많이 닮고 있습니다. 저를 안 닮았으면 하는데 저를 닮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런지요?”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2년 전 남편이 죽고 허전한 마음이 아직 많아서 큰아들 부부가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아들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어 고민이라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결혼한 자녀가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부모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스님께서 많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요즘 거의 유튜브에서 스님 말씀을 듣고 잠을 듭니다.” 

 

“그럼 제 강의가 수면제인 거네요?”

 

“거의 반수면제 입니다. (웃음) 남편이 10년 전에 신장을 저에게 이식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져서 5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2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에는 아주 편안하게 돌아가시긴 했는데, 아직 남편이 돌아간 사실이 실감이 안 나고 마음이 아직 안정이 안 된 상태입니다. 저에게는 아들이 두명 있는데 한명은 결혼하고 작은 애는 아직 미혼입니다. 큰 아들 내외가 저하고 같이 살자고 하는데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마음이 슬프고, 우울하고, 아직 남편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어서 조그만 일에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아들 내외가 착하고 저를 많이 위로해주고 있는데, 주위에서 아는 분들이 따로 사는 것이 좋다고 하십니다. 저는 외로움 때문에 같이 살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들 내외와 떨어져 사는 것이 사이가 좋은데 같이 살면 부담스럽게 되거나 서로에게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제가 건강이 성치 않아서 아들은 계속 같이 살자고 하는데, 저는 제 위주로 생각을 하게 돼요. ‘같이 살면 내가 힘들지 않을까?’ 또 ‘혼자 살면 외롭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오락가락해서 결정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며느리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며느리는 같이 살고 싶어 합니다.”

 

“속심을 물어봐야죠.” (청중들 웃음)

 


 

“저도 그렇게 물어봤었는데...”

 

“예를 들어, 자기가 결혼을 해서 남편과 둘이 살고 싶은데 그것도 시아버지, 시어머니 두 분 다 있는 것도 아니고, 시어머니만 있는 사람 집에 들어가서 살면 편하게 신혼생활을 할까요? 힘들까요?“ 

 

“힘들 거라서 그걸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지요.” (청중들 웃음)

 

“아들이 큰 아들이라서 의무적으로 하는 것인지, 진심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요, 아들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돼요. 이쪽은 내 어머니이고 이쪽은 내 부인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남자들이 제1부인, 제2부인, 제3부인, 제5부인까지 데리고 살아도 남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여자가 문제지요. 남자야 뭐 어때요? ‘여기에 방 하나 주고 이쪽에 제1부인 살고, 이쪽에 방 하나 주고 제2부인 살고, 오늘은 제1부인이 밥하고, 내일은 제2부인이 밥하고 얼마나 좋을까’ 남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가 문제거든요.”

 

“저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서 힘든 부분은 알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 혼자 살 수 있을지 그런 걱정도 됩니다.”

 

“혼저 살기 힘들겠다 싶으면 질문자는 질문자에 맞는 남자를 구하면 되잖아요.” (청중들 웃음)

 

“남편을 절대 잊을 수 없어요. 저에게 행운을 주고 간 사람이라서요. 재혼 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남편이 살아 있는데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남편이 돌아가시면 나는 이제 그의 아내가 아닙니다. 남편이 돌아가셨는데도 내가 그의 아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는 지금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어리석은 생각이고요. 남편이 죽었다고 내가 따라 죽는 것은 세속에서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얘기하면 이것은 편집증, 즉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바짝바짝 말라서 죽는 사람 있잖아요, 그건 정신병이에요. 그걸 좋게 얘기해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죠. 자기가 지금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겁니다.”

 

“남편이 저에게 특별했잖아요.”

 

“질문자에게 재산도 물려주고 신장도 물려주고 심장도 물려주고 다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지금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는 지금 누구의 아내가 아니에요. 자기가 택시를 탔을 때 자기는 뭐예요?”

 

“승객입니다.”

 

“가게에 가면 손님이고, 아이를 만나면 엄마죠, 내 엄마를 만나면 딸이고, 학교에 가면 학부형이죠, 교회에 오면 신도죠. 자기 존재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이렇게 인연을 따라서 그렇게 불리는 것입니다. ‘이 조건에서는 이렇다’, ‘저 조건에서는 저렇다’ 하고요. 무언가가 ‘크다’, ‘작다’고 하는 것은 인식 상의 문제이지, 이 존재 자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는 처음에는 엄마와 같이 있어서 ‘딸’이라고 불렸는데, 이 남자하고 같이 있음으로 해서 ‘아내’라고 불렸단 말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이제 아내가 아니에요.“

 

“저로 살고 싶어요.”

 

“저로 살면 외로울 수가 없지요. 남자하고 관계를 맺어서 아내였는데 이게 없어져서 외로움을 타는 것이지, 이것 단독으로는 외로울 수가 없다니까요? 자기가 ‘외롭다’는 말은 남자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청중들 웃음 및 박수) 왜 자꾸 속심을 숨기고 살려고 해요?

 


 

아들은 젊은 여자하고 살고 싶지, 무엇 때문에 늙은 여자와 살고 싶겠어요? 늙은 여자한테 신세를 많이 졌기 때문에 빚이 있으니까 빚을 갚으려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옆에 있는 젊은 여자가 힘듭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혼자 있으니까 이 젊은 남자가 늙은 여자가 신경이 쓰이니까 자기가 남자친구를 한 명 사귀어버리면 젊은 남자가 정이 딱 끊어져요. (청중들 웃음) 그런데 그게 왜 나쁜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살아 온 관념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 관념이 자기를 지금 괴롭게 하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그런 관점을 딱 버리시라는 거예요. 질문자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든지, 외로우면 재혼을 하거나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외롭지 않은 길을 선택해줘야 아들이 늙은 여자에 대한 부담을 안 진다는 말입니다.“ (청중들 웃음)

 

“저는 그것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던가 심리적으로 푸는 쪽으로 돌파를 하고 싶어요. ”

 

“지금 몇 살 입니까?”

 

“지금 59세입니다.”

 

“59세면 남자가 좀 필요하잖아요. (청중들 웃음) 자기가 수녀도 아니고 스님도 아니면서 왜 그래요? 필요 없습니까?”

 

“네.”

 

 

“그럼 교회에 나가요? 성당에 나가요? 절에 나가요?”

 

“기독교입니다.”

 

“그럼 교회에 가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아침 먹고 출근해서요. 직장생활 하십니까?”

 

“지금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집에 혼자 있으면 누구나 외로워 져요. 그러니까 교회를 열심히 다니든지, 안 그러면 교회나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열심히 하세요. 꼭 우리는 자기가 일을 하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는데, 자기 재능을 돈 받고 파는 것은 매매입니다. 매매를 하지 말고 자기 재능을 세상을 위해 쓰면 봉사가 됩니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든지 해서 마음 속에 외로움이 없어야 돼요. 두 번째로 수행을 해야 합니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서 마음에 외로움이 없어야 돼요. 그렇다면 혼자 살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외로움을 참고 혼자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가 혼자 살면서 밤새 남자 생각만 하고 잠도 못 이루고 하면 혼자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오히려 결혼을 해서 부부관계를 하는 것이 낫죠, 세상을 위해서도 낫고 본인을 위해서도 낫습니다. 

 

그러니까 혼자 살려면 외로움이 없도록 해야 하고, 외로움이 있으면, 같이 사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이니까 자기와 연배가 비슷하든지 아니든지 자기 남자친구를 사귀어야지, 부인이 있는 어린 남자를 옆에 데리고 살려고 하면 안 돼요. 그건 굉장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들과 같이 살면 내 아들하고 같이 살아도, 의식은 내 아들인데 심리는 남편이 됩니다. 이거 아세요? 내가 거기에 의지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옛날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남자한테 시집을 가면 어렵다고 했던 이유가 결국 두 여자하고 사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들도 자꾸 엄마한테서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결혼한 뒤에 자기 아내하고 엄마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늙은 여자에게 입은 은혜는 나중에 갚으면 되는 것이지, 중간에 어중간하게 서면 젊은 여자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딱 위치를 정해서 결혼을 우선적으로 하고, 아내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부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도와야지, 자기 혼자 자기가 은혜 입었다고 도우면 아내도 또 자기가 은혜 입었다고 친정을 돕고 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납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한 집에 같이 살면 안 돼요.

 

한 집에 살더라도 아들 부부끼리 싸우든지 애들 어떻게 키우든지 관여 안 할 자신 있어요? 막 그릇을 깨고 싸워도 일체 이웃집 보듯이 못 본 척 할 수 있어요? 안 되잖아요. 자기도 결혼해서 살면서 부부 간에 갈등이 조금씩 있었어요? 없었어요?“

 

“있었죠.”

 

“그런데 두 부부만 살면 별 문제가 안 되는데, 시어머니가 있거나 친정어머니가 있으면 그걸 가지고 또 문제 삼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건데요.”

 

“지금은 떨어져 사니까 서로 관계가 좋습니다.”

 

“그럼요. 그런데 왜 자식하고 원수 되고, 며느리하고 원수가 되려고 합니까?”

 

“그건 제가 어찌 됐든 결정을 해야 하니까 여쭤본 것입니다.”

 

“같이 살고 싶으니까 저한테 물으신 거 아니에요.” (청중들 웃음)

 

“꼭 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안 된다 하잖아요, 안 된다고요. (청중들 웃음) 자기가 딱 봐서 ‘이건 도리가 아니다’ 싶으면 물을 필요도 없지요.”

 

“그래서 혼자 사는 분들과 많이 대화를 했는데, 혼자 어떻게든 잘 살아가고 계십니다.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다시 얘기해봅시다. 혼자 살아서 외로운 것은 이해가 돼요. 남자가 필요한데, 절대 아들인 남자를 데려오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네”

 

“그럼 혼자 사는 아들은 괜찮을까요? 안 됩니다. 혼자 사는 아들도 여자 친구가 와서 자기 남자친구가 사는 것을 보니까 뒤에 보이지 않는 늙은 여자의 그림자가 보이면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해요. 그러니까 아들이 아무리 방을 지저분하게 해놓고 자취한다고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빨래도 안 해도 절대로 거들어 주면 안 됩니다. 딱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놔둬야, 여자가 와서 치우든지 해서 결혼이 되지, 엄마가 와서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도와준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식 결혼을 방해하는 것과 똑같아요. 이제 결정이 났어요? 안 났어요?“ (청중들 웃음)

 

“아직 70 대 30 이예요.” (청중들 웃음)

 


 

“젊은 남자가 좋긴 좋다. 아이고. 그러면 가서 아들 말고 다른 젊은 남자를 구해요. (청중들 웃음) 정을 딱 끊어야 됩니다. 같이 살게 되면 며느리와 원수가 되고, 며느리가 심리적으로 힘들면 손자가 엉망이 되어 버려요. 그래도 미련이 남았어요? 자꾸 생각을 하지 말고 딱 끊으세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해주셔서요.” (청중들 박수)

 


 

마침내 질문자의 마음도 활짝 열리고, 웃음을 머금습니다. 질문자를 깨닫도록 해주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약간의 전율이 일었습니다. 시어머니, 아들, 며느리 삼자 관계에서 각각이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지 명쾌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질문자의 마음이 안쓰러우셨는지 그 마음을 더 헤아리셔서 지금 행복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죠? 아까 시작할 때 두 시간 이상 한다고 하니까 회장님이 휴식시간주시냐고 해서 ”안 줍니다“ 하니까 ”화장실도 가야되고 차도 마셔야 되는데 어떡합니까“ 하셔서 ”놔두세요, 지루한 사람은 나가서 마시든지 하겠죠“ 얘기했었습니다. (청중들 웃음)

 

오늘 우리 얘기들이 다 인생의 힘든 얘기들 아닙니까? 그런데 얘기하다가 보니까 많이 웃었죠? 힘든 얘기라 울어야 되는데 그걸 갖고도 웃을 수 있잖아요. 죽은 얘기도 웃을 수 있고, 헤어진 얘기도 웃을 수 있고, 성질내는 얘기도 웃을 수 있습니다. 꼭 울어야 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래서 잘 아는 사람이 남편이 죽어서 훌쩍훌쩍 울고 있으면, 문상을 하고 절을 하고 나서 제가 조용히 가서 남한테 안 들리게 “아이고, 너는 좋겠다. 시집 한 번 더 가겠네” 합니다. (청중들 웃음) 

 


 

꼭 나쁜 일이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자기가 죽은 거지요. 때가 되어서 죽은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데리고 가신 건데 하나님한테 불만이에요? 죽은 것 가지고 난리를 피우면, 그것은 하나님한테 불만이라는 뜻 아닙니까? 그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불만을 갖는 것이 무슨 신앙입니까? 불교적으로 말하면 인연을 따라 갔는데,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고 하는데 왜 불만입니까? 이렇게 우리의 행위는 신앙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더 좋은데 간다 하잖아요. 천당에 간다는데 왜 불만이에요? 일부러라도 빨리 가야 하는데 일부러 까지는 갈 것 없으니까 때가 돼서 가는 건데 좋게 생각하고 ‘안녕히 가세요’ 하고, 살아있는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엄마가 행복하게 살아야 아이가 걱정 없이 인생을 살지, 엄마가 늘 울고 있으면 아이의 심리 속에는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고 절반은 엄마를 생각하고 있어서 아이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것입니다. 딱 끊어야 합니다. 아들이 엄마를 걱정해도 “얘야, 엄마는 괜찮다. 이제 너희는 너희들대로 젊은 사람끼리 자식 낳고 행복하게 살아라, 엄마 걱정 하지 마라, 1년에 한번 전화나 해라, 필요하면 내가 하면 되고” 이렇게 딱 하고 필요하면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든지, 재혼을 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죄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안 그러면 수도자처럼 살든지요. 

 

이렇게 자기의 삶을 살아야지 남한테 의지하면 안 됩니다. 어릴 때에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커서는 남편한테 의지하고, 이제는 또 아들에게 의지하는 것, 이것은 삼종지도예요. 그래서 옛날에 호적에 ‘호주‘는 아버지가 주잖아요, 결혼하면 주인이 남편으로 바껴요. 남편이 죽으면 아들로 주인이 바껴요. 여성은 평생 세번 팔려다니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호주제가 없어졌잖아요, 결혼할 때 서양에서 결혼한다고 딸 손을 잡고 신랑에게 건네주는 것이 소 파는 것과 같은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결혼 흉내 내지 마세요, 좋은 것 아닙니다. 이제 시대가 바꼈잖아요, 그에 따라 인식의 틀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나는 시어머니 밑에서 살았지만 너희는 이제 너희 마음껏 살라고 하고 나는 재혼을 하든지, 남자친구를 사귀든지, 수도원에 가든지 내 삶을 사세요. 

 

자기는 길이 열렸잖아요? 이제는 혼자 살아도 되고, 재혼을 해도 되고 길이 더 많이 열렸는데 그게 왜 큰일이라고 난리입니까? 섭섭한 것은 이해가 돼요. 그러나 섭섭한 것에 집착해서 미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은 다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누구나, 어떤 경험을 했든,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지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면 안 돼요.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내일 교통사고가 나서 죽으면 얼마나 억울해요? 그러니까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고 유쾌하고 즐거운 대화 속에 어느덧 2시간 25분이 흘렀습니다. 긴 시간 지혜로운 말씀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이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단상을 내려오시기 전에 십자가의 예수님께 예배를 하고 내려오셨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한 분은 "유튜브로 스님의 강연을 듣고 있는데 스님의 말씀이 정말 좋고 특히 이 먼곳까지 와 주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모든 질문들이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언제나 남탓을 해왔는데 오늘 스님 말씀을 듣고 남탓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이렇구나 알아차려야 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색깔 안경에 비유해서 하신 말씀이 좋았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다들 처음부터 끝까지 스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아주 집중해서 재밌고 유익하게 들었다고 소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 감사 인사를 하는 청중들.  

 

스님께서는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다리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시며 인사도 하고 함께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 

 


▲ 온 가족이 함께 강연에 참가한 분들  

 

오늘은 준비된 책들이 모자라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금강경, 반야심경, 깨달음, 기도 등을 찾는 분들이 많았고 영어로 된 책들도 다 판매되어 책을 구입하지 못하신 분들이 많아 미안하였습니다. 

 


 

이후 스님께선 강연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수고해준 자원봉사자들과 한인회장님, 재외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KOWIN) 김란 회장님, 이윤희 전 회장님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수고가 많았다고 감사해 하시면서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늦은 저녁을 드시기 위해서 인근에 있는 음식점 ‘향가’로 향했습니다. 향가에서는 오늘 강연을 주관하고 준비해준 KOWIN 회원들, 한인회장님과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스님께서 식사 기도를 하실 때 불교식 공양게송을 하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라고 하니 거의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들이었는데 스님의 열린 태도에 깜짝 놀랐다고 하였습니다.

 


 

한국 식당인 향가에서 자원봉사자들과 스님의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셨는데 스님께서는 주인이신 정안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리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자원봉사자들과 스님께 저녁식사를 대접해 준 '향가' 음식점 주인 정안나님  

 

그리고 오늘 수고한 KOWIN 회원들과도 따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강연 준비를 도맡아 주신 
KOWIN 회원들과 함께. 왼쪽이 이윤희 전 회장님, 오른쪽은 김란 현 회장님. 

 

그리고 스님께서는 식사하시면서 강연을 준비하며 어땠는지, 미진한 점이 무엇인지 KOWIN 회원들에게 물어 보시면서 담소를 나누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께서 다음에 또 오시면 그땐 더 잘 할 수 있으니 스님께서 꼭 다음에 방문해 달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식사 후에 “바로 내일 칠레 산티아고로 떠나야 한다”고 하시면서 감사하다는 인사 말씀을 하고 오늘 숙소인 김란님의 댁으로 이동하여 돌아오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늦은 밤 숙소에 전 KOWIN 회장님 부부(이윤희, 정기웅님)가 오셔서 스님께 좋은 일에 사용하시라고 보시를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리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자원봉사를 한 분들께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스님께서 이곳에 오시니 신나고 즐겁게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조금 부족한 부분들은 있었지만 다음에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워낙 신나는 일이여서 큰 어려움없이 할수 있었고 오늘 준비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정말 신나게 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홍보도 열심히 하였는데 홍보하는 과정도 정말 신나고 즐거웠다고 하였으며, 스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즐겁고 기쁜 시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칠레 강연이 끝나면 바로 밤 10시 40분 비행기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출발하시기 때문에 짐을 다시 꾸리시고 내일 일정에 대하여 잠깐 논의를 하였는데 내일 새벽 5시40분 비행기로 칠레로 이동하여야 하기 때문에 3시에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에 원고 교정 등 업무를 보시고 새벽 1시 30분이 된 후에 오늘 일정을 마쳤는데, 스님께서는 아직 잠들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93번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강연도 모두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94번째 강연이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산티아고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스님의하루 텔레그램 구독하기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