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오후 2시에는 세계 100회 강연 중 76번째 강연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산호세(San Jose)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저녁 6시에는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열립니다. 각각 자세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캘리포니아 주(State of California)는 미국 서부 해안선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주로서, 인구는 3,548만여명으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입니다. 주요 대도시로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샌디에이고가 있고 주도는 새크라멘토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가주(加州)라고도 부르며, 특히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남부 캘리포니아를 남가주,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북부 캘리포니아를 북가주라고 줄여 부릅니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 인구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민주당 지지주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는 그 자체의 경제규모만으로도 세계 6위권 국가 수준에 이르며, 가장 상업이 발달한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캘리포니아 주 제1의 농산물로는 오렌지, 레몬, 아몬드 등이며, 공업은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자동차, 컴퓨터, 영화 필름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습니다. 

 

북캘리포니아(북가주)는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하여 새크라맨토, 사우스베이, 이스트베이 등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을 일컫습니다. 북가주의 한인들은 약 14만3천여명정도 살고 있는데 현지에서는 20만명을 육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북가주에서만 절이 8개, 교회는 약 320개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온 지구촌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유명한 금문교가 있으며, 서부 최대의 차이나타운이 있고, 세계의 종교가 다 모여있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 오늘 이동 거리 : 포틀랜드 → 산호세, 670마일(1,078km)

    [구글 지도 보기] https://goo.gl/maps/vpCVP

 

이 중 오늘 강연이 있는 사우스베이 지역은 통칭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라 부르는 지역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약 1시간정도의 거리에 위치하며, 구글, 애플, HP, 인텔, 시스코시스템즈, 오라클, 페이스북, 야후, 아도비시스템즈, 삼성, 엘지 등 세계적인 IT기업이 모여 있는 도시입니다. 전체 인구 수는 95만명 정도이고, 한국 교민은 약 2만 7천명으로 캘리포니아 20개의 카운티 중에서 한국 교민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샐리콘밸리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기술 혁신의 상징이며, 1인당 특허수, 엔지니어 비율, 모험자본 투자 등의 면에서 미국 내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하이테크 경제로 인해 부유한 지역이 된 곳입니다. 또한 미국 최고의 사립대학 중의 하나인 스탠포드 대학교가 있으며 이 학교는 5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학생의 23%가 동양계입니다. 

 

오전 4시에 정채임님의 차를 타고 포틀랜드공항으로 가서 수속을 밟았습니다. 오늘은 6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산호세(San Jose)로 갑니다. 일찍부터 서둘러 공용짐과 개인짐을 모두 부치고 1시간 50분의 비행을 거쳐 8시에 산호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오늘부터 미주 지역 강연이 끝날 때까지 운전 봉사를 해주실 이경택님과 서남부 지부의 김명례 지구장 부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운전 봉사를 해주실 전 콜럼버스정토회 대표인 김준자님, 또한 이번 샌프란시스코 지역 5개 강연의 총괄 책임을 맡은 고옥희 에티엔 부부가 함께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 산호세 공항에 마중을 나와준 미주 서남부 지역 강연 자원봉사자들 

 

인사를 하고 공항에서 사진촬영을 한 후에 고옥희님 댁으로 이동하여 강연 전까지 아침식사 및 휴식을 취했습니다. 고옥희님 댁에 도착하니 모두들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자원봉사자들

 

다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을 보시다가 프랑스 출신인 에티엔님과 잠시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오늘 영어 통역을 해줄 제이슨 림이 워싱턴DC에서 도착하여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자원봉사자인 박현정님이 준비해준 비빔밥으로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에띠엔님께 잘 쉬었다가 간다고 하시면서 영문기도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성공회 성당인 St. Thomas Episcopal Church 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내외부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정토회의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 오늘 강연장, St. Thomas Episcopal Church

 

강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 성당을 운영하고 계신 Rob Keim 신부님께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작년부터 스님을 초청하고 싶었는데 올해 이렇게 스님을 모시고 강연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하시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셨고, 스님께서도 “이렇게 영어 강연 홍보도 해주시고 한국인 강연도 할 수 있게 성당을 제공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며 사인한 영문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강연 전 Rob Keim 신부님(왼쪽)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강연 전에 성당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고 있었는데 오늘 영어 통역 강연 후에 잠시 미팅을 하기로 한 치엔 우(Qian Wu)님이 와서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치엔 우님은 중국 학생으로 뉴욕대학교에서 사회적 종교를 공부하면서 동아시아 불교를 전공하고 있는데 최근에 스님의 외국인을 위한 강연 소식을 듣고 스님의 강연에 직접 참석하고 또 잠깐 스님과 미팅을 가지기 위해 뉴욕에서 이곳 산호세 강연까지 참석하러 오신 분입니다. 

 

▲ 스님과 미팅을 하기 위해 뉴욕에서 산호세까지 달려온 치엔 우(Qian Wu)님 

 

2시가 되자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 130명이 참석하여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며 특히 제이슨 림의 발빠른 통역 덕분에 짧은 시간에 많은 질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 강연에 앞서 Rob Keim 신부님이 인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강연을 할 수 있게 성당을 제공해주신 신부님의 인사 말씀과 오늘 강연을 통역해 줄 제이슨림님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된 스님 소개영상이 끝난 후 스님께서는 연단으로 나오셔서 잠시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한 10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따로 따로 살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끼리 불교인들은 불교인들끼리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중국인들은 중국인들끼리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자기들끼리 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 자기들의 가치관이 옳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는 서로 뒤섞여 살고 있습니다. 내가 기독교인이지만 친구 중에 불교인이 있고, 내가 한국인이지만 이웃에 중국인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이념, 사상이 한 공간 속에 서로 교류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내 문화, 내 신앙, 내 가치관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틀리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서로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갈등이 심화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것이 옳은가?’,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진실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겨납니다. 

 

오늘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질문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질문의 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의 고뇌도 좋고, 사회적인 것에서 생겨나는 문제, 과학적인 문제, 인간문제, 자연문제 등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입니다. 제한을 두지 말고 함께 대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을 질문할까, 무엇을 제기할까 망설이지 말고요. 어떤 것도 좋습니다. 시작해봅시다. 좋은 질문을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질문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10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인들과의 질문은 주로 인생에 대한 고뇌와 갈등에 대한 질문이 많다면 오늘 외국인들과의 강연에서는 아직 사회보편적인 가치관에 대한 물음이 더 많았습니다. 아직은 이런 즉문즉설 방식의 강연이 낯설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설명이 긴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다음은 외국인들이 스님께 질문한 내용입니다. 

 

▲ 외국인 130명이 참석하여 스님께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It appears that you have anoverwhelming schedule travelling all over the world meeting lots of people.  How do you manage your busy schedule andmaintain your health? 

전세계를 방문하시며 매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셔야 되는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스케줄을소화하시면서 그 와중에 건강을 챙기시는지요?

 

I have a standard question related toBuddhism.  On one hand, Buddhism stressesnot having desires and not caring about outcomes.  And yet, it stresses compassion as well.  That seems to be in conflict with Western Christianitywhere compassion springs out of caring and wanting certain outcome. 

불교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불교는 한편으로는 욕구를 버리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도 자비를 강조합니다. 서양 기독교 가르침에서는 연민(자비)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어떠한 (좋은) 결과가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으로부터 생긴다고 하기 때문에 이 둘이 대립되는 것같습니다.

 

Now, I understand the distinctionbetween different desires.  But regardingthe desire for society in relation to social justice and individual suffering, what will motivate a person to take an action for social justice?

이제 여러가지 욕구의 차이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사회에 대한욕구, 즉 사회적 정의와 개인의 고통 측면에서 무엇이 개인으로 하여금 사회 정의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동기를 부여할까요?

 

I would like to know different paths toenlightenment.

깨우침으로 가는 여러 길들을 알고 싶습니다.

 

 

In relation to the three desires youmentioned, because we’re human, we have a desire to have an identity.  Which category will this desire fallinto?   And, what do we need to do withsuch desire?  

말씀하신 세 가지의 욕구 관련해 질문하겠습니다. 인간은 아이덴티티 (정체성)를 가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이 욕구는 세 가지 욕구 중 어디에 속합니까?  또 이 욕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People being biased or greedy is part ofhuman nature. Since this is part of nature, it would not be good or bad.”  What do you think about this statement?

“사람들의 편견이나 욕심은 인간의 본능이며 자연에 섭리이니 이것은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라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s we live, we encounter problems likebetrayal and hatred between business partners or loved ones.  For me, it’s very hard to forgive.  A lot of my friends tell me to just forgive, but I have a hard time to forgive a friend who betrayed me.  Am I wrong to not forgive?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업 파트너간이나 또는 사랑하는 이들 간에 배신과 미움을 경험합니다. 저는 용서가 잘 안됩니다. 제 친구들은 그냥 용서하라 하지만 저는저를 배신한 친구를 용서 하기가 힘듭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제가 잘못됐나요?

 

I have a question regarding dreams fromsymbolism and neurobiological aspect.  Doyou dream and can you share what you do in your dream?   Meaning, do you interpret your dream and getmeaning out of it?

꿈의 상징적인 면이나 신경 생물학적 측면에서 질문하겠습니다. 스님은꿈을 꾸십니까? 어떤 꿈을 꾸십니까? 말하자면, 꿈에 대해 해석하고 의미를 두시는지요?

 


In Christian tradition, some dreams aremessages from God.  Is there messageaspect of dream in Buddhism?

크리스찬 전통에서는 어떤 꿈은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여깁니다. 불교에서도꿈을 메시지 측면에서 보는 경우가 있습니까?

 

Regarding how justice was defined by youearlier, nature is neutral.  So if mandoes better than nature, it is good. But, if man does worse than nature, then it is evil.  Is this correct?

먼저 정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자연은 중립적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사람이 자연보다 잘 행하면 그것은 선이고사람이 자연보다 못 행하면 그것은 악입니까? 

 

I am a Korean and moved to the U.S. fouryears ago and married a Jewish-American. What kind of effort should I put for loving family and raising children?

저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4년전에 이민왔고 유태인계 미국인과 결혼했습니다. 행복한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Do you have any advice for overcomingcultural difference in regards to raising a family?

가족을 위해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조언해 주세요.

 

Without science, how do you validateyour answer to the questions from audience?

과학에 근거를 두지않고 스님은 어떻게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입증하실수 있습니까?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제이슨 림의 빠르고 정확한 통역으로 동시통역기를 끼고 있는 것처럼 문답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 빠르고 정확하게 영어 통역을 해주시는 제이슨 림. 스님의 외국인 강연이 있을 때 마다 어김없이 비행기를 타고 달려와 자원봉사를 해주고 계십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화를 조절하는 것을 잘 못하는데 어떻게 화를 다스릴 수 있는지 묻는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I am really bad at anger control. I think I am mature enough tokind of recognize the moment that I lose my control. But I just can’t suppressthat. I have problems suppressing my anger although I kind of recognize themoment that my brain just goes around. How can I do better anger control?” 

저는 화를 조절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제가 조절이 안 되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 같긴 한데요, 화를 잘 참지는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화를 더 잘 조절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화가 날 때는 첫째, 화를 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도 자극을 받아 화를 냅니다. 나는 또 더 크게 화를 냅니다. 화가 확대 생산됩니다. 대부분 우리는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손해가 됩니다. 가장 어리석은 행동에 속하죠. 

when you have an angry, one option for you to express your anger. That causes reaction in the other object of the anger and he becomes angry. It becomes even more anger. So that anger amply the situation. This is how we usually react. It ultimately causes to me as well as the other. This is the most foolish option you have.

 

두 번째, 화를 참는 것입니다. 그러면 확대 생산은 안 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까 사회윤리적으로는 아주 좋게 평가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즉 나를 괴롭힙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윤리적으로 칭찬받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화를 참지 말라고 합니다.

The second option for you to press your anger then at least it prevents to amplify the situation. Since you are not causing the hurt, from ethical societal perspective that consider it very good action. Then you are actually tremendous amount of stress in a way you cause suffering to yourself. So causing suffering to yourself is not right spiritual practice. You may be praised from ethical perspective but it is not the way to make yourself happier. That's why we tell people do not press your anger.  

 


그러면 화를 내라는 거냐? 그것은 물론 아니겠죠. 화를 내느냐 참느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화가 일어나니까 참느냐 내느냐 두 길 밖에 없죠. 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두 길이 다 없어집니다. 화를 내지도 참지도 않습니다. 화를 내느냐 안 내느냐가 핵심이 아니고 '화가 왜 일어나는가'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화가 일어날 때 왜 일어나는지 살펴야 합니다. ‘너 때문에 화가 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문제가 깊이 관찰되야 합니다. 이것이 깊이 깊이 관찰이 되어서야 화 낼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화가 일어나지 않는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설령 놓쳐서 화가 일어나더라도 상대를 문제 삼는 게 아니고 '내가 놓쳤구나' 하고 되돌아 갑니다. 

So when I am saying that express your anger either. Of course not. So what I am saying is that the essence of the question is not whether you express or suppress anger. When you see anger arising , when your anger is there already, those are only two options to express or suppress. But there is no anger to begin with, those options are not to be necessary. You don't have to express nor suppress the anger. Why does anger arise? So you should be asking yourself, not whether control your anger, the question you should be asking is why you have anger ? You explore it , if you say I am angry because of you. But it is not really . so you have to be really thought deep down inside you. When you go down and down inside you, only discover that there is no reason to angry. Then you can reach that level of not anger. And you might lose that state once or twice, then you don't blame the other for your anger and recognize you have lost your focus and go back to state of not anger. do not allow anger exist.

 

이 경우에는 첫째, 일어나지 않거나, 둘째, 일어났다 하지만 금방 사라지거나, 셋째, 화를 내는 단계까지 갔더라도 ‘까르마가 작용하구나’ 알아차리는 계기가 됩니다. 이번에는 비록 놓쳤다 하더라도 문제의 원인을 발견했기 때문에 다음에 화가 나지 않는 단계에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공부해 가면 화가 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또 화를 내더라도 회수가 줄어들고 화났을 때 지속 시간이 줄어들고 실제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If you feel lose anger, that comes to be you to catch it. if you actually you anger can rise up within you, it actually becomes opportunity to examine Karma to see which part of element within you cause the anger. You might lose it or not catch in time once but because you caught the cause of that problem that provides you a learning experience of you to have exercise more of not anger. That is a study in spiritual practice, then eventually you see that you get angry less often , even if you do angry get angry, you see that you get angry less often. you do get angry, the ration of your angry reduces. You will see real change your emotion or behavior. 

 


참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일어나는 그 뿌리를 봐야 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기가 ‘옳다는 것’에 순간적으로 집착하면 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과연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 ‘옳은 것’은 아닙니다. 늘 자기 중심에 서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이라기 보다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이 됩니다. 이것은 오류입니다. 오류에서 발생합니다. 이렇게 몇 가지 부분을 깊이 관찰하면 원인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의식으로 콘트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되풀이 해서 연습하게 되면 많은 실패 끝에 억누르는 것이 아니고,  콘트롤 하는 것이 아니고, 화를 알아차리고  멈추는 단계로 갑니다. 

So suppress something is not spiritual practice. You have to look at the root that causes your anger. There are different reasons obviously, but the ultimate part, one of the largest causes of anger is the fact that you feel you are in the right. so if you feel in the right you feel anger. We may be different from each other but no one is in the right because we always look at and see and evaluate things from ourselves' perspective. From that perspective, when you encounter differences then evaluate as you being right and the other person wrong, that is mistake. anger is direct result from mental mistakeIf you explore the several different pattern of anger you will find causes. But you can't change you behavior because you intellectually understand where your behavior coming from because the spiritual spread from not by consciousness but by sub consciousness. Consciousness cannot control the behavior. But if you engage in that kind of watching, after repeat your failures, you won't be  suppressing anger, you won't be control anger, you will be able to reach the state where you can actually observe and be awaken to anger and allow it to disappear. 


용서해 줄 것이 없는 단계가 진정한 용서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용서한다 할 때는 ‘내가 옳다’는 얘기입니다. 용서하는 것으로는 같은 문제가 몇 회 반복되면 용서 못하는 쪽으로 터져버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심리 근저의 본질을 꽤뚫어야지 윤리 도덕적인 것만으로는 풀 수 없습니다. 그러나 1단계로는 화를 내면 나에게도 남에게도 손실이 오므로 일단 멈춰야 합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Similar to that I said before , we talked about the forgiveness. The true forgiveness is for you to recognize there is nothing to forgive in the first place because when we use the term forgiveness, you are saying that I am in the right. Once you forgive and once you forgive twice then you say that's enough I don't forgive it. Because if you forgive somebody you are actually suppressing. So you can't solve this by ethical approach you have to look at and delve down inside what 's really driving to your sub consciousness. But as a first step to this path, stop your suppressing anger because it amplifies the situation. But it is not a final solution.

 


이렇게 10명의 외국인들이 묻는 질문에 모두 답변을 마치니 2시간 25분이 흘렀습니다. 핵심만 짚어서 명쾌한 답변을 해주신 스님께 외국인들도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진리란 먼 곳이 아닌 우리들의 삶 속에 있다고 강조하시며 이렇게 강연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어요? 어려웠어요? 생활적인 내용을 갖고 쉽게 얘기했지만 철학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가 너무 쉽게 얘기해서 가볍게 느껴질 거예요.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다. 괴로워 하고 번뇌하는 곳에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는 우리의 마음이 작용하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넘어졌으면 넘어진 줄 알아야 하는데 넘어진 줄을 모르는 것이 오류입니다. 틀렸을 때는 틀렸음을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간단합니다. 그처럼 진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입니다. 

 


좀 더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어려분의 삶이 편안해지고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한테도 한 번 웃어 줄 수 있고, 물건도 하나 들어 줄 수 있습니다. ‘남을 도와주어야지’ 하는 의무감으로 하지 않고 그냥 해줄 수 있습니다. 좋은 일도 의무감으로 하면 힘이 들고 무겁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한 것은 불교의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법당 안에서 대화를 했을 때는 대화가 아주 제한적이었습니다. 진리다 법이다 이런 얘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문제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을 법당 밖으로 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 주제나 가지고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런 얘기를 하면 유쾌하고 웃습니다. 그것을 ‘야단법석을 떤다’ 라고 하는데 오늘은 별로 웃음이 적었어요. 통역을 해서 그런가봐요. 저녁에 통역없이 한국인들과 이렇게 하는 방법을 한번 보세요. 훨씬 많이 웃고 재밌게 할거예요. 구체적인 삶의 고뇌를 가지고 질문을 하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무리 말씀을 하시면서 오늘 장소를 제공해주신 신부님에게 큰 박수를 부탁드리고 좋은 통역을 해준 제이슨 림에게도 큰 박수를 부탁드렸더니 큰 박수 갈채가 쏟아집니다. 

 


스님의 목소리가 많이 갈라지고 탁해지셨는데 어제 강연 후에 잠도 거의 주무시지 못하고 비행기로 이동했기 때문에 피곤이 누적되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사람 한사람의 질문에 정성을 다하여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에 참석했던 외국인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백인 남성분은 “스님의 답변 속에서 왜 스님이 이런 활동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하면서 “전체적으로 큰 그림이 그려졌는데 굉장히 깊은 뜻이 있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려고 줄은 섰지만 시간이 다 되어 질문하지 못했던  백인 남성분께 질문을 하지 못했지만 괜찮은지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의 답변 속에서 본인의 의문이 해결되었다”며 만족해 했습니다. 

 

한 외국인은 “질의 응답 하는 방식이 정말 실용적이었다”고 하면서 “용서, 이해, 그리고 사랑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또 “특히 좋았던 부분은 오계를 다양한 주제들을 설명하는데에 자연스럽게 적용하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강연 내용이 정말 감명 깊었는지 “내년에 스님께서 이곳에 또 오시면 꼭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곧바로 북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이동해 사인을 하며 사진 촬영을 함께 했습니다. 

 


또 리셉션이 마련된 곳으로 이동하여 강연에 참석했던 외국인 분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다들 “스님과 질문자가 대화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깨우쳐 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 합니다. 

 

▲ 강연 후 리셉션이 마련된 곳에서 외국인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뉴욕대학교에서 온 치엔 우(Qian Wu)님과 약 30분 정도 미팅을 가졌습니다. 치엔 우(Qian Wu)님은 스님께 한국 불교와 일본 불교의 차이점, 한국 불교가 겪는 어려운 문제, 한국 불교나 일본 불교가 전통 불교와 다르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가 무엇인지, 종교가 인간의 고뇌를 치료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3가지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유학오거나 이민 와서 미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기독교가 부흥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불교가 많이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사업가나 정치인 등 기득권 층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첫째, 한국은 지난 70년간 미국의 영향권이 절대적인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두번째, 한국의 발전 모델이 전적으로 미국형이었기 때문에 많은 유학생, 지도층이 미국에서 훈련받아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회적인 리더쉽을 형성했고 그런 종교적인 영향도 커졌습니다.  또, 사회가 급격하게 산업화 사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산업화의 경험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노동자, 학생, 민주화 등에 대응을 할 수 있었던 반면 전통 불교는 농경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기반인 농경사회가 붕괴되면서 같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기독교인들이 사회,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화적 기반이 불교이기 때문에 정서적인 면에서는 불교가 그대로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불교가 이런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응을 못하면서 수세적으로 몰렸는데, 앞으로는 이에 적극적인 대응을 어떻게 할거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서양 모델을 추종할 때는 기독교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는데 지금은 거의 서양사회에 근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서양이 발전의 모델이었는데 이제는 서양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기독교도 동시에 한계가 오게 됩니다. 서양 문명, 현대 문명을 어떻게 극복할거냐 하는 것에 다음 사회의 영향력이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 치엔 우(Qian Wu)님의 여러가지 질문에 대해  답변해 주고 계신 스님 

 

“종교 조직이 사회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육, 기부, 사회활동 등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일단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뇌를 치료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게 지금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태국의 불교가 잘 되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의 기득권이지 사람들의 고뇌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자본에 물들어 가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그 속에 불교냐 기독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하나의 문화로만 남아있는 거죠. 한국은 문화가 전통 문화에서 기독교 문화로 좀 바뀌어 간다는 점에서는 다른 나라와 차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한국만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게 아니라 일본, 중국도 마찬가지고 한국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사회의 기득권 층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고 남북관계에 갈등을 가장 크게 가져오고, 한국사회 분열에 중심에 서 있고,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국민들로부터 국민적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집단이 크지만 앞으로 확장성은 없습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권력과 밀착돼 있고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런 것으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은 이미 내리막길을 가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요. 지금은 고뇌하는 대중들을 어떻게 고뇌로부터 구제할거냐의 문제에 있어 누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종교가 사람들의 고뇌를 치유해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기독교는 예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불교냐 기독교냐 하는 것 보다는 종교가 사회의 기득권을 행사하지 말고 대중의 어려움을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그것을 치료해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더 개방적이고 얼마나 더 통합적으로 사물을 보느냐, 누가 더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런 관점에서 경쟁이라면 새로운 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치엔 우(Qian Wu)는 특히 “스님께서 115일 동안 115개의 도시를 방문하여 대중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이라고 하면서 “현재 대중들은 그들이 겪고 있는 고뇌를 해결해야 하는데 큰 스님들은 만나기 어려운데, 스님께서 이렇게 직접 대중들을 만나러 다니니 그것 자체가 굉장히 놀랍고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대인의 고뇌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스님의 역할이 무엇보다 큰 것 같다”고 하니, 스님께서는 “단순히 고뇌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법(진리)을 깨쳐서 고뇌가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스님께서는 잠시의 여유도 없이 일정이 이어졌습니다. 곧이어 이성진님께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시고 다음 강연을 기다렸습니다. 오늘은 같은 장소에서 연달아 강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과의 소감나누기는 저녁 한국인 강연 뒤에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6번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의 외국인 통역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이어 저녁 6시에는 한국인을 위한 강연이 같은 장소에서 열립니다. 곧 77번째 강연 소식도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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