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100회 강연 중 70번째 강연이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유타 주(State of Utah)는 미국 서부지역에 있는 주로서, 인구는 약 280만명이며, 주도인 솔트레이크시티 지역에 65%의 인구가 모여 살고 있습니다. 유타주는 나바호(Navajo)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이 지역에 1847년 7월 24일 종교적 자유를 찾아 브리검영(Brigham Young)이 이끄는 몰몬교 신도들이 이주하여 정착촌을 건설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이 정착촌이 지금의 주도인 솔트레이크시티입니다. 유타 지역은 원래 멕시코 땅의 일부였는데 멕시코와 텍사스 지역 분쟁으로 인하여 전쟁이 일어나 미국이 승리함으로서 1848년 미국의 땅이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록키산맥 서편을 따라 도시가 남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도시 평균해발이 1,860m인 고산지대이며 최고봉인 Kings Peak은 해발 4,126m로 만년설이 덮여 있습니다. 염도 27%로 어류가 살지 못하는 소금 호수인 솔트레이크(Salt Lake)는 길이가 112Km에 너비가 48Km나 되며 호숫가에는 두꺼운 소금층이 얼음처럼 덮여 있습니다. 주 전체가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면 산동네이고 280만 인구 가운데 3분의 2가 몰몬교 신자로, 미국에서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Utah"는 ‘유트(Ute)’라는 인디언족의 말로 '산에 사는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 오늘 이동 거리 : 덴버 → 솔트레이크시티, 515마일(828km)

    [구글 지도 보기 https://goo.gl/maps/4PPfH

 

오늘 강연이 열리는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는 유타주의 주도로서, 인구는 시내가 18만명이며 대도시권은 109만명입니다. 시의 중심가는 처음에 몰몬교도들에 의해 개발되었고, 몰몬교 관련 시설과 아름다운 공원이 조화를 이룬 청결하고 질서 정연한 시가지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유타 주에는 8,300여 명의 한인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솔트레이크시티 주변에 살고 있으며 일반 이민자를 중심으로 유학생, 몰몬교인, 국제 결혼한 군인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전 7시 25분 솔트레이크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새벽 5시에 숙소에서 덴버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섬머타임이 해제되는 일요일(11월 첫째주)이기 때문에 공항이 혼잡스러울 것 같아 조금 일찍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덴버 강연을 위해 수고한 장재영, 석진숙 부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덴버 공항은 다른 공항과는 달리 지붕이 하얀 천막의 돔이 연결되어 있는 듯한 아주 특이한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 덴버공항. 지붕이 참 특이하죠?

 

1시간 30분 동안 비행하여 8시 55분에 솔트레이크 공항에 도착하니 제럿 힐리스&이미옥 부부와 진&스티브 로빈슨 부부가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 공항에 마중을 나와 준 제럿 힐리스님과 스티브 로빈슨님  

 

짐를 모두 찾아 재럿 힐리스님과 이미옥님의 차를 타고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신 김 그레이스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신 김 그레이스 님(왼쪽) 

 

아침식사 후 감사 인사를 하고, 몰몬교 성전도 둘러볼겸 시내로 나가 보았습니다. 몰몬교의 정식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인데, 초대 교회의 신권 조직과 교리와 운영 원리를 그대로 복원하였다는 등 회복된 기독교를 표방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성립된 기독교 교파입니다. 1830년 뉴욕주 로체스터시 인근에서 조셉 스미스 2세를 포함하여 다른 종교에 소속된 적이 없는 6명의 설립 등기인으로 공식 설립되었고, 이 교회는 처음부터 스스로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일원이 아니며 그 어느 틈새에서 파생된 종파도 아니고 회복된 기독교임을 천명하였습니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등 기성 교파에서 파생된 분파가 아니므로 구교와 신교의 구분과는 전혀 별개로 분류되며, 성경과 더불어 몰몬경을 경전으로 공인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몰몬교’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대외적으로는 공식 명칭 사용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1955년 처음 대한민국에 소개되었으며, 조직과 운영 원리상 직업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있는 평신도들이 부름을 받아 융화되고 단합되는 가운데 자발적인 헌신과 봉사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 몰몬교 성전

 

스님께서는 몰몬교 성전을 방문하여 한바퀴 둘러보고 솔트레이크 시내도 한바퀴 둘러보고 왔습니다. 

 


▲ 몰몬교 예배당 안

 


▲ 몰몬교 예배당에 있는 예수상 앞

 


▲ 예배당 안에서 기도하시는 스님

 

몰몬교 성전은 시내에 위치에 있는 반면에 유타주의 주청사는 언덕위에 위치해 있어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시내로 내려왔는데 내려오는 길이 무척 아름다웠고, 산꼭대기에서 시내까지 쭉뻗은 대로가 인상적이엇습니다. 

 


▲ 솔트레이크시티 주청사 앞

 

솔트레이크시티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워새치 산맥에 어제밤 눈이 내려 설산의 풍경도 참 멋있고 공기도 아주 시원해서 꼭 한국의 강원도 속초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 저 멀리 설산이 보이시죠? 

 

몰몬교 성전 및 시내 관람 후에 오늘 묵을 숙소인 진&스티브 로빈슨님 댁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갓 구운 빵으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후에 따님 등 가족 모두와 함께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 

 


 진&스티브 로빈슨 부부와 가족들

 

오늘 강연은 Comfort Inn에 딸린 미팅룸에서 있기 때문에 로빈슨님의 운전으로 강연장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인사를 하면서 즐겁게 강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장, Comfort Inn

 

총 150여명이 참석했는데 아담하고 소박한 Comfort Inn의 미팅룸이 가득찰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4시에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큰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유타에는 몰몬교도들만 사는 줄 알았는데 솔트레이크시에는 몰몬교도와 비몰몬교도가 반반정도라고 하고, 한국 성당도 하나 있고, 한국 교민들이 다니는 개신교 교회도 6개 정도 있다고 합니다. 

 


 

 

솔트레이크시티 강연은 미국인 제럿 힐리스님의 사회로 강연을 시작했는데, 약간 서투른 한국어 발음으로 강연 시작을 알리고 공지안내 등을 하였는데 서투른 한국 말투가 더 정감이 느껴져서 강연 시작부터 청중들을 모두 웃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럿 힐리스님은 몰몬교 성도 출신으로 작년에 LA정토수련원에서 묘당법사님과 함께 깨달음의 장 수련을 한 비한국인 1호 깨달음의 장 출신자이며, 천일결사자로서 현재 해외지부 사무국에서 해외정토회 홈페이지 관리와 해외지부 번역팀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이번 솔트레이크시티 강연은 재럿 힐리스님과 이미옥님 부부가 총괄 책임을 맡아서 모두 준비해 주었는데, 한국말도 잘해서 이번 강연에서 사회도 맡게 되었습니다.

 


 강연 사회를 맡은 재럿 힐리스님, 정토회 깨달음의장 제1호 비한국인 수련생입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오늘 몰몬교도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종교를 떠나서 인생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얘기를 나눠보자고 하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일요일인데 오전에는 교회들 잘 다녀오셨습니까? (청중들 웃음) 교회 다녀오시라고 오후에 강연을 잡았습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늘 한번 와보고 싶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인연이 닿지 않아 오지 못하다가, LA에서 뵈었던 이곳의 몰몬교 성도님 중 한 분이 초청하셨었는데 일정을 잡지 못하다가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을 준비하면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장소도 호텔 사장님이 제공해주셨다고 하고, 준비해주신 분들도 대부분 몰몬교 성도님들이 준비해주셨습니다, 그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에는 종교가 없는 분도 계실 것이고, 불교신자인 분도 계실 것이고, 몰몬교 성도도 있을 것이고 개신교 신자도 있을 것이고 천주교인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종교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종교가 어떻든지 간에 저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문제는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여러분들은 조금 더 행복하려고 이 먼 미국 땅에 와서 사시는데, 여기에 와서 조금 더 행복하세요? 와서 살아보니까 미국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죠? 한국에 있을 때에는 미국만 가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막상 미국에 와보면 그렇지 않고, 젊은 학생들은 입학시험만 끝나고 대학만 가면 고생이 끝난 줄 알지만 그렇지 않죠. 또 결혼만 하면 끝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복잡해집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늙으면 걱정이 없겠지 하지만 어때요? 늙어도 별로 끝이 안나죠? (청중들 웃음) 

 

이게 우리 인생입니다. ‘이렇게 되면 행복할거다’, ‘이렇게 되면 자유로울 것이다’는 것은 우리의 꿈이고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 지금 행복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도 늘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데 죽을 때까지 행복을 맛보지도 못하고 꿈만 꾸다가 죽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꿈만 꾸지 말고 직접 행복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갖는 고뇌들을 드러내놓고 대화를 해보면서 괴로움의 원인을 발견하고 시정하면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문제로 오늘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자, 그럼 시작해봅시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꿈을 향해 계속 가야할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감안해서 현실에 순응해서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스님의 조언을 구하는 분, 불교의 목표는 해탈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해탈을 이루기에는 부담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어떤 목적을 갖고 수행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어 사과를 하려고 하면 상대는 기억도 못할 때가 있는데 과거의 잘못한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자녀들이 모두 몰몬교 신도이고 주위에서는 기독교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거부감이 있는데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불교에서는 최고의 경지가 해탈과 열반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중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묻는 분, 스님이 된다는 것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인데 모든 사람들이 스님이 되어 아이를 낳지 않으면 세상이 망하지 않는지, 스님이 되면 부모님이 마음이 아플텐데 그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 분, 직원이 600명인 회사에 모두 미국인이고 혼자 한국인인데 일을 하다보면 언어적인 장벽도 있고 잘 섞이지 못하고 나는 조직의 진정한 구성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 강연은  곳곳에서 웃음이 빵빵 터지면서 많은 분들이 유쾌해했습니다. 그 중에서 남편이 원하는 삶과 내가 원하는 삶이 서로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 속에서 인간의 심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이직을 해서 이곳 솔트레이크에 이사 온 것까지 해서 제가 이사를 다닌 것이 미국과 캐나다 각각 3번씩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이사올 때 이번이 마지막이냐고 물었더니 이곳에 뼈를 묻는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더니, 남편은 이번에 또 캐나다에서 직장을 갖고 싶다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도 캐나다에 인터뷰를 하러 갔어요. (청중들 웃음)

 

사람마다 다 가치관과 추구하는 행복이 다르기 때문에 남편이 원하는 것은 저도 해주고 싶어요. 만약 남편이 아파서 누워있을 때 ‘해줄 걸’ 하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저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서 남편이 원하는 대로 도와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하지만 또 다른 데로 옮긴다는 것은 저는 원하지 않는 삶입니다. 

 

결혼을 했으면 거기에 책임이 있으니 제가 원하지 않더라도 거기로 따라 가야 하는 것인지, 일 때문에 떨어져있는 부부도 있고 기러기 아빠도 있는데 꼭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닌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남편이 원하는 삶을 존중해주고 싶고, 또한 남편도 제가 여기에 남겠다고 하니까 저를 존중해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부부관계에 있어서 올바른 결론인지 듣고 싶습니다.”

 

“그것을 혼자 사는 저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합니까? (청중들 웃음) 왜냐하면 혼자 사는 사람은 계속 혼자 살아도 이렇게 사는데, 조금 떨어져 사는 것이 뭐가 문제겠어요? 그래서 저한테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평생 떨어져 살아도 별 문제 없는 사람한테 조금 떨어져 사는 것이 문제가 있습니까 묻는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고 얘기하지요. 떨어져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혼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청중들 웃음) 아기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는 아이도 없고 결혼도 안하고도 잘 살잖아요. 자기는 이혼을 하더라도 그래도 결혼이란 걸 한번 해 봤잖아요. 저보다 훨씬 낫죠. (청중들 웃음) 

 


 

그런데, 결혼을 할 때 헤어져서 살려고 결혼을 했는지, 같이 살려고 결혼을 했는지가 문제예요. 예를 들어, 혼자 사는 스님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잖아요, “내가 결혼을 좀 해도 될까요?” 질문자에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실 건가요?”

 

“결혼하고 싶으면 하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요. (청중들 웃음) 결혼을 하는 것은 자유죠, 그렇지만 그러려면 승복을 벗고 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 것처럼 헤어져서 사는 것은 좋습니다. 헤어져서 살려고 한다면 이혼을 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청중들 웃음) 

 

그러다가 같이 살 조건이 되면 다시 결혼을 하면 되지요. 그러면 어떤 좋은 점이 있습니까? 따로 살 때 남편도 캐나다에 있을 때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 자유로워지고(청중들 웃음), 질문자도 여기서 좋은 남자가 있으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대 1년, 2년, 3년이 지나서 같이 살 조건이 되었는데도 서로 너만한 사람이 없어서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면 같이 살아도 되겠죠. 그런데 결혼은 해놓고 따로 살면, 남자 생각이 나고 여자 생각이 날 때 약간 도덕적으로 죄를 지어야 하잖아요. 양심에 가책을 받는 행동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안 그러려면 스트레스를 받지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속박하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행복하려고 결혼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결혼을 해서 괴로운데 그것을 억지로 참고 살려고 합니까? 그러니까 선택은 ’그래도 이 남자와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생각하면 배우자가 캐나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질문자가 따라가면 됩니다. 다만 이것은 성인인 두 사람의 얘기니까 이렇지 자녀가 있으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솔트레이크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오자고 해서 왔을 뿐이잖아요. 남편이 오자고 하지 않았으면 처음부터 올 일도 없던 곳이죠. 그래서 여기 구경도 잘 했고요. 저 같으면 배우자가 1, 2년마다 직장 위치를 바꾸면 좋을 것 같은데요. LA로 이민 와서 죽을 때까지 LA에서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해요. 이 넓은 나라에서 여기도 한 번 살아보고, 저기도 한 번 살아보고, 캐나다에서도 한 번 살아보고, 멕시코에서도 한 번 살아보고 하면 좋잖아요. ‘남편 덕에 온갖 곳을 다 구경한다’ 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바꾸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남편이 “여기 뼈를 묻겠다“ 했던 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본인이 여기에 올 때 그 때의 입장은 뼈를 묻겠다고 왔던 것이지요. 질문자가 ”또 이사 갈거니?” 하니까 거짓말로 “뼈를 묻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본인은 그 때 진실하게 말을 했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변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변한다는 것이 나쁜 것인가요? 아니에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원래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 사람인데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본인 마음을 한번 살펴보세요. 자꾸 바뀝니까? 아니면 늘 똑같습니까? 하루에도 열 두 번도 더 바뀌는 것이 사람 마음이지 않습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늘 바뀌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생각할 때 ‘남편이 또 변덕이다’가 아니라, ‘남편이 여기 몇 년 살아보니까 또 다른 데에 살아보고 싶구나’하고 이해하면 되는 거예요. ’나쁘다‘, ’좋다‘ 하지 말고요. 마음이 늘 바뀌는 사람에게 이번에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하기로 확실히 결정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런 남자와 여행이나 하면서 산다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도 남편은 직장을 구해서 가잖아요. 무작정 가서 실업 상태에서 질문자가 먹여 살려야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직장을 구해서 가니까 그렇게 큰 문제는 없어요. 외교관을 하면 매 3년마다 바꾸잖아요, 그것도 전 세계로요. 그것도 바꾸는 것이잖습니까. 위치가 바뀌더라도 직업을 하나로 유지하면 문제가 없고 직업을 바꾸면 문제가 되나요?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한편으로 남편은 어렸을 때 가족관계나 가정 분위기 때문에 정서불안이 있을 수 있어요. 정서불안 때문에 직장을 자주 바꾸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여자를 자주 안 바꾸는 것만 해도 굉장한 사람이예요. (청중들 웃음) 

 


 

이런 경우에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이미 형성된 자기 정서에 맞게 사는 방법이 있어요. 두번째는 명상을 하던지 해서 불안한 마음을 치유해서 한 곳에 조금 더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고요. 저희 수행자 그룹에 들어와도 늘 이런 정서가 있는 사람은 한 부서나 한 지역에 파견되면 1년을 못 있고 사람을 시비하거나 업무를 시비합니다. 그래서 옮겨주면 괜찮다가 또 갈등을 일으켜요. 또 옮겨줘도 그렇고요. 이렇게 옮겨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지도자가 그 사람의 성향을 고려해서 처음부터 그 성향에 맞게 1년씩 배치 근무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언을 해주는 겁니다. “너는 이런 카르마가 있는데, 이런 업식에 따라 살래? 아니면 고칠래?” 하고, “고치겠다”고 한다면 ”그래, 이 불안 심리를 고치겠다고 한다면, 이번 3년은 하늘이 무너져도 거기에 있어야 한다” 고 약속을 합니다. 그렇게 해도 1년도 못 가서 엉덩이가 들썩들썩 해요. 그래도 이렇게 약속을 해서 수행 지도를 하면 그 사람이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그곳에서 3년을 버티게 돼요. 이렇게 한번 고비를 넘기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훨씬 그 간격이 길어집니다. 이것은 일종의 치료이지요. 

 

저같이 매일 옮겨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3년 정도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제 견해는 그렇고요. 질문자 본인의 의견을 말씀해보세요.”

 

“일단 저도 스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이 없었습니다. 인정을 해주니까요. 그런데 결혼생활 10년 동안 저도 저 나름대로 학교를 다녔고 그것을 활용하고 싶은데 남편이 너무 자리를 옮기니까 그걸 못합니다. 학교에 가서 좀 더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또 뉴욕에 저희 집 식구들이 다 같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저도 같이 가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결혼을 했기 때문에 같이 있는 것이 저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10년을 어디를 가던지 감사한 마음으로 따라다녔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또 캐나다를 가면서는 ”거기서 몇 년을 있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1년 있다가 또 옮길 거니까 자리를 잡고 싶으면 너는 자리를 잡으라” 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생활에 있어서 이렇게 떨어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여쭤보고 싶습니다”

 

“옳지는 않아요. 옳지는 않지만 서로 요구가 다른 상황이잖아요. 부부가 한 방에서 자는 게 좋지만, 한 사람은 덥다고 20도로 맞추자고 하고, 나는 추워서 25도로 맞추자고 해요. 아무리 해도 이게 해결이 안 돼서 22.5도로 맞춰서 한 사람은 조금 더워도 참고, 한 사람은 조금 추워도 참자고 합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헤어져야 할까요? 아닙니다. 다른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한 사람은 20도로 방을 하나 쓰고, 한 사람은 25로 방을 쓰면서 볼 일이 있을 때에만 잠깐 잠깐 만나는 생활도 있습니다. (청중들 웃음) 

 

이것이 서로가 합의되면 부부생활이 잘못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방에서 자는 것이 원칙이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두 사람의 체질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분이 의논을 해보세요. 

 

기본적으로는 본인이 맞춰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내가 춥더라도 스웨터를 입고 상대방의 온도에 맞추면 특별히 시비할 것이 없어요.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살겠다, 얼어죽겠다’ 싶으면 중간이라도 맞추자고 남편에게 얘기해보고, 남편이 ‘나는 그러면 더워서 못 산다’고 한다면 방을 각각 쓰고 가끔 보자고 하는 방법도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합의가 안 되면 헤어지는 수밖에 없는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까 각 방을 하나 쓰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해볼 수 있습니다.(청중들 웃음) 주말 부부도 아니고, 월말 부부도 아니고, 연말 부부가 되겠네요. 연말 부부라 해도 결혼 안 한 나보단 낫잖아요. (청중들 웃음) 저는 1년이 지나도 만난다는 아무 예약도 없이 사는데요. 그러니까 질문자도 ‘스님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 없지요(청중들 웃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성인 사이에서는 서로 합의를 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따로 따로 살면 따로 사는 데 습관이 붙어요. 그러다가 같이 살려면 서로 잘 안 맞아요. 그래서 따로 사는 것은 앞으로 완전히 따로 사는 쪽으로 발을 디디는 결과로 갑니다.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처음에는 직업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살다보면 습관이 붙게 되고 생각이 바뀌게 돼요. ‘직업 때문이니까 떨어져 살아도 되겠지’ 생각하지만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이것이 임시가 아니라 정상화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와서 나에게 호의를 표할 때 부부가 한 집에 살 때와 떨어져서 6개월 동안 외롭게 지내고 있을 때에는 심리가 다르게 작동을 하게 되죠. 즉 그것이 좋고 나쁘다는 것과 관계 없이 따로 살 확률이 높은 쪽으로 첫 발을 디디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은 늘 환경에 따라 의식이 바뀌는 존재예요. 

 

제가 볼 때에는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고, 죽어도 그렇게 못살겠다면 질문자도 본인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주말부부를 해도 됩니다. 또 떨어져 살아도 별 문제 없겠다 싶으면 아이도 없으니까 이혼을 해도 됩니다. (청중들 웃음) 괜찮아요. 종교적, 도덕적인 것들에 크게 구애받을 필요는 없어요. 단, 자식이 있다면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종교 때문도 아니고 도덕적인 문제 때문에도 아니예요. 하나의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가 나처럼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 때는 부부가 자기들 좋은 대로 해서는 안 돼요. 이럴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이 안 낳은게 다행이네요, 아주 현명했어요 (청중들 웃음) 자, 어떻게 하고 싶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제 의견을 말했고, 결정은 본인이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고민을 해봐도 결정이 잘 안 날거에요. 그 이유는 비율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지요. 비율차이가 크면 와서 묻지도 않았겠지요. 본인이 이미 결정해버렸겠죠. 여기서 물을 때에는 같이 살아야 되는지, 따로 살아야 할지가 49:51쯤 돼서 결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서 묻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어떻게 결정해도 큰 차이는 없어요. 

 

한편으로 이 경우에는 어떻게 결정해도 후회를 할 것입니다. 반반이기 때문에 결정한 쪽으로는 좋은 건 눈에 안 보이고 부족한 것만 눈에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을 결정해야 후회가 없을까’ 하는데 그런 건 없어요. 어느 쪽을 결정해도 후회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를 결정하고 거기에 따른 과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즉 남편을 따라가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는 과보를 받아야 하고, 떨어져 살면 외로움이나 앞으로 일어날 여러 문제들에 대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면 돼요”

 

“감사합니다”

 

문답이 진행될수록 점점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스님께서는 늘 이쪽 측면에서도 보게 해주고 저쪽 측면에서도 보게 해주고 위에서도 보게 해주고 아래에서도 보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고 나면 마음은 어느새 가벼워져 있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점점 가벼워지는 즉문즉설 강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주변 상황을 바꾸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다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고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 행복과 자유를 남이 준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신이 조금만 더 잘하면 내가 더 행복할텐데’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당신 탓 하다가 계속 올라가면 하나님까지 올라갑니다. 이것은 누군가로부터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이라는 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오는 거예요. 

 

나의 기대심리를 조금 낮추면 만족도가 높아져요. 상대방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실직하면 짜증이나죠. 그런데 상대방이 죽고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섭기도 하고 운전하는 것도 문제고, 다른 사람 만났을 때 혼자 산다고 얘기하는 것도 싫잖아요.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만 해도 복이다’ 라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내가 어떤 기준, 어떤 자세,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가 나의 행복도를 높이는 데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이제는 공부를 조금 하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바꾸면, 내 관점을 바꾸면, 바깥 상황을 그대로 놔두고도 여러분들의 행복도가 높아져요. 

 


 

‘저 인간 문제다’ 하는 것은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고, ‘그 인간 술은 먹지만, 다른 것은 괜찮다’ 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우선 자신의 심리가 행복해지고 상대에 대해서도 존중해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우리 몸에서 신선한 에너지가 나타납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요. 세상이 어떻든 간에 ‘지금 살았다’는 것은 대성공이예요. 지금까지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머진 부차적인 것입니다. 그런 긍정성 위에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 아파도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아플 수 있는 것이죠, 사업이 실패해도 지금 살아있으니까 실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살아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십시오, 그러면 행복도가 높아질 것입니다.”

 

스님의 명쾌한 행복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마음도 밝아집니다. 웃음을 머금은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 갈채로 고마운 마음을 스님께 표현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만 스님의 뵙다가 이렇게 직접뵈니 너무 좋고 감격스러웠다” 고 하였고, 또 어떤 분은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를 통해서 스님을 매일 만나고 있는데, 스님을 이렇게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고 하는 등 스님을 직접 만나뵙게 된 것을 모두들 기쁘게 여겼습니다. 강연 내용에 대해서도 다들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자리였다고 하고,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솔트레이크시티에 살고 있는 줄 몰랐다고 하면 다들 반가워 하였습니다. 교민들이 비교적 적게 살고 있는 도시로 갈수록 서로 만날 기회가 없는데 스님 강연을 계기로 서로 만나게 되니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는 것 같아 참 좋았습니다. 특히 이번에 자원봉사를 했던 진로빈슨님, 김그레이스님도 이번에 서로 처음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사인을 해주면서 행사장에 오신 많은 분들과 인사도 하고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모두와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외국인 분도 두 분이나 자원봉사를 함께 해주셨는데 스님께서는 그분들께도 단주를 끼워주시면서 특별히 더 감사한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장은 Comfort Inn을 운영하고 있는 김중렬 사장님이 무료로 제공해 주셨는데 사장님께도 사인한 새로운 백년 책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행사를 후원해주신 서울식품의 스티브정님께도 새로운 백년 책을 선물했습니다.

 


▲ 오늘 강연을 후원해주신 스티브정 부부

 

그리고 스님 일행의 아침 식사와 후원을 해주셨던 김그레이스님께도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아침 식사를 제공해준 김 그레이스님

 

또한 이번 행사의 강연 담당자로 행사 총괄을 맡아 동분서주 했던 재럿 힐리스님과 이미옥 부부님께도 각각 새로운 백년과 영문 기도 책을 감사의 선물로 드렸습니다. 

 


▲ 오늘 강연을 총괄해주신 제럿 힐리스, 이미옥 부부

 

그리고 오늘 숙소 및 점심, 저녁 식사를 준비해 준 진&스티브 로빈슨 부부에게도 인생수업 책과 영문 기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후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힘들 때 TV에 나온 스님을 보고 스님의 유튜브 강연을 듣고 있었는데 유타에 온다는 것을 알고 은혜를 갚고 싶어서 봉사신청을 하게 되었다" 고 합니다. 어떤 분은" 봉사를 하면서 종교에 대한 여러가지 갈등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이곳은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많아서 홍보하고 봉사자를 모으고 하는 과정이 힘들었는데, 한 분이 지인들을 모아주어서 큰 힘이 되었다" 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일요일은 아무런 행사나 활동을 하지 않는 날이고, 가족과 함께 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가하신 것 같아 봉사한 보람이 더 컸다" 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다음에도 스님께서 유타를 방문해주시면 좋겠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오늘은 외국인이 4명이나 자원봉사를 함께 해주셨는데, 모두 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듣고 아내와 남편이 행복해진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 가족들도 기쁘게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외에 사시는 분들일수록 유튜브, 팟캐스트,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 앱 등 SNS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더 많이 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뒷마무리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진&스티븐 로빈슨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잠시 내일 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 

 


▲ 숙소인 진&스티브 로빈슨님 댁 마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죠?

 

내일은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강연이 있기 때문에 새벽 6시 15분에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0번째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71번째 강연은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타코마에서 또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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