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66번째 강연이 일리노이주 일리노이 대학교 얼바나-삼페인(Urbana-Champaign)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일리노이주(State of Illinois)는 인구가 약 1,241만명(2011년 추계)으로 중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로, 미국 전체에서는 다섯 번째로 많으며, 주 대부분의 인구가 시카고와 그 주변 지역에 밀집해 있습니다. 일리노이주의 지형 자체가 평야라서 토네이도도 매년 정기적으로 나타나고, 산이나 언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집들이 바람 막이 차원에서 나무를 집 주변으로 빙 둘러 키우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입니다.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시카고이며, 주도는 스프링필드이고 얼바나-샴페인 지역도 전자공학, 경영학, 법학으로 유명한 일리노이 대학교 캠퍼스가 있는 도시라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습니다. 


▲ 옥수수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답게 광활한 옥수수 밭이 펼쳐졌습니다.

미국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율리시스 S. 그랜트, 그리고 현직 대통령인 바락 오바마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주로 유명하며, 특히 유색 인종들에게 매우 유서 깊은 주인데, 노예제 폐지와 인종차별 금지를 꿈꾸다가 암살당한 링컨의 주에서 훗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정치 경력을 쌓고 대통령에 오르며, 미국 역사상 아프리카계 미국인 상원의원 6명중 3명이 이 주에서 선출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나 유독 시카고만 진보적입니다. 문제는 일리노이 인구가 1,200만인데 그 중 시카고 인구가 무려 900만이라서 결국 실제로는 민주당이 우세한 지역입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일리노이 대학교 얼바나-샴페인은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줄여서 UIUC)은 일리노이주에 있는 주립 대학으로, 일리노이 대학교 시스템 중 가장 큰 캠퍼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약 3시간 떨어진 일리노이주의 중부지역인 얼바나(Urbana)와 샴페인(Champaign) 이라는 작은 두 농촌도시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학생을 포함한 교민은 약 4,000명 정도입니다. 이 도시의 인구는 약 23만명 정도이며, 그래서 학교의 공식명칭 또한 일리노이 대학교 얼바나-샴페인이며, 학생수는 약 4만명이고 그 중 대학원 과정에 만여명이 재학 중이며, 미국 최우수 주립대학교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고, 공학부분은 대학원과 학부 모두 전국 최고의 수준입니다. 

오전 7시 30분에 Inn에서 제공하는 아침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8시 30분에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오늘 강연이 열리는 일리노이대학교 얼바나-삼페인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하루 종일 틈틈이, 그리고 강연이 끝나고 숙소인 Inn으로 와서도, 오늘 아침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시기 전에도, 손에서 원고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원고를 보고 계십니다. 


▲ 오늘 오전 이동 거리 : 인디애나폴리스 -> 알바나-샴페인, 112마일(180km)
   [지도보기] https://goo.gl/maps/WPQAd

학교까지 2시간 거리이나 1시간 시차가 있어 9시 50분에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 오늘 강연장, 일리노이 대학교의 University YMCA. 입구에서 포스터를 들고 길안내를 해주시는 봉사자 두 분이 보이시죠?

오늘 강연이 열리는 일리노이대학교 얼바나-샴페인의 캠퍼스에 도착하니 이곳 학생이면서 천일결사자이고 정토행자인 정가영님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학생 휴게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강연 전에 스님 책을 구입해 사인 받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북 사인회도 강연 전부터 시작하여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정가영 학생

오늘 일리노이 대학교 강연은 세인트루이스로 가는 길에 오전 11시 무렵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약 200여명이 강연장을 찾았으며 강연은 1시 2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일리노이 대학 뿐만 아니라 인근의 스프링필드, 인디애나의 퍼듀 대학교에서도 많이 와 강연장은 꽉 찼고 환영의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소개 영상이 끝나고 큰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낮 시간에 강연을 열게 된 것에 대해 양해 말씀을 구하면서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에 대해 안내해 주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낮 시간에 강연을 잡아서 학생들이 많이 못올 줄 알았어요. 수업 중에 강연 들으러 나왔어요? 제가 5년 전에 여기 와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저녁에 강연을 잡으려니까 도저히 일정이 안 되었어요. 그래도 이곳은 학교이니까 낮에 한번 잡아보자 해서 낮에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업에 방해가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맨날 하는 공부니까 하루 정도는 빼먹어도 돼요. (청중들 웃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면 학습 효율도 오르니까 오늘은 지식적인 것을 조금 내려놓고 사물의 전모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키우는 지혜에 대해서 함께 대화해 보고 싶습니다. 즉문즉설에서 ‘설’이라는 말은 대화를 하면서 좀 더 진실을 규명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말을 뜻합니다. ‘답’이라는 말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은 제가 여러분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갖는 고뇌에 대해 함께 대화하면서 조금 더 진실에 접근하는데 도움이 되려고 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자, 그럼 누구든지 질문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드세요.”

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20년 했는데 요즘은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 일을 안 할 수는 없나 하는 생각때문에 답답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하는 분, 대학 전공을 부모님의 의지에 따라 결정했고 지금은 전공에 대해 회의가 들면서 자꾸 부모님 탓을 하게 되고 이제부터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두려움이 앞선다는 분, 3개월 전에 20년지기 친구와 사소한 계기로 싸우고 난 후 아직도 화해를 못하고 말도 서로 못하고 있는데 허무감이 너무 커서 고민인 분, 부처님께서 창조주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있는지, 일상생활을 하면서 업이 계속 발생하는데 이것을 청소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만인의 업을 짊어지는 것을 부처님께서 언급한 것이 있는지 묻는 분,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인연이 흩어지는 순간 허무해지면서 인생이 허무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연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선의를 베푼 것이 조롱이나 멸시로 돌아와서 힘들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깨우침을 주었기에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살아가면서 선한 행위를 추구하며 살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는 건 순진하다거나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그렇다거나 현실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사람에게 선의로 대한 것이 조롱이나 멸시로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선의를 베푼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베푼 것이니까 이걸로 상처를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에서 마음을 컨트롤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좀 막연하네요. 구체적인 사건을 얘기해 주실래요?” 

“룸메이트와의 사이에 돈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동으로 쓰고 있는 물건에 대해서, 가령 렌트비와 인터넷 사용료를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배려해서 제가 먼저 내고 나중에 돌려받으려고 했는데, 정작 나중에는 못 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똥 누러 갈 때 마음하고 똥 누고 나올 때 마음이 서로 다르다고 하잖아요. 돈을 빌려갈 때는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3일 뒤에 준다고 했는데 빌려간 뒤에는 태도가 바뀌잖아요. 그러니까 빌려 준 사람이 받으러 다녀야 해요. 일단 내 손에 있을 때라야 내 돈이지 상대 편에게 넘어가면 내돈이 아니예요. 돈에는 원래 니꺼 내꺼가 없는데 손에 쥐면 내꺼가 됩니다. 그런데 나는 내 손에 있던 걸 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상대는 자기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늦게 돌려주려고 하는 겁니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불해야 할 돈은 가능한 늦게 지불하려고 하고, 받을 돈은 빨리 받고 싶은데, 현실은 지불하는 돈은 바로 줘야 하고 받을 돈은 빨리 못 받고 그렇게 되지요. 자기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불할 돈은 늘 제 시간에 지불하고 받을 돈은 늘 제 시간에 못 받는다고 느껴요. 이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심리입니다. 

일단 상대가 돈 없다고 해서 대신 좀 내어 달라고 해서 지불했잖아요. 그런데 달라고 하면 상대는 자기 것을 달라는 것처럼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한번 해보고 인간 심리가 이렇구나 하고 알고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런 관계를 매번 반복하다는 것은 자기가 바보인 겁니다. 이건 착한 것이 아니고 바보에 속합니다. 착한 것과 바보는 다릅니다. 착하다는 말은 남에게 해를 안끼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예요. 그런데 선행을 베풀 때는 항상 보상을 바랍니다. 그래서 보상이 안 오면 굉장히 섭섭하고 미워지죠. 그래서 착하다고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 오히려 악한 사람보다 더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지금 자기 인생의 갑 노릇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영악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식투자를 할 때도 한 두번 해보고 손해보면 포기를 해야 되는데 미련을 가지면 집까지 날리고 이러지 않습니까. 그럴 때 이 사람은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질문자는 착할지는 몰라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습 효과가 없는 겁니다. 남의 돈을 떼먹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상대편의 성향이 그러면 내가 그걸 미리 감안을 해야 돼요. 친구지간이라면 “그래. 뭐 너가 돈이 없으면 내가 낼게” 이렇게 하든지, 한두번 해보고 안 되면 화낼 필요도 없고 상대가 낼 때까지 “이번엔 니가 내것까지 대신해서 내라. 니가 내고 나면 내가 줄게.”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방법이 나옵니다. 또 어떤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더 얘기해봐요.(청중들 웃음)”



“어떤 일을 할 때도 상대가 도움을 요청해서 도와주었는데 정작 상대는 ‘이건 내가 원했던 퀄리티가 아닌데’ 하는 얘기를 듣게 된다든지요.”

“내가 어떤 여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그 여성을 사랑한다고 그 여성도 나를 사랑해야 합니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내 마음이니까 그건 좋아요. 그러나 상대가 나를 사랑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은 상대의 권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친구지간에 거래를 하고 있는데, 지금 손해가 좀 났다는 이런 얘기네요.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이름을 붙일 때는 거래를 하지 말아야 돼요. 내가 백번 전화했는데 상대는 나한테 한 번도 전화를 안 하더라도 그걸 갖고 논하지는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장사를 하려면 똑똑하게 해야 됩니다. 아예 장사를 안 하든지, 장사를 하려면 좀 똑똑하게 하든지요. 그런데 자기는 지금 장사를 하면서 사랑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는 겁니다. 친구지간에 우정을 얘기하면서 친구를 또 나쁘다고 얘기합니다. “나는 술을 세 번 샀는데 너는 왜 한번도 안 사느냐”고 합니다. 술을 한 번도 안 산 그 친구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질문자도 문제인 겁니다. 왜 그럴까요? 친구지간에 무슨 술 몇 번 샀는지를 따집니까? 그건 친구 사이가 아니고 거래를 하는 것이죠. 친구라면 거래를 멈춰야 되고, 친구가 아니라 거래를 하겠다면 장사를 똑바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사랑이다 우정이다 하면서 실제로는 거래를 해요. 그래서 늘 횟수를 따지고 액수를 따집니다. 

자기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선행이라기 보다는 선투자를 하는 식입니다. 먼저 돈을 주고 나중에 이자를 붙여서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자는커녕 본전도 안 돌아오니까 본인도 괴롭고, 남들이 보기에도 바보라고 그러는 겁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하는 것을 호의라고 생각했는데 스님은 그게 호의가 아니라는 말씀인건가요? 저는 대가를 바라지는 않았는데 욕을 듣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그것도 대가를 바라는 것이지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이 진짜 호의라는 것입니다. 대가는 꼭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좋은 일을 할 때 어떤 대가를 바래요? 칭찬 받는 대가를 바래요. 그런데 칭찬이 안 돌아오고 욕이 돌아오니까 기분이 나쁜 것이지요.” 

“칭찬은 아니더라도 욕은 하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청중들 웃음) 

 

“그것도 내 요구이지요. 칭찬은 아니더라도 욕은 하지 말아달라는 그 말은 이자는 못 붙여줘도 원금은 갚아달라 이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 니가 어떻게 원금도 안 갚냐 이런 거래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걸 내 문제로 봐야 내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지 그 사람의 문제라고 보면 자기가 그런 인간을 어떻게 다 고칠 수 있어요? 같이 살자고 룸메이트를 했지 그 사람의 성격 고쳐줄려고 룸메이트 한 게 아니잖아요. 자기는 바깥으로는 착할지 몰라도 자기가 그려놓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겁니다. 자기 머리속에 그려진 모습으로 세상을 보는데 이것이 실제 세상과는 안 맞아서 고뇌가 생기는 겁니다. 내가 그린 모습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고 인식을 해야 됩니다.”    

“스님 말씀 들으니까 거래면 거래고 호의면 호의이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현실의 인간은 성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다 거래를 하게 되어 있어요. 바깥으로는 호의를 베푸는 것 같지만 머리 속으로는 전부 거래를 해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는데 딱 건져내자마자 내 보따리 내놔라 했을 때 기분이 나쁘다. 그러면 이건 거래입니다. 진짜 호의란 어떤 것일까요? 저 사람 건져주면 분명히 내 보따리 내놔라 할 것을 알고도 건지는 것이 진짜 호의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야 되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면 나한테 복 된다’, ‘저 사람이 나한테 고맙다고 할 거다’, 이것이 대가를 바라고 있는 마음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은 나한테 비난이 오고 손실이 와도 그건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비난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손익 계산을 하지 말고 살려야 되면 살려야 하는 겁니다.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울 건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고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처럼 지향점은 ‘남을 도울 때 대가를 바라지 마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불경에서는 ‘무주상보시’ 라고 했고, 성경에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라고 했는데, 이 말은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뜻입니다. 손이 발 씻겨주고 발한테 대가를 바라지 않잖아요. 세수 해주고 얼굴한테 대가를 바라지 않잖아요. 그것처럼 자기 일로 하는 것이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남한테 조금이라도 호의를 베풀면 대가를 바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종속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나는 성인을 지향하지만 내 친구들은 아직도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둬야 합니다. 나는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더라도 그들이 대가를 바라며 호의를 베푸는 것은 받아줘야 합니다. 그들은 성인이 아니니까요. 



지금 질문자가 약간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성인이 아닌데 성인처럼 흉내를 내서 그런 겁니다. 머리는 성인의 생각을 하고 마음은 세속의 생각을 하니까 ‘나는 좋은 생각으로 도와줬다’ 이러지만 마음에서는 대가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지금 고민이 생기는 겁니다. 그럴 때 나를 보고 ‘내가 대가를 바라서 이런 괴로움이 생기는구나’ 이렇게 자각하면 괜찮은데, 그걸 갖고 친구들한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씩이나 불평을 털어놓으니 멍청이 같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겁니다. 그런 불평을 자꾸 함으로해서 자기가 더 바보가 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질문자가 활짝 웃자,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줍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다시 한 번 질문자에게 내가 이기적이듯이 상대도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며 덧붙여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사람은 이기적입니까? 이타적입니까? 이기적이에요. 그렇다면 이기적인 것을 이기적이라고 아는 것이 진리입니다. 여러분들은 이타적이라야 진리라고 생각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진리란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것을 이기적이라고 알고, 어리석은 것을 어리석다고 아는 것이 진리입니다. 꿈을 꿈인 줄 아는 게 깨달음이예요. 내가 나를 보고 ‘이기적이구나’ 라고 알면 다른 사람도 이기적이겠다는 것을 알게 되니 다른 사람이 이기적인 것을 갖고 내가 시비를 안 하게 됩니다. 이기적인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방안 온도부터 음식의 간까지 서로 다른 점이 천가지 만가지가 넘습니다. 상대가 덥다고 하면 에어컨을 틀어주고 내가 약간 추워도 옷을 입고 적응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가 약간 춥다고 하면 온도를 올려주고 내가 옷을 벗고 적응할 수 있게 서로가 준비되어 있어야 같이 사는 게 됩니다. 같이 살려면 최소한 절반 정도는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 제일 낫고요. 그러면 아무 갈등이 없어요. 그런데 이게 안 되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게 다 힘든 겁니다.



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것을 버려야 세상에 평화가 오는 게 아닙니다. 내가 이기적일 때 남도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면 상대가 이기적인 것을 내가 수용할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너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하며 따지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 겁니다. 인간의 심성 속에는 물론 이타심도 있고 이기심도 있습니다만 이타심은 저 무의식의 아래에 있고, 이기심은 그 상위층에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일상적으로는 이기심이 밖으로 많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아주 위기에 처하면 인간은 이타성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타심으로 다 돌아가자고 주장하면 안돼요. 인간은 다 이기심을 갖고 있다고 인정을 하고 그래서 상대가 이기심을 가진 것을 이해하면 갈등이 덜 생깁니다. 상대는 이기심을 갖고 있는데 내가 어느 정도까지 맞출 거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스님의 답변을 끝까지 듣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시원해집니다. 마치 어두웠던 방안에 불을 켜니 환히 밝아지는 것과 같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6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세요. 항상 자기 존재에 대해 긍정적이여야 합니다. 첫째 가장 긍정적인 것은 안 죽고 지금 살아있는 겁니다. 아침에 눈 탁 뜨자마자 ‘오늘도 살았네!’ 해보세요. 그럴 때 기쁨이 일어납니다. 이런 긍정 위에 인생을 살게 되면 행복해집니다. 살아 있으니까 지금 공부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공부도 너무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늘 힘든 겁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잘하려고 하는 것은 공부를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성적을 잘 받으려고 하는 겁니다. 실력이 100밖에 안되면서 150의 결과를 낼려고 하면 늘 위축되어 살 수 밖에 없잖아요. 실력이 100이면 80정도 결과가 나오면 잘 나오는 겁니다. 기대치를 낮춰야 만족이 커지고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이 커요. 누구도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잖아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밥만 먹고 공부만 할 수 있는 시기는 인생 전체에서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소중한 시기를 행복하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스님의 제안에 청중들도 “오늘도 살았네!” 라고 따라 하며 한바탕 크게 웃습니다. 2시간 20분 동안의 강연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어느새 사람들의 닫혀있던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책 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행사의 총괄책임을 맡아준 정가영님에게 수고 많았다고 하시면서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오늘 일리노이 대학 강연 총괄을 맡은 정가영님

또한 오늘 일리노이 대학교 강연은 이곳 한인 불교학생회에서 후원하여 정가영님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였는데 스님께서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불교학생회장 오승진님께도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한인 불교학생회 회장 오승진님

이곳 교민으로서 행사 준비에 많은 도움을 주신 이동우님께도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강연 준비를 함께해주었고 알바나-샴페인에 살고 있는 이동우님

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자원봉사를 해준 분들 모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수고 많았다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청춘콘서트 책을 선물받고나서 유튜브를 통해 스님 법문을 듣고 있다가 강연 소식을 알게 되어 봉사할 마음을 내었다는 한 청년은 "스님의 법문을 오늘 처음으로 직접 들어보았다"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깨달음의장 수련에 참가했던 한 분은 "매일 기도하고 있던 중에 스님을 직접 뵐 수 있어서 좋았고, 또 봉사할 수 있어서 더 기뻤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원생 2명은 "책임자가 너무 열심히 홍보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자원봉사 신청을 했는데 법문도 좋았고 강연에 많은 분들이 오신 것을 보고 참 기뻤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강연을 책임지고 준비했던 정가영님은 "강연에 오신 분들의 밝아진 얼굴을 보니 너무 기쁘고 감사한 날이었다"며 "강연 준비하면서 걱정도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보람차고 행복하고 좋았다" 면서 너무 뿌듯해 하고 기뻐했습니다. 

 


▲ 강연장 앞에서 스프링필드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 단주를 선물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장을 나와 차안에서 대기하면서 봉사자들이 마련해준 삼각김밥과 호박죽으로 점심을 드시고 오늘 저녁 강연을 위해 2시에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서둘러 떠나셨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66번째 일리노이주 일리노이 대학교 얼바나-샴페인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67번째 강연은 잠시 후 저녁 7시에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립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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