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64번째 강연이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오하이오주는 면적은 116,096㎢(이리 호 면적 포함)이며, 인구는 2012년 추계로 11,544,951명이고, 미국 전체의 7위에 해당하여 인구밀도가 높은 편입니다. 주의 남쪽 경계를 따라 미시시피강의 지류인 오하이오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오대호의 하나인 이리호가 있으며, 미국 굴지의 수상 교통의 동맥이 북쪽과 남쪽에 나 있어 수운 교통이 편리하고 석탄과 철 산지에 인접하여 공업이 일찍부터 발달하였습니다. 주의 대표적인 도시는 신시내티, 콜럼버스, 클리블랜드의 3대 도시인데, 주 내에서 각각 남부, 중부, 북부에 위치하고, 이들 3대 도시가 저마다 오하이오의 최대 도시라고 하여 라이벌 의식도 강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이 있는 선거인단을 보유한 주가 오하이오 주이며, 정치 성향은 공화당과 민주당 한쪽에 기울지 않고 표심이 자주 변하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격전지(스윙 스테이트)로 통하는 주의 하나입니다. 미국의 정계에서는 오하이오 징크스(오하이오 주의 선거인단을 빼앗긴 공화당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는 법칙)가 존재하며 오하이오가 가면 미국이 간다(As Ohio goes, so goes the nation)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7명이 이 주를 고향으로 하고 있어 대통령의 어머니라는 별칭도 있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곳이기도 하여 항공기의 발상지라는 점도 강조하는데, 주민들은 독일, 아일랜드, 영국, 폴란드 계통들이 많이 살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인구의 12%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중 한국교민은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약 21,000명 정도입니다. 


▲ 오늘 이동거리 : 피츠버그 → 콜럼버스, 227마일(365km)
   [지도보기 : https://goo.gl/maps/Nk6ZQ]

한편 오늘 강연이 열리는 콜럼버스(Columbus)는 주 중앙부에 위치한 주도로서.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학 중 하나인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가 있으며, 학생수가 5만명 이상으로 미국 최대규모의 대학 중 하나입니다. 콜럼버스는 원래 행정중심지, 대학도시 정도로 알려진 도시였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도로교통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집중되어 시내인구가 클리블랜드와 신시내티를 초과하여 시내인구 기준으로 오하이오주 최대의 도시가 되었으며 가끔 조지아주 Columbus와 혼동되기도 합니다. 콜럼버스에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 재학중인 한국유학생을 포함하여 교민은 약 3,000여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오전 6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7시에 콜럼버스로 출발하였습니다.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해준 권병구, 박영순 부부에게 하룻밤 숙소 및 식사를 제공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어제 강연이 있었던 성김대건 피츠버그 한인성당은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데 스님 일행이 콜럼버스로 갈 때 지나가는 길목인데 어제 성당에 놓고 온 물품이 있어서 잠시 성당에 들리니 신부님께서 미리 전화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에 보는 성당과 낮에 보는 성당이 많이 달랐는데 예쁜 국화가 성당 입구를 장식하고 있어 가을 분위기가 흠씬 풍겨 참 좋았습니다. 



다시 한번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서둘러 출발하여 콜럼버스 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펜실베니아주에서 오하이오주로 오는 길에 이른 아침 길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장관이었습니다. 어제 저녁의 일몰도 멋졌지만 오늘 아침의 일출도 참 아름답습니다. 매일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니 이렇게 길 위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입니다. 



12시 30분에 콜럼버스 정토법당에 도착하니 오봉산 총무님, 고창미 전총무님, 정은주님 등 신도님들이 1년만에 법당을 찾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도 그동안 다들 잘 지냈냐고 하시면서 반가워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도님들이 준비해놓은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법당에서 새책 원고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강연장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Holiday Inn의 미팅룸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아주 깔끔하게 포스터를 붙여놓고 안내판도 준비해놓고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어느 해보다 열심히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봉사자들의 노고가 보였습니다. 


▲ 오늘 강연장, Holiday Inn

그리고 클리버랜드에서 오신 박광종님과 조영미님이 안내대에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디트로이트에서 피츠버그 가는 길에 클리버랜드가 있어 사실 클리버랜드에서 강연이 열리기를 기원했는데 무산되어서 아쉬운 마음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다음에는 꼭 클리버랜드에서도 강연이 열릴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 클리버랜드에서 오신 박광종님과 조영미님

오늘 강연에는 약 1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인근에 오하이오 주립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젊은 직장인과 젊은 부부, 그리고 청년들의 참가가 연세 드신 분들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청년들의 질문이 많아 어제 피츠버그에서처럼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이루어졌습니다. 



7시가 되자 소개 영상과 함께 스님께서 큰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눠보자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는 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까 비가 후두둑 와서 오기 싫으셨죠? 아마 그래서 안 오신 분들도 꽤 될 거예요. 오늘 우리의 대화가 ‘오면서는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갈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는 잘 했다’ 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문제를 던지고 얘기해 보세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진실을 규명해나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고뇌하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가면 되지만, 안 되었다면 마이크를 쥐고 계속 물어야 돼요. 자기 견해가 있으면 주장도 하고요. 그렇게 진실을 규명해나가기 위해서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다만 고집해서는 안돼요. 처음가는 산길을 찾아가듯이 미지의 세계를 함께 찾아가는 자세로 임하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도 단정해서는 안돼요. 미지의 세계이니까 누구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길이 맞다, 저 길이 맞다’ 할 수 없어요. 같이 찾아가서 정상에 오르면 좋고, 꼭 정상에 오르지 못했더라도 중턱까지라도 갔다 오면 좋은 일이지요. 자, 얘기를 시작해봅시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남편을 따라서 미국에 왔고 개인적으로 불자이지만 여기서는 교회를 다녀야 해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데 교회를 다녀야 할지 고민인 분, 미국에서 회사생활 5년이 지나고 나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든다는 분, 결혼을 해야 할 나이이지만 결혼할 마음이 별로 생기기 않는데 주위와 부모님은 결혼하라고 요구해서 결혼을 꼭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자유롭게 여자도 만나고 싶고 술 마시고 춤도 추는 생활을 하고 싶은데 곧 취직도 해야 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 때문에 고민인 분, 결혼전에는 부모님이 저를 두고 좌파라고 했는데 결혼 이후 남편은 저를 우파라고 비난해서 자꾸 논쟁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갈등없이 대응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미국에 온지 20년 정도 지났고 부모님이 연로하시다 보니 부모님께 좋은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이 굉장히 괴롭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스님은 부모님을 버리고 나오셨음에도 어떻게 이 고뇌를 풀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남편과 함께 미국에 해외 연수를 왔지만 가정 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괴롭다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감동과 재미를 주어서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년간 여기서 공부를 하게 돼서 얼마 전에 오하이오에 왔는데요. 남편도 여기에 같이 왔고 22개월 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딸도 많이 봐주시고 가사도 도와주시고 해서 수월했었는데, 여기에 오니까 제가 학생 역할도 해야 하고 딸도 돌봐야 되는데, 남편은 도와준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어 제가 많이 힘듭니다. 더군다나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돌아가면 되죠.” (청중들 웃음)

“그런데 제가 1년만 있다가 돌아갈 것이어서, 1년만 충실하게 쓰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힘들면 지금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거든요. 저에게 소중한 기회라서요.”

“만약에 ‘설악산 정상에 올라가려다가 중턱 쯤 되니까 너무 힘든데 제가 올라가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이렇게 물으면 제가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요? 계속 올라가면 계속 힘들 것이고요. 힘들어도 정상까지 올라가려면 계속 올라가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꼭 올라가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올라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요. 그러니까 힘들면 중간에 내려가도 되고요. 질문자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설악산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싶고 힘도 안 드는 그런 방법은 없어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남편이 공부를 안 하고 있어서 시간이 많으니까 저를 좀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요.”

“그런데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어떡해요? 왜 그런 사람이랑 결혼을 했어요? (청중들 웃음) 남편이 조금 가부장적이라면, 인물이 조금 잘났다든지 돈이 많다든지 학교 다닐 때 학벌이 괜찮다든지 직장에서의 직위가 괜찮다든지 뭔가 고개를 뻣뻣하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뻣뻣한데도 불구하고 질문자는 그 사람을 좋아했잖아요. 살림 좀 도와달라고 그 남자와 결혼한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인물이 괜찮아서 결혼했든 돈이 많아 결혼했든  다른 것들이 좋아서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이 지금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남편이 문제라는 생각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에요.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남편도 제가 인물이 좋거나 학벌이 좋거나 직장이 좋거나 하기 때문에 본인도 저와 결혼을 했을 테니까, 남편 입장에서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저를 좀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서로 맞춰가야죠.”

“그렇게 하면 좋지요.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이 안 그런다고 하잖아요. 안 그러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 날씨가 따뜻하면 좋지만 비가 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비가 와도 강연을 들으려면 여기로 와야죠. 남편은 그런 남편대로 놓아두세요. 만약 질문자가 혼자 유학을 왔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어쨌든 영어로 수업을 들었어야 했을 거고 애도 돌봤어야 했을 거고 밥도 해먹어야 했을 거 아닙니까. 그래도 남편과 같이 와 있는 것이 밤에 무서운 걸 해결해주든지 집을 지켜주든지 운전을 해주든지, 같이 안 온 것과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한번 판단해 보세요. 이럴 바에는 같이 안 오는 게 나았겠어요? 허수아비라 하더라도 그래도 있는 게 낫겠다 싶어요? 

“같이 있는 게 더 낫죠.” 

“그래요. 그 정도면 그럼 밥은 차려 줘야죠.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요. 내가 한국인인데 아무리 영어 공부를 해도 태어날 때부터 미국에 살지 않은 이상 그만큼 영어를 잘하기가 어렵잖아요. 그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스님이 지금 세계를 다니면서 100강을 하는데, 힘들까? 안 힘들까요? 당연히 힘든 것인데,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고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이건 처음부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시작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그래 하자’ 하고 시작했는데, 그렇다면 아파 죽어서 기어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되는 거잖아요. 중간에 그만둘까 망설이면 안 되죠. 모든 사람이 이런 스케쥴은 불가능하다고 처음부터 말렸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겠다고 시작을 한 것이니까 제가 지금 남을 한탄할 수가 없지요. 처음부터 이런 고생을 할 것이라고 알고 시작한 거니까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공부하러 외국에 왔으니까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거기다가 애기 엄마로 왔으니까요. 애기 엄마이면 집에서 애기만 키우지 뭐하러 직장까지 다녀요? 애기 엄마가 직장을 다니려고 하면 애기 엄마 역할과 직장 생활을 다 해야 하니까 힘든 것은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도 자기는 쉬운 애기 엄마 역할만 하기 보다는, 조금 어렵지만 직장생활을 겸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거 아니에요? 그것만 해도 힘든데 외국 유학까지 하겠다고 한 거잖아요. 여기 올 때 남편이 뒷바라지를 해주기로 약속하고 왔습니까? 아니면 그냥 ‘가자’ 하고 왔습니까? 

“약속은 했지요. 본인이 시간이 더 많으니까 본인이 역할을 더 많이 하겠다고요.”

“그래요. 역할을 많이 하겠다는 것이 밤에 잠도 같이 자주고, 가끔 집도 지켜주고 그러겠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남편이 역할을 많이 하고 있네요.(청중들 웃음) 지금 남편이 한 달만 한국에 가 있으면 남편의 역할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남편에게 항상 ‘아이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하고 생각해야 돼요. 지금 남편은 굉장히 고마운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오히려 본인이 더 큰 소리를 칩니까? 그러니까 질문자가 묻는 초점이 ‘어떻게 조금 마음 편하게?’ 였잖아요. ‘아이고, 여보 나 따라와서 힘들지? 같이 와줘서 고마워’ 라고 생각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마 내일부터는 또 안 될 거예요.(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절을 해야 돼요. 자꾸 절을 하면서 ‘아이고, 여보 고맙습니다. 저를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밥을 해서 남편을 먹여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경호원은 잘 먹여야 돼요. 운전수도 잘 먹여야 돼요.(청중들 웃음) 남편이 지금 운전도 해주지 경호해주지 밤에 애인도 해주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해줍니까. 애를 안 봐줘도 급할 때 애가 울면 봐줄 거 아니에요? 오늘 강연에 올 때에도 남편에게 아이 맡겨 놓고 왔을 거 아닙니까? 남편이 없었으면 아이를 어디에다 맡겨놓고 오겠습니까? 이렇게 많이 이용하면서 왜 다른 소리를 해요? (청중들 웃음) 절을 해야 돼요. 그런데 지금은 법문듣고 알겠는데 집에가서 남편 하는 짓을 보면 또 그렇게 생각이 되지 않으니까 항상 아침마다 절을 하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보세요. 그래야 욱 하다가도 ‘그래도 고마워’ 하게 됩니다”

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지고, 질문자도 “감사합니다” 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스님께서 정리말씀을 하시는 와중에 질문자의 여동생이라는 분이 다시 스님께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형부가 언니에게 잘해주고 있는 겁니다.” 라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스님께서는 다시 질문자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닫는 말씀까지 갈무리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조금만 인생을 잘 살피면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개선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 질문하신 분이 남편이 집안일을 안 돌봐준다고 자꾸 불평을 하는데, 자꾸 그렇게 불평을 하면 나에게 주어진 이 좋은 해외연수의 기회가 굉장히 힘들고 상처입고 부부갈등의 원인이 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만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고맙게 여기면 불평불만이 안 생긴다는 겁니다. 불평불만이 있는 것을 참으면 확대는 안 되지만 나한테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게 됩니다. 자꾸 참으면 내상을 입게 되고, 외부로 자꾸 터뜨리면 외상을 입히게 됩니다. 외상을 입히는 것은 둘다 다치니까 나쁜 것이고, 내상을 입으면 내가 곪으니까 그것도 나쁜 겁니다. 내상을 치유하려면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고맙게 여기면 아예 불평불만이 안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고마운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남편은 100을 해주지만 내가 150을 원하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내가 50을 원하면 남편은 굉장히 잘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기대를 잔뜩 하고 보니까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 지금 질문자는 남편이 오는데 내가 희생하고 따라왔다는 생각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불만이 더 큰 겁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남편 덕에 미국 유학도 하고 미국 구경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습니다. 거기다가 남편 뒷바라지만 해야 하는데 학교 공부까지 시켜 주잖아요. 그러니 더더욱 고맙다고 생각해야죠. 기대가 너무 높아져서 생긴 문제예요. ‘내가 지금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 이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줘도 객관성을 가질 수가 없고 ‘내가 고생한다, 너 때문에 내가 손해봤다’ 이게 깔려 있게 됩니다. 


 
그러니 가볍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 따라 미국 구경도 왔고 거기다가 공부할 기회까지 주었으니 ‘여보, 밥도 내가 하고 육아도 내가 다 할게’ 이렇게 생각하고 고맙게 여기세요. 고맙게 생각하는 게 문제의 해결책이에요. 불만을 갖고 참고 있기 때문에 지금 힘든 겁니다. 여동생 분이 아주 얘기를 잘해주셨어요.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봤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얘기거든요. 

내가 원하는 대로 안되어서 답답한 마음은 저도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내가 희생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남편에 대한 기대가 자꾸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딱 뒤집어서 ‘남편 덕택에 참 좋은 경험한다’ 이렇게 매일 기도를 해보세요. 이게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지혜입니다. 사람을 너무 위대하게 보면 안 됩니다.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심리를 잘 알아서 서로 고맙게 생각을 하면 사는 게 재미있지요. 불평불만으로 얘기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남편한테 힘들다고 마음나누기는 해도 돼요. “여보, 당신 때문에 여기 와서 좋은 구경도 하고 참 좋기는 한데 학교도 다니고 당신 뒷바라지 하고 애도 키우고 이 세 개를 다 못하겠는데, 학교를 그만둘까?” 이렇게 나와야 마음이 누그러지지요. 질문자가 좀 맹하네요. 부부 지간에는 서로에 대해 배려해주는 약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참으면 안돼요. 불만을 참으면 나중에 터집니다. 너무 억누르지 말고 가능하면 ‘고맙지만 저도 힘든 것이 있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건 괜찮습니다. 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시간은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있었고, 청중들은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를 다시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어땠는지 물어보니 “한결 명쾌해지고 밝아졌고, 일단 남편에게 감사 기도를 시작해보겠다” 고 합니다. 참 다행이다 싶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지난 3년간 콜럼버스에서 열린 스님 강연에 다 참가했는데 어느 해보다 재미있었고 아주 큰 도움을 받아 간다”며 기뻐했습니다. 젊은 분들도 나이든 분들도 다 좋아했는데 특히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부부관계에 대해 말씀해주시면서 부모, 자식, 며느리의 복잡한 관계를 명쾌하게 재정립 해주셔서 참 좋았다” 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셔서 강연장을 찾아준 모든 분들께 사인을 해주고 사진촬영에도 응해주셨습니다. 오늘 행사 총괄을 맡은 현명진님께 수고 많았다고 하시면서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오늘 강연 총괄을 맡아주신 현명진님

그리고 동부 5개 지역 강연의 총괄을 맡고 있는 콜럼버스정토회 오봉산 총무님께도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미주 동부지역 5개 강연 총괄을 맡고 있는 콜럼버스정토회 오봉산 총무님

그리고 행사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준 자원봉사자들 모두와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봉사자들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뒷마무리 후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대부분 정토법당에 나오는 분들과 그 지인들이여서 다들 편안하게 서로 업무를 나누고 화합된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강연장도 아담하여 준비하기가 좋았고, 처음에는 사전 질문자가 없어서 걱정들을 하였으나 스님께서 질문할 수 있게 분위기를 잘 조성해주어서 질문자도 7명이나 되었고, 질문 내용과 답변이 모두 좋아서 봉사자들도 각자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이 함께 풀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 봉사자들은 좀 더 가볍고 새로운 마음을 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직장 일이 바빠서 홍보랑 사전준비를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던 봉사자 분들은 오늘만이라도 함께 도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낮에 비가 많이 온 관계로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참석했는데, 인근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갑작스런 큰비로 인해서 못 온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누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직 스님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여 뒷마무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내고 스님께서는 먼저 숙소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숙소인 오봉산 총무님 댁에는 10시 10분에 도착하여 잠시 내일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스님께서는 새책 원고 교정을 늦게까지 보시다가 일과를 마치셨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64번째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65번째 강연은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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