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61번째, 62번째 강연이 미시간주 앤아버(Ann Arbor)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미시간주는 오대호 중 네 호수에 접하며, 알래스카주 다음으로 연안이 길고, 면적 크기로는 11위로서, 수도는 랜싱이지만,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디트로이트입니다. 미시간 주는 특이하게 두 개의 서로 떨어져 있는 반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미시간호와 휴런호를 잇는 8km 폭의 매키나 해협을 사이에 두고 어퍼반도와 로어반도로 나뉘는데 이 두 반도는 매키나 다리를 통해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시간 주는 미국에서 9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로,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9,883,640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주 인구의 14.24 %를 차지하며, 네덜란드, 아일랜드, 영국, 독일, 폴란드 계의 주민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민주당 우세지역인 주입니다. 

전통적으로 자동차 등 전통산업에 강한 중화학공업의 중심지였으나, 1980년대 이후로 일본, 1990년대 이후로 한국과 중국의 추격을 받았으며, 2000년대에는 자국의 앨라배마주에 자동차 산업의 중심자리를 점차 내주면서 지역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결국 2003년에는 미국 전체에서 2번째로 실업률이 높은 지역이 되었습니다. 현재, 이로 인한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지역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 오늘 이동 거리 : 시카고 → 앤아버 미시간대학교, 246마일(395km)

오늘 강연이 열리는 앤아버(Ann Arbor)는 미국 중서부 미시간주에 있는 도시로서 디트로이트에서 서쪽으로 약 60km 지점에 위치하며 미국의 명문 주립대학중의 하나인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가 1837년에 들어오면서 대학도시로 발전하게 되었고, 좋은 환경과 우수한 교육시설들로 인해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또한 미시간대학교가 앤아버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대학도시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시간대학교는 연구중심 공립대학으로서 공학, 의학, 경영, 치의학, 법학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 미시간대학교 캠퍼스

한편 앤아버의 인구는 114,000명(2010년 센서스)이며, 이중 교민은 700여명의 한국학생(유학생 포함)을 포함하여 약 3,000명 정도이고, 그 밖의 미시간주에도 약 2,300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어제도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새책 원고 교정을 하셨는데, 오늘도 오전 4시에 기상하니 스님 숙소에는 벌써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오전 6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꾸려서 7시에 앤아버로 출발하였습니다. 숙소에서 미시간대학교까지는 5시간 거리인데 시차가 한 시간 있는지라 실제로는 6시간 걸리는 것이 됩니다. 이틀 동안 숙소를 제공해주고, 식사준비를 해주신 이명희님과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께는 금강경을, 이명희님께는 인생수업을 선물로 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부터 켄사스시티 일정까지는 중부지구의 하일숙 지구장님과 촬영 감독님도 한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여 8인승 밴에 7명이 타고 차 지붕에 달린 카루프 박스에 짐의 일부를 싣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짐반 사람반으로 차안이 가득 차고 스님께서도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 짐반 사람반인 차량 안, 이렇게 5시간을 꼼짝 않고 달렸습니다.

6시 50분에 시카고를 출발하여 앤아버로 이동을 하였는데 새벽녘 떠오르는 일출이 아주 장관이었습니다. 



한참을 달려서 앤아버로 진입하니 Exit 근처에 가까운 공원이 있어서 이명희님 댁에서 준비해준 군고구마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 잠시 공원에 앉아 군고구마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어제 시카고 날씨와는 달리 바람이 차고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1시에 학교에 도착했는데 캠퍼스가 참 아름답고 어제 메디슨의 위스콘신 대학교처럼 단풍과 학교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여 대기실로 가니, 이번 행사를 준비해준 남센터 한국학연구소의 곽노진 교수님이 오셔서 스님께 인사를 하고 강연 때까지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외국인 강연의 통역을 맡은 제이슨 림도 워싱턴공항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지금 막 도착해 반갑게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는 동안에도 새책 원고교정을 계속 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날씨가 좋다” 하시며 강연이 열리는 옆 건물 Rackham 빌딩으로 걸어서 이동하셨습니다. 빌딩 앞에서 포스터를 들고 서 있는 봉사자를 보시고는 “수고한다”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 자원봉사자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또 오하이오에서 온 하주영님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 참석자들을 위해 포스터를 들고 길안내를 하고 있는 학생 봉사자

Rackham 빌딩은 아주 아름다운 건물이어서 스님께서 1층부터 4층까지 걸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걸어서 강연장으로 올라오셨습니다. 


▲ 강연장 입구에 부착된 안내 포스터. 포스터를 세련되게 참 잘 만들었죠?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이번 강연을 공동 주관한 남센터 한국학연구소의 곽노진 교수님이 “스님께서 앤아버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세계 100회 강연을 하고 계신데 이곳에서 좋은 가을날씨를 만끽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라며 인사말씀을 짧게 해주셨습니다. 


▲ 오늘 강연장, Rackham 빌딩

오늘 앤아버 강연에는 총 240명이 참석했는데 미시간대학교 학생들과 디트로이트 인근 도시에서 온 교민들도 많았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고 오후 3시가 되자 바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휴일 날 낮에 강연 시간을 잡게 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면서 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휴일 낮에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날씨가 참 좋죠. 아침에 바람이 조금 불기는 하지만 아주 청명하고 좋은 가을 날씨네요. 이곳 날씨가 늘 이러면 저도 여기 와서 살고 싶겠는데요.(청중들 웃음) 이곳은 겨울이 춥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들어보니까, 겨울만 되면 ‘남쪽으로 이사 가야지’ 하고 여름이 되면 또 잊어버리고 사신다면서요? 여러분들도 그러세요? (예). 또 텍사스 사람들은 여름만 되면 ‘북쪽으로 이사 가야지’ 하다가 여름이 지나면 잊어버린대요. 날씨가 간사한 건지, 사람이 간사한 건지 말입니다. 

10여년전 일리노이 주립대학의 얼바나 샴페인 캠퍼스의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주립대학마다 찾아가서 공부하면서 힘들어하는 유학생들과 대화를 해봐야겠다 생각했었어요. 할일 없는 게 중인데, 중도 바빠요. (청중들 웃음)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 들어보셨죠? (청중들 웃음) 그런 것처럼 바빠서 시간조절이 잘 안되었어요. 그러다가 지난해에 결심을 하고 일정을 잡다 보니까 100곳이 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115개의 강연을 115일 동안 매일 하나씩, 오늘 같으면 두개씩 이렇게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앤아버가 한 번 와보고 싶은 도시였어요. 제 선배스님이 일찍이 미국에 와서 참선을 가르치셨는데, 그 분이 처음에 토론토에 절을 내시고 그 다음에 앤아버, 그리고 시카고에 내셨어요. 시카고에 내셨을 때 제가 가보았는데 서양 사람들과 같이 노동하고 참선하고 하는 것이 좋게 보였어요. 앤아버에도 한번 들러보고 싶었는데 오늘 오게 되어 좋습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고민이라면 주제에 관계없이 자기 고민이 있으면 물어봐도 되고, 인생을 살다가 생기는 의문을 물으셔도 됩니다. 뭐든지 의문을 갖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의문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못 믿어서 하는 ‘사람을 의심한다’고 할 때의 의심입니다. 두 번째로는 궁금해서 묻는 의심이 있어요. 궁금해서 묻는 의심은 발견에 참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3대 요인 중에 큰 의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물으셔도 됩니다. 뭐든지 물어보라고 하면 ‘그럼 다 아나?’ 하실 수 있는데,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어요. 우리 인생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럼 왜 물으라고 하느냐?’ 하시는데,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면 되요. 인생의 고뇌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할 때에 머리가 아픈 거예요. 질문 중에 모르는 게 나오면 제일 쉽습니다. “모릅니다” 네 글자만 말하면 되거든요. 아는 것은 얘기가 길어져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아무런 부담 없이 얘기해봅시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불교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읽고 있다가 보니 불교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서로 다른 점이 있는데 진리는 하나라는 것에 대한 스님의 생각은 어떠한지, 예수님의 염색체 DNA가 여자 염색체로만 발견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는 분, 육식을 하니 오계를 어기는 것 같아 불편한데 인과응보적인 면에서 육식을 하면 어떤 과보를 받는지, 건강을 위해서는 육식을 하는 것도 필요한 것인지 묻는 분, 어머니가 사주팔자를 신봉하면서 믿음을 강요하셔서 어머니와 갈등이 커지는데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가 난지 6개월이 되었는데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각성은 없고 여전히 잘 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데 어떤 노력을 하면 변화가 올지 묻는 분, 미국에 유학 와서 공부도 마치고 일을 하고 있는데 계속 자신감이 없어지고 ‘나는 아는 게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점점 기가 죽어가는데 힘을 주는 기원을 좀 해달라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제사 지내는 것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쏟아낸 한 할머님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재미와 유익함을 주었기에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계속된 스님과의 문답 속에서 청중들은 빵빵 웃음을 터뜨리며 그 속에서 깊은 교훈도 얻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님.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은 극락세계가 진짜로 있는 것인지 입니다. 저희가 조상님들을 위해서 해마다 백중을 지내잖아요.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3~4년은 49재를 지극정성으로 지냈는데 계속 백중을 지내면 극락으로 가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오빠가 한국에서 지내다가 미국에 있는 종손에게 주었는데 종손은 기독교인이예요. 그래서 조카에게 기제사를 지내냐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딱 잘라서 안 지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할머니 절에라도 모시게 해야 제사라도 지낼 수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절에서 지내고 비용 등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딸들도 제사를 모실 수 있는지, 그리고 귀신이 있는지, 교황님도 오셔서 귀신이 있다고 하시는 걸 뉴스에서 봤거든요. 그리고 극락세계가 있는지, 오래 계신 조상님들도 계속 천도를 해주시면 그게 되는지, 돌아가신 조상님이 미국에서 제사를 지낸다면 미국까지 오시는지(청중들 웃음) 궁금합니다. 그리고 티제이맥스에 가면(청중들 웃음) 부처님을 파는 게 있거든요, 12,000원에요. 그러면 저는 되게 기분이 나쁘거든요. 그것도 제가 관세음보살님을 사서 집으로 모셔도 되는 건지, 아침에 기도드릴 때 물을 떠놓고 지내야 되는지, 아니면 그냥 기도를 드려도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한 마디로 말씀 드리면, 좋을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저는 원래 저 좋을 대로 하고 지내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조상님이 분명히 제삿밥을 드시러 오신다는 확인이 되어야... 아무리 딸이지만, 제가 딸네 집에 같이 있는데, 딸도 불교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같이 제사를 지낼 수도 있고요.”



“기독교 신자는 하나님이 있다고 믿어요? 없다고 믿어요?”

“있다고 믿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불교신자인데 하나님이 있다고 믿어요? 없다고 믿어요?”

“기독교라도 지극 정성으로 믿으면 신의 축복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도 조상님을 지극 정성으로 믿으면 축복을 받지요.”

“저는 지극정성으로 하는데 의문스러워서 큰스님에게…”

“아니, 그러니까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을 지극정성으로 믿을 때, ‘저렇게 지극정성으로 믿으면 신의 은총이 있겠다’ 생각하잖아요? 그럴 때 그 분에게 물어보면 그 분은 신이 있다고 믿을까요? 없다고 믿을까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까요?”

“제가 물어봤는데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청중들 웃음) 그런데 저는 부처님에게 지극정성으로 기도했을 때 가피를 크게 한 세 번 네 번씩 받은 것을 확실히 느낍니다.”

“질문자는 부처님께 기도하고 가피를 받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가피를 주신다고 믿는데, 믿는 건 이해가 된다 이 말이예요. 그런데 그것을 기독교인들이 볼 때는 ‘진짜 부처님이 가피를 줄까’ 하는 의문이 들까요? 안 들까요?”

“들겠죠”

“그래요. 그러니까 믿는 사람은 있다고 생각하니까 믿는 거 아니에요? 그와 달리 못 믿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안 믿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생각의 차이 밖에 없어요. 한 사람은 있다고 믿고, 한 사람은 없다고 믿고요. 그러니 어느 것이 옳은가는 없고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은 미국에서 살고 한 사람은 한국에서 사는데 어느 사람이 더 훌륭하냐고 물으면 어떻다고 말할 수 없고 두 사람이 사는 곳이 서로 다르다는 것만 얘기할 수 있어요.”

“아니요, 그런 것을 떠나서, 스님이 보시기에 귀신이 진짜로 있는지, 조상님들이 진짜 제삿밥을 드시러 오시는지 그게 제가 의문스러운 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있고,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잠시 침묵 후 청중들 웃음) 그러면 백중은 해마다 계속 지내는 게 좋겠네요?“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내면 좋고,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지내도 되고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자들은 백중을 안 지내도 다 살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백중 안 지내도 사는 데에 지장이 없고, 불교 신자들은 지내는데 지낸다고 벌 받는 것도 없고요. 본인이 지내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면 지내면 좋은 거죠. “

“그러면 스님들은 앞날도 보시고 귀신도 보시고 그러신다던데 그게 맞습니까?”

“그러니까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보이고, 귀신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안보이고 그런 겁니다.” (청중들 웃음) 

“아니요, 제 질문은 큰 스님 눈에도 제사를 지내실 때 귀신들이 오는 것이 보이시냐는 말입니다.”

“저는 그런 게 있다 없다 하는 생각을 별로 안 해요.”

“아, 49재를 하던지 백중을 할 때 스님들이 가마를 해서 절 문으로 영혼을 모시러 나가거든요. 그 때 들고 나갔다가 와서 법당 안에서 영혼들을 부르잖아요. 그럴 때 저도 죽은 큰 오빠와 셋째 오빠가 와서 고마워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네, 느낌은 얼마든지 느낄 수 있죠. 나도 지금 저 여자 분을 보니까 저 여자 분이 분명히 저를 좋아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청중들 웃음) 느끼는 건 자유예요. 그렇다고 저 여자분이 나를 좋아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요. 그러니까 본인이 있다고 느꼈으니까 느낀 사람에게는 있는 거예요. 못 느낀 사람에게는 없는 거고요. 예를 들어, 저와 질문자가 밤에 길을 가다가 제가 “어, 저기 귀신 봐라!” 했는데 자기가 “스님, 귀신이 어디에 있어요?”, “여기에 있잖아, 여기”, “스님, 아무 것도 없는데 헛것을 본 것 아니예요?”, “아이고, 눈이 삐었나? 여기 있잖아. 여기!” 하면 누구 말이 맞아요?”

“그러니까 스님 말씀은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말씀이시죠?”

“두 사람 중에 누구 말이 맞습니까? 두 사람 중에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스님이 동문서답 하시는 것 같아요.” (청중들 웃음) 

“동문서답 하는 것 맞아요. 그런데 누가 동문서답 하는지 모르겠네요.” (청중들 웃음) 

“확실한 답을 안 주시잖아요. 예,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느꼈습니다.”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아직 잘 못 느낀 것 같은데요. 해결이 안되었으면 계속 물어보세요.”

“스님 말씀이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아닙니까? 마음에 느끼는 대로 생각을 하라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말라는 거잖아요.”

“부처님이 ‘귀신이 있다’ 이렇게 경전에 써놓았을까요? 경전에는 있다고도 없다고도 안 씌여 있습니다. 그 대신 ‘일체가 유심조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은 인간의 마음이 짓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데요, 제가 법문 들을 때에는 큰스님께서 귀신을 보셨다고 하던데요.”

“큰스님께서 보셨다고 하면 ‘큰스님 눈에는 귀신이 보이는구나’ 하시면 됩니다. 만약 우리 둘만 알고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모르게 해서 우리 둘이 만나서 뭐 하자고 약속을 했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 장소에 가니까 제 3자가 떡하니 나타나 있는 거예요. 그 때 어떻게 알고 나타났다고 하죠?” “귀신같이 알고 왔데 하죠?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람이 알 때 귀신같이 안다고 하잖아요. 그 말은 귀신은 뭐든지 안다는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귀신은 전지한 거예요. 그렇다면 뭐든지 아는데 제삿날을 하루 쯤 옮기면 귀신이 그걸 알까요? 모를까요?”

“알겠죠”

“장소를 좀 옮기면 알까요? 모를까요? 한국인지 미국인지 큰 집인지 작은집인지 모르면 귀신이 아니죠. 귀신은 뭐든지 알아야 귀신이기 때문에 제사를 옮기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산소를 옮기는 것도, 집을 옮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민할 일이 아니에요. 이렇게 생각하면 제사를 큰집에서 지내도 문제가 없고, 작은 집에서 지내도 문제가 없고, 날짜를 옮겨도 문제가 없고, 아들네 집에서 지내든지 딸네 집에서 지내든지 귀신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살아있는 사람들한테 문제가 있어요. 살아있는 사람들의 관습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제사는 장자가 지내야 되는데, 차자가 지내도 되나?’, ‘아들이 아니라 딸이 지내도 되나?’ 하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각이지 귀신 생각이 아니에요. ‘절에 있다가 교회에 가도 되나?’ 하는 것도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 귀신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래서 조상 제사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각 차이 때문에 싸우는 것이지 귀신하고는 무관한 것입니다. 사람들끼리 합의를 봐서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합의만 보면 귀신은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아요.

부처님 오신 날은 부처님의 생일 아닙니까? 그때 부처님이 태어난 인도의 어느 장소 딱 한군데서만 생일상을 차려요? 전세계 절마다 다 초파일 행사를 해요?”

“예, 전 세계에서 다 하죠”

“크리스마스도요?”

“크리스마스도 전 세계에서 다 하죠”

“그러면 제사도 집집마다 지내도 될까요? 안 될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청중들 웃음)

“굉장하신 분입니다.”
 
“여러 집에서 지내면 귀신 마음대로 가겠죠.”

“그런데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절이나 교회가 이 세상에 수십만 개가 있는데 그곳을 어떻게 다 갈까요? 그래도 다 가잖아요. 그렇죠? 그래도 귀신은 그만큼은 안 가도 되잖아요. 아들 딸이 많아야 5~6명이니까 가봐야 다섯 군데, 여섯 군데잖아요. 그러니까 큰집에서 지내는데 같이 가서 지내도 되고, 작은 집은 따로 지내도 되고, 큰 집은 교회에서, 작은 집은 절에서 지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잘 알겠습니다. (청중들 박수) 그런데, 부처님을 집에서 모셔도 됩니까?”

“좋을 대로 하세요. 집에다 모셔도 되고, 안 모셔도 되고요. ‘부처님을 집에 모셨다’ 고 하는데, 그건 부처님이 아니에요. 불상이지요. 돌로 깎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상이잖아요. 그렇죠? 불상은 정원에다 모셔도 되고, 법당에다 모셔도 됩니다. 예술작품으로 대해도 되고,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도 됩니다. 절에 가면 불상이 많잖아요. 그런데 불상을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모시면 비록 나무이든지 돌이든지 상관없이 나한테는 부처님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부처님이 아니고 하나의 조각입니다. 그러니까 집에서 불상을 부처님처럼 모시면 그 앞에서 내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이고, 조각으로 모시면 그냥 집안의 장식품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파는 걸 사와도 되고요. 

그런데 부처님으로 모시려면 절에서는 점안의식이 있어요. 불상이 부처는 아니기 때문에 부처로 모실 때에는 ‘제가 앞으로 부처님으로 인정하고 모시겠습니다’ 라는 의식을 해야 돼요. 그것을 점안이라고 합니다. 절에서는 그런 전통 문화를 갖고 있어요. 스님들은 그런 전통 문화를 따르지 않으면 그 안에서 왕따를 당하니까 따라야 하지만, 신자들은 집에서 불상을 모실 때 점안을 했는지 안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상관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질문자가 오늘 찬물 한 그릇 떠놓고 삼배하고 ‘오늘부터 내가 당신을 부처님으로 모시겠소’ 한다고 해도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하만물이 본래 다 부처이기 때문이지요. 일체 유심조, 다 마음이 짓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어때요? 이제 좀 자유로워지셨습니까?”

“예, 자유로워졌습니다.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께 합장반배로 인사하며 활짝 웃는 할머니를 보며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내줍니다. 즉문즉설이 이런 것이구나 가슴에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오늘 대화 나눈 내용의 요점을 짚어주시면서 ‘인연과보’의 원리를 강조하시고 이렇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어떠셨어요, 재미있으셨어요? 요점은 이렇습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도가 높아지고 부정적으로 보면 행복도가 낮아진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이 크고, 기대가 낮으면 만족이 크다‘, 바깥을 바꿔서 나에게 맞도록 하는 방법도 있지만 바깥을 놔두고도 내 마음을 조절해서도 내 행복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둘 중 하나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은 바깥을 바꾸는 것밖에 생각을 못하는데, 자기를 조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마음 바꾸는 것만 가르치면 세상을 외면합니다. 세상을 외면하는 것은 세상의 부조리를 용인하고 기득권을 합리화하게 될 위험도 있어요. 이렇게 되면 종교가 아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양자가 다 연관이 있어요. 수확을 많이 하려면 종자를 개량하는 방법도 있고 밭을 잘 가꾸는 방법도 있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종자를 개량하는 것은 개인이 수행하는 것이고, 밭을 잘 가꾸는 것이 사회를 좋게 바꾸는 것이죠. 

앞의 것을 ‘인’, 뒤의 것을 ‘연’이라고 합니다. ‘인연과보’입니다. 인연이 만나서 변화를 가져옵니다. ‘인’만도 아니고, ‘연’만도 아니에요. ‘인’을 주로 강조하는 것이 종교이고, ‘연’을 주로 강조하는 것이 사회운동입니다. 이것도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죠. 이 둘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한쪽으로는 수행을 해서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다른 한 쪽으로는 자기의 재능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 써야 합니다, 이 둘을 함께 가야 해요. 이것을 불교용어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자기의 행복을 자기가 먼저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 온다고, 유학을 온다고, 결혼을 한다고, 한국에 돌아간다고, 늙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행복은 어느 때나 자기가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젊을 때에는 젊어서 행복하고, 늙어서는 늙어서 행복하고, 미국에 오면 미국에 와서 행복하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서 행복할 수 있게, 행복을 자기가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지 주어진 행복은 환경이 바뀌면 다시 불행으로 가는 거예요. 이제 더 이상 남에게 매달리지 말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사시길 바립니다. 감사합니다.”

2시간 40분 동안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다시 곽노진 교수님이 나오셔서 경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박수를 청했습니다. 강연에 참여한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떠했는지 물어보니 “스님의 지혜와 통찰에 감동을 받았고 열린 마음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며 다들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오늘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수고해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앤아버 강연의 총괄책임을 맡아 열심히 행사를 준비한 박준하 학생에게 사인을 한 책을 감사의 표시로 선물하고 함께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 오늘 앤하버 강연 총괄을 맡아 준 박준하 학생

또 이번에 스님을 초청해주신 남센터 한국학 연구소의 곽노진 교수님께도 감사의 표시로 책을 선물하고, 실무를 맡아 강연을 준비해주신 남센터의 정도희 실장님께도 인생수업을 선물하고 두 분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 스님을 초청해주신 남센터 한국학 연구소의 곽노진 교수님(오른쪽)과 정도희실장님(왼쪽)

스님께서는 뒷마무리를 하는 봉사자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옆방에 마련된 장소로 가셔서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하셨습니다. 식사 중에 앤아버 출신인 강신조 박사님 부부와 함께 얘기를 잠시 나누었습니다. 강신조 박사님은 “스님께서 작년에 트로이를 방문했을 때도 스님 강연을 들었다”고 하시면서 “오늘 강연도 정말 재미있게 잘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스님은 세수를 하기 위해 잠시 숙소로 가셨다가 저녁에 있을 외국인 강연을 위해서 다시 강연장으로 오셨습니다. 

오늘 앤아버 강연은 중남부지구 하일숙 지구장님이 중심이 되어 앤아버대학교의 남센터와 공동주관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저녁에 있을 외국인 강연도 남센터에서 봉사자들과 함께 준비하기로 해서 묘덕법사님과의 나누기는 외국인 강연 후에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다같이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61번째 미시간주 앤아버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이어서 62번째 강연은 같은 장소인 앤아버 미시간대학교에서 오후 7시 30분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열립니다. 곧 이어 외국어 강연 62번째 소식도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스님의하루 텔레그램 구독하기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