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59번째 강연이 위스콘신주 메디슨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위스콘신주는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주로, 주도는 매디슨이며, 큰 도시로는 밀워키가 있으며, 미국 제1의 낙농 지역으로서 우유, 치즈, 버터 등의 생산도 미국에서 제일 많은 편입니다. 육우와 돼지의 사육도 활발하고 동시에 이들의 사료가 되는 옥수수, 건초, 귀리 등을 많이 생산하고 있으며, 낙농업과 제지업이 발달하였고 독일계 이민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밀워키를 중심으로 맥주 양조업이 발달된 곳입니다. 


▲ 오늘의 이동 거리 : 메니에폴리스 → 위스콘신 메디슨 → 시카고,  417마일(671km)

오늘 강연이 열리는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가 있는 도시 매디슨은 주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네 개의 호수로 둘러싸인 도시로서 1836년에 주도로 선정되고 나서야 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한 계획 도시입니다. 


▲ 위스콘신 대학교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는 미국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 있는 주립 대학으로 과학, 사회학, 경영학, 경제학, 공학, 농업학 등에서 그 우수성이 잘 알려진 대학입니다. 시청과 학교가 한길로 연결되는 대학로가 있을 만큼, 캠퍼스가 시의 중심에 있어서 도시에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캠퍼스는 메디슨의 4대 호수 중의 하나인 멘도타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 아름답고 평화로운 주변환경을 자랑합니다. 학교의 분위기는 진보적이며, 60년대에는 학생들의 베트남 반전 데모가 상당히 격렬했으며, 미국 내에서도 진보적인 대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디슨시의 인구는 약 23만명으로서 위스콘신대학교에는 약 500여명 교포학생들, 그리고 약 500의 한국유학생들이 학부와 대학원에 재학중에 있으며, 이들을 포함하여 매디슨시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2000여명정도 된다고 합니다. (2010년 인구센스서스)

스님께서는 오전 7시에 아침식사를 하신 후 원고 교정을 보셨습니다. 오종윤님의 딸 지수와 수빈이가 학교 가기 전에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여 스님 방으로 와 삼배를 했습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두 아이의 방이 스님의 숙소인데 스님이 오시기 전에 아이들이 직접 방을 청소하였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도 아주 예뻐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제부터 식사준비를 도와주신 최상희님께 감사의 선물로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리고, 박현정님께도 하루밤 잘 묵고 간다고 감사 인사를 하고 11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있는 메디슨으로 약 300마일을 달렸습니다. 


 
미네소타주 미니에폴리스에서 위스콘신으로 넘어오는 길에 미시시피 강 상류를 만날 수 있었는데, 아름다운 산과 강, 노란 단풍, 억새가 어우러진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위슨콘신주로 넘어와 휴게소에 내려 점심으로 준비해온 김밥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였습니다. 메디슨에 도착하여 스님께서 드실 약을 약국에서 구입한 후 5시 45분경에 위스콘신 대학교에 도착했습니다. 


▲ 메디슨 시내로 진입

스님께서 방문하신 오늘이 이 학교의 ‘홈커밍데이’라고 합니다. 졸업생과 가족들이 학교를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고 삼삼오오 시가지와 캠퍼스를 다니는 모습이 많이 보였고, 학교 곳곳에 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블락을 해놓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도시와 캠퍼스를 시간에 쫓겨서 둘러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 오늘 강연장, Memorial Union at Univ.of Wisconsin-Madison

학교에 도착하니 ‘내가 희망입니다’ 로고가 박힌 주황색 티쳐츠를 입은 학생들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바로 강연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특히 이번 강연을 총괄 책임진 최규리 학생은 이 학교의 대학원생인데 2년 전 사키고 강연 때 스님 강연을 들으러 왔다가 이번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고, 이 학교 학생들을 자원봉사자로 받아서 강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휴게실에서 학생들이 준비해준 저녁 도시락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시고 원고를 보시다가 7시에 스님소개영상이 나오자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스님 강연과 같은 시간에 홈커밍데이 축제도 시작을 해서 학교가 온통 축제의 분위기였으며, 특히 스님 강연의 시작과 더불어 사물놀이팀이 들어와서 깜작 이벤트가 있나 싶어 보니 좀 전에 학교행사장에서 공연을 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장구와 북을 들은채 바로 스님강연을 듣고 싶다고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자리가 부족하니 앞쪽으로 오라고 하여 바닥에 앉아서 함께 강연을 들었습니다. 



125석을 준비했는데 학생들이 계속 들어와서 앞쪽과 뒷쪽 바닥에 앉거나 서서 강연을 듣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총 150명이 참가해 강연장 안은 온기로 더위가 느껴질 정도로 후끈 열기가 달아올랐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이곳 메디슨에서 강연을 하게 된 사연, 10년 전 약속을 들려주셨습니다. 

“제가 10년전에 시카고에 강연을 몇 번 왔을 때, 이곳 메디슨에서 학생들이 몇 명씩 내려 왔었어요. 그 때 학생들에게 메디슨에서도 강연을 한번 해주겠다고 해놓고 10년 가까이 실행을 못 옮겼어요. 그러다가 이번에 세계 100강을 하면서 원래는 큰 도시가 밀워키이니까 밀워키에 강연을 잡으려고 했는데 옛날에 약속했던 기억이 나서 이곳 메디슨에 오게 되었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10년 전의 약속을 잊지 않고 찾아왔다는 스님의 이야기에 감동 받은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면서 ‘야단법석’을 한번 떨어보자 하시며 이렇게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세상살이란 게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뜻하는 만큼 잘 안되지요. 공부도 그렇죠. 그러다보니까 괴로울 때가 많아요. 인생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생길 거예요. 세상이 뜻대로 안 되다 보니까 사는 게 이런 걸까 여러 가지 고뇌도 생길 거예요. 오늘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얘기를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주제에 전혀 제한을 두지 말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해보도록 해봐요. 



이것을 전통적인 불교용어로 ‘야단법석’이라고 해요. 야단법석이란 원래 시끌벅적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스님이 법당에서 법상 위에 앉아서 거룩하게 얘기를 하면 경전과 관련된 제한된 주제만 가지고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는 데는 그런 얘기만 갖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법상을 마당에 내어놓고 앉아서 아무런 주제의 제한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야단법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야단법석을 하는 자리예요. 아무것이나 물어도 되고 웃어도 되고 불교 얘기 안 해도 되고 기독교 얘기를 해도 되고 무슨 얘기를 해도 좋습니다. 자, 그럼 야단법석을 한번 떨어 봅시다.” 

그러자 청중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스님께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항상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갈지 우유부단하고 갈팡질팡하고 결정을 잘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면 결정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미국에 온지 2년 되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영어선생님이 싫어 영어수업이 어려운데 정말 싫은 선생님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어떤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스님의 생각을 묻는 분, 기대치가 안 이루어지면 실망이 생기는데 기대치와 욕심의 차이를 묻는 분,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를 가로채서 포상도 받고 특진을 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결혼을 앞두고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싶다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재미와 감동을 주어서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두 달 후면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을 앞둔 저로서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사랑받는 며느리, 사랑받는 아내가 될까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걸 욕심이라고 해요(청중들 웃음). 왜냐하면 사랑을 해주는 것은 시어머니이고 남편이지 내가 아니잖아요. 사랑해주는 건 그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거기에 관여할 수는 없어요.”

“그 분들의 문제라면 내 며느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들은 적어도 갖고 계실 것 아니에요? 제가 시부모님들에게 그것에 대해 여쭤봐서 그것을 충족시켜 드리는 것이 방법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좀 낫죠. 그런데 사랑 받아서 뭐 하려고요?”

“사랑을 받고 싶어요. 저는 사랑을 주고받는 행복한 가족 분위기에서 자란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앞으로의 결혼 생활도 지금까지 살아온 가족 분위기와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 가정이 그렇게 될 거라고요? 저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여름에 남편 쪽 집에 가보게 되었는데, 남편 쪽 가족의 분위기는 저희 집과는 달리 굉장히 즐거웠거든요. 그래서 이 가족의 며느리가 되면 좋은 가정을 꾸릴 수가 있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그렇게 안 돼요.”

“스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 때문인가요?” 

“자기 까르마가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여기를 가든 저기를 가든 늘 자기 까르마 대로 돼요. 까르마를 못 바꾸는 것은 아닌데 바꾸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럼 저는 불행하게 살아야 되나요?” 

“불행하게 살아야 된다고는 얘기하지 않았어요. 자기가 그렇게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겠다’, ‘사랑받는 아내가 되겠다’ 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는 없다는 얘기지요.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실력이 100 밖에 안 되는데 “제가 성적을 150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까?” 물으면 스님이 “No”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 실력만큼 나온다”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기 쉽잖아요. 자기의 까르마만큼 행복이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어디를 가도 자기의 까르마만큼 되는 것입니다. 콩은 한국에서 심어도 콩이고 미국에서 심어도 콩이지 한국의 콩을 미국에 가져다 심으면 팥이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좋은 얘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택은 누가 한다? 자기가 하는 겁니다. 저는 남의 인생에 간섭을 안 합니다. ‘이런 집에 가서 이렇게 하면 제가 사랑받겠습니까?’ 이렇게 자기가 물으니까 ‘그러면 못받는다’ 이렇게 얘기해 주는 겁니다. ‘콩을 이쪽으로 옮겨 심으면 팥이 됩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제가 ‘그건 안 된다’ 고 얘기하는 겁니다.”


 
“저는 사랑을 받고 싶은데 안 된다고 하시니까 막막합니다. 도와주세요. 스님” 

“사랑을 받고 싶으면 사랑을 하면 돼요. 내가 사랑을 받고 싶으면 내가 사랑하면 돼요. 목돈을 갖고 싶으면 저축을 해야 돼요. 자기가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해야 돼요. 성인은 어떻게 말씀하셨냐? 사랑을 하되 사랑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 자기의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 수 있어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자기는 자기 까르마를 벗어날 수 없고, 결혼하면 얼마 못가서 후회하게 되는 겁니다. 누구하고 결혼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랑해야 됩니다. 그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그 남편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나, 사랑 받으려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도 안 하고 사랑 받으려는 것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사랑하고 사랑 받으려는 것은 결국 ‘거래’잖아요. 돈을 투자해서 이익 보려는 것과 똑같은 거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말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에요. 그건 거래입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너도 나 좋아해라’, ‘내가 너 사랑하니까 너도 나 사랑해라’, ‘내가 전화 다섯 번 했는데 너는 왜 두 번 밖에 안했니?’, ‘나는 술을 세 번이나 샀는데 너는 한 번도 안 사니?’ 이건 전부 거래이고 계산입니다.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왜 우리는 사랑했는데 미워지느냐? 그건 장사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가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지 사랑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그냥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물건만 사고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의 기분도 사고 팔려는 겁니다. 

이런 어리석음은 다 우리의 욕심에서 오는 문제입니다. 자기는 지금 결혼을 사랑으로 하지 않고 욕심으로 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실패한다는 건 이혼한다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고 나서 후회한다는 얘기입니다. 백프로 후회하게 되어 있어요. 원리가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보면 그냥 좋은 거예요. 설악산 가면 좋죠? 그런데 설악산한테는 ‘내거 너 좋아하니까 너도 날 좋아해라’ 이런 생각이 없잖아요. 그래서 설악산을 좋아하는 데에는 부작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시어머니나 남편을 좋아할 때는 ‘내가 너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너는 나한테 뭐 해줄래?’ 이런 기대가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해도 결과는 실망과 갈등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사랑을 할 뿐이지 바라는 마음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꽃을 좋아하면 꽃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내가 좋습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내가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내가 세상을 사랑하면 내가 행복한 겁니다. 그런데 세상으로부터 내가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자기가 원하는 만큼 안 채워지기 때문에 결국 실망하고 한탄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잘 물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결혼했으면 자기는 백프로 실패했을 거예요.”



“사랑하라는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공감하는 것도 안 됩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하라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맞는데 사랑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사랑을 하면, 내가 사랑한 만큼 사랑을 못 받기 때문에 그것 또한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물론 사랑도 안 하고 사랑 받으려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행복은 사랑하고 사랑 받으려면 확률이 반반이 되고, 사랑 안 하고 사랑 받으려면 백프로 실패가 되고, 사랑하고 사랑 받을 생각이 없으면 백프로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 받으려고 하면 백프로 실패합니다. 설령 사랑해줘도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돼요. 시댁에 가보고 ‘아, 내가 이 집에 오면 사랑받겠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에요. 우리도 어떤 집에 초대 받고 가서 음식해 놓은 것을 보고 ‘야, 이 집 잘 먹고 사네’ 이렇게 생각하면 될까요? 안 되지요. 제가 왔기 때문에 잘 차려놓은 것이거든요. 

서로 확인도 하고 몇 년 동거도 해보고 결혼을 해도 실패하는 이유는 요구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결혼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이 큽니다. 그런데 자기가 질문할 때 첫마디만 듣고도 기대가 매우 높다는 것을 금방 느꼈거든요. 이런 결혼은 오래 못가요. 그러니까 결혼에 대한 환상을 딱 버려야 합니다. 가서 고생할 각오를 하세요. 

결혼을 할 때는 자기의 권리를 포기해야 결혼이 성립합니다. 아무리 포기를 안 해도 최소한 절반은 포기해야 합니다. 다 포기하면 더 좋고요. 결혼 준비는 나이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학벌도 아니고 인물도 아닙니다. 권리를 절반 이상 포기할 준비가 되었느냐? 그렇다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이고, 그게 안 되었으면 결혼은 다 실패합니다. 인물이 잘생겼느냐 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결혼해서 같이 살면 만가지가 서로 달라요. 상대에게 맞추라고 하니까 ‘내가 노예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결혼이라는 것이 그래요. 그래야 가정이 화목해져요. 그래야 자녀가 정신적으로 안정이 돼요. 그런데 자기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를 탁 내려놓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늘 법문 듣고 돌아가도 그게 절대로 안 될 겁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 일상생활에서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욕심이 있구나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니가 문제가 아니라 내 욕심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아는 겁니다. ‘어떻게 너가 그럴 수 있느냐?’가 아니라 ‘내 기대가 높아서 그렇구나’, ‘내 욕심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구나’ 이렇게 항상 나 쪽으로만 보고 있으면 됩니다. 안 고쳐져도 됩니다. 화를 내면서도 ‘너 때문에 화가 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아이고, 내 성질 때문에 내가 화를 내었구나’ 이렇게 딱 돌이키면 더 이상 안 번집니다. 못 고쳐도 확산은 안돼요. 거기서 멈춥니다. 그러니 ‘아, 내가 지나친 기대를 갖고 있으니 결혼을 하면 갈등이 많겠구나’ 이렇게 미리 알아야 합니다. ‘사랑도 못 받을 것이고 밉상이 되겠구나’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는 안 되도록 내가 조금은 노력을 해야 되겠다. 시어머니가 좋아 보인다고 하는데 지금은 결혼하기 전이니까 잘해주지 며느리가 딱 되면 완전히 사람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바뀐 것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의 심리가 그래요. 인간이 그렇게 위대하지 않아요. 그걸 알아야지 ‘이 집에 가면 사랑 받겠다’ 이런 환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오히려 내가 가서 이 집에 어떤 도움이 될까, 남편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남편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실망하면 안돼요. 그 사람의 없던 모습이 나타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눈이 어두워서 못 봐서 그런 겁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맞춰 줄 마음을 내야 합니다. “남편은 나한테 맞추면 안돼요?” 묻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남편 문제이지 내가 요구할 사항은 아닙니다. 항상 내가 맞출 마음을 가지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자기는 어릴 때부터 사랑을 주는 것을 보고 들은 것이 없기 때문에 잘 안 될 겁니다. 어릴 때부터 무의식 세계에 고집하는 것만 물려받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고집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꾸 자기를 봐야 합니다. 그럴려면 종교와 관계없이 절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자기가 고집하는 것을 항상 알아차려야 합니다.”  

질문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감사합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나옵니다. 청중들의 따뜻한 격려의 박수가 쏟아집니다. “왜 제가 사랑받지 못하나요?” 하며 따지던 표정에서 점점 공감을 하고 수긍을 하고 이제 변하겠다는 의지도 보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짧은 문답 속에서 사람의 마음이 확확 변해가는 모습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나중에 좋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이 좋은 줄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항상 지금 좋아야 합니다. 젊을 때는 젊을 때가 좋고, 결혼하면 결혼해서 좋고, 늙으면 늙어서 좋고 이래야지, 나중에 좋으려고 하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좋아해보지 못하고 죽어요. 나중에 좋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이 좋은 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을 지금에 맞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거예요. 지금 장구 치는 게 행복하고, 지금 공부하는 게 행복하고, 지금이 행복해야 해요. 박사 학위 따야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선택에 대해 기죽지 말고 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란 말에 따뜻한 온정이 느껴졌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2시간 10분이 흘렀고, 쉬지 않고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를 다시 한 번 보냈습니다.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비구니 스님께서도 강연에 참가하여 끝까지 강연을 듣고 스님께 인사를 드리니 스님께서 ‘깨달음’책을 선물하시며 공부를 격려하셨습니다. 



오늘 메디슨 강연의 총괄책임을 맡은 최주리 학생에게는 수고하였다고 사인을 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최주리님을 도와 강연 준비를 함께해 준 이규빈님에게도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리고 두 분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강연 총괄을 맡은 최규리님(왼쪽)과 이규빈님(오른쪽)>

오늘 메디슨 강연은 위스콘신 대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강연을 준비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격려해 주셨습니다.  

행사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했습니다. 학생 봉사자들은 모두들 “시험기간 중이라 자원봉사 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스님 강연을 듣고 나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며 보람 있어 했습니다. 마무리 말씀 중에 “지금 공부할 수 있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하신 부분과 “평생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다”고 하신 부분에서 큰 위로도 받고 다시 새로운 힘을 충전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힘든 시기에 유튜브를 통해 스님 법문을 듣고 많이 행복해졌기 때문에 꼭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 그럴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들 “한국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며 다들 놀라워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뒷마무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이렇게 봉사해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한 후 9시 40분에 출발하여 오늘 숙소인 시카고의 이명희님 댁에는 12시 20분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59번째 위스콘신주 메디슨 강연을 잘 마쳤습니다. 내일 60번째 강연은 시카고(일리노이주)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시카고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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