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54번째 강연이 텍사스주 휴스턴(Houston)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필라델피아에서부터 애틀란타까지 그리고 스님께서 워싱턴DC 지역을 다니시는 동안 약 2,400마일(3,840km)을 자원봉사로 운전해준 워싱턴정토회의 민덕홍님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수고했다” 하시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워싱턴까지 혼자서 돌아가야하는데 조심해서 운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 일행는 새벽 3시 45분에 애틀란타 국제공항으로 가서 출국 수속을 밟고 휴스턴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애틀란타 열린법회 담당자인 김병조님이 새벽 일찍부터 나와서 스님 일행을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   

▲ 2400마일 거리를 운전 봉사해준 민덕홍님(왼쪽)과 애틀란타 열린법회의 김병조님(오른쪽)

아침 6시 10분 비행기로 2시간 동안 비행을 하고 휴스턴 Hobby 공항에 도착하니 시차로 인하여 아직 7시 15분이었습니다. 휴스턴 열린법회 담당자인 박경원님과 자원봉사자인 이상우님이 공항에 마중을 나왔습니다. 강연장 근처에 있는 이원자님 댁에 도착하니 오늘 휴스턴 강연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서 휴스턴에 방문하심을 감사해하면서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오늘부터 3일 동안은 텍사스주에서 강연이 계속됩니다. 텍사스주는 미국 남부에 있는 주로서 면적은 696,241km2로 알래스카주 다음으로 넓고, 인구는 캘리포니아주 다음으로 많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인단은 38명을 뽑습니다. 1836년 멕시코로부터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가, 1845년 12월 29일 미국의 28번째 주로 흡수되었습니다. 면적이 프랑스보다 10% 크고, 독일이나 일본의 약 2배에 해당하며, 세계의 행정 구역 중에서는 27위이고, 세계의 나라와 비교해도 칠레와 잠비아에 이어 40위를 차지합니다. 텍사스 주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생산지이며, 이런 풍부한 석유자원에서 비롯한 석유화학공업을 위시한 중공업이 주의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목화가 농산물 생산량 1위를 차지하며, 이외에도 농업, 목축업, 양봉업 등이 발달해 있습니다. 인구는 히스패닉이 30%를 차지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12%, 백인이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텍사스주의 주요 도시는 휴스턴, 달라스, 샌안토니오, 오스틴(주 수도) 등이며, 미국의 10대 도시 중 3개 도시(휴스턴, 달라스, 샌안토니오)가 텍사스주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텍사스주에는 한국 교민을 포함하여 재외동포는 약 15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데 이중 유학생이 1만명이 넘게 재학 중에 있다고 합니다. 

▲ 오늘 이동 거리 : 애틀란타 -> 휴스턴, 833마일(1340km)

오늘 강연이 열리는 휴스턴 주변은 인구가 약 650만명 정도이며, 이중 교민은 3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휴스턴은 텍사스주의 주의 가장 큰 도시이며, 미국 전체로는 네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운하로 멕시코만과 연결되어 ‘바다가 없는 항구’이면서 미국 제1의 면화 수출항입니다. 그리고 석유의 산출이 많고 미국 항공우주국 존슨 우주센터가 있으며 한국 기업이 30여개 정도 진출해 있습니다. 또한 석유화학 공업의 중심지로서 미국 석유회사들 30개가 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고, 우주 개발에 쓰일 첨단기술 용품을 만들며, 섬유 공업, 식품 공업, 제지 공업, 기계 공업 등도 발달하였습니다.

내일은 강연이 2개나 있기 때문에 이원자 보살님 댁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업무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도착 후 바로 아침식사를 하고 각자 업무를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하시다가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출발 전 이원자님과 퇴근하고 온 큰따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 강연 전에 머문 숙소, 휴스턴 열린법회 이원자님과 그 딸

오후 6시경에 오늘 강연장인 휴스턴 한인 커뮤니티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휴스턴 정토열린법회에서 준비했는데, 강연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박경원님과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 오늘 강연장, 휴스턴 한인 커뮤니티 센터

어제는 이곳 휴스턴에서 코리안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그 영향도 있고, 또 월요일이기도 해서 오늘 몇 명이나 올지 봉사자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약 160여명이 참석해 높은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6시 55분에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한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여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주말도 아닌데 많이 오셨네요. 월요병이 있잖아요. 그래서 많이 안 오실 줄 알았는데 많이 나오셨네요. 즉문즉설 유튜브 강의를 한번이라도 보신 분 손들어 보실래요? 거의 대부분이 보셨네요. 유튜브로 미리 보셨으니 즉문즉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잘 아시겠네요. 자, 그럼 누구든지 손을 들고 얘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괜찮으니 마음껏 질문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불교식으로 49재를 지내는 중일 때 가족들이 어떤 경을 읽어드리면 좋은 것인지, 운전할 때나 평상시에는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옴마니반메흠 등 어떤 것을 염불하면 좋을지 묻는 분,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는데 유족들에게 스님은 어떤 위로를 해주셨으며 지켜보는 우리들을 위해서도 힐링의 메시지를 얘기해 달라 요청하는 분, 환자들이 많다보니 몸이 피곤해서 제대로 환자들을 못 돌봐서 마음이 불편한데 몸이 불편하더라도 마음의 공덕을 쌓기 위해서 환자를 봐드리는 것이 맞는지 묻는 한의사 분, 친구가 아들을 잃고 힘들어하는데 친구에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이혼한 딸과 사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22살, 24살 두 딸을 둔 엄마입니다. 작년에 큰 딸이 결혼을 한 이후로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부모님 밑에서 유년시절을 별 어려움 없이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남편을 만나 큰 갈등 없이 다정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큰 딸이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남자친구와 6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2~3달 전부터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면서 그것이 딸에게 힘든 시기가 된 것 같아요. 결혼과 동시에 바로 딸이 사위에게 별거를 선언하고 두 달 만에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사위에게 딸이 이혼서류를 내밀었습니다. 작은 것 하나도 다 의논하고 자라온 딸이 이번에는 부모와 의논 한 번 없이 본인이 다 결정을 한 후에 통보하는 것을 보고 남편도 저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딸을 대신해서 저와 남편은 1년 동안 사죄와 뒷수습을 하며 보냈습니다. 딸의 무례한 행동에 남편은 부녀의 정을 끊겠다고 하고, 작은 딸은 처음 보는 가족의 갈등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딸의 행동을 보면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나지만 아이가 힘들어할까봐 제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딸에게 냉정해져야 하는지, 이혼을 하고 힘든 아이에게 그전보다 더 따뜻하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사위는 아직도 딸과의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인지 지금도 저와 자주 연락하며 서로 위로하고 있는데요. 또한 사위는 어릴 때부터 저를 무척 따랐기 때문에 인연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사위와의 관계도 끊어야 하는 것인지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아이 때문에 마음 고생 하는 것에 대해 위로 말씀을 드립니다. 본인은 굉장히 복잡하다고 그러는데 관계가 복잡한 것이 아니고  생각이 복잡한 겁니다. 관계는 아무런 복잡할 것도 없어요. 인생사를 살다가 되게 복잡할 때는 ‘내가 그냥 하나의 생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물을 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복잡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숲에 가서 다람쥐를 보거나 산토끼를 보더라도 다람쥐는 재미있다고 하면서 웃으며 살지는 않죠. 그렇다고 괴롭다 죽고 싶다 이러면서 살지도 않지요. 그러니 웃으면서 재미있게 살면 다람쥐보다 나은 인생이고, 괴로워하고 살면 다람쥐보다 못한 인생이에요.  

애기를 돌볼 때 처음에는 생태적인 원리에 의해서 돌봤는데, 오래 돌보다보면 돌보는 습관이 붙습니다. 아이가 열 몇 살이 되어서 독립을 하는데도 내 머리 속에서는 습관이 붙어서 내내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습관을 까르마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 때문에 고뇌하고 자식은 부모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이렇게 서로가 원수가 됩니다. 이것은 짐승보다 못한 관계입니다. 어릴 때 도와주는 관계는 짐승보다 더 깍듯이 돌보는데 이 습관성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모 자식 간에 서로 고통을 주는 관계로 변하기가 쉽습니다. 


딸을 애지중지 키웠지만 스무살이 넘어 성인이 되었으면 성인이 된 딸이 어떤 인생을 살든 그것은 딸의 자유입니다.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웃끼리도 서로 의견을 물으면 자기 의견을 말해줄 수가 있죠. 그것처럼 딸에게도 조언을 해줄 수는 있어요. 성인이 되면 비록 내가 낳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내 자식이 아닙니다. 그냥 한 사람의 성인입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성인이 되면 경어를 써줘야 합니다. 이때부터 부모는 자식을 돌봐주지 않아도 됩니다. 돌봐주는 건 자유지만 의무는 아닙니다. 대신에 자식도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는 없어집니다. 서양 사람들은 비교적 이 법칙을 잘 지키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너무 이 원리에서 벗어나 있어요. 그래서 고뇌가 많이 생기는 거예요. 

이렇게 머리가 복잡할 때는 자연 생태계로 돌아가서 보면 자기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딸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은 나의 자유이지만, 그렇게 할지 말지는 딸의 자유이기 때문에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닙니다. 조언은 해줄 수 있어요. 내 말 안 들었다고 딸을 미워하는 것은 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예요. 질문자는 지금 딸을 더 아끼고 사랑해줘야 하는지, 괘씸하니까 미워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둘 다 생각을 잘 못하고 있는 겁니다. 괘씸하게 여길 이유도 하나도 없고, 더 아끼고 사랑해줘야 할 이유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지켜봐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도 좋지만, 도와줘야 할 아무런 의무는 없습니다. 도와줄 형편이 안 되면 안 도와주면 되지 아이가 미워할 행동을 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말을 안 들었다는 그 한 가지 밖에 아이가 아무런 잘못도 한 것이 아닙니다. 남을 때리거나 죽이거나 헤친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어 손해끼친 것도 아니고, 성추행하거나 성폭행을 해서 남을 괴롭힌 것도 아니고, 남을 속인 것도 아니고, 그냥 둘이 뜻이 맞아서 같이 살려다가 서로 마음이 안 맞아서 같이 안 살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딸의 의견을 존중해 주면 돼요. 잘했다가 아니라 그런 딸을 그냥 인정해 주면 됩니다. 같이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딸의 의견이 있고,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사위의 의견이 있을 뿐이에요.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사위의 의견도 그대로 존중되어야 하고, 같이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딸의 의견도 그대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같이 살든지 안 살든지 관계없이 나는 딸의 엄마로서 역할을 하면 됩니다. 찾아오면 당연히 받아주고 함께 해줘야 하고, 미워할 필요도 없고 책임질 필요도 없습니다. 사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위를 떠나서 이혼을 했다 하더라도 옛날부터 가깝게 지냈던 이웃집 총각 아닙니까. 따뜻하게 받아주고 전화도 하고 얘기도 해줄 수가 있지요. 그것으로 고민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딸과 이혼했다고 그 총각과도 원수질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딸은 제가 사위와 연락하고 지내는 것을 불편해 하거든요.” 

“딸은 남편과 계속 연결이 될까 봐서 그런 것이지요. 그러나 불편해하는 것은 자기가 불편해 하는 것이니까 나와는 관계가 없는 거죠. 사위와 연락하고 지낼 수 있는 것은 질문자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세상에 누구를 만나든 그건 내 친구로서 만나는 건데 무슨 상관입니까. 당연히 만나야죠.”

“딸이 미울 때는 가끔 미워해도 될까요?” 

“미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왜 미워해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었다고 기분이 좀 나쁘다는 얘기인데요. 할아버지 대에서 이혼을 안 해도 내 대에서는 이혼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요. 할아버지 대에 불교를 믿어도 손자 대에 와서 기독교를 믿을 수도 있는 것이고요. 성인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들었을 때는 아무런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10년 동거하고도 헤어지기도 하는 겁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어떻게 두달 석달 만에 이혼을 할 수가 있냐?’ 그러는데 3년 살아서 애 둘 낳아놓고 이혼 하는게 나아요? 지금 이 상황이 나아요? (청중들 웃음) 


애를 낳게 되면 그것은 딸의 문제인 동시에 자기 문제로 책임이 돌아옵니다. 안 살려면 지금 이 상황은 훨씬 잘 된 일입니다. ‘아이고, 애 둘이나 낳아놓고 이혼했으면 내가 다 덤태기 쓸 뻔 했는데 그래도 착하다. 혼자 이혼했지 나한테 덤태기는 안 씌웠네. 참 잘했다’ 이렇게 생각해도 될 일이에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하얀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은 흙탕물이 한 방울만 떨어져도 옷 버렸다 이렇게 되죠. 그런데 시커먼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은 흙탕물이 열 방울이 떨어져도 별 문제 없어요. 이미 때 묻은 옷이니까 좀 더 입어도 돼요. 부모가 이혼 하고 집안에 분란이 일고 이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자란 사람이 불행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에게 지금 이런 일은 아무 일도 아니지요. 그런데 아무 일도 없다가 이런 일이 생긴 사람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되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질문자는 하얀 옷만 믿고 살아오다가 지금 흙탕물 하나 튀겼다가 난리를 피우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별 일 아니에요. 절을 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세요.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항상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다른 경우도 살펴보면 이 일은 큰 일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이 있는 경우에 이혼을 하게 되면 아이에게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지금 딸의 이혼 문제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닙니다.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안 되고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나 자녀가 있을 때는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도덕적으로는 큰 문제가 됩니다. 아이의 성장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아이에게는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요?”
   
“그것은 ‘내 할 일 끝났다. 만세!’ 이러고 살면 됩니다. 관심을 계속 가지면 이런 고뇌를 계속 껴안아야 됩니다. 내 할 일은 이제 끝났습니다. 자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쓸 필요가 없어요. 무엇이든지 엄마로서는 격려해주는 것이 제일 좋아요. 잘했다가 아니라 격려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실패로 인해 더 큰 깨우침을 얻는다면 다음 번에는 덜 실패할 수가 있거든요. 6년을 사귀어보고 막상 살아보니까 안 맞더라 하는 걸 보면, 아이가 앞으로 선택을 할 때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할거예요. 서로 안 맞는데 정에 끌려서 생긴 문제 같거든요. 


사위가 내 딸을 좋아하는 건 사위의 자유인데, 그렇다고 딸도 사위를 좋아해라 라고는 아무리 엄마라도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어요. 인간의 감정은 누가 대신 컨트롤할 수가 없는 겁니다. 자기만이 결정하는 겁니다. 딸에게도 엄마한테 말 못하는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 ‘딸이 말 못할 어떤 이유가 있구나’ 하고 기다리면서 오히려 딸이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오히려 엄마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든데 그걸 결정한 당사자는 얼마나 더 힘들까요? 부모는 ‘니가 미쳤지’ 이러지만 딸도 그런 결정을 하는데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보는 엄마도 힘든데 6년간 사귄 남자와 그것도 결혼까지 해서 두달도 안되어서 이혼결정을 내릴 때는 자기 나름대로 뭔가 말 못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딸을 이해하는 쪽으로 마음을 내어 보세요.  

그래서 사람의 삶을 일반 잣대로 재어서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물을 보는 가치관이 서로 다릅니다. 스무살 넘은 자식에 대해서 엄마가 자기 생각으로 함부로 예단해서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또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잘했고 못했고를 따지지 말고 그냥 아이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지켜봐주고 더 이상 엄마가 간섭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사위가 되었던 사람에게도 미안하다고 할 것도 없고, 안 만날 것도 없고,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연락해도 됩니다. 딸이 싫어하는 이유는 혹시 엄마가 다시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을 할까봐 그런 겁니다. 사위는 혹시 연결 고리가 될까 싶어서 연락하는 건데, 그걸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나는 이제 연결 고리 역할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냥 사위도 위로해주고 딸도 존중해주고 하면 됩니다. 그럼 이제 별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어요?”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보면서 저한테 많이 적용하고 새겼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뵙고 말씀을 들으니 미련한 마음을 이제 떨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미련하다는 겁니다. 영리하면 동영상을 딱 보고 딱 놓아야지요. 차를 열 시간 타고 와서 한 시간 듣고 이제 겨우 이해하는 수준이니까, 자기가 그렇게 미련한데 자기 딸이 뭐 그렇게 똑똑하겠어요? 훌륭한 말은 채찍만 들어도 알아서 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동영상으로 남의 얘기만 듣고도 딱 깨쳐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채찍을 직접 맞아야 가는 수준이니까 ‘아이고, 그래도 우리 딸은 나보다는 낫겠지’ 이렇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못난 나도 딸 둘 낳고 잘 살았는데 똑똑한 우리 딸은 결혼을 열두 번을 하더라도 잘 살거다 이렇게 딸을 딱 믿어줘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못 믿으면 안 됩니다. 잘했다고 두둔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정을 하든 존중하고 믿어줘야 합니다.”

이렇게 스님께서 답변을 마치니 질문자도 활짝 웃고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가 이어집니다. 유튜브 즉문즉설을 통해 남의 고민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듣는 것과 자신의 고민을 직접 물어보고 답변을 듣는 것이 많은 차이가 있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 정리말씀을 통해서도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듣는 사람들이 갖는 한계에 대해 지적해 주시면서 어떻게 살아있는 마음 공부를 할 수 있는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위치 따라 어떤 방향의 길이 정해집니다. 이것이 관통이 되어야 삶이 자유로워집니다. 삶이란 늘 살아 숨쉬고 우리의 마음은 늘 모양 없는 형상처럼 움직이는 겁니다. 인연을 따라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딱 있어야 동이다 서다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즉문즉설을 읽고 정답을 만들면 안 됩니다. ‘스님이 애는 이렇게 키우라 그러더라’, ‘남자는 이렇게 해야 된다더라’, ‘여자는 이렇게 해야 된다더라’ 그렇게 받아들이시면 안돼요. 그 말은 그 사람에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나와 비슷하니까 비슷하게 적용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배 아프다’ 하면 이것이 밥을 안 먹고 와서 배가 아픈 것이면 ‘밥 먹어라’고 얘기해줘야 하고, 밥을 많이 먹어서 배가 아픈 것이면 ‘그만 먹어라’ 얘기해야 되는 것이지, ‘배 아프면 무조건 밥 먹어라고 그러더라’ 이렇게 정답을 만들면 안 됩니다. 그래서 즉문즉설 많이 읽고 도움 된 사람도 있지만 수백 개를 읽고 혼자서 통계를 만들고 정답을 만들어서 이제 나한테 물어라 이런 식이 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경전을 읽을 때 지금 이런 식으로 읽기 때문에 경전을 읽어도 해탈을 못하는 겁니다. 모양화 시키지 말고 내 삶에 살아 숨 쉬도록 적용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날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강연을 마치니 어느덧 2시간 40분이 흘렀습니다. 청중들은 쉬지 않고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었습니다. 


다섯명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모두 감동이 많았기에 전부 소개를 해드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참여자들의 집중도도 높았고 웃음이 넘치는 강연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젊은 청년들에게 강연이 어떠했는지 물어보니 “다 좋았지만 특히 마지막 질문에서 우리가 남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가슴에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년의 남자분께 물어보니 “가족 얘기를 너무 쉽고 편안하게 해주셔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중년의 여자분께 물어보니 “정말 좋았고 스님의 지혜를 받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 휴스턴에 있는 남선사라는 사찰에서 주지 스님께서 오셔서 끝까지 강연에 참가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스님께서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새로운 백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책 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봉사자들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휴스턴 강연의 총괄 책임을 맡은 박경원님에게는 사인을 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또 강연 전에 스님 일행이 쉴 수 있도록 휴식 장소를 제공하고 식사를 준비해 준 이원자님에게도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휴스턴 강연의 총괄 책임을 맡은 박경원님(왼쪽)과 식사를 제공해주신 이원자님(오른쪽)

그리고 운전 봉사를 해준 이상우님 부부, 제니님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행사 후 묘덕법사님은 휴스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신문광고를 보고 자원봉사를 신청한 분은 “자원봉사를 처음으로 해보았는데 홍보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는 일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잘 쓰이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어 보람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청년은 “종교적으로 갈등이 심한 집에서 자란 관계로 종교에 회의적이었는데 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듣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이번에 3번째 봉사를 하게 되었다” 며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정진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모두들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와서 그런지 한인 커뮤니티 센터의 책상과 의자 등을 순식간에 셋팅하고 정리하는 등 모두들 기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한 분은 “젊은 학생들보다 교민들과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서 학생들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단 느낌이 들었다”며 아쉬워 하였습니다. 작년에 이어서 두번째 자원봉사를 하는 어떤 분은 “휴스턴에서도 정기적인 마음공부 모임이 있었으면 한다” 는 간절한 바램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서 안내를 할 때 '정토불교대학'과 '열린법회' 라는 명찰을 붙이고 안내를 하였는데 많은 분들이 열린법회와 불교대학에 대해 문의를 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휴스턴 열린법회가 조금씩 활성화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작년에 비해서 자원봉사자들도 많았고, 체계적으로 일을 나누어서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해를 거듭할 수록 자원봉사자들의 역량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강연장을 출발하여 숙소에 도착하니 10시 20분이 되었습니다. 5년째 스님 일행이 방문할 때마다 숙소를 제공하고 있는 박경원님 댁에 도착하자 6살 상민이와 3살 상윤이가 달려와 스님께 인사를 하며 반가워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는데, 아이들은 할아버지한테 안기는 것처럼 덥석 스님께 달려가 한아름에 안겼습니다. 스님께서도 “많이 크고 의젓해졌다” 하시며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이후 구보경님이 준비해준 호박죽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54번째 텍사즈주 휴스턴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오후에는 55번째 강연이 Texas A&M 대학교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열리고, 저녁에는 56번째 강연이 오스틴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열립니다. 내일은 Texas A&M 대학교와 오스틴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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