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과 함께 경주워크숍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두북에서 아침을 맞이하셨습니다. 아침 겸 점심으로 식사를 하신 후 여러부서에서 들어온 각종 보고서들을 살펴보시며 업무를 보시다가 오전11시에 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만나러 경주로 출발했습니다. 

두북에서 경주로 가는 길, 차창 밖에는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추수를 앞두고 노랗게 익은 벼가 활활 타며 가을을 물씬 느끼게 해 줍니다. 스님께서는 “날씨 참 좋다” 하시며 가을을 만끽하셨습니다. 



오늘은 11시30분부터 오후5시까지 법흥왕릉을 시작으로 태종무열왕릉, 김유신장군묘,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능지탑, 황룡사터를 스님의 안내를 들으며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평화리더십아카데미에서 44명, 여성리더십아카데미에서 19명, 청년리더십아카데미에서 79명 등 총 144명이 참석하여 스님이 안내해주시는 설명을 들으며 가을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래는 평화리더십, 청년리더십, 여성리더십 각각 별도로 경주워크샵을 진행해 왔는데, 이번에는 스님께서 세계 100회 강연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스님께서 한국에 귀국하는 오늘에 맞춰 3개팀이 한꺼번에 같이 워크샵을 하게 되었습니다. 


▲ 법흥왕릉

법흥왕릉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평화리더십, 여성리더십 수강생들이 도착해 오늘 역사기행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이 한껏 무르익었습니다. 스님께서 지금 세계 100강을 다니고 있으셔서 스님의 얼굴 뵙기가 무척 힘든데 오늘 이렇게 특별하게 스님을 만날 수 있어 너무나 반가워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즐거움과 기대감을 가득 안고 신라의 역사와 법흥왕에 대한 이야기기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에서부터 법흥왕과 진흥왕이 삼국 통일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신라가 가야와 합의 통일을 한 것이 갖는 의미를 강조해 주셨는데, 오늘날 남북통일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 같아 깊은 감흥이 있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을 통해 지금의 남북통일에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 여행의 주제입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 민족의 과거 통일의 경험을 갖고 좋은 점과 문제점을 살펴봄으로 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고려하지 못 했던 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대 내물왕 때만 하더라도 신라는 가야보다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야의 공격을 받아서 거의 멸망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통일 과정에서 가야를 원한으로 공격하지 않고 서로 합의 통일을 했습니다. 신라와 가야가 합의 통일을 함으로써 1+1이 2가 아니고 5가 되고 10이 되는 효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야는 불교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철저하게 불교를 금기시하는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법흥왕은 신라에 불교를 먼저 공인함으로 해서 가야와의 통합을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북한의 노동당을 수용할 정도의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독일도 통일할 때는 동독의 사회당을 인정하고 정치적 자유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가야를 포용해서 통합함으로 해서 가야의 높은 문화가 신라에 굉장한 영향을 준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야에 인재가 많았습니다. 이 인재들을 신라의 왕족으로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법흥왕의 딸을 시집을 보내서 가야 왕을 사위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 증손자가 김유신입니다. 

역사 공부를 할 때 신라가 가야와 합의 통일을 함으로 인해 가져온 효과를 많이 외면하는데 이걸 꼭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새겼으면 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자연자원뿐만 아니라 북한의 인민들이 갖고 있는 재능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1시간 가량을 설명을 마치고, 법흥왕께 인사를 같이 드리자고 하셔서 삼배를 한 후 길가로 내려왔습니다. 

다음은 태종무열왕릉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태종 무열왕릉은 신라의 29대 왕으로 삼국 통일의 주역이었던 된 김춘추의 무덤입니다. 태종 무열왕릉을 바라보고 앉아서 스님께 김춘추가 어떻게 삼국 통일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작은 나라였던 신라가 당시 최강국이었던 당나라를 어떻게 외교적으로 활용했는지, 또 국제정세의 변화를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 태종무열왕릉

다음은 김유신장군묘로 이동하였습니다. 김유신은 신라의 장군이지만 흥무대왕(興舞大王)이라고 추존을 받을 정도로 삼국통일에 많은 공을 세우고 후세에도 위대한 인물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유신 장군의 묘는 왕릉과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는데, 규모 면에서는 왕릉이 될 수 없지만 주위에 가꿔놓은 모습들을 보면 그가 후세에 많은 존경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에 얽힌 일화를 들으며 김유신과 김춘추가 살아온 삶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 김유신장군묘


▲ 김유신장군묘 앞에서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은 사천왕사지로 이동하였습니다. 터만 발굴이 되어 있어서 그 규모 정도만 눈으로 확인 가능했는데, 사천왕사는 문무왕이 당나라의 군대가 고구려 침공 후 신라까지 침공하려고 하자 불교의 힘을 빌려 그것을 막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이라고 합니다. 사천왕사를 지은 후 명랑법사가 문두루 비법을 행하니 서해에 풍랑이 쳐서 당나라 배를 두 번이나 침몰시킨 기적을 이룬 곳이라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으며, 또 자신이 죽으면 왜군의 침입을 막는 용왕이 되겠다 하고 바다에 묻혔다는 문무대왕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그 애국심에 잔잔한 감동이 일기도 했습니다.  


▲ 사천왕사지

사천왕사 덕분인지 신라는 당나라의 침공을 격퇴하고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배달민족의 정통성에 대한 역사 의식이 부족하여 고구려의 영토까지 통일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옛 땅을 잃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점도 듣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당시 당나라와 신라의 관계는 현재 미국과 우리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무왕은 당나라와 동맹을 하더라도 신라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 전쟁까지도 감수하면서 당나라의 간섭을 물리쳤으나 오늘날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자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선덕여왕릉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사천왕사에서 낭산 중턱으로 올라가니 소나무 숲 속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릉이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선덕여왕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기록 세 가지를 들으며 선덕여왕이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당 태종으로부터 무시를 당했으나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한 이야기를 들으며 선덕여왕이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삼국통일은 김춘추나 김유신에 의해 이루었지만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재를 발굴한 사람은 바로 선덕여왕이었습니다.



선덕여왕릉을 지나 언덕을 내려오니 능지탑이 나왔습니다. 능지탑은 문무대왕의 화장터로 문무대왕의 유언에 따라 화장 후 유골은 동해바다 대왕암에 묻고 재를 모아 이곳에 탑을 쌓았다고 합니다. 능과 같은 탑이라 하여 능지탑이라 이름 지어진 곳입니다. 


▲ 능지탑

시골길을 걸으며 논밭에 가을이 온 것을 보며 걸으니 기분도 상쾌하고 가을 바람을 시원하게 맞으니 피로도 풀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너른 들판에 황룡사터가 나왔습니다. 비록 지금은 초석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엄청난 규모의 9층 목탑이 있었을 것을 상상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몽고의 침공으로 인해 불에 타 소실되었지만 원래는 27층 정도의 높이인 67m로 거대한 목조탑이었습니다. 그 목탑이 건설된 황룡사지는 터만 해도 16만평으로 이 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웅장한 절이었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 황룡사지

스님의 안내를 들으며 황룡사의 남문 터를 지나 중문, 9층 목탑, 금당과 강당을 지나면서 옛 선조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청년리더십아카데미를 듣는 수강생이 노래를 준비해 왔다며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분황사를 뒤로하고 한 나절의 일정을 마치며 스님과 함께 흥겨운 노랫말을 함께 부르며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저녁 강연은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배우는 한반도 통일의 교훈”을 주제로 코롱호텔 1층 강당에서 저녁 7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하루 종일 강의를 해주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도 2시간 반 동안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저하되고 있고 국제 관계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안보는 미국이 지켜주었고 경제는 중국의 성장에 힘입어 계속 성장을 했는데, 지금 중국과 미국이 갈등을 일으키니까 이제 한발을 떼야 되잖아요. 그러나 지금 경제도 뗄 수 없고 안보도 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미래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혼란을 겪으면서도 발전해 왔고, 발전한 것을 되돌아보면 이런 긍정적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안보도 지킬 수 있었고 경제도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도 계속 성장할 것이냐? 그렇지가 않습니다. 미래에는 국제관계도 어려워지고 국내의 상황과 요구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돌파구를 뚫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첫째, 전체적인 사회시스템을 바꾸면서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과 훈련, 즉 창조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짧은 시간에 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한 10년 20년 단기적으로 부양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양적 확대를 갖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통일입니다.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양적 확대를 통해서 시간을 벌어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런 필요성을 생각한다면 남의 나라와도 손을 잡고 남의 나라를 흡수해서라도 이 모순을 풀어야 되는데, 이 통일 문제는 숨통을 틀 수 있는 돌파구가 됩니다. 지금까지는 분단이 우리에게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통일의 가능성이 있어 오히려 단기간에 숨통을 틀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통일만이 비전이다’ 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얘기는 북한민주화라든지, 북한주민의 고통을 해결한다든지 하는 윤리 도덕적이거나 남을 위한다는 차원의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통일 밖에 길이 없습니다. 너무 이기적으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타적인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이기적인 측면에서도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지만 자기 이익도 챙길 줄 모르면 바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만들려면 통일 이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둘째, 정치적으로도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한미일 삼각 군사 동맹에 우리가 묶이게 되면 결국 중국은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러시아, 북한과 결합해 북중러 삼각 동맹을 형성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북방 삼각과 남방 삼각이라고 하는 옛날에 냉전 구도 비슷하게 형성되어, 그 둘의 충돌지점이 한반도가 됩니다. 크게 보면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전락하여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여 남과 북이 충돌하는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통일은 고사하고 안보 유지도 어렵게 됩니다. 

미중의 갈등이 심해지면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경제는 하루 아침에 몰락합니다. 만약에 북한 미사일이 인천 공항에 두발만 떨어져도 우리 경제는 휘청거리게 됩니다. 우리가 북한의 평양을 그보다 백배 초토화시킨다 하더라도 그것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우리가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밥 좀 잘 먹고 힘 좀 있다고 ‘저 놈 까불면 때려 버릴거야’ 이런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미중의 세력 충돌에서 우리가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통일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분단된 상태로는 미중의 하위변수로 전락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남북이 만약 통일이 된다면 전혀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통일된 한반도는 세계 10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국가가 됩니다. 미중에 비해서는 굉장히 작은 세력이지만, 균형을 이루는 저울추로서는 굉장히 큰 추가 됩니다. 통일된 한반도가 미국과 협력하느냐 중국과 협력하느냐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바꿀 만큼 중요해지기 때문에 통일 한국의 외교적 위상은 굉장히 커지게 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한국이 평화의 중심을 잡음으로 인해서 미중의 충돌을 오히려 막아낼 수 있습니다. 즉 한국의 평화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의 평화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와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동아시아의 경제적 협력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통일된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견인해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추진할 충분한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통일은 우리에게 하면 좋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할 수 밖에 없고 안 하면 안 되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이익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이익도 함께 가져옵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통일이 일본, 중국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서 동아시아의 경제 협력을 강화시킨다면 동아시아의 경제 규모가 유럽과 미국에 버금가거나 더 큰 경제 규모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면 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갔다가 21세기 후반기에 가면 동아시아로 넘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규모나 군사력 갖고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수준도 높여야 합니다. 통일을 기초로 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추동함으로 해서 문명의 중심 역할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이뤄 놓은 역량은 통일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된 한국은 동아시아의 집단 안보체제를 추동해 갈 역량도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지난 50년 동안 선배들이 만들어 온 것입니다. 이것은 고구려 멸망 이후 천년 만에 도래한 다시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천년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발해 멸망 이후에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우리가 얼마나 찌그러졌었습니까. 심지어 식민지 지배까지 당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다시 희망을 가지고 한번 도전해 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동쪽에 치우진 작은 나라인 신라는 가야와 협력을 잘 유지함으로 해서 강대국인 고구려와 백제와도 당당히 힘을 겨루는 나라로 성장했고, 결국 고구려와 백제를 제치고 민족사의 주인공으로까지 등장을 했습니다. 그 당시 신라가 세계정세를 읽고 당나라와 협력을 한 것은 신라의 입장에서는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것처럼 지금까지는 종속된 성격의 한미 동맹이었다면 이제는 자주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미국과 건실한 동맹 체제를 만들어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종미도 아니고 반미도 아닌 새로운 자주적 입장에서의 한미 동맹을 견고하게 해나간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신라인들이 가야를 포용하듯이 남한이 북한을 포용해내는 것이 지금은 필요할 때입니다.” 

스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통일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그릴 수 있었으며 잠시나마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꿈꿔볼 수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즉문즉설 형식으로 질문을 더 받으셨습니다. 통일 과정에서 북한의 지도부를 어떻게 남한에서 수용할 수 있을지 묻는 질문과 질문하는 것이 제약받는 한국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창의성을 길러나갈 수 있을지 묻는 질문 등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강생들에게 “결석하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무조건 빠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수료하세요” 라고 격려말씀을 하시면서 오늘 144명이 함께한 평화재단 리더십 아카데미 경주 워크숍을 마무리해 주셨습니다. 

수강생들에게 오늘 스님의 역사 안내와 강의를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청년리더십아카데미에 참여하고 있는 조현영씨는 “기존 당위성으로만 이해했던 통일론을 현재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재해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리더로 거듭남으로써 정체된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역설이 마음에 와닿았다. 시대적 과도기에 남한이라는 분단국가에서 한 명의 청년으로 살고 있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며 보람있어 하였습니다. 또 제진영씨는 “과거의 역사는 미래를 보는 열쇠라는 말을 몸소 느낀 하루였다”며 기뻐하였습니다. 또 지도일씨는 “신라가 수많은 외교적 위협 속에서 가야와 통일을 이루고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면밀히 분석해주시고 리더들의 의식 차이가 얼마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되었다”며 스님의 통일에 대한 열정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워크샵을 마치고 두북으로 돌아오니 밤11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각종 보고서를 검토하시며 더 업무를 보시다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내일은 정토회 제8차 천일결사 3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전북 장수 죽립정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죽림정사에서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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