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세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노향숙님과 친구분들이 오셔서 어제 저녁 및 오늘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어서 스님 일행은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노향숙님은 오타와에서 스님 강연이 열린다고 하길래 정말 기쁜 마음으로 숙소와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행사준비팀에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숙소와 식사준비를 해주신 노향숙님께 인생수업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리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하룻밤 편안하게 숙박하고 식사까지 대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전 7시 30분에 토론토로 출발하였습니다.  

 
<노향숙님>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와 캐나다 동부 최대의 도시인 토론토가 속해있는 온타리오주는 호수와 강의 땅입니다. 오타와에서 토론토로 가는 길은 온타리오 호수 북쪽편을 끼고 달리는데 이 길은 Thousand Islands Parkway로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가는 고속도로 입니다. 온타리오 호수에 있는 천개의 섬을 천섬이라고 하는데 이 천섬은 온타리오 호수 내에 있는 유명한 관광 명소입니다. 온타리오 호수는 남쪽으로는 미국의 뉴욕주와 북쪽으로는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둘러싸고 있는데 미국쪽에는 로체스터에서 천개의 섬으로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고, 캐나다 쪽에서는 킹스톤에서 천섬으로 가는 유람선이 있습니다. 저희는 천섬을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고속도로를 따라 가는 길에 잠깐 화장실도 들를겸 호수를 구경하기로 하고 잠시 호수쪽으로 들어갔습니다. 



호수인지 바다인지도 모를 정도로 넓은 온타리오 호수를 잠시 감상하고, 토론토로 오는 길에 마지막 휴게소에 들렀는데 어떤 분이 법륜 스님께 인사를 하면서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다시 길을 들어 1시쯤에 토론토의 정연희님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연희님 댁에 와서야 저희도 스님께 아직 인사를 못드린 것이 생각나서 정연희님과 함께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정연희님이 준비해놓은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는 휴식과 각자의 업무를 한 후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한인회에서는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여 한인회관 주변에 도로를 막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강연 준비를 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청중들이 적게 올까봐 걱정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토론토 한인회관은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3번째로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벌써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강연은 지난 6월에 개원한 토론토 법당의 불교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장에 도착하신 후 책 사인을 위해 줄을 서 있던 분들께 책사인회를 해주시고 강연장에 오신 분들과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소개 영상이 나온 후 5시에 무대에 오르니 큰 박수로 참가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토론토는 약 55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중에서 한인들은 약 65,000명 정도 거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강연에는 450여명이 함께 하여 많은 분들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을 찾아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안녕하세요. 주말인데 놀러도 안가고 여기에 오셨어요? 다들 놀러가고 아무도 안올 줄 알았습니다. 유럽 순회강연을 하고 미주로 오는 관계로 조금 목을 다쳤습니다. 감기 몸살에 목이 쉬었으니 목소리가 듣기 싫더라고 좀 참아주세요. 그리고 무대가 너무 높아서 서서 하면 높아지니 앉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양해를 구하시면서 처음으로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분들과 한인회 관계자들께 감사인사를 하셨습니다. 

"매년 토론토는 한인회의 좋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렇게 좋은 공간에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토론토 한인회장님 이하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이 강연은 완전 무료로 진행됩니다.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장소도 정하고 포스터도 붙이고 홍보를 해서 강연이 이루게 지게 된 것입니다. 이분들의 수고를 위해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즉문즉설을 보신 분들을 손들라고 하니 약 2/3 정도가 손을 들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유튜브의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과연 실감할 수가 있었고, 많은 분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삶이 바뀌었다고 하고, 한 분은 외국인 분인데 자기 와이프가 매일 컴퓨터 앞에서 스님을 매일매일 보고 있다고 하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즉문즉설 강연은 어떤 특정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여러 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어떤 주제도 좋습니다. 종교 얘기, 사회 얘기, 정치, 과학, 인생 등 주제는 제한이 없고, 얘기하는 방식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어떤 애기를 어떤 방식으로 해도 좋습니다. 자 시작해 볼까요?” 라면서 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총 10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두려움, 슬픔, 분노가 많은데 순간순간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분, 큰집에서 시부모님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자신도 따라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 묻는 분, 심리 상담사인데 상담자들의 상처가 자꾸 생각나서 마음이 무겁고 상담을 잘했는지 죄책감도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우울증이 와서 휴학을 반복하고 있는데 자신을 극복하는 방법을 묻는 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장례식에 가지 못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는 분,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간관계가 편해졌는데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 고민인 분, 전생에 지어진 운명이 있는 것인지 궁금한 분, 박사과정 5개월만에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고민인 분, 캐나다의 이혼율이 40%라고 하는데 결혼해서 잘 살려고 하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천생연분이란 것이 정말로 있는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마지막 열번째 질문인 한국 문화와 캐나다 문화 사이에서 고통받는 친구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인 캐나다 교포 1.5세 친구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캐나다에 11살 때 온 교포 1.5세입니다. 어렸을 때는 한국에서 자랐고 커서는 캐나다에서도 자랐고 그래서 한국과 캐나다의 문화를 함께 접했기 때문에 두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와 캐나다 사람들과 있을 때 서로 간의 문화 차이를 많이 느껴요. 주변에 있는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접한 문화에서는 이렇게 해서 쉽게 해결하는데’ 하는 순간들을 양쪽에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해결하는 방법들을 알아서 마음이 편할 수 있는데,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위한다면 그냥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놔두어야 할지, 옆에서 내가 참견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까요?” 

“질문자가 좋을 대로 하시면 됩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됩니다. 하고 싶어서 말을 했더니 내 말 안 들으면 그만 두면 되고요. 그러나 내 말 안 듣는다고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됩니다. 나를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말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을 안 들으면 그만이지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했지 사실은 내 식대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말을 해주면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말을 안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안 하면 되고, 스트레스를 안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하면 됩니다. 해야 된다, 하지 말아야 된다고 정해진 법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즉문즉설을 하는 이유도 인생에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든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되는데 물으니까 대답을 하는 것이거든요. 제 말을 받아들여서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에요. 그건 그들의 자유입니다. 안 받아들이는 것이 기분 나쁘면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강연을 하기 싫어지겠죠. ‘묻기만 하고 얘기해줘 봐야 소용 없더라’ 이렇게 되잖아요. 묻기 때문에 그냥 저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이 그것을 듣고 동의가 되면 그렇게 하면 되고, 동의가 안되면 안해도 되고,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저는 다만 할 뿐이거든요. 그래야 저도 스트레스를 안 받고 계속 강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것이 없으면 강연은 그냥 끝나는 것이고, 물을 것이 있으면 더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 불쌍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입니다. 산에 가다가 큰 나무 밑에 작은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작은 나무를 불쌍하게 느끼면 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이지 작은 나무의 문제는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지는구나’ 이러고 가면 되지요.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을 불쌍하게 느끼는 것은 내 문제이지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닙니다. 거기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하나도 안 불쌍한 사람도 있어요. 수행 방법에 구걸하는 것이 있거든요. 제가 수행 삼아서 다 떨어진 옷 입고 길거리에 딱 앉아 있으면 실제로 불쌍한 사람이에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지요.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불쌍하게 여기지요. 그러니 다 자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주면 됩니다. 왜 너는 구걸하느냐고 나무랠 필요도 없고, 내가 한푼 준다고 그 사람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주는 것은 내 문제이고, 고마워하는 것은 그의 문제입니다. 항상 자기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이 들면 도움을 주면 됩니다. 밥이 필요하다고 하면 밥을 주면 되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주면 되고, 필요 없다고 하면 안 주면 됩니다. 예전에 알렌산더 대왕이 작은 통 속에 살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도움이 필요하냐? 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하니까 “비켜라. 햇빛 가리지 마라”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남을 도울 때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다시 상처를 입게 되거든요. 제가 인도에 구호활동을 가기 전에도 인도의 아이들은 다 잘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가서 초등학교 공부를 시키니까 중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낸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초등학교 공부를 안시켰으면 그 아이들이 중학교에 갈 생각은 안냈겠죠. 중학교에 가고 싶은데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대학에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섭섭하니까 원수가 되어요. 우리가 도와주면 나중에 과보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다 노후가 힘들거든요. ‘내가 도와주었다’ 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래요. 도와주면 원수 되기가 쉬워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내 보따리 내놔라” 이렇게 하기가 쉽다 이말입니다. 그런대도 왜 돕느냐? 아이들은 공부가 필요해요. 비록 원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도울 것은 도와야 합니다. “내 보따리 내놔라” 하더라도 죽어가는 생명은 건져야 합니다. 칭찬받으려고 어떤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길 가는 사람과 원수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다 좋은 관계들이 원수가 되는 이유는 기대 심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기대 심리를 버리는 것을 ‘무주상’이라고 합니다. 기대 심리를 갖는 것을 ‘상을 갖는다’고 하고, 기대 심리 없이 베푸는 것을 상이 없이 베푼다고 해서 ‘무주상보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고 반드시 좋은 과보가 돌아온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내가 남을 돕고도 기대가 크면 실망이 커지는 법입니다. 내가 결혼해서 만난 남자가 훌륭해서 잘 산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상대 남자의 능력이 100인데 20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실망하고, 5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어,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더라’ 이렇게 됩니다. 내가 기대가 크면 ‘어, 살아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모자라더라’ 이렇게 됩니다.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다 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의 기대를 낮추면 행복도가 높아지고, 기대가 높아지면 행복도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는 50년 전에 비해 260배 더 잘 살아졌지만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 더 행복해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기대를 인간이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해야 자신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한 행동이 정말 나쁜 행동이여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요.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마음에 든다고 거짓말 할 수는 없잖아요.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 화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마음에 맞도록 태어나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데 그것을 다 내 생각에 맞춰서 사람을 바꾸려고 하면 내가 힘들어지죠. 한국 사람과 캐나다 사람을 나눌 수도 없어요. 한국 사람 중에도 캐나다 사람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고, 캐나다 사람 중에도 한국 사람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다수를 보면 캐나다에서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으면 과잉보호를 안하죠. 그러니 부모가 늙어서 자식 때문에 부담이 덜 되고, 자식들도 부모의 무거운 짐을 안지죠. 그런데 우리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과잉보호 한다고 부모가 힘들고, 자식들은 부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해서 힘들죠. 이런 것은 캐나다의 문화가 오히려 더 나아 보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한국식 문화가 더 나은 것도 있습니다. 한국은 공동체적인 성격이 많고, 캐나다는 개별적인 성격이 많다는 점에서는 캐나다 쪽이 오히려 늙으면 더 외롭죠. 이런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단점이라는 것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또 달라져요. 그러니 장단점이라고 말할 수 없고 문화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중간에서 보기에 내 취향에 이거는 캐나다가 낫고 이거는 한국이 낫다는 그 판단마저도 내가 하는 것이지 캐나다 문화와 한국 문화로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내 견해를 상대에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내 견해일 뿐이지 그것을 상대가 꼭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고 상대가 수용하면 다행이고,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견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 취향과 가까운 사람과는 가까워지지만 내 취향과 먼 사람과는 멀어지게 되잖아요.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예 만나지 않게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질문자만 손해이지요. 질문자의 인생살이가 그만큼 좁아지게 되는 것이죠.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취향에 맞는 사람끼리만 살려고 하면 폭이 좁아지고, 폭이 넓어지려면 취향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취향은 취향일 뿐이니까요. 나는 술 먹는 게 싫다면 술 안먹는 사람끼리 모여야 하고, 나는 술을 안 먹지만 술 먹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려면 술집에 같이 가서 술도 따라주고 해야 합니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겁니다. 나는 불교를 믿지만 기독교인들과도 같이 어울리는 것이고, 기독교인이랑 어울린다고 꼭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불교를 믿는다고 기독교 신앙을 배척할 필요도 없고요. 그렇게 인생은 자기 선택입니다. 

자기 취향을 고집하면 인생의 폭이 좁아집니다. 또 폭을 넓히려면 자기 취향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채식을 하지만 고기 먹는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어야 여러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지요. ‘나는 채식만 하겠다’고 고집해서 상도 따로 차려줘야 하면 늘 혼자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안 먹을 뿐이지 먹는 것에 대해 시비를 안 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자기 가치관을 고집할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가치관을 지키되 다른 사람의 가치관도 용납할것인가에 따라서 교류의 폭이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합니다. 넓어지는 것이 꼭 좋다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됩니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그것 자체는 자기 선택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택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책임을 안 질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이런 원리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그 원리를 모르다가 그 얘기를 듣고 ‘아, 원리가 이렇구나’, ‘악하게 살면 앞으로 재앙을 받겠구나’ 이렇게 자기가 스스로 원리를 터득해서 사는 것이지 지옥 간다니까 겁을 내거나 천당 간다니까 혹해서 하는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입니다.” 



스님께서는 청중들과 웃음과 함께 호흡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가운데 벌써 2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도 목이 많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고 갈라지셨습니다. 질문에 모두 답변해 주신 후 “끝까지 들어줘서 감사하다” 하시며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당부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질문들을 정리하며 다음과 같이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은 주어진 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성스러운 것이지, 태어나는 방식에 의해서 성스럽고 추하고가 정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릴 때 어떤 상처가 있었든 지금 여러분들이 살아 있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과거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오지도 않은 미래를 자꾸 걱정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삶이 괴롭고 근심걱정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깨어 있으세요.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이 ”일체 중생이 다 부처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깨어 있으면 지금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행복과 불행이 남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주든 전생이 주든 남편이 주든 아내가 주든 남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헐떡거리고 살아야 됩니다. 또 누구를 미워해야 합니다. ‘너만 아니라면, 당신만 아니라면 나는 행복할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은 항상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자각하셔서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야 합니다. 

캐나다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캐나다에 오면 다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러니 자기가 좋아야 천당이 됩니다. 이것을 ‘유심정토’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좋으면 천당입니다. 한국이 좋으면 한국이 천당이고, 캐나다가 좋으면 캐나다가 천당입니다. 지장보살에게는 지옥이 극락입니다. 왜 그럴까요? 남을 돕는 일은 지옥에 가야 많을까요? 천당에 가야 많을까요? 내가 선택해서 가서 그곳에 할 일이 많으면 그곳이 천당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지나치게 물질에만 연연하면 안 됩니다. 물질이 필요는 한데, 그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전 지구적으로 200여개의 나라 중에 캐나다 정도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제도적으로도 좋은 편이에요. 여기에 살면서도 불행하다면 그것은 개인 문제라고 봐야지 세상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들의 삶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강연을 마무리 하니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도 않고 갈라지는 가운데 2시간 10분 동안이나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오늘 토론토에서는 주말이라 큰 마라톤 대회가 2시까지 있어서 도로 곳곳에 교통을 막아놓아 사람들이 많이 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450여명이 참석하여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스님과 함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옆에 앉아서 시종일관 스님의 말씀에 웃음을 보이던 젊은 커플과 1.5세로 보이는 커플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으니 "정말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바로 연단 아래에 마련된 책상에서 책사인회가 열리자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훌륭한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장소를 내어주는 한인회장님과 한인회에 감사의 표시로 최근에 나온 책 3권을 사인하여 한인회관 도서실에 기증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 다음에 자원봉사자 모두에게 선물로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불교대학생들로써 처음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이었지만 어느 지역보다도 편안하고 능숙한 모습으로 열심히 해주셨고, 자원봉사자는 모두 20명이나 되었습니다. 토론토 정토법당은 올 6월에 개원한 법당으로서 작년과 올해 2번의 행사는 열린법회를 개척한 김정란 총무님이 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김정란 총무님은 이번에 캐나다 동부 4개 지역을 스님과 함께 다니면서 행사 총괄을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 또한 행사책임을 맡았던 김미셀님 및 스탭들에게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주고,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감사의 큰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기념사진을 함께 촬영하였습니다. 

 
<왼쪽부터 김민석님, 김미셀님, 김종원님, 김정란 총무님, 장호님>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나누기도 못하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니 묘덕법사님, 김정란 총무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말 수고가 많았고 인사를 하고 저녁 8시에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연희님과 일본식당을 운영하는 한승진님께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시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이후 저는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내려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홍보하는데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이렇게 오늘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했고, 많은 분들이 함께하여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보람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처음 행사를 총괄했던 김미셀님은 이전 두 번의 행사 때는 그냥 김정란 총무님을 도와서 시키는 일만 했었는데 막상 총무님이 캐나다 동부지역을 총괄하게 되어 본인이 전적으로 토론토 강연을 책임지게 되니 마음의 부담이 많았는데 준비를 하면서보니 꼼꼼히 김정란 총무님이 잘 챙겨놓고 가서 쉬운 점도 있었고, 또 의외로 준비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동안 김정란 총무님 혼자서 참 수고가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강연장에 청중으로 왔었는데 올해는 봉사자로 참가를 해보니, 스님 강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보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봉사자들은 지난 6월 토론토 법당 개원때 만났던 분들이라서 저도 더 반가웠습니다. 이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내일 캐나다런던 강연의 봉사를 위해서 캐나다런던으로 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작년에 한국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워털루에서 아내, 애기와 함께 왔던 김재명님은 이번에는 강연 봉사자로 다시 만나니 더 기뻤습니다.
  
 

이렇게 한 분 한 분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3번째 토론토 강연도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34번째 강연이 캐나다런던에서 열립니다. 캐나다런던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의하루 텔레그램 구독하기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읽고 댓글로 마음을 나눠보세요. 단, 욕설, 비방, 광고, 도배하는 댓글은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