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3번째 강연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어제는 뒤셀도르프에서 강연을 마치고, 새벽2시 비행기로 독일 쾰른 공항을 출발하여 새벽6시에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오늘 일정을 시작합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신중애님과 남편 되시는 에르한, 그리고 박남희씨 부부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주셨습니다. 모두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접하고 자원봉사를 해주시기로 한 분들입니다. 스님께서는 감사 인사를 하고 이분들이 렌트해 주신 차를 타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민박집 ‘다온’에 도착했습니다. 


▲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신 박남희씨 부부

민박집 ‘다온’은 큰 아파트를 민박처럼 운영하는 곳인데 윤혜숙님이 오늘 스님 일행을 위해서 손님도 받지 않고 특별히 공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오전 8시, 윤혜숙님이 아침 식사를 맛있게 차려주셔서 감사히 먹고,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피로를 풀기 위해 11시30분까지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 오늘 강연 준비와 유적지 안내를 도와주실 봉사자 분들. 왼쪽부터 김연옥님(강연담당), 윤혜숙님(유적지 안내, 숙소 제공), 신중애님(운전지원, 강연준비), 에르한씨(운전지원). 

12시부터 이스탄불의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스탄불에 온지 11년이 되었고 현지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계신 윤혜숙님의 안내로 터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풍부한 설명과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터키는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족입니다. 그래서 어순도 같고, 왠지 모를 친근감이 가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라는 말처럼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져 있습니다.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마르마라해가 연결된 보스포러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의 경계입니다. 이스탄불은 AD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이 도시로 옮겨와 ‘콘스탄티노플리스’ 라 칭해졌었습니다. 로마는 동서로 분열하여 서로마는 멸망하였으나 동쪽은 번영하여 1000년 이상에 걸쳐 존속하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비잔틴’ 혹은 ‘동로마’ 라 불리는 제국입니다. 비잔틴 제국은 6세기에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과 이탈리아 반도까지 영토를 회복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스탄불의 구시가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 지하 저수지, 테오도시우스 성벽 등은 모두 이 시대의 구조물입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거하면서 도시는 황폐화되었다가, 셀주크 투르크에 이어 아나톨리아를 지배했던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멧 2세가 이 도시를 포위하면서 비잔틴의 영토는 현재의 이스탄불 구시가와 성벽 내의 아주 미미한 주변지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1453년 간절히 원하던 콘스탄티노플을 빼앗은 메흐멧 2세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 ‘이스탄불’ 이라 불렀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인 1923년에 수립된 터키 공화국의 새로운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기 전까지 이스탄불은 1000년 이상 이곳의 수도로 존립했습니다. 그런 역사 깊은 도시를 오늘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입니다. 413년 비잔틴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그 당시까지의 성벽을 새로 늘리면서 지어진 성벽인데, 높이10m, 두께5m의 3중으로 지어져 난공불락을 자랑했습니다. 


▲ 난공불락의 요새, 테오도시우스의 성벽

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 고구려 성벽의 특징인 ‘치’의 모양도 그대로 갖추고 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치’는 고구려 성벽만의 고유한 특징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실제로 이 성벽은 7~8세기의 페르시아군과 아랍군, 9세기의 불가리아군과 러시아군의 공격을 견뎌내었다고 합니다. 1600년 전에 만들어진 성벽 치고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양호해서 놀라웠습니다.  

다음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에 하나인 ‘성 소피아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스님께서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성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곳입니다. 360년 비잔틴의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세워졌으나 그후 심한 화재를 입었고, 532년에는 ‘니카의 난’으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세운 성당이 불타 무너져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바로 재건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이후 5년 만에 제국 각지에서 운반해 온 석재로 어마어마한 인력을 동원하여 537년에 비잔틴 미술의 최대 규모로 꼽히는 대성당을 완성합니다.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은 성 소피아 성당보다 크지만 지어진 시기는 약 천년의 차이가 납니다. 


▲ 성 소피아 대성당

성당 내의 녹색 기둥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붉은 얼룩이 있는 기둥은 레바논에 있는 바르베크의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거대한 돔은 높이가 54m나 된다고 합니다. 


▲ 54m 높이의 돔. 

오스만투르크의 정복으로 한때는 모스크가 되었고,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들이 모두 회칠이 되어 가려졌고, 건물과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약간 틀어져 있는데, 이는 원래 예루살렘 방향으로 세워진 제대를 모스크로 개조하면서 메카 방향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습니다.(모스크로 바뀌면서 메카 방향으로 변경)  

입구의 왼쪽 안에 있는 나선 통로를 올라가니 2층에 테라스가 나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모자이크 화는 예수를 중심으로 한 황제상, 성모자상 등으로 상당 부분 손상이 됐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습니다. 


▲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비잔틴 미술의 걸. 심판자 그리스도가 죄인의 벌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을 거느린 모습을 형상화. 1261년에 제작). 

이 모자이크 화의 특징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예수님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9세기 초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성상 파괴가 행해져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도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모자이크는 9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성 소피아 성당을 관람한 후에는 대부분 ‘블루 모스크’를 방문합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이곳 터키 땅은 세계 최고의 신석기 문명의 발상지인 곳”이라며 ‘고고학 박물관’을 가자고 하셔서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반 관광객들과는 다른 역사에 대한 스님의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고학 박물관은 3개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고대 오리엔트 관에서는 초기 아나톨리아(소아시아) 문명의 유물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한 유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히타이트의 수도 핫투샤에서 출토된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점토판, BC 13세기, Kadesh Treaty)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최근에도 몇 가지 조약들의 문항 작성에 많은 참고가 되는 유물이라고 합니다. 


▲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 Kadesh Treaty 

고고학 관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 묘비, 석관 등 광대한 수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관이 인상적이었는데, 안내하시는 유혜숙 보살님이 “자신의 무덤을 이렇게 파헤쳐 전시해 놓은 걸 알면 마음이 어떨까” 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관을 이렇게 화려하게 해 놓으니 파헤쳐 지는 것”이라며 “다 자기들이 지은 과보로 생긴 일” 이라며 권력자들의 사치에 대해 일갈을 해주셨습니다. 

도자기 관에서는 12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셀주크, 오스만 투르크의 도자기가 연대순으로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마지막으로 이스탄불 시내의 전체 조망이 한눈에 보이는 갈라탑으로 향했습니다. 


▲ 갈라타 탑

1348년에 지어진 이 탑은 제노바인들이 거주하던 요새라고 합니다. 수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19세기 중반 제노바의 성벽을 모두 철거할 때도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사방이 탁 트인 발코니에 서니 시원한 전망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저 멀리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도 보였습니다. 


▲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보스포루스 해협


▲ 저 멀리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있는 구시가지가 보입니다. 

이스탄불의 조망을 보고 내려와, 거리를 달리는 전차로 유명한 이스틱클랄 거리를 따라 내려오니 바로 오늘의 강연장이 나왔습니다. 오늘 강연은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라는 수도원에서 열렸습니다. 


▲ 오늘 강연장인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수도원. 이스탄불의 메인 스트리트인 이스틱클랄 거리에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 장소는 주 이스탄불 한인공동체의 도미니코(고인현) 신부님께서 섭외해 주셨는데, 신부님께서는 지난 5월에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오늘 강연에는 참석하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께서는 사전에 한인 분들에게 많은 홍보를 해주셔서 오늘 강연에는 한인 성당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수도원에 도착하니 수도원장님이신 루벤 신부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이 직접 수도원 전체를 안내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예배당에서 정성껏 기도를 한 후 루벤 원장님의 안내를 받아 수도원을 둘러보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은 종교를 뛰어넘어 대중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스님의 활동에 대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오늘 강연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신 루벤 수도원장님께 The Freedom 이라는 스님의 영문 번역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 스님을 정성껏 맞이해준 마르셀로 신부님(사진 왼쪽)과 루벤 수도원장님(사진 오른쪽)  

오늘 이스탄불 강연은 총 100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강연준비팀에서는 50명 정도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장소를 좁은 공간을 빌렸는데, 100명이 넘게 오는 바람에 앉을 의자가 부족해 앞부분 무대 쪽에 쪼그려 앉거나 뒤쪽에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미리 참석인원을 예상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고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할 때 좋은 남자를 만나는 방법을 묻는 분, 뜻대로 안될 때 좌절감이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종교가 카톨릭인데 종교가 점점 세속화되어 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불교는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묻는 분, 이곳 이스탄불에서 이뤄낸 성과들과 외로워서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는데 어떻게 어머니와 화해를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아이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는데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고 난 뒤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이스탄불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후회 없이 살았습니다. 딱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어머니가 사업으로 힘드실 때 상처 되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께 어떤 분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그 분을 믿어서 사업에 실패해서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겠다” 고 막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지금도 상처가 분명히 있으실 텐데... 그 상처를 회복시켜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머니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고 질문자의 상처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괜히 어머니 핑계를 댑니까? 자기라는 존재는 완벽한 존재여야 하는데 그런 미숙한 행위를 한 자기를 지금 자기가 용서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다 잘났는데 그것 하나만 인생의 오점이 생긴 겁니다. 어머니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질문자 스스로가 이런 오점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무오류성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교의 무오류성, 교황의 무오류성, 공산당의 무오류성, 수령님의 무오류성, 이것이 모든 세상의 악을 만드는 원인입니다. 우리는 늘 부족한 존재입니다. 질문자도 부족한 존재이니까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그런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럽니까. 질문자는 엄마가 자기 말 안 들으면 성질이 나서 “엄마 안 본다” 하는 수준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이것을 계기로 해서 ‘항상 나는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해 보세요. 질문자의 성질은 앞으로 결혼을 해서도 내 마음에 안들면 남편한테 “너하고 다시는 안 산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나중에 아이도 말 안 들으면 “모자 관계를 끊자” 이렇게 말할 성질이고, 회사 다니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사표를 확 던지면서 “다시는 안보겠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엄마한테도 그렇게 독한 말을 했는데 누구한테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아, 나한테도 이런 미숙함이 있구나’ 이것을 내가 발견한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내가 알게 된 것입니다. 부족함을 알게 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가 다 내 부족함을 아는데 나만 그 부족함을 모르고 있으면 얼마나 웃음거리입니까? 아직 세상 사람들은 나의 부족함을 잘 눈치 채지 못하는데 나는 이것을 미리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착하다고 해도 속으로는 ‘아니야, 나도 독한 구석이 있어’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성질 좋다고 해도 ‘아니야, 나는 성질 안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앞으로도 내 성질대로 계속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겠구나. 어머니 한 분으로 족하다’ 이렇게 학습비라고 생각하셔야 돼요. 

그래도 어머니한테 그렇게 했으니까 부작용이 적지, 남한테 그렇게 했으면 부작용이 아주 많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나한테 이런 부족함이 있구나’, ‘내가 성질이 받칠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화가 날 때는 호흡을 한 번 더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자’, ‘절대로 극단적인 단정은 내리지 말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절하면서 “엄마, 감사합니다. 저의 이런 부족한 점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 자기 상처가 치유가 됩니다. 어머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상처를 붙들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무오류성에 흠집이 생겨서 자기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것입니다. 하얗고 깨끗한 옷을 입으면 흙탕물이 한 방물만 튀겨도 옷 버렸다 이렇게 되는데, 검은 옷을 입고 가면 열 방울을 떨어뜨려도 표시가 별로 안 납니다. 그것처럼 너무 깨끗한 척 하면 세상 살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벌써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이런 얘기를 할 정도면 얌전하게 생겼어도 질문자는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가 부족하구나’ 자각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착실해도 속으로는 ‘부족하구나’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것을 발견하게 해준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다’ 이러지도 말고, 또 ‘내가 잘못했다’ 이러지도 말고,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내 속에 있는 극단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께 “앞으로 화를 자초할 것을 미리 발견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 

어머니에게 “어머니 그 때 제가 막말을 해서 미안해요” 말하고, 어머니가 ”괜찮다” 그러면 ”어머니, 그때 제가 나이가 너무 어려서 막말이 나왔는데, 저는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제가 독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어머니에게 늘 감사하며 지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세요. 

어머니가 “그래, 너가 그래서 엄마가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딸이 좋아졌다니까 엄마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풀어야 합니다. “엄마, 죽을 죄를 지었어” 자꾸 이러면 오히려 안 풀려요. 딸이 자꾸 잘못했다고 하면 오히려 엄마는 자신의 속심을 안 내어놓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덕분에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아이고, 내가 너를 낳았지만 너 진짜 독하더라. 어째 내 자식이 저렇게 독한 줄은 몰랐다” 이렇게 속심을 내어놓게 됩니다. 속심을 내어놓는 것이 엄마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입니다. 엄마가 “괜찮다, 괜찮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엄마가 “그런 일이 있었냐? 나는 다 잊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란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 엄마가 그 때 상처가 안 되었구나’ 알 수 있어요. 만약 엄마가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해” 그러지 말고 대화를 걸면, 엄마는 “내가 상처를 입었지만, 너가 좋아졌다니까 엄마는 괜찮다” 그럽니다. 부모란 그렇습니다. 질문자도 자식 낳아 키워보면 부모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의 상처는 질문자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나중에 자식을 낳아서 그런 말을 했다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의 인생입니다. 엄마는 자식을 감싸 안고 살아야 하니까 엄마는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꽁 하고 있지 말고 ‘내 결벽증에 내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구나’ 이렇게 자기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스님이 이렇게 안 꼬집어 줘도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웃음). 

모든 상처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남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화가 나서 “주여, 저 두 놈은 지옥에 확 처넣어 버리세요” 했다면, 예수님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가 없지요. 그분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위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항상 자기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합니다. 이기적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우리는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고, 타인의 상처를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엄마 문제가 아니고 자기 문제라는 것을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한 여성분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자는 “스님 말씀대로 엄마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구나 알게 되어 개운한 느낌입니다” 라며 밝게 웃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무려 3시간 동안 열기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살아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삶이 길거리에 핀 풀 한포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사는 것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았네!’ 한 번씩만 외쳐 보세요. 살았다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세요. 항상 현재에 살아야 합니다. 현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 호흡관을 하는 이유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이 늘 행복해야 합니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둘이 살아도 행복하고, 자식이 있어도 행복한 것이고, 이혼을 해도 결혼 한 번 더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한 것이고, 신체 장애라도 살아있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나는 이래서 불행하다며 불행한 이유들을 자기가 만들어서 확고부동하게 움켜쥐고 있어요. 그것을 놓아버리세요. 나이가 들면 들어서 좋고, 젊으면 젊어서 좋고, 혼자라면 혼자여서 좋고, 결혼했으면 결혼해서 좋고, 터키에 살면 터키에 살아서 좋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서 좋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삶이 가벼워지고 밝아집니다. 그런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장사를 하면 조금 더 나아져요.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오늘 강연은 김연옥 보살님이 주축이 되어 담당해 주셨습니다. 93년 모스크바에 유학을 오셨다가 터키인 남편을 만나서 2004년부터 이곳 이스탄불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남편과 살면서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계셨습니다.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가족 모두가 나와서 함께 봉사를 했습니다. 


▲ 오늘 강연 담당을 맡아주신 김연옥님 가족 

그리고 윤혜숙님은 오늘 하루 종일 유적지 안내를 명품 가이드 수준으로 해주시고, 식사와 숙소도 준비해 주셨습니다. 

신중애님은 남편인 에르한씨와 함께 공항 마중을 나오셔서 운전도 해주시고, 스님 일행이 시내로 이동할 때와 돌아올 때 하루 종일 운전 지원과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강연 준비도 함께 해주셨고요. 

이 외에도 파카유로 온형일 이사님이 강연 준비와 스님 일행을 맞이하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후원금을 보시해 주셨고, 한인회 회장님께서는 스님을 환영하는 꽃바구니를 보내주셨습니다. 

또 오늘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다온’ 민박집으로 다시 돌아오니 밤10시반이 다 되었습니다. 스님과 스텝진 모두 강연을 준비하느라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는데, 보살님께서 정성껏 차려준 저녁 식사를 감사히 먹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내일은 오전에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로 갑니다. 아테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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