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1번째 강연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역사적인 건축물, 장엄한 갤러리, 풍부한 문화재들로 가득한 도시 ‘파리’를 향해 달려갑니다. 


독일 아헨(Aachen)에서 프랑스 파리(Paris)까지 519km를 달려가야 해서 오늘은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새벽 4시30분에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에서 출발해 6시30분 무렵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유명한 룩셈부르크를 경유하여 6시간30분 만인 오전 11시에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이 어제 브뤼셀에서 신인숙 보살님이 싸주신 남은 김밥으로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어 도시락으로 싸주셔서, 휴게소에 들러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센느강을 가로 질러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17세기 중반 루이 14세가 아버지의 사냥 별장을 20년 간 공들여 궁전으로 증축해 지은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웅장한 왕궁입니다. 


▲ 베르사유 궁전

1682년 완공 이후 프랑스 혁명으로 왕실 측근들이 학살당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파리로 끌려와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던 1789년까지 궁정의 기능을 수행했던 곳입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장인들을 고용해 역사상 가장 사치스런 왕궁을 건설했습니다. 


▲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궁전 내부 관람은 오늘이 휴간일이라 들어가 보지 못하고, 궁전 앞의 정원을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원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대부분 전기자동차를 이용해서 다니는데, 스님께서 “운동 삼아 걷자” 고 하셔서 스님 일행은 걸으면서 잠시나마 평온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원의 규모를 보니 건물은 따라 지을 수 있어도 정원만큼은 세계 어디에서도 흉내낼 수가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베르사유 궁전을 나와 파리의 상징물인 에펠탑으로 향했습니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졌습니다. 당시 에펠탑은 파리의 예술 및 문화계 엘리트들의 어마어마한 반대에 부딪쳤고, 일부 파리 시민들에게 ‘금속 아스파라거스’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면서 1909년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무선전신이라는 최신식 과학에 필요한 안테나 전송에 이상적인 플랫폼으로 증명되어 간신히 철거 위기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에펠탑 전경이 가장 잘 보인다고 하는 사이요 궁 앞에 올라가니 전체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 파리 에펠탑

다음은 에펠탑에 필적할 만한 파리의 상징물인 ‘개선문’을 보았습니다. 1805년 나폴레옹 황제가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36년에 제작한 이 개선문은 높이 50m의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아치에서 퍼져 나가는 12개의 대로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아치 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130만 명의 프랑스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무명 용사의 묘가 있으며, 매일 6:30pm이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차에서 내려 잠깐 둘러본 후, 전쟁으로 희생된 무명용사들을 천도하기 위해 잠시 기도해 보았습니다.


▲ 파리의 개선문

다음은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몽마르뜨 언덕 위에는 1876년에 짓기 시작해 1919년에야 축성된 사크레 쾨르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 사크레 쾨르 대성당 

대성당 앞 계단에서 보니 파리 시내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 보였습니다. 


▲ 몽마르뜨 언덕 위에서 

마침 대성당 앞에서 오늘 스님 강연을 듣기 위해 파리로 왔다는 여성 두 명을 만났습니다. 한분은 휠체어를 타고 계셨고, 한분은 함께 오신 분이었습니다. 두 분은 스님을 보자 너무나 반가워하며 좋아했습니다. 스님께서 인사를 건네니, 강연장에서 전달하려고 미리 써왔다는 카드를 건냈습니다. 휠체어를 타신 분은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두 분은 저녁 강의 때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 몽마르뜨 언덕에서 만난 스님 강연에 참가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는 분

어느덧 시간이 3시가 다 되어갔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유적지 관람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수십 개의 전시실과 계단이 3개의 전시관과 4개 층에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떤 순서로 어떻게 관람해야 전체를 다 볼 수 있을지 한 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고대 오리엔트, 이집트, 그리스, 로마 순서로 조각, 회화 등의 작품들을 아주 빠른 걸음으로 살펴보셨습니다. 


▲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원칙으로 유명한 법전. 


▲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조각상 ‘비너스’.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를 묘사. 


▲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초상화. 황금비율인 1:1.618의 비율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어 균형잡힌 느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후 5시에는 강연장으로 이동해야 해서 정말 초스피드로 전체를 둘러보았음에도 불구하고 2층까지만 관람을 하셨고 3층은 둘러보지 못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집트 유물을 보시면서 “이집트 사람들이 이곳에서 이 유물을 본다면 마음이 어떨까?” 하시기도 했는데, 관람을 마치고 저녁 강연 중에 짧게 소회를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서구의 이런 물질적 풍요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엄청난 착취 위에 이뤄진 것이에요. 사람들은 웅장한 건물 앞에서 ‘우와’ 탄성을 지르지만, 역사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5시에 마치고 5시3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릴 MAS Paris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흰색 브라우스에 주황색 어깨띠를 깔끔하게 맞춰 입은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 오늘 강연장인 MAS Paris 

파리 강연은 봉사자들이 튼튼하게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사전에 봉사자 모임을 통해 ‘봉사자의 자세’에 대한 스님 법문도 함께 보고 계획도 함께 세우는 준비과정이 잘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오늘은 26명의 봉사자들이 참여하여 로비팀, 외부안내팀, 강당내부팀 3팀으로 나뉘어져 일사 분란한 진행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오후6시30분, 총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께서 무대에 나타나시자 뜨거운 환호와 박수 속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하루종일 걸음을 많이 걸었더니 다리에 무리가 간 것 같다” 하시며 청중들께 양해를 구하고 의자에 앉아서 강연을 하셨습니다. 총 10명이 스님께 다양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는 불자이고 아버지도 불자로 돌아가셨는데 동생들이 다 교회를 다니고 어머니까지 전도해서 어머니와 동생들이 불편해졌는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최근 세월호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아파하고 있는데 기도만 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이 되겠는지 묻는 분, 북한에서는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 스님 강연을 듣고 불살생 계율을 지켜보고자 육식을 안 하고 있는데 주위로부터 안 좋은 시선을 받아 고민인 분, 프랑스에서 요리사를 하고 있는데 스님 말씀 중에 “뜨거우면 손을 놓아라”는 법문의 의미가 궁금한 분, 한국 친구들은 파리에 사는걸 부러워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 분, 4대강 사업을 한 이명박 정부를 욕하면서 자신은 농약 치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게 모순처럼 느껴진다는 분, 강물은 흘러서 바다로 가는데 강물처럼 살아야 할지 바다처럼 살아야 할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친구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배려란 무엇인지 묻는 분, 미술을 하는데 돈을 벌어야 해서 속박 받는 생활 패턴에 살게 되었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친구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배려에 대해 물었던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살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공감이 안 가도 그 사람의 기분에 맞춰서 ‘그랬구나’ 계속 공감해주면, 상대는 좋아하는데 남탓하는 습관이라든지 늦는 습관이라든지 이런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합리화하는 문제가 불거지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정말 이 사람을 배려했는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고 만약 공감해주지 않았다면 그 친구는 정말 상처를 받았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공감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더 나쁜 길로 간 것 같기도 합니다. 진정한 배려는 무엇일까요?” 

“진정한 배려는 없습니다. 들어도 줘보고 비판도 해보고 이래저래 해보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경험상 이 친구는 약간 비판해주는 것이 긍정적 효과가 나는지, 이 친구는 비판해주면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상처가 더 심해져서 부정적 효과가 생기는지, 거기에 맞춰서 해주면 됩니다. 스님도 여러분이 질문하면 어떤 질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용해주기도 하고, 어떤 질문은 눈에 눈물이 나도록 야단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다 효과가 있느냐? 아니에요. 부작용도 생기고 그럽니다. 그러면 욕 좀 얻어먹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강의하고 돈을 안 받습니다. 돈 받고 하면 돈 때문에 내 할 말도 못하고 효과가 반감됩니다. 돈을 안 받고 하면 효과가 안 난 것은 그만이고, 효과가 난 것은 ‘와, 좋더라’ 하면서 주위에 선전도 많이 해주고 그러거든요. 돈만 조금 양보하면 됩니다. 돈을 받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래서 상담하는 사람은 손님 떨어질까 겁을 내서 더 조심하니까 상담이 잘 안 되지요. 저는 때로는 위로도 해주고 달래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야단도 칩니다. 그러면 다 좋아졌느냐? 아니에요. 상처 입은 사람도 있는데, 공짜로 해서 좋아진 사람은 선전을 많이 하고, 공짜로 해서 효과가 없는 사람은 말이 없고, 그래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돈을 받고 하면 어떠냐? 효과가 난 사람은 별로 말이 없고, 효과가 안 난 사람은 말이 많고, 그래서 악명이 높아지는 겁니다.

친구 지간에 관계는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보는 겁니다. 이 사람한테는 이렇게 하는 게 딱 효과적인데, 옆 사람한테 똑같이 하면 부작용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하는 게 효과적인데, 다음번에 그렇게 하면 부작용이 나올 때가 있죠. 그것을 적절하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수도 없이 실험을 해보면서 확률을 높여가는 겁니다. ‘100% 정확하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무오류성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오랜 경험이 쌓이면 어떠냐? 날카롭게 꼬집어 줘야 할 경우, 자비롭게 쓰다듬어 주어야 할 경우,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확률이 처음에는 절반 타작도 안 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도움이 될 확률이 40%에서 60%, 70%, 90%로 점점 올라갑니다. 딱 정해진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그 사람도 시기에 따라 다르고, 또 그 사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된다고 정할 수가 없습니다. ‘간을 어떻게 맞춰야 된다’ 이런 것이 없듯이, 사람 입맛 따라 다르고, 음식 따라 다르고, 음식도 짠 것이 맛있는 사람도 있지만 싱거운 것이 맛있는 사람도 있고, 술안주로 먹을 때 다르고, 밥반찬으로 먹을 때 다르고, 그냥 먹을 때 다르고, 간 하나만 갖고도 수십 가지 방법이 유동적인데, 간을 어떻게 맞춰야 된다 이런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그 친구에 대해서 실험을 계속 해보세요. 그 친구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면,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보고 꾸준히 해보세요. 한번 부작용 났다고 안 하지 말고요. 시기가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끝없는 실험을 통해서 효과가 높은 쪽으로 방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약도 100% 낫는 약은 없어요. 치료율을 높여주는 약이지요. 그렇게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는 고민이 해결된 듯 활짝 웃으며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격려의 박수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2시간 10분 동안의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청중들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를 기원해 주셨습니다. 

“인생을 너무 고귀하게 생각하면 저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인생은 그냥 풀 한포기가 나서 사는 것과 같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삶이 훨씬 더 활기가 있고 삶의 보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청중들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눈 후, 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26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강연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마음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봉사자 중에서 어떤 분은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으로 힘들게 보내는 날이 많은데, 오늘 스님 말씀을 들으며 활짝 웃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강연을 들은 소감을 나눠주었고, 어떤 분은 “해외에 살면서 힘들 때마다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들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오늘 봉사를 하면서 스님께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것 같다” 며 봉사를 통해 느낀 기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시고 이렇게 격려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봉사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봉사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자유로 나아가는 징표입니다. 꼭 정토회 일이 아니더라도 사회 곳곳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습관을 바꾸려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의식이 무의식을 컨트롤하려면 꾸준히 해서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그리고 충격요법으로 깨달음의장 같은 4박5일 수련을 하셔야 합니다. 유튜브로 법문만 들으면 알음알이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정진을 꼭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강연은 평화재단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파리에 오신 박지현 보살님이 총괄을 하여 모든 과정이 원만히 준비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파리에서는 매월 1회 열린법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고 합니다. 정토불교대학도 개설하여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는 왕성한 활동이 이뤄지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아마 그런 기반 위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 강연도 많은 봉사자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잘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연 시작 전에 고영자 보살님이 나물 비빔밥을 스님의 저녁 도식락으로 싸오셨습니다. 그리고 강연팀에서 스텝진들과 봉사자들을 위해 바게뜨 샐러드를 준비해 주셔서 감사히 먹었습니다.  


▲ 오늘 강연 총괄을 맡으신 박지현 보살님과 저녁 도시락을 준비해주신 고영자 보살님.

그리고 강창진 거사님이 스님 일행을 위해 오늘 파리 시내 유적지 안내를 준비하셨는데, 안내를 받으며 여유 있게 둘러볼 시간이 나지 않아 거사님의 정성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 거사님이 강당 임대료 중 300유로를 보시하시고 이사빈 한국불란서교류협회 회장님이 도움을 주셔서 강당 임대를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앙굴렘(Angouleme)에 사시는 이금자 보살님은 한번도 뵙지 못했는데, 연락을 주셔서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한위클리'에 스님의 강연 광고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영애 보살님도 후원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도움 주신 거사님과 회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분들께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 강당 임대하는 것을 도와주신 강창진 거사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스님 일행은 박지현 보살님 집으로 가서 두어시간 차담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 후 밤12시에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아프셔서 차담 시간에도 쉬시고 밤새 오는 차량 안에서도 계속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밤새 차를 타고 이동하면 새벽 6시 무렵에 아헨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2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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