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아홉번째 강연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독일 함부르크의 이현정 보살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 4시30분에 렌트카를 타고 네덜란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원래 암스테르담에서 강연을 먼저 한 후에 헤이그에 들러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이준열사기념관에 가려고 했는데, 스님께서 “이준열사기념관에 찾아가서 열사님을 먼저 뵙고 강연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이준열사기념관을 오늘의 첫 번째 방문 일정으로 조정했습니다.  


▲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된 이준열사기념관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이현정 보살님께서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5시간을 달려 오전 11시 무렵 이준열사기념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준 열사가 1907년 7월 14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역사의 현장을 기념관으로 가꾼 곳입니다. 헤이그 도심 한복판에 3층 건물의 2층과 3층 전시관에 다양한 사진 자료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열사님의 뜻과 행적을 깊이 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열사께서는 그 당시 헤이그에서 개최 중인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위종 두 분과 함께 대한제국 대표로 이곳에 오셨습니다. 세 분은 그 당시 “De Jong Hotel"이던 이 집에서 머무시면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을사늑약의 무효를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국권을 회복하려고 애쓰셨으나,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냉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의분을 못 이기신 이준열사께서는 ‘왜, 대한제국을 제외시키는가!...’란 호소문을 발표하고, 이 집에서 홀연히 순국하시어 2천만 동포의 가슴에 한을 남기고 항일 독립운동에 불을 당겼습니다. 이 뜻을 기려 유럽에 하나밖에 없는 항일독립운동유적지인 이 집에 이준열사기념관을 1995년 8월5일에 개관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1997년 이준 열사 순국 90주년 만국평화회의에 김수환 추기경님, 강원룡 목사님과 함께 종교계 대표로 참석하셔서 이곳을 방문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기념관 한쪽 벽면에 그때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 1997년 이준열사 순국 90주년 만국평화회의에 스님께서 참석했던 모습이 담긴 사진.   

스님께서는 이준 열사의 동상 앞에 헌화하신 후 추모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명록에 추모의 글을 남기셨습니다. 



“이곳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님의 뜻을 이어 받아
 한국의 완전한 독립인 통일 한국을 이루어
 열사님의 꿈을 완성하겠습니다.
 고이 잠드소서!”   

기념관 원장님은 내일 스님일행이 오시는 줄 알고 휴관일임에도 불구하고 기념관을 특별히 열려고 하셨으나, 일정이 조정되어 오늘 방문하게 되는 바람에 스님께서는 원장님께 양해의 말씀을 전하고 대신 ‘새로운 100년’ 책을 선물한 후 기념관을 나왔습니다. 

마침 이준 열사님이 일본의 침략행위를 규탄하려고 찾아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국회의사당이 기념관과 가까운 곳에 있어 들렀습니다. 지금은 ‘비넨호프(Binnenof)’라고 불리우는 궁전의 안뜰 한가운데에 세워진 이곳 의사당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다고 합니다. 


▲ 이준 열사님이 찾아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국회의사당. 

열사님은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 보이는 계단에서 각국의 대표에게 일제침략의 부당함을 역설하며 알려내는 일을 하셔야 했다고 합니다. 이곳 계단에 서서 열사님의 못다 이룬 꿈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특히 오늘은 ‘왕자의 날’이라는 기념일이여서 비넨호프(Binnenof) 입구에서 무료로 사과와 배를 나눠주고,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는 입장료도 무료여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으나 줄이 너무 길어 그냥 주위를 둘러보고 헤이그의 도심을 빠져나왔습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다 되었습니다. 4시에 강연이 시작하는데 3시까지 강연장에 가려면 유적지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냥 차안에서 시내를 주마간산 식으로 보다가 큰 교회가 한 곳 눈에 띄어서 잠깐 들러본 후 곧바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 암스테르담 도심 한복판에 높이 세워진 성 니콜라스 성당. 

오늘 강연은 De Ontmoeting 라는 네덜란드 교회에서 오후 4시에 열렸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오신 분들도 많이 눈에 띄었고, 학생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 오늘 강연 장소인 De Ontmoeting 네덜란드 교회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 헤이그 한국대사관의 최종호 참사님과 김진현 영사님, 서기관님이 오셔서 잠깐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참사님과 영사님은 네덜란드 국민들이 가진 특색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인들은 가정 중심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며, “외국에는 홍등가가 활성화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네덜란드 국민들은 홍등가에 거의 가지 않는다”며 네덜란드인들의 자정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스님께서도 네덜란드인들이 가진 저력에 대해 많이 공감하셨습니다.


▲ 주 헤이그 한국대사관 최종호 참사님(오른쪽), 김진현 영사님(중간), 서기관님(왼쪽)

오늘 강연에는 총 110명이 참석하여, 의자가 부족해 양 옆에 책상 위에도 올라앉아 강연을 들어야 할 정도로 열띤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6명이 질문을 했는데, 나이가 들었음에도 아직 얼굴도 동안이고 많이 헤매고 있는데 언제까지 헤매여야 할지 묻는 분, 네덜란드에 살고 있지만 한국사회 분위기 안에서 살고 있고 결혼을 아직 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부모님의 압박을 받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네덜란드에는 절이 없는데 생활 속에서 불교 수행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묻는 분, 저는 네덜란드에서도 외국 사람인 것 같고 한국에서도 외국 사람인 것 같아서 고민이라는 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는데 아버지에 대한 불편한 마음 때문에 한국에 안가고 있는데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해해서 고민인 분, 잡생각이 많이 일어나고 집중이 잘 안되어서 고민인 분 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고 스님께서는 성심성의껏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한국에 9년 동안 가지 않은 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어머니가 9년 전에 자살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굉장히 가정적인 분이신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뒤에 다른 여자 분을 만나서 1년 만에 재혼을 하셨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결혼을 하시고 나니까 엄마한테 왠지 모르게 미안하고 아버지가 자꾸 싫어져요. 마음도 닫히면서 한국에도 가기 싫어서 9년째 안가고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한국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해요. 아이들 때문에 한국에 가고 싶기는 한데, 아버지를 만나면 마음이 불편할까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하면 데리고 가세요. 아버지가 만나기 싫으면 한국에 가더라도 안 만나면 되지요. 아이들을 위해서 갈 필요가 있으면 가면 되고, 가더라도 아버지에게 연락 안 하고 오면 되지요. 아이들이 엄마의 가족들을 보고 싶다고 한다면, 한번 데리고 가서 봐도 되고요.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서 싫은 사람도 좀 만날 수가 있어야죠. 엄마가 그 정도의 희생정신도 없어요? 닭도 병아리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운다는데, 아버지를 만나는 일이 죽는 일도 아니고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잖아요. 



지난 9년 간 못 만났다면 아버지가 할 얘기가 많겠죠. 첫째, 그냥 들어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인이 되면 원래 말이 많아져요. 했던 얘기를 또 하게 되고요. 그것은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아버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노인이 다 그래요. 부모가 그런 것은 내가 받아들여주어야 되고, 이게 안 좋다 싶으면 나는 늙어서 이렇게 안해야 되요. ‘나는 늙으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나도 늙으면 그렇게 하게 되요. 그래서 제가 불자들에게는 그럴 때 “염불해라” 그럽니다. 입이 간지러우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던지 하나님을 부르던지 염불을 해라고 말하는 겁니다. 

어릴 때는 뼈가 연하지만, 늙으면 뼈가 굳고 잘 부러지잖아요. 그것처럼 사유도 어릴 때는 유연합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굳어져서 육십이 넘어가면 생각이 거의 고정됩니다. 변화가 안 일어납니다. 사유 체계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회귀 본능이 생깁니다. 가령 외국에 살고 있다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나이가 들수록 더 생겨요. 이것을 미리 딱 알고 있어야 해요. 이것을 미리 알면 나의 이런 요구를 너무 주장해도 안 되고, 상대가 그럴 때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얼마든지 노후를 함께 잘 보낼 수가 있습니다. 

한번은 나이가 칠십이 다 되어가는 여성분이 “스님, 제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경제적으로도 잘 살고, 외국인 남편도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늘 마음 밑에는 허전함이 있어요. 죽기 전에 한국 영감하고 1년만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라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한국 사람끼리는 조금만 이야기해도 깔깔깔 웃는 것이 가능하잖아요. 제가 지금 법문하는 것을 통역해서 외국인에게 전달하면 제대로 전달이 될까요? 안 되겠죠. 어릴 때가 아닌 커서 들어온 정보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정서적으로 교감이 잘 안 일어납니다.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만 전달이 되니까 심리적으로 만족이 안 일어나고 답답해집니다. 그래서 같이 못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이렇다는 것을 이해하고 접근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잖아요. 본인이 어쨌든 선택을 한 것이고, 아버지와 갈등이 있어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도, 갈등이 있는 부부라고 다 자살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것은 하나의 조건에 해당합니다. 만약 어머니가 자살하셨다면 정신적으로 우울증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할머니 때부터 그런 증상이 있어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도 그런 증상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내가 이것을 모르면 바깥 탓을 하는데, 이것을 알면 환경 탓이나 남편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이것은 내 까르마다. 또 업식이 발동하네. 정신 차려라.’ 이렇게 주의를 줘서 여기에 빠져들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인생을 자기 나름대로 선택해서 가진 겁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면서 어머니를 편하게 보내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안스러워한다고 어머니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요. 안스러워하면 내 마음이 슬프고 외롭죠. 게다가 자녀가 부모를 계속 그리워하고 울면 영가가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안스러워서 갈 수가 없죠. 갈 수가 없으면 무주고혼이 됩니다. 늘 내 주위를 맴도는 귀신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부모에게도 잘못된 행동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 좋은 게 무엇이 있으며, 부모와 가족에게 좋은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삼일장을 하는 이유는 삼일만 울고 끝내라는 것입니다. 49재를 하는 이유는 49일까지 좀 봐주겠으니 더 이상 울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이제 어머니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놓아주어야 나도 해탈이 되고 부모도 해탈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스무살이 넘으면 자식도 부모를 놓아야 하지만 부모도 자식을 놓아주어야 자식이 성인이 됩니다.  



아내가 돌아가면 이제 더 이상 남편이 아니잖아요. 결혼을 했을 때는 남편이지만 사별을 하면 더 이상 남편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가 어떤 할머니를 선택하든 젊은 여자를 선택하든 누구를 선택하든 그것은 아버지의 자유입니다. 물론 나의 입장에서는 서운하겠죠. 어머니로부터 어릴 때 은혜를 입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린 것은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아버지의 인생을 사는 겁니다. 그런데 왜 질문자는 그것을 질투하고 시비하고 그럽니까? 이런 것을 불효라고 합니다. 질문자와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에 질문자가 지금 간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여자가 늙은 영감을 사귈 때도 늙은 영감이 돈이 좀 있으니까 사귀는 것이지 왜 사귀겠어요? 그렇다면 이것은 욕을 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지나치게 사람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지 말고, 자기 주관으로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여자가 결혼할 때도 남자의 재산을 봅니다. 그런데 늙은 영감과 사귀는데 재산도 안 본다면 무엇 때문에 사귀겠어요? 질문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혼자서 울고불고 한 것입니다. 이것과 한국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한국을 안가겠다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아이들 데리고 한국 가시고 아버지 만나고, 아버지의 여자 친구에게도 “엄마” 라고 얘기하고 용돈도 드리고 하세요. 이렇게 털고 살면 내가 자유로워지고, 움켜쥐고 살면 내가 속박 받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질문자가 정치범도 아니고 입국 금지도 안 시켰는데 왜 못 가고 그렇게 계속 있을 겁니까.(웃음)”

질문한 여성분은 처음에는 굳은 표정이었지만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활짝 웃었습니다. 참석한 청중들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2시간 40분 동안 길게 진행되었음에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 여러 가지 재미난 비유와 사례를 얘기해 주셔서 더욱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법문 내용을 모두 전해드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 강연을 마치고 로비에서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 교회 앞마당으로 나가 수고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강연 책임을 맡아주신 권순남 보살님(오른쪽에서 네번째) 

 
뒷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봉사자들과 함께 강연 준비과정에서 느꼈던 점에 대해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암스테르담 강연은 권순남 보살님이 주축이 되어 한글학교 선생님이고 식사를 준비해주신 김미경 보살님, 사회를 맡은 장회정 법우님, 출장으로 오늘 강연에 참석하진 못했지만 준비과정을 도와주신 이정민 보살님 이렇게 4명이 많은 역할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일 날 봉사를 해주신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주축이 되어 암스테르담에도 정토회가 개원하는 날을 꿈꿔봅니다. 

원래 김미경 보살님 댁에서 하룻밤 머물 예정이었으나, 스텝진들의 장기간 이동 일정으로 밀린 빨래와 함께 피로가 쌓여 있어 보살님께 양해를 구하고, 네덜란드 국경에 인접해 있는 도시 아헨에 살고 있고 유럽지구장인 김선희 법우님 댁에서 짐을 풀기로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벨기에와 뒤셀도르프 강연이 있는 모레까지 3일간 숙소로 머물 예정입니다. 덕분에 스텝들은 심적으로나마 조금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스무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벨기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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