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다섯번째 강연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최문기 거사님 댁에서 하룻밤을 잘 쉬고 새벽 5시에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헬싱키에서 오전 9시에 비행기를 타서 스웨덴 스톡홀름에 오전 9시5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헬싱키와 스톡홀름이 시차가 1시간 있으니까, 1시간 정도 걸린 셈입니다. 



스톡홀름 공항에 도착하니 윤사라씨와 김건씨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마중나와 주셨습니다. 윤사라씨는 스웨덴에서 산지 20년이 되었는데, 한국에서 스웨덴으로 입양 온 아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하는 분입니다.  김건씨는 이번 스웨덴 강연 책임을 맡으신 분인데,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의료경제학자입니다. 스님 일행을 위해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운전과 강연 준비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우선 오늘 숙소로 사용할 예정인 김태자 보살님 댁에 가서 짐을 풀어놓기로 하였습니다. 김태자 보살님은 스웨덴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하고 계신 분인데 젊은 시절 이곳에 의학을 공부하러 왔다가 스웨덴인 남편을 만나 정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살님께서는 스님이 오신다고 갖가지 나물 반찬과 푸짐한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주셨습니다. 점심 식사를 감사히 먹고, 스웨덴 스톡홀름을 상징하는 몇몇 유적지를 둘러보러 나갔습니다. 


▲ 점심 식사와 저녁식사를 정성껏 준비해 주신 김태자, 마츠 선생님 부부 

오늘 유적지 안내는 정재욱씨가 해주셨습니다. 정재욱씨는 스웨덴에서 신도시 개발 및 독일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있는 산업디자이너입니다. 스님 일행을 위해 스웨덴의 역사와 지리 등에 대해 풍부한 설명을 정성껏 해주었습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거대한 군함 바사호가 전시된 ‘바사 박물관’입니다. 1628년 8월 10일, 길이 69m 높이 48.8m에 달하는 대형 군함이 스웨덴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며 첫 항해에 나섰지만 몇분 후 침몰하면서 100여명의 탑승자들이 그대로 바닷속에 가라앉은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후 300년간 바닷 속에 잠겨 있던 배는 고고학자인 안데르스 프란센에 의해 발견되어 1961년이 되어서야 인양되었고, 1,4000 조각의 거대한 부품들이 퍼즐조각처럼 재조립되어 이곳 박물관에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 박물관에 복원된 바사호 

박물관에서 바사호의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자세한 안내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스님께서는 “첫째,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의 무게 중심이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데 잔돌을 채우지 않고 너무 큰 돌을 넣으면 사이사이에 구멍이 너무 많이 생겨서 예상보다 무게가 적게 나갈 수 있고, 둘째, 배의 가로 폭에 비해 높이가 너무 높아서 균형이 안 맞았던 것 같다” 하시며 침몰 원인을 예측해 주셨습니다. 또 바닷속에 300년간 묻혀 있었지만 배의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었던 원인은 바닷물의 염분이 적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곳 스톡홀름의 앞바다는 특별히 염분이 적은 것이 특징인데, 그로 인해 미생물들과 조개류가 배를 공격하지 않았고, 또 제조 시에 은으로 만든 못을 사용하여 녹슬지 않았던 것도 원인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바사 박물관을 보면서 안내를 해주신 정재욱씨는 “스웨덴 사람들은 실패의 경험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서 후대인들에게 배움을 얻게 하도록 스토리를 잘 만드는 것 같다” 며 이 외에도 몇몇 유적지들에서 실수한 부분을 숨기지 않는 다른 사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바사 박물관 바로 옆에 민속박물관이 있어 빠른 속도로 휘이 둘러본 후, 스톡홀름의 역사가 담긴 상징적인 건물 시청사를 찾았습니다. 


▲ 스톡홀름 시청사

시청사는 매년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한 만찬이 펼쳐지는 블루홀과 시의원들이 회의하고 결정을 내리는 의사당, 반대편에 보이는 호수가의 풍경을 대칭이 되도록 프레스코화로 그린 방, 스웨덴의 역사를 황금빛 모자이크로 꾸민 골든홀로 유명한데, 정재욱씨의 안내로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 매년 노벨상 시상식 만찬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시청사의 블루홀 

다시 시내 중심가로 들어와서 ‘감라스탄’ 이라 불리우는 구시가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스웨덴어로 ‘감라’가 ‘오래된’이란 뜻이고, ‘스탄’이 ‘도시’라는 뜻이라고 하니 감라스탄은 ‘구시가지’ 라는 뜻이 됩니다. 스톡홀름은 13세기 이곳 감라스탄에서 시작된 도시라고 합니다. 국회의사당을 지나 감라스탄 안으로 들어가니 스웨덴 왕궁이 나타났습니다. 왕궁 안은 오후3시가 넘어 문을 닫아 입장을 할 수 없었는데, 왕궁 바로 옆에는 대성당이 있어 잠시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 스톡홀름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피의 광장. 

좁은 골목을 더 깊이 들어가니 작은 광장이 나타났는데, 이곳은 스톡홀름 대학살 사건이 벌어진 곳이여서 ‘피의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라 합니다. 1520년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2세가 침입해 이곳 광장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조금 더 골목을 따라 걷다보니 어떤 골목은 폭이 채 1m도 안 되는 곳도 나타났습니다.   


▲ 1m가 채 안되는 감라스탄의 좁은 골목. 

감라스탄 골목을 빠져나와 왕궁을 둘러싼 성벽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니 ‘왕의 정원’ 이라 불리우는 공원이 나타났습니다. 


▲ 뒤에 보이는 건물이 왕궁.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국회의사당.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을 쐬며 공원을 걷다가 중앙역 근처의 세르엘 광장과 컬쳐하우스를 지나 오늘 강연이 열리는 Samuelsgatan 건물에 들어왔습니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한국연구재단 소장님과 직원 분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아주셨습니다. 

강연은 한국연구재단 스톡홀름 주재 사무소가 있는 Samuelsgatan 건물 9층에서 열렸습니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곳에서 이뤄지는 강연이다보니 많이는 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해서 마이크도 대여하지 않기로 했는데, 뜻밖에도 빈자리 없이 95명이 참석하여 앉을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발디딜틈 없이 성황을 이뤘습니다.   



오늘 강연은 주 스웨덴 대사관에 근무하시는 김충환 홍보관님께서 뒤에서 많은 도움을 주시고, 김건씨를 비롯한 윤사라씨, 정재욱씨, 한국연구재단 한동성 소장님 등의 도움으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남편이 자주 상처 주는 말을 해서 힘들다는 분, 젊은 시절에 가게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때린 적이 있었던 기억 때문에 하루하루가 힘들다는 분, 고민이 있을 때마다 법륜 스님에게 항상 답을 구할 수가 없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자기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묻는 분, 내가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분, 서른살이 되니까 결혼에 대해 압박을 받는데 결혼은 왜 하는 걸까 의문이 든다는 분, 곧 아기 엄마가 되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묻는 분, 습관적으로 불안해하는 심리 상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묻는 분 등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참석인원이 적을 것이라 예상하여 조촐하게 진행하려고 마이크 대여를 하지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한국에서 가져간 휴대용 마이크를 즉석에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마이크 볼륨이 작아서 뒤에 앉으신 분들이 불편해 하실 것을 고려하여 스님께서도 목소리를 많이 높이셨습니다. 그래도 스님의 답변 내용이 너무나 재미있고 유쾌해서 참석자들도 너무나 기뻐하시고 좋아하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서른살이 되었습니다. 배우자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고, 부모님들도 결혼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시고 압박을 주십니다. 이혼율이 50%가 넘어가는데, 결혼이라는 것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 궁금합니다. 저도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보았지만 결국 헤어졌거든요. 결혼을 하더라도 함께 늙어가다가 혹시 다시 헤어짐이 찾아올 것 같아 겁도 납니다. 결혼을 할 때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결정을 해야 하고, 배우자를 정할 때도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은 결혼한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왜 스님한테 물어보세요? (웃음) 결혼을 해야 된다 는 것도 없고, 결혼을 안해야 된다는 것도 없어요. 옛날에는 사회 전체적인 문화가 결혼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런 환경이였죠. 그래서 결혼을 무조건 해야 되는 줄 알고 했습니다. 이것은 거대한 홍수가 나서 나무토막이 쓸려내려 가는 것과 같이 하나의 흐름에 불과한 것입니다. 부모 세대에서는 나이가 들면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자신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듯이 내 자식도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부모는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것을 받아들일지 안 받아들일지는 나의 선택입니다.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질문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결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때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결혼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니까 결혼을 못하는 겁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그냥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결혼식을 안 올려도 됩니다. 자연계의 모든 짐승들이 결혼식 올리고 사는 것 봤어요? 그냥 살지요. 결혼식이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 행위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절대 헤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천주교나 유교 같은 경우는 남편이 결혼식만 하고 죽어버려도 평생 혼자 살아야 했죠. 그런 문화에서는 그렇게 살아야 했던 것이고, 또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내 손을 잡아 버리면 나는 그 사람의 부인이 되어야지 다른 선택을 하면 안 되었죠. 강제로 나를 하룻밤 껴안고 자버리면 성추행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남자의 사람이 되어야 했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몽골 같은 경우는 남자가 결혼하고 싶으면 부인이 될 사람을 목숨을 걸고 납치해야 하는 게 문화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서 자라면 그 문화가 정상적인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을 어떻게 하느냐는 모두 하나의 문화입니다. 



여러분이 서구에 와서 교육받고 느끼고 본 생각과 몇십년 동안 한국에서만 보고 듣고 자란 부모님의 생각과는 당연히 결혼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죠. 프랑스 같은 경우는 젊은이들의 절반이 계약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문화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세대 차이에 의해서 문화가 다른 것이 있고, 나라 차이에 의해서 다른 것도 있고, 종교 차이에 따라서 다른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모 세대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할 때는 당연히 부모님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을 감수해야 합니다. 부모와 다른 문화를 선택하려면 갈등을 처음부터 예상해야 합니다. 갈등을 안 하려면 내가 사는 한국의 문화나 부모님의 문화를 수용해줘야 합니다. 부모님을 “어리석다, 틀리다” 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부모님의 가치관과 문화, 도덕을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는 부모의 생각이 있고 나는 내 생각이 있으니까 부모의 생각은 존중하되 나는 내 갈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질문자는 효녀도 아니고 자기 줏대도 없고 그냥 왔다갔다 하는 것 같네요. 내 마음대로도 하고 싶고 부모님께 기대고 싶기도 하고 그런 것 같네요. 

결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첫째, ‘남자면 됐다, 미성년자는 안 되니까 20세가 넘고 60세 이하면 된다’ 이렇게 연령 폭을 확 넓히세요. 둘째, ‘총각도 좋지만 재혼도 괜찮다, 신체 장애인도 괜찮고, 외국인도 괜찮다’ 이렇게 상대를 확대하면 길거리 가는 사람 중에서도 부지기수로 상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범위를 좁혀서 사람을 찾기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남자가 질문자의 요구에 맞춰주려고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런 남자는 없습니다. 그 남자도 ‘자기에게 맞는 여자가 어디 없나’ 하면서 찾으러 다니고 있겠지요. 그래서 나의 요구 조건대로 만나려고 하면 결혼은 절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도 중매를 설 때 다 거짓말을 조금씩 했던 것입니다. 고등학교 나왔으면 전문대 나왔다고 말하고, 전문대 나왔으면 4년제 나왔다고 말하고, 키가 170이면 175라고 말하고, 선 보러 나갈 때는 구두 뒷축도 높이고 화장하고 호주머니에 돈을 더 넣어서 가고, 예절이 없던 사람이 의자도 빼주고 차문도 열어주고, 성격도 왈가닥 하던 사람이 얌전을 떨고, 이렇게 서로 속이기를 하는 것입니다. 속여야 결혼이 성립하지 안 속이면 결혼이 성립하지가 않는 것입니다. 



서로 덕 보려고 욕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약간씩 속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쁜 건 아닙니다. 속아서 결혼했다 하더라도 ‘남편이 학벌을 속였다, 집안을 속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속여 주었기 때문에 내가 결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안 속였으면 나하고 결혼을 못했을 겁니다. 속여준 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고 속여준 걸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질문자에게 제일 좋은 길은 결혼을 안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신이 결혼할 수준이 안 되는 줄도 모르고 결혼하고 싶어 껄떡거리며 상대를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괜찮은 남자를 골랐는데 막상 살아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결혼을 하려면 ‘어떤 인간을 고르면 결혼 생활이 좋을거냐’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남자면 됐고, 나이도 상관없고, 결혼만 해주면 다행이지’ 이렇게 기대를 안 하고 막상 결혼하면 ‘생각보다 괜찮네’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정도 깊어지고 점점 좋아집니다. 그런데 기대를 너무 높여 놓으니 괜찮은 인간도 내 눈에는 안 차는 겁니다. 질문자는 눈이 너무 높습니다. 결혼을 하려면 눈을 낮춰야 합니다.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왜 물어요? 그냥 안하면 되지요. 그런 질문은 결혼을 하고 싶으니까 묻는 겁니다.”

질문한 여성분은 스님이 답변을 금방 알아듣고 “네, 잘 알겠습니다.” 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오늘 스톡홀름 강연은 밝고 활기찬 분위기였습니다. 스님께서 재치있고 솔직하게 답변을 많이 해주셔서 청중들도 많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책사인회를 하면서 참석자들과 짧게라도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유난히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이 보였는데, 의학 공부를 하러 왔다가 정착하게 되신 분, 적십자 병원에 근무하러 왔다가 정착하게 되신 분, 6.25 전쟁 때 참전한 스웨덴 사람과 국제결혼을 하게 되신 분들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수고한 봉사자들, 그리고 장소를 빌려주신 한국연구재단 관계자 분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강연을 준비하면서 어땠는지 짧은 마음나누기를 함께 하셨습니다. 


▲ 스톡홀름 강연 준비 책임을 맡아 가장 많은 수고를 해주신 김건씨(왼쪽), 운전을 맡아주신 윤사라씨(가운데), 유적지 안내를 해주신 정재욱씨(오른쪽). 

봉사자들은 많은 사람이 참석할 것이라 예상치 못하고 마이크를 준비하지 못한 걸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스님 강의를 들어서 너무 좋았고, 참석한 분들도 행복한 마음이 되어 돌아가셔서 보람이 컸다”며 다들 기뻐했습니다.  

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점심식사 접대를 받았던 김태자 선생님 댁에 돌아오니 밤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강연을 준비한 스님과 스텝진들은 점심 때 식사하고 남은 반찬과 밥을 먹고 김태자 보살님께서 정성스럽게 마련해주신 잠자리에서 잘 잘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세계 100회 강연이 계속됩니다. 노르웨이에서 계속 소식 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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