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렘리 성 안에 위치한 러시아정교회 성당 앞에서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두번째 강연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어제밤 12시30분 비행기로 독일 베를린을 출발하여 밤새 비행기 안에서 잠깐 선잠을 잔 후 새벽 5시30분에 모스코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 모스크바 공항 

공항에는 새벽부터 김혜경씨가 남편인 알렉스씨와 함께 마중을 나와주셨습니다. 


▲ 공항 마중과 모스크바 강연 준비를 맡아주신 김혜경씨 가족 

김혜경씨는 모스크바에 공부하러 왔다가 러시아인 남편과 결혼하여 자녀도 낳고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다가 큰 감동을 받고 정토회를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듣고 모스크바 강연을 담당해 주시기로 마음을 내어 주셨습니다. 모스크바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곳인데 김혜경씨 덕분에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모스크바 공항을 빠져나와 이곳에 주재원으로 나와 계신 문성필 전미영씨 부부네 아파트에 잠시 들러 아침 식사 겸 잠깐의 휴식을 취했습니다.
 

▲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신 문성필 전미영씨 부부.

아파트로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멈춰 서 버리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김혜경씨가 러시아어를 잘해서 곧바로 관리소에 비상벨을 울려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냥 웃기만 하셨습니다. 

문성필씨 부부와 담소를 나누다가 오전 9시부터 시내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내 유적지 안내는 모스크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권자경씨와 그 어머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오후 4시에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서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 모스크바를 상징하는 몇 곳만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 모스크바 강연 준비와 유적지 안내를 맡아주신 분들. 왼쪽부터 김혜경씨, 권자경, 권진경 자매와 그 어머니. 

가장 먼저 러시아의 상징인 전승기념공원에 들러 전승기념탑과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나폴레옹 전쟁과 2차세계대전 두 번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곳이기도 하지만 두 전쟁으로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직으로 우뚝 솟은 기념탑은 높이가 151.7m 인데 2차세계대전으로 죽은 1,517만명의 희생을 추모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 전승기념탑. 모스크바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보입니다. 과거의 역사인 전승기념탑 뒤로 최신식 빌딩들이 건축되고 있습니다. 

기념탑 뒤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데 이것 역시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합장을 하고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천도하기 위해 잠시 기도를 하셨습니다. 


▲ 전승기념공원에 마련된 꺼지지 않는 불.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전쟁으로 죽은 아들을 끌어 안은 모습의 동상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잠시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2차 대전의 상황들을 상세히 묘사한 다양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 전승기념박물관. 2차세계대전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묘사한 그림들 

시내로 가니 마침 오늘이 ‘모스크바 시의 날’ 이여서 곳곳에서 축제와 공연이 열려 떠들썩 했습니다. 먼저, 옛 러시아 제국 시절의 궁전인 ‘크렘린’ 성을 찾았습니다. 2.25km에 달하는 성벽과 스무 개의 성문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에는 궁전을 비롯하여 러시아정교회 양식의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군주제가 폐지되고 1922년 소련 탄생 이후에는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의 의회가 설치되었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 관저와 정부 기관이 이곳에 있다고 합니다. 


▲ 러시아 제국 시절의 궁전, 크렘린 성

궁 안으로 들어가서 러시아 황제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 아르항겔스키 대성당과 왕이 예배를 올렸다는 블라고베쉬첸스키 대성당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 아르항겔스키 대성당(왼쪽)과 블라고베쉬첸스키 대성당(오른쪽).   

러시아정교회 양식의 성당이라 외부와 내부의 모습이 서유럽 쪽의 카톨릭 성당들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습니다. 내부 벽화에 그려진 성화들 속에서는 조금 더 인간적인 면이 느껴졌습니다. 


▲ 그리스정교회 양식으로 그려진 성화들. 

여러 가지 양식의 궁전들이 있었는데 다 보지는 못하고, 안내해주시는 분이 무기궁 안에 있는 박물관은 꼭 볼만 하다고 추천하셔서 빠른 발걸음으로 관람하였습니다. 왕과 왕비의 화려한 옷과 마차, 장식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왕궁의 사치스런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왕의 호화 생활을 위해 백성들이 참 많이 힘들었겠다. 그래도 동양에는 ‘왕은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는 정신이라도 있었는데 서양은 그런 면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하시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비치시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 것은 심리적으로 보면 열등의식”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참새언덕에 올라 모스크바 시내 전경을 잠시 살펴보니 오후1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후4시부터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서 한국 식당인 서울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루스까야 빼스냐 소극장’ 이라는 곳에서 열립니다. 시내 곳곳의 축제로 인해 차량이 통제되어 강연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한 후 많이 걸어서 겨우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도 대부분 멀리서 주차를 하고 걸어오셨다고 합니다. 

강연은 50여명이 참석하여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오늘 강연 준비는 모스크바 대학교 한인 학생회 분들이 일일 봉사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김혜경씨 혼자서 준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모스크바 대학교 학생들 덕분에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 모스크바 강연이 열린 루스까야 빼스냐 소극장.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모스크바에 처음 왔습니다. 아무 인연도 없었는데 강연을 준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한국과 러시아의 과거 역사 속에서의 관계에 대해 먼저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1894년, 청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해서 청나라가 졌습니다. 청나라가 조선의 종주국이었는데, 청나라가 전쟁에 짐으로 해서 한반도에 대한 주도권이 일본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종 황제는 나라의 운명이 일본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아관파천’이라고 부르죠. 이것이 우리 역사에 러시아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첫 번째 관계였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한반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러시아가 각축을 벌이게 됩니다. 당시에 러시아는 동진 정책과 남진 정책을 써서 부동항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 남쪽으로 내려오려고 했고, 서쪽으로는 흑해 연안에 진출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막으려는 영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막으려 했습니다. 단순히 러시아와 일본 간의 갈등이 아니고 그 배후에는 영국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본과 러시아가 충돌한 1904년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할린 섬을 일본에 할양하게 됩니다. 러시아가 일본에 패배함으로 해서 우리의 운명은 전적으로 일본에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한반도를 일본이 장악하는 것에 대해서 일본과 미국이 합의를 봅니다. 당시에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지였는데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 해서 필리핀을 미국이 지배하게 됩니다. 이것을 일본이 양해하는 대신에 한반도를 일본이 지배하는 것을 미국이 양해하는 카스라테프트 협약을 맺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참 묘합니다. 미국은 1905년에 카스라테프트 협약을 통해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일본에게 양해하고, 또 미국은 1945년에 러시아와 함께 한반도를 양분하는 일을 하고, 지금은 또다시 중국과 한반도 문제를 우리의 등 너머에서 어떻게 결정할지 사실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를 위기에서 지켜준 중요한 은혜 국가이기도 하고 우리의 운명이 고난에 처하도록 방조한 국가이기도 한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쨌든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게 되고 결국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양해하게 되고 그러면서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급격하게 일본 지배로 넘어가게 되죠. 군대가 해산되고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됩니다. 

다음으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수립된 소비에트 정권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갖고 있었던 식민지 지배를 포기할 것을 선언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마치 러시아가 약소국가들의 독립운동에 은혜로운 국가처럼 비치게 됩니다. 그래서 이동인을 비롯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러시아에 와서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초기 사회주의자가 됩니다. 독립운동의 강력한 후원 국가로서의 러시아는 당시 1920년 후반과 1930년대 무렵 독립운동가들이 가장 의지하게 되는 국가였습니다. 또 원래 러시아를 비롯한 소비에트 국가들의 세계 전략은 민중혁명을 해야 하지만,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지배하는 제3세계 국가에 있어서는 제국주의에 투쟁하는 문제에 있어서 부르지아지와 협력할 수도 있다는 국공합작을 결의하게 됩니다. 이것이 중국에서는 국공합작으로 나타나고 우리 역사에서는 1927년에 신간회라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하는 독립운동 조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다음에 2차세계대전에서 최대의 피해국가가 러시아였습니다. 전체 사망자의 절반이상이 사실 러시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최대의 피해국가이면서 나치의 파시즘이라는 야욕을 무산시킨 최고의 공헌 국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럽에서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동서 분할로 나타났다면 한반도에서는 미국과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와 군정이 실시되고 이것이 남한에는 미국의 이익에 준하는 정부인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게 되고, 북한은 소비에트 정권을 지지하는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게 됨으로해서 한반도가 분단이 되게 되고, 결국 6.25 전쟁이라고 하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비참한 전쟁을 가져오게 됩니다. 또 1953년 휴전을 계기로 해서 정전협정을 맺어서 지금까지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남북이 서로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88년 이후 한국에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북방정책이 시행되게 됩니다. 1989년에 헝가리, 폴란드와 국교가 수립되고 러시아와도 국교가 수립되면서 여러분들이 러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전에는 대부분 북한 학생들이 러시아에 유학을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중요한 간부들은 러시아 유학생들이 많습니다.  

이런 과거 역사를 가진 나라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한반도의 중요한 주변 4대 강국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과 중국에 비해서는 영향력이 비해서는 떨어지는 상태입니다만 우리 한반도의 통일을 생각해볼 때 우리가 절대로 배제할 수 없는 큰 세력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한국은 러시아가 가질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서 다소 과소 평가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즉 러시아의 힘을 외교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하는데 좀 소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정부의 지원 없이 개인적으로 러시아에 와서 적응을 해나가고 있고, 앞으로 여러분들의 역할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큰 영향을 주지 않겠나 예상을 해 봅니다. 이국 생활에 조금 적응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자리를 잘 잡으셔서 여러분들 개인에게도 성공적인 삶이 되기를 기원하고, 또 개인의 삶을 넘어서서 여러분들의 고국인 대한민국이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가 이뤄지기를, 또 더 나아가서는 한반도가 통일이 되는데 여러분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이런 인연이 되어서 러시아에 대해서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연에서는 총 5명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남을 잘 도와주는 성격인데 도와주면서도 스스로가 늘 스트레스를 받아 고민인 분, 만족하며 사는 것과 노력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의 해결이 흐지부지 되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묻는 분, 과거에 비해 한국에 대한 러시아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좋아졌음을 이야기해 주시는 분, 남편으로서 또 가장으로서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면 좋을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들의 답변에 모두 답변해 주신 후, 강연을 마무리 하며 특별히 강연 준비를 위해 봉사한 모스크바 대학교 학생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공부는 항상 궁금해 하고 재미있는 마음을 내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꾸 내일을 생각하면 오늘을 헛되이 보내게 됩니다. 오늘 하루가 마치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하라고 해서 이를 꽉 물고 살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밖에 못산다면 뭐하고 살겠어요? 지금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산다면 재미있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루 밖에 못산다면 공부하는 학생들은 다 공부를 그만두겠죠? 내일 하루 밖에 못 산다고 해도 ‘오늘 하고 있는 이 일 밖에 다른 할 일이 없다. 이 일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이런 자세로 삶에 임해야 오지 않은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현재에 충실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모스크바 유학을 재미있고 즐겁게 하기 바랍니다. 오늘 봉사활동 해준 것에 대한 선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강연은 무려 3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설법에 모두들 다들 감사해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책사인회와 더불어 오늘 자원봉사 해준 모스크바 대학교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 오늘 강연 진행을 위해 봉사해준 모스크바 대학교 학생들

강연장을 빠져나오니 저녁 7시, 아직 1시간 정도 시내를 더 둘러볼 여유가 생겨 붉은 광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모스크바 시의 날 행사로 인해 도로가 통제되어 광장 안으로 가보진 못했습니다. 저녁 식사 장소인 한국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바실리 대성당이라는 곳을 경유했습니다. 

바실리 대성당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황제였던 이반 4세가 러시아에서 카잔 한국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며 봉헌한 성당인데, 1555년 건축을 시작하여 1560년 완공했다고 합니다. 47미터 되는 팔각형의 첨탑을 중앙으로 하여 주변에 8개의 양파 모양의 지붕들이 배열되어 있어 그 독특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반 4세는 완공된 성 바실리 대성당의 모습에 반해 이런 아름다운 건물을 두 번 다시는 못 짓게끔 건축을 담당했던 '바르마'와 '보스토니크'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하는 전설로 널리 알려진 성당입니다. 


▲ 바실리 대성당 

너무 늦은 시간이라 안에 들어가보진 못하고 밖에서 풍경만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해 주신 분들, 유적지를 안내해 주신 분들과 함께 한인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밤10시에 기차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이동

오늘은 밤11시50분 기차로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밤새 상트페트르부르크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내일 아침 7시에 상트페트르부르크에 도착합니다. 내일은 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스님의하루 텔레그램 구독하기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읽고 댓글로 마음을 나눠보세요. 단, 욕설, 비방, 광고, 도배하는 댓글은 관리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