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 장벽 앞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한번째 강연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새벽5시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인 회장님 댁에서 정성껏 차려준 아침을 감사히 먹고, 새벽6시에 차량에 탑승하여 독일 베를린을 항해 출발합니다. 



시원하게 뚫린 폴란드의 고속도로를 따라 5시간을 달려 11시쯤 베를린 시내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6시에 강연이여서 시간 여유가 있어 독일 분단의 상징적인 장소 몇 곳을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통일 전 냉전이 최고조로 달했던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입니다. 동서 벨를린 국경 검문소는 체크포인트 알파, 체크포인트 브라보, 체크포인트 찰리 3곳이 있었는데, 각각 프랑수군, 영국군, 미국군 통제 아래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미군이 관할하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입니다. 분단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다시 설치된 이곳은 베를린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때 냉전의 중심이였고 금방이라도 불을 뽑을 것 같은 미국과 소련의 탱크가 마주했다는 장소였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군복을 입고 검문소를 지키는 흉내를 내고 있는 군인 2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 냉전의 상징적 장소였던 체크포인트 찰리 

다음은 베를린 장벽 추모관으로 갔습니다. 장벽이 있던 자리와 그 부근을 보전하여 분단의 비극을 후대에도 전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곳입니다. 장벽의 모습을 유지한 것이 있는가 하면 철골만 남은 것도 보였습니다. 장벽을 넘다가 사살된 이들의 사진도 간간히 보여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장벽 주위를 빙 둘러보신 후 조용히 장벽 앞에 서서 간절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희망편지 카카오스토리에 전해줄 스님의 인사말을 동영상으로 전하기 위해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베를린 장벽 앞에서 전하는 말씀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는 세계 100회 강연을 출발해서 이제 11일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독일 베를린에서 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바르샤바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베를린에 도착해 제일 먼저 들른 곳이 이곳 베를린 장벽이 있는 곳입니다. 

독일은 이미 20년 전에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 독일을 이루고 유럽 연합의 중심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단 70년이 다가오는데도 아직도 통일은 고사하고 남북 간의 평화와 교류 협력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장벽 앞에 서서 우리도 하루 속히 통일의 꿈을 키워나가길 기원해 봅니다. 

이 장벽이 무너지듯이 우리의 휴전선도 무너지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서 통일 한국의 완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공동체를 이뤄서 21세기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여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께 통일을 염원하며 베를린 장벽 앞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다같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염원합시다.”

다음은 유대인 학살 기억 조형물을 둘러보았습니다. 유대인 대학살을 잊지 않고 그와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세워진 공간으로, 다양한 높이의 2711개의 시멘트 기둥이 둘쭉날쭉 세워져 있어 마치 희생된 유대인들의 묘지를 연상하게 해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는 곳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조용히 이곳을 둘러보시고 “반성을 하게 되면 반성을 하는 쪽한테 이익이 된다” 하시며 독일이 비록 전범 국가이지만 자신들의 만행을 반성하고 어떻게 피해국가들과 관계를 회복시켜 갔는지 상기 시켜 주셨습니다. 또 일본이 아직도 전쟁 범죄에 대한 반성이 부족함도 지적하셨습니다.  


▲ 유대인 학살 기억 조형물

다음은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 앞 공원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어제밤 전기 밥솥으로 해놓은 따뜻한 밥과 김치 등 몇 가지 반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 국회의사당 앞 공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

식사 후 오후에는 통일 독일의 상징적인 건물 국회의사당과 브라덴부르크 성문, 그리고 1953년 동베를린 시민들이 “우리는 같은 민족” 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궐기했던 역사적인 현장인 6월17일의 거리와 전승 기념탑을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이번 가을 불교대학 입학생들을 위한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촬영했고, 브란덴부르크 성문 앞에서는 경전반 입학생들을 위한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햇빛이 너무 강해서 촬영에 다소 어려움이 있어서, 아마 모레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넘어가서 다시 촬영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의 옥상은 유리로 된 돔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방문객들이 이곳에 올라 유리 바닥 아래로 국회의원들이 회의하는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 브란덴부르크 성문.  1788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명령으로 지어졌고, 문 위에는 사두마차를 끄는 승리의 여신상이 그 위엄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광화문 광장처럼 독일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구심점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후4시에는 베를린정토회 장서희 보살님 댁에 들러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보살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된장국과 반찬들을 먹고 오늘 강연이 열릴 베를린 자유대학 강당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은 오후6시에 시작하였습니다. 총 180명이 참석하여 지금까지 진행된 유럽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습니다. 베를린정토회 회원 분들이 곳곳에서 역할분담하여 매끄럽게 행사가 잘 진행되었습니다. 



총 7명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유학을 왔는데 부모님의 도움을 계속 받고 싶은데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민인 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유학을 왔는데 지금은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잘 서지 않아 고민인 분, 하루에도 수차례 마음이 들쑥날쑥 하는데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방법을 묻는 분, 오늘 강연장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그 의미를 스님께 묻는 분, 딸아이와 불편한 관계 때문에 힘들다는 분 등 많은 질문들에 대해 스님께서는 쉽고 편안하게 질문자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첫 번째로 나왔던 질문인 독일인이 스님께 한 질문과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신 후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어머니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독일인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입니다. 통역은 질문한 독일인의 부인인 한국 여성분이 즉석에서 해주면서 문답이 진행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하노버에서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열세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셨어요. 그 이후로 어머니가 연락을 두절하셔서 지금 20년 지났는데도 연락이 안됩니다. 지금 어머니가 어디 사시는지도 알고 있고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것을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제가 찾아서 만난다고 해도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어머니와 관계를 엮어 나가야 할지 궁금합니다.” 



“첫째, 이미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설령 부모님이 계셔서 나를 키워주고 돌봐주고 했더라도 이제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릴 때 헤어져서 지금 보고 싶고 아쉽고 하지만, 이미 성년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고 키워주고 지금 다 살아계셔도 스무살이 넘어서 성년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해요. 독립을 한다는 것은 관계를 끊고 지내도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스님들이 스무살이 넘어서 출가를 하게 되면 집안과 관계를 완전히 끊고 아예 만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효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질문자가 스무살 이하라면 달라요. 그런데 질문자는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어릴 때 부모와 헤어졌던 안 헤어졌던 관계없이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해야 합니다. 

둘째, 그런데도 어머니가 계속 보고 싶다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줄 일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잘 계시냐고 하면서 제가 어머니가 보고 싶으니까 한번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청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나는 보기 싫다” 하면 “어머니께 제가 인사드리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열 살까지 저를 키워주셨는데 제가 감사 인사를 제대로 못드렀습니다. 전화로라도 감사인사 드리겠습니다. 낳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관계를 끝맺음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래 한번 보자” 하고 연락이 오면 만나면 됩니다. 만나서 아무 다른 얘기는 하지 말고, “어머니께서 저를 낳아주시고 열 살까지 잘 키워주셔서 지금 제가 성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께 고맙다는 인사를 한 번도 못드려서 그래서 뵙고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하고 그 자리에서 절을 하면서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또 보자” 고 하면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만나자고 요구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어머니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자식인 내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질문한 독일인과 한국인 부부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밝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부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강연은 3시간 동안 진행되어 스님께서 많은 이야기들을 애정 있게 들려주어 베를린 교민들 모두 감사해하고 기뻐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교민 분들과 인사를 나누신 후, 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마음나누기도 함께 하였습니다.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베를린정토회 회원 분들은 “작은 역할이라도 맡아서 잘 쓰일 수 있어 즐거웠다” 며 소감을 나눠주셨습니다. 

내일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밤12시30분 비행기로 모스크바로 가는 일정입니다. 강연장을 뒷정리하고 비행기에 실을 짐 정리를 간단히 한 후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네비게이션에서 목적지를 제대로 입력하지 못해 계속 어려움을 겼었으나, 스님께서 아이패드로 지도를 보시더니 가장 빠른 길을 바로 찾아내어 주셔서 무사히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지난 12일간 사용했던 렌트카를 반납하고,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공항에서 대기하는 동안 원고 교정을 보신 후 비행기에 탑승하셨습니다. 내일은 모스크바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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