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 바르샤바, 문화과학궁전 앞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 번째 강연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체코 프라하에서 하룻밤을 묶고 새벽5시에 폴란드 바르샤바로 출발합니다. 오늘은 700km를 달려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 중 150km 이상을 국도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어 일찍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체코를 벗어나 폴란드 국경을 지나니 일직선의 고속도로가 계속 펼쳐졌습니다. 도로도 깔금하게 새로 잘 닦여져 있어서 덜컹거리지 않고 편안하게 계속 달릴 수 있었습니다. 

오전10시30분 무렵, 휴게소에 내려 일찍 점심을 먹었습니다. 날씨도 화창하고, 새벽에 전기 밥솥으로 해놓은 따뜻한 밥과 김치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또 작은 도시를 지나갈 때 스님께서 손수 빵집에 들러 빵을 사오셔서 함께 먹기도 했습니다. 


▲ 이동 중 휴게소에서 먹는 점심 식사

2차선 국도가 계속 막혀 오후3시가 다 되어서야 바르샤바 시내로 접어들 수 있었습니다. 고전풍의 오래된 건물들이 중심가에 자리 잡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곳곳에서 최신식 빌딩들이 건축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나치 군에 의해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전후 폐허 위에 재건한 도시라고 하니 높은 빌딩들 속에 보이지 않은 아픔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오후5시까지는 강연장에 도착해야 해서 유적지를 둘러볼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바르샤바의 상징적인 건물인 문화과학궁전과 민중봉기박물관 2곳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문화과학궁전은 1955년 전후 폐허 위에 가장 먼저 상징적으로 건축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도시 전체가 나치군에 의해 파괴되고 성한 건물이 없었는데, 구소련 연방이 폴란드 국민들에게 주는 선물 형식으로 건축된 것이라고 합니다. 


▲ 문화과학궁전 

바르샤바의 역사적 아픔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민중봉기박물관을 찾았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무참히 파괴되었던 바르샤바의 당시 상황을 3D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시고 “전쟁은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이런 비극을 가져오게 하는 것” 이라 하시며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없어야 하고,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다” 며 짧게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 2차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바르샤바의 모습을 보여주는 민중봉기박물관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겨우 겨우 길을 찾아 폴란드 한국문화원에 도착했습니다. 문화원 앞에는 권영관 폴란드 한인회 회장님과 김현준 한국문화원장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문화원에서 준비해 준 저녁 도시락과 한인회 불자모임에서 준비한 떡을 감사히 먹고 곧바로 강연 준비를 하였습니다. 폴란드 한인회 불자모임에서 7명이 나오셨는데, 매월 1회 정기법회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할 때도 많은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오후 6시30분에는 재 폴란드 한국대사님 부부가 강연장을 찾아오셔서 스님과 함께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특히 대사님의 사모님은 평소에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자주 듣는 열성펜이라 하시며 스님을 만나뵙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 폴란드 대사님 부부 

대사님은 스님께서 매일 1개 도시를 이동하며 세계 100회 강연을 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워하면서 스님의 건강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폴란드 교민들을 위해 행복을 나누어 주심에 무척 감사하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대사님 부부는 강연이 끝날 때까지 맨 앞자리에서 스님의 설법을 함께 경청하셨습니다. 

한국과 폴란드는 1989년에 수교해서 올해로 수교 25년째를 맞는데, 현재 폴란드에 거주하는 교민은 1800여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중 바르샤바에 500여명이 살고 있으며 나머지는 LG 공장이 있는 지방 도시를 비롯한 여러 곳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한국 대기업에서 나온 주재원 가족들이 절반을 이루고 있고, 그 외 대사관 공무원들과 개인사업자들, 유학생들이 거주해 있다고 합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 교민들은 주로 식당업을 많이 하시는데 한류의 영향으로 한식과 일식이 호응이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잠시 머물렀다 가는 주재원 가족들이 많다 보니 교민 사회의 전체적인 안정성은 조금 떨어지지 않나 싶었습니다. 


▲  강연 시작 전 인사말을 해주시는 폴란드 대사님 


저녁7시부터 시작된 강연은 총 79명이 참석하여 빈자리 없이 꽉 찬 상태에서 활기차게 진행되었습니다. 



아이가 한국에서 일어난 윤일병 사건을 보고 국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가기 싫어한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결혼 10년 차인 가정 주부인데 남편이 밖에 나가서 일도 좀 하라고 해서 고민인 분,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남편과 성향이 맞지 않아 짜증이 자주 일어나서 고민인 분, 기독교를 신앙으로 갖고 있는데 불교 신앙을 갖고 있는 아내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과연 희망이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특히 7살 아이가 번쩍 손을 들고 “빙하가 녹고 있어 지구 환경이 걱정돼요” 라고 질문에 대중들의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에게 왜 빙하가 녹고 있고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어떤 환경실천을 해야 하는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자상하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폴란드에서 자란 아이의 교육 문제에 대해 질문한 한 어머님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폴란드 남편과 살고 있어요. 폴란드 식으로 아이들이 배우고 있어요. 한국의 문화에 대해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데, 한국말도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 어렸을 때 한국에 대해서 조금씩 이야기해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좋을지, 나중에 대학 다니고 커서 관심을 가지게 할지, 그냥 놔두는 게 좋을지요?” 

“애국적인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아이가 폴란드어 밖에 모른다던지, 폴란드어와 영어 밖에 할 줄 모른다는 것이 이 아이의 미래에 훨씬 활동 영역을 넓혀줄까요? 한국어까지 자유롭게 할 줄 아는 것이 이 아이의 미래에 선택의 폭을 넓혀줄까요?

예전에는 미국에 있는 교민 2세들이 한국말을 거의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30년 전에 교민 1세대가 미국에 갔을 때는 한국이 굉장히 가난했지 않습니까. 첫째는 1세대가 먹고 살기 바빠서 아이들 관리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둘째는 한국에 태어나서 살던 부모도 미국이 좋다고 미국으로 왔는데 미국에 태어난 아이가 미국에서 살지 한국으로 갈 일은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한국말을 안 가르치고 한국 문화도 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교민 아이들은 거의 다 한국말을 잘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그것은 미국에 사는 교민 아이들이 한국말까지 할 줄 아는 것이 자신의 직업 선택과 활동에 유리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불리한 것이 아니라, 한국말을 할 줄 앎으로 해서 삼성, 엘지, 현대 등 한국 기업에 취직하는 게 훨씬 더 수월해졌습니다.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짐으로 해서 교민들의 문화가 바뀐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통일이 되면 더 크게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통일이 안 되어도 한국의 국가적 위상은 지금 세계 14위 정도인데, 아마 통일이 되면 10위권 안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되거든요. 그리고 군대에서 일어난 폭력이나 세월호 사고 등 여러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한류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도 굉장히 많거든요.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빠는 폴란드를 이야기하고 엄마는 한국을 이야기하는 갈등 구조가 아니고, 오히려 어릴 때부터 폴란드인으로 살면서도 자연스럽게 한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훨씬 유리합니다. 그리고 한국문화나 글을 배우게 할 때는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어릴 때부터 편안하게 접근하는 게 좋습니다. 엄마가 조금 더 지혜롭다면 자연스럽게 1,2년 만에 한 번씩 한국에 데려가서 한국 여행도 하고 한국 문화도 체험하게 하면 좋습니다. 본인이 관심을 가지면 한글학교도 다니게 하고, 폴란드에서 대학을 다니더라도 한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오게도 하고, 이것이 이 아이가 폴란드인으로 성장하는데도 훨씬 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대신 강요를 하면 안 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아이하고 얘기할 때 한국말로 얘기하면 세 살 때까지는 각인 작용이 일어납니다. 또 어린이 때는 각인에 준할 만큼 기억이 오래 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편안하게 엄마가 한국말을 씀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런데 엄마가 몰라서 그렇게 안 하고 폴란드식으로 키웠다면, 그래도 엄마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의 무의식에는 한국의 까르마(업식)가 깔려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 갑자기 접근하면 아이가 당연히 거부 반응을 일으키죠. 그래서 돈이 조금 들더라도 한국에 여행을 가서, 설악산도 구경하고, 경주도 다녀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한국 영화도 보고, 이렇게 하면서 아이에게 한국에 대해 조금 호기심을 유발시키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집에서도 엄마가 한국말을 쓰거나 한국 얘기를 하거나 해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호기심을 먼저 불러일으킨 후에, 본인이 스스로 한국말을 한번 배워볼까 할 수 있도록 자발성을 일으키는 것이 학습 효과가 높습니다. 그래서 동기유발을 자꾸 해주세요. 아이와 대화하면서 엄마가 지혜롭게 기회 제공을 해줘야 합니다. 

요즘 한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폴란드 사람들도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배우잖아요. 그런데 왜 엄마가 한국 사람인데 그런 기회를 제공 못할까요? 만약에 엄마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가 더 한국에 거부 반응이 있다면, 엄마에 대한 거부 반응 때문에 그래요. 엄마를 싫어하는 감정을 아이가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면 한국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만약에 그런 문제라면 엄마가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여행을 한번 다녀오세요. 너무 한꺼번에 많이 가르칠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한국에서 좋아할 만한 역사 유적이나, 문화체험을 하게 하면서 아이에게 호기심을 유발시켜 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시간될 때 아이를 여기 폴란드 한국문화원에 데리고 나와서 차도 마시고 놀고 하면 좋겠다 싶어요.” 

스님의 답변에 질문자도 밝게 웃었습니다. 외국에서 다문화 가정을 이루게 되면 아이 교육 문제가 늘 고민이 되기 쉬운데, 스님께서 지혜로운 방법을 알려주셔서 참석한 교민들도 모두 공감하며 기뻐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강연 준비를 위해 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폴란드 대사님 부부도 끝까지 남으셔서 함께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오늘 숙소는 권영관 한인회장님 댁입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11시가 넘었습니다. 짐을 풀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한인회 회장님 부부는 스님을 극진히 모셨습니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데도 꼭 아침을 먹고 떠나시라고 밤을 세워 식사 준비를 하시고 계십니다. 


▲ 권영관 폴란드 한인회장님 댁 가족들 

스님께서는 늦게까지 한국에서 메일로 보내 온 보고서와 원고들을 점검하시며 업무를 보시다가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내일은 독일 베를린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열한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베를린에서 계속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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