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의 침략에 대한 저항하는 뜻으로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서 분신하여 목숨을 끊은 얀 팔라흐 학생의 추모비.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아홉 번째 강연이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헝가리 주재원 가족인 이송혜 보살님 댁에서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6시에 렌트카에 몸을 싣고 먼길을 달립니다. 오늘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뒤로 하고 체코 국경을 넘어 프라하로 갑니다. 

도로 포장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덜컹거리는 고속도로를 한참을 달려 오전11시쯤 프라하에 거의 다 와서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도심에서 곧바로 유적지를 둘러볼 예정이여서 점심식사를 휴게소에서 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이 어젯밤 전기밥솥으로 준비한 밥에 현지 교민들이 주신 김치, 김, 명이 나물을 반찬으로 뚝딱 한그릇씩 하고 프라하 시내로 들어섰습니다. 



먼저 오늘 스님 일행이 묵을 숙소인 Euro Wings 호텔에 짐을 풀고, 유적지 방문을 위해 시내로 나왔습니다. Euro Wings 호텔은 현지 교민인 김형수 거사님이 운영해 오고 있는 곳입니다. 


▲ 프라하 강연을 준비하고, 유적지 안내를 해주신 교민 네 분. 왼쪽부터 김형수님(Euro Wings 호텔 사장님), 박미영님(언어학 박사님), 고주영님(주 체코 한인경제인연합회 회장님), 백승구님(여행 가이드).  

오늘 프라하 유적지 방문 일정은 현지 교민 분들의 정성스런 준비 덕분에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프라하에서 여행 가이드업과 락 밴드 생활을 병행하며 살고 있는 백승구씨의 안내로 프라하의 핵심 유적지만 콕 짚어서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여행 위주의 설명이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와 맥락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셔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먼저 체코의 민족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시민회관에 들렀습니다. 체코는 400년 동안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는데, 1880년에 이르러 도서관 사서들이 주축이 되어 민족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많은 역사서들이 슬라브족(체코인들)의 관점이 아닌 게르만족의 관점에서 채택되고 쓰여졌는데, 도서관 사서들이 역사자료를 새롭게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소설, 오페라 등이 만들어지면서 문화부흥운동이 일어나고, 그런 문화운동의 필요성으로 이 시민회관이 1912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체코 독립선언문이 맨 처음 낭독된 곳으로도 유명한 장소라고 합니다.   


▲ 체코 민족문화운동의 부흥지인 시민회관 앞에서. 

쇼핑거리를 따라 주욱 걸어, 바츨라프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수백년 동안 체코인들은 합스부르크, 나치, 소련의 침략에 시달렸는데,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장식한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길게 경사를 지며 이어진 광장의 중앙에는 성 바츨라프 동상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성 바츨라프 왕이 체코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역사적인 활동이 많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 ‘프라하의 봄’으로 세계에 알려진 체코의 역사적인 광장. 바츨라프 광장. 

1차 세계대전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이 해체되면서 1918년 10월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독립이 바츨라프 광장에서 선언되었습니다. 그러나 1938년 9월 뮌헨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나치 독일이 슈덴텐란트를 병합하게 되고 수많은 체코 지식인들과 8만명의 유대인들이 나치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1968년에는 공산당 서기장 두브체크가 ‘인본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후일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개혁정책들을 도입하면서 소련군 및 바르샤바 조약군들이 수많은 탱크를 몰고 프라하를 점령하게 됩니다. 1989년에는 고르바쵸프가 페레스트로이커 정책을 발표했고 그해 11월 9일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체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11월17일 프라하에서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경찰들에게 폭력진압을 당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이후 매일 같이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11월 27일에는 총파업이 실시되면서 12월3일 공상당 정부와 정권 이양 협상을 벌여, 국민적 합의에 의한 정부가 수립되기에 이릅니다. 이런 평화적 정권 이양을 역사는 ‘벨벳 혁명’이라 부르며 자유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의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체코인들은 인구 1천만명의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까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불굴의 정신으로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현장이 이곳 바츨라프 광장이었다고 상상하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지금 젊은 청년들은 아무렇지 않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오늘이 있기 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다시한번 되새겨 보니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숙연해집니다. 
 
바츨라프 광장을 뒤로하고 구시가 광장으로 갔습니다. 구시가 광장에는 시계탑이 유명했습니다. 매시 정각이 되면 천문 시계에서 12사도들의 모형과 종을 울리는 해골 모형이 펼치는 이색적인 쇼를 볼 수 있습니다. 정각 5분 전이 되자 갑자기 인파들이 몰리는 재밌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 프라하의 랜드마크인 천문시계. 

광장 중심부에는 유럽 종교 개혁(프로테스탄트)의 시조에 해당하는 걸출한 종교개혁가였던 얀 후스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1415년 카를 대학교의 학장이었던 얀 후스가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화형에 처해졌는데 이로 인해 민중 봉기가 들불처럼 일어났으며 보헤미아는 1419년~34년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100년 후에는 마르틴 루터에 의해 본격적인 종교 개혁 운동이 진행되게 됩니다. 그래서 개신교의 시발점이 바로 얀 후스 라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후 이 기념비는 체코인들에게 있어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 종교개혁가 얀 후스 기념비가 세워진 구시가 광장. 내년에는 얀 후스가 죽은 지 6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이곳에서 많은 기념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 기념비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오스트리아 제국 시대에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고, 2차대전 기간에는 나치 침략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고, 공산정권 기간에는 타락한 공산당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동상 앞에는 “진실만을 사랑하고, 진실만을 섬기고,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만을 행하라” 라는 얀 후스의 좌우명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네가지 문장이 축약되어서 현재 체코의 국훈은 “진실은 드러난다”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카를 교로 향했습니다. 18세기에 제작된 30개의 조각상들이 돋보이는 이 다리는 1841년까지만 해도 프라하에 하나 밖에 없는 다리였다고 합니다. 다리 중앙에는 성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1683년 제작)이 자리해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라는 바츨라프 4세의 요구를 묵살한 후 카를 교에서 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인물입니다. 머리 주위에 별 5개가 금색으로 반짝이는 것이 여러 동상들 중에 가장 눈길을 끌게 했습니다. 



▲ 각각의 사연을 가진 조각상들이 아름다운 카를 교. 

이렇게 몇몇 상징적인 유적지를 둘러 본 후 체코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유명한 ‘트렘’과 ‘지하철’을 타고 다시 바츨라프 광장을 찾았습니다. 

1969년 소련 침공에 항의해 분신자살을 한 얀 팔라흐, 얀 자이츠를 비롯한 공산 정권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성소가 있는데, 스님께서 직접 추모를 하고 가자 하셔서 다시 이곳을 찾았습니다. 스님께서는 합장을 하고 조용히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 프라하의 봄, 체코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던진 두 청년을 추모하며. 

 

얀 팔라흐의 죽음은 계속되는 점령에 대한 큰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약 한 달 후인 1969년 2월 25일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학생 얀 자이츠가 자신을 불살랐고 1969년 4월 에브젠 플로첵이 뒤를 따랐습니다. 이러한 저항이 여론을 뒤흔들었지만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 상황에 충격을 주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숭고한 정신은 20년 뒤 1989년 벨벳 혁명의 토대가 됩니다. 

체코의 역사를 들으니 한국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대국 사이에 놓여 있어서 이런저런 침공을 받았지만 그속에서 희망의 싹을 튀워나가는 민족의 저력이 느껴지는 것이 마치 한국과 흡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오후 5시에는 체코 교민 분이 운영하는 도쿄식당에 식사 초대를 받아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오후 6시 무렵 강연장인 Vojtecha 성당에 도착하니 체코 교민 분들과 자녀들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스님을 무척 반가워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체코 프라하 즉문즉설 강연에는 총 55명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주 체코 한인경제인연합회 고주영 회장님의 후원과 이곳 한인 성당 박규남 신부님의 적극적인 홍보로 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이 있기까지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오늘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총 7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60대 남성 분이 강연 맨 마지막에 불평등과 종교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불평등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 왜 막내로 태어났는지, 키가 왜 170밖에 안되는지, 다른 사람들은 180이 넘는데... 나는 왜 못 생겼는지, 그리고 세상에는 많이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들이 있고,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고, 이게 과연 세상의 법칙인지요? 하나님과 부처님이 얘기한 세상이 이런 세상인지요?” 

“남자에게는 특권이 주어지고 여자에게는 억압이 주어진 세상에서 만약 여자로 태어난다면, ‘왜 내가 여자로 태어났나’ 하면서 억울해하겠죠. 그런데 ‘왜 나는 여자로 태어났나’ 이런 생각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에요. 여자로 태어나고 남자로 태어나는 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여자로 태어났고 남자로 태어났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 세상이 남자에게는 특권이 주어지고 여자에게는 억압이 주어지니까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 특권을 갖고 싶은데 못 가지니까 말이죠. 

남자, 여자의 차이를 없애버리면, 즉 남자라고 주어지는 아무런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면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나’ 이런 질문 자체가 필요 없어져버립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전생에 죄이거나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남녀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현실로 인정한 상태에서 생긴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체가 장애인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차별을 주니까 ‘나는 왜 장애로 태어났는가, 전생에 죄가 많아서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종교에서는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렇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다”고 하며 이런 잘못된 현실을 합리화시키는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이 점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부처님은 남자, 여자의 차별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신체 장애에 의해서 인간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피부 빛깔에 의해서 인간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가 큰 것이 좋고, 키가 작은 것이 나쁘다’ 하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키가 큰 것은 큰 데로, 키가 작은 것은 작은 데로 의미가 있습니다. 코끼리는 복이 많아서 코끼리로 태어나고 쥐는 죄가 많아서 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종이 다를 뿐이에요. 얼굴 생김새가 다르지, 저 사람은 더 잘 생겼다 저 사람은 못생겼다가 아니라 그냥 다르게 생겼을 뿐입니다. 진리는 ‘다르게 생겼다’라는 것이지, 누구는 잘생겼다 하는 건 그때 그때 사람들의 관념에 따라 이뤄지는 것입니다. 

양반과 쌍놈의 차별이 없어지니까 ‘나는 왜 쌍놈으로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없어지잖아요. 이런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는 불평등이 없습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다고 개구리는 잘 못 태어났고 뱀이 더 좋게 태어난 게 아니에요. 그냥 종이 다를 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피부 빛깔이나 남녀와 같이 자연적인 것을 갖고 차별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간의 행복도가 개선되지 않습니다. 빈부격차가 커지게 되면 행복도가 굉장히 떨어집니다. 국민 행복을 위해서는 정신 작용에 대한 수련도 해야 하지만, 빈부격차도 낮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경제민주화죠.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첫째 경쟁이 공정해야 해요. 그래서 부의 집중을 막고 격차를 줄여야 해요. 둘째, 경쟁 자체도 못하는 사람들, 어린아이, 노인, 장애인 등에게는 기본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것을 복지사회라고 하죠. 그런 면에서 유럽의 시스템을 잘 연구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곳 유럽에 나와 있으시면서, 우리보다 잘 산다 못 산다 이런 관점에서만 보지 마시고, 이 사회가 갖는 좋은 점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우리 사회보다 좋지 않은 점은 무엇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서로 나누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합니다. 

부자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그렇다는 것은 현재의 부를 합리화하는 지배자의 논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난한 것은 하나님의 복을 못 받아서 그렇다는 것도 지배자의 이데올리기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많이 복무해 왔습니다.

이런데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 라는 것과 같은 혁명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도대체 키가 작은 것이 뭐가 문제가 됩니까? 환경적으로 얼마나 좋아요? 옷감도 적게 쓰고 침대도 적어도 되고 에너지 절약에도 도움이 되고요. 선악의 개념이나 좋고 나쁨의 개념이 아닌 “다름”의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이런 철학적 정리가 우선 필요합니다.”

질문하신 분도 스님의 답변을 듣고 밝게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종합적으로 정리해주셔서 참 명쾌했습니다. 유럽에서 살다보면 성당과 교회 등 종교생활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는데,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깊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가졌습니다. 배낭 여행 중에 스님 강연 소식을 듣고 들렀다며 주머니의 돈을 털털 털어서 ‘새로운 백년’ 책을 구입하는 청년들,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왔다는 주부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했음을 사인회를 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분 한분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같이 기념 사진도 촬영해 주셨습니다. 



밤11시가 넘어 Euro Wings 호텔로 돌아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700km를 차로 달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열 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은 폴란드에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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