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초대석맑은마음,좋은벗,깨끗한 땅을 실현하는 정토회


저는시골 가난한 집에 태어나 농사 짓는 남편 만나 결혼했습니다. 내 나이 39살 몇 년 투병 끝에 85년 음력 동짓달 남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건 빚더미 속에 아이들 5남매, 막내 10살, 큰아들 19살, 누가 봐도 저 여자가 어떻게 살건지 기막힌 운명 앞에 말문이 막혀 남편의 시신 앞에 엎드려 나를 데리고 가지만 말아 달라고 빌었습니다.

자식은 짐이 아니고 버팀목, 살아갈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농사일, 식당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돈 없는 설움은 참을 수 없어 눈물은 베개를 적십니다.

혼자 된 엄마는 가장 무서운 게 죽을 까봐 겁났습니다.

내아이는 내가 키워야 하니까

조금만 안 좋아도 죽을병인가 놀라서 병원을 찾아 다녔습니다. 한번은 의사 선생님,“아이구 나는 진짜 혓바닥 갈라진 줄 알았네” 하며 아무병도 아니라며 웃으셨습니다.

이웃 사람 도움으로 7년 농사 짓고 막내 고등학교 진주 입학하면서 이사를 했습니다. 촌댁인 나는 뭘 해서 살아야 할 지 또 앞이 캄캄했습니다.

앞집 할머니 아침밥 먹고 곱게 차려 입고 복지관 가는 모습, 어찌나 부러운지 나도 언제 늙어 할 일 다할 까? 시장안 작은 식당, 밥을 이고 다니며 12년 고생 끝에 아이들 결혼 다 시켰습니다.
막내가 결혼하던 날 땅바닥에 덥썩 엎드려 큰절을 올리는 막내를 보며 “ 그래 이제 나는 죽어도 괜찮아” 안도의 숨을 쉴 무렵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부처님 같은 내동생 남편처럼 의지했는데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슴이 메입니다.

슬픔과 충격 괴로웠습니다. 유일하게 보는 불교 티비를 통해 법륜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행법회를 몇 번 참석하고 2012년 1월 입재식에 무조건 따라 나섰습니다. 4000명의 많은 사람들을 보며 크게 놀랐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먹고 살기 바빴을 때 스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정토를 만들었다는 걸 알고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컸습니다.

기도문을 받아 매일 아침 기도를 하고 누군가를 위해 1000원 한 장 넣는 순간 가장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늦었지만 정토를 알게 되어 스님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작년 3월 불대입학, 5월 법당 개원, 6월에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 6월 11일부터 사시예불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11월 12일 스님 진주 강연, 한달 전부터 매일 혼자도 가고 둘이도 셋도 가서 아파트 주택가 식당가 대로변 약국 미용실 우리 희망지기님 문열고 들어가 예쁜 목소리로 “이거 한 장 붙여도 될까요?” 허락 받고 웃고 나오면 신나게 붙입니다. 현수막 걸고 차에 꽂고 변두리 시내 곳곳, 이번 기회 진주 시내 안가 본 곳 없습니다.

시계 보고 깜짝 놀라 손자 올 시간 늦어 100미터 달리기 해서 오면 노란차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6살 짜리 손자, 할머니 가방 뒤져 전단지 한 장 꺼내 들고, “법륜스님, 오늘도 법륜스님 붙였나?” 웃음이 나옵니다.

어떤 날은 딸래미 전화 받고 택시 타고 날아 가기도 하고 오는 길 가는 길 개눈엔 똥만 보였습니다. 저만 그랬겠습니까? 하루 저녁 애들 몰래 홍보 나갔다 오니 우리 딸 “자기야 우리엄마 없어졌다” 후다닥 옥상에 갔다 오는 척, 엄마 전단지 알바 아줌마 같다. 괜찮아 스님께선 봉사는 사랑이라 하셨어. 정말 한사람이라도 더 와서 좋은 말씀 듣고 행보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붙이세요, 한 장 주세요, 스님 오신다고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 덕분에 자랑스럽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대강연날, 우리 봉사자들은 일찍부터 모여 긴장된 마음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강연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물밀듯이 몰려 오는 사람 보며 어찌나 감사하든지 스님의 원력에 또 감동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 행복했습니다.

홍보하면서 나도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작년 1월 처음 입재식에 따라와 진주 우리 보살님들 나이 들고 처음인 나를 어찌나 챙기고 살펴주든지 고맙고 미안해서 내나이에 괜히 정토에 발 딛어서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다행입니다.
공양간도 돌보고 청소도 할 수 있고 사시예불도 하고 거리모금도 같이 나가고 할 수 있는 게 있어 감사합니다.



지금은 우리 총무님 이하 여러 도반들게 넘치는 대우를 받는 기분이라 송구합니다. 전화 카톡에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만나면 웃고 안아 주고 우리 법당은 화목한 가운데 다들 할 수 있는 자기 일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불대 도반, 수행법회, 오시는 분들 반갑고 고맙습니다.

손에 손에 먹을 것 챙겨들고, 법당으로 향합니다.

젊은 보살님들 너무 예쁩니다.

정토회 스승님 만나 삶이 즐겁습니다.


내나이 67세 평생 안 바뀔 것 같던 제가 달라졌습니다.

스스로 복없는 여자라 자책하며 항상 자신없고 할 말 못하고, 이제는 나를 사랑합니다. 내가 행복해 지니 모든게 아름답게 보입니다.

한 때 어리석은 실수로 원망하고 미워했던 사람, 모두가 내탓입니다. 모든 건 내마음이 만드는 것,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고맙고 소중한 내아이들, 예쁘고 착한 며느리 둘, 어질고 착한 사위 셋, 손자 일곱, 손녀 셋, 각자 예쁘게 잘 살아주니 감사한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입니다.

어젯밤 큰아들 “어머니, 건강 조심하세요. 사랑합니다” 막내 아들 카톡으로 “엄마, 당신을 사랑합니다. 엄마가 부처님입니다.” 부산에 큰딸 자주 못 보지만 만나면 용돈 두툼하게 챙겨주는 든든한 딸, 같이 사는 둘째 딸, 매달 용돈 봉투에 “ 엄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고맙습니다.”

셋째딸 하루만 안봐도 “엄마 오랜만이네” 하며 꼭 안아 줍니다. 고마움에 눈물이 뜨겁게 흐릅니다.

요즘은 손자 때문에 웃고 화가 올라 오다가도 스님 말씀 생각하며 웃음이 나옵니다. 내동생 제삿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6살 짜리 손자, “할머니, 왜 울어? 법륜스님 이사갔나? 다시는 못보나” 울다가 웃었습니다. 손자도 알아보는 법륜스님, 정토회 도반 여러분 스승님 가르침대로 살면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고 우리는 모두 복 받은 사람들, “예, 하고 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봉사하며 수행하며 남은 생을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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